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로그인] 생존의 격차

딸기21 2015. 3. 1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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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지 이달로 4년이 됐다. 여러 기구가 쏟아내는 시리아 상황에 대한 통계 중 눈에 띄었던 것은 유엔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정책연구센터(SCPR)의 조사다. 이 기관에 따르면 시리아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내전을 전후해 76세에서 56세로 줄었다. 시리아에서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환갑을 넘기기 힘들다는 뜻이다. 4년 만에 사람들 목숨줄이 20년 짧아진 것이다. 10년간 전쟁을 치른 이라크 사람들도 기대수명이 71.42세인데 시리아의 현실은 암울하다. 유엔 집계로만 2011년 3월15일 이후 시리아인 22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내전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고 오히려 국제전으로 비화해 전쟁터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시리아 얘기를 꺼낸 것은 내전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평균 기대수명’이라는 수치 속에 숨겨진 여러 측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우리에겐 기대수명이라는 게 한국이 얼마나 장수국가가 되었나 혹은 얼마나 고령화되느냐를 보여주는 숫자이지만 실상 이 수치는 ‘격차의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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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을 충격에 빠뜨린 보고서가 있었다. 지난 5일 영국 국가통계국(ONS)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영국 극빈지역 남성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은 평생 중 52.2년이다. 하지만 부유한 지역 남성들은 70.5년 동안 건강하게 산다. 2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여성 통계도 비슷하다. 가난한 지역과 잘사는 지역의 기대수명이 남성 9년, 여성 6.9년 차이가 나는 것에 비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간’의 차이는 더 크다. 가난한 지역에선 오래 살더라도 질병을 끌어안고 괴롭게 말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가난한 지역 남성의 절반, 여성의 40%는 연금을 받을 나이도 되기 전에 이미 질병에 시달린다. 


이 ‘건강기대수명(HLE)’은 평균 기대수명과는 좀 다르지만 시사하는 바는 비슷하다. 빈부격차가 생존의 격차라는 것이다. 영국 언론들은 “영국 빈곤지역의 건강기대수명이 르완다보다도 짧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나타난 르완다 남성의 HLE는 55세로 영국 극빈층보다 길다. 싱크탱크들은 이런 불평등이 결국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될 것으로 본다. 이 보고서 이전에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다. 2008년 스코틀랜드 학자들이 글래스고의 두 지역을 조사했다. 부촌인 렌지 남성의 기대수명은 82세였고, 8㎞ 떨어진 빈민가 칼튼 남성의 경우는 28년이나 짧은 54세였다. 


기대수명은 지금 태어나는 아기가 평균 몇 년을 살 수 있는지를 표시한 것이다. 영아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전근대 사회에서 출생 시 기대수명은 매우 짧았다. 2010년 세계 평균이 67.2세였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30세를 조금 넘겼다. 구석기시대 수렵채집인의 기대수명이 대략 33세였다고 하니,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인류의 삶은 그리 늘어나지 않았던 셈이다. 


20세기를 거치며 사람들의 수명이 크게 늘었다지만 시리아와 영국은 통념 이면의 현실을 보여준다. 두 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로 소요가 일어난 퍼거슨이 있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카운티에서는 고속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인들이 사는 부촌(85세)과 흑인들이 많이 사는 빈촌(67세)의 기대수명이 18년이나 차이 난다. 미국 전체에서 흑백 기대수명 격차는 5~7세인데, 외국서 태어나 이주해온 흑인보다 오히려 미국서 태어나 자란 흑인이 5년 덜 산다는 통계도 있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툭하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임시수도 라말라가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사람들보다 3년 먼저 죽는다. 남북한도 기대수명이 10년 가까이 차이가 있다. 인명은 하늘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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