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고, 테러는 절대 해서는 안 될 범죄다. 하지만 프랑스 잡지사 테러는 이렇게 당연한 일들 속에 얼마나 복잡한 맥락이 숨어있는지를 보여줬다.
이슬람권에도 풍자는 있다. 이미 9세기부터 아랍에는 ‘히자’라는 풍자시가 있었고, 그 유명한 천일야화도 아내에게 배신당한 권력자들에 대한 비꼬기로 시작된다. 독재권력과 극단주의자들을 비꼬는 만평은 많다. 그런데 풍자는 원래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돈 있고 센 자들을 꼬집는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극단주의자가 아닌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꼼으로써 이슬람 자체를 타깃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해도 안될 이유는 없다. 이 잡지는 여러 종교를 두루 비꼬고 풍자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목적이 아니며 늘 무제한으로 옹호되지도 않는다.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유럽 나라들은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발언을 범죄로 처벌한다. 이번 사건 뒤 프랑스 검찰은 반유대주의 혹은 ‘테러 옹호’ 발언을 한 50여명을 잡아들였다. 하지만 가치는 상대적이다.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저질렀던 일과 지금 반유대주의자들에게 하는 조치들을 들어 이중잣대를 지적할 수 있지만 표현 자유의 기준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그 사회 안에서의 논쟁과 힘의 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걸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극단주의자들은 계몽주의 이래로 꾸준히 쌓아올린 프랑스의 가치, 유럽의 세속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공격했다. 테러를 규탄하러 모인 파리 시위대 일부는 바스티유로 향했다 한다. 아직 계몽되지 못한 무슬림들은 앙투아네트가, 앙시엥 레짐이 됐다. 샤를리 에브도와 유럽의 상당수 사람들은 전근대성이 툭하면 불거져나오는 이슬람 문화 자체에 이물감을 느끼는 것 같다. 갑자기 들어온 낯선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다. 표현의 자유를 누려온 유럽인들은 그 불편함을 ‘자유롭게’ 만화로 풀어냈으나 테러범들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복했다.
앞으로 더 늘어날 이 이질적인 존재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하나. 내가 만약 프랑스인이라면,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파리 테러는 무슬림들에게 표현 자유의 한계를 묻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혹은 우리)에게 관용의 한계를 묻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테러시대의 철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줬다. 이 문구는 9·11 테러 3년 뒤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대담을 묶은 책 제목이기도 하다. 하버마스는 서구가 보여줘야 할 ‘관용’을 얘기한 반면, 데리다는 관용 자체의 한계를 지적했다. 관용은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선까지는 품어주겠다 하는 문턱이다. 무함마드도 풍자할 수 있다, 무슬림 아닌 사람의 표현 자유에까지 끼어들려 하지 마라, 그래야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다. 독일의 ‘페기다’를 비롯한 극우파들은 “이제 관용의 한도는 다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마다 다른 틀에 맞춰진 관용으로는 낯선 존재들과 편히 살 수 없다. 그래서 데리다가 내놓은 개념은 ‘환대’다. 네가 어떻든 간에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내 집에 온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환대를 한다면, 그가 반가운 손님일 수도 있고 나를 찌를 강도일 수도 있다. 그러니 환대는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몹시도 위험한 개념이다. 그런 게 가능할까? 그 불가능한 것을 상상해보지 않는 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데리다는 말한다. 샤를리 에브도의 새 만평에서 무함마드는 ‘모두 다 용서한다’고 말한다. 몹시 고통스럽겠지만, 그 말은 무함마드가 아니라 그 사회에서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톨레랑스는 계몽의 산실인 프랑스의 개념이고, 환대는 아랍의 문화다. 테러의 위협 속에서조차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 9·11 이후 13년이 넘었으나 세계는 아직 이 고민을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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