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로그인] 슬럼과 전염병

딸기21 2014. 8. 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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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는 서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 세인트폴 강과 메수라도 곶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 나라 인구 410만명의 4분의1에 이르는 100만명이 이 도시에 산다. 도시가 세워진 것은 1822년이다. 미국의 흑인 ‘해방노예’들이 정착해 나라를 세우고 이 도시를 만들었다. 몬로비아는 2차 세계대전 때 미군 기지로 쓰이면서 서아프리카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성장했다.

 

7만5000명 사는 곳에 화장실은 4개


몬로비아의 바닷가에 웨스트포인트라는 지역이 있다. 항공사진으로 본 이 일대는 바다로 뾰족 튀어나온 리조트타운같다. 실상 이 곳은 슬럼이다. 형편은 말할 수 없이 열악하다. 몇해전 비정부기구 조사에서 이 지역에는 하수시설이 있는 화장실이 단 4개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7만5000명이 사는 곳에 말이다. 유료 화장실도 있지만 주민 대부분은 거기 쓸 돈조차 없다. 몬로비아에는 웨스트포인트말고도 크고 작은 슬럼이 40개가 넘는다. 이 나라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던 유명 축구선수 조지 웨아는 클라라타운이라는 슬럼 태생이다. 거기에도 7만명이 넘게 사는데 화장실은 11곳뿐이고 수도꼭지는 달랑 22개였다. 슬럼이 아니더라도, 몬로비아 전체에서 수도시설을 이용하는 주민은 3분의 1밖에 안 된다.



지난주부터 웨스트포인트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뛰쳐나와 가게와 집들을 약탈한 것이 지난 16일이다. 경찰은 그 중 일부를 체포하고 해산시켰지만 이튿날도 소요가 반복됐다. 문제는 에볼라였다. 정부는 위생상태가 나쁘고 인구밀도가 높은 이 슬럼이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수 있다며 방역조치를 취했다. 약도 없고 백신도 없는 에볼라 출혈열의 방역조치는 격리 뿐이다. 슬럼에서 도심으로 나가는 길목에 철조망을 치고 총을 든 군인들이 통행을 막는다. 야간통금령도 내려졌다.

 

결정적으로 주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에볼라 감염자 치료소가 슬럼에 설치된 것이었다. 에볼라가 퍼진 기니, 시에라리온 등에서도 병의 원인을 잘 모르는 주민들이 치료소를 되레 병의 원인으로 보고 공격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웨스트포인트 주민들의 분노는 무지 때문이 아닌 차별 때문이다. 정부가 이 지역을 격리시키면서 다른 지역에서 온 감염자들까지 이곳 치료소에 수용했다는 것이다. 전염 위험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경제적·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있는 지역에 몰아넣은 셈이다. 주민들은 치료소를 공격했고, 거기 있던 에볼라 의심환자들은 도망쳤다가 이튿날 돌아왔다.


에볼라는 인종 문제이자 젠더 문제, 계급과 돈의 문제

 

에볼라 사망자는 지난 20일 현재 1350명이고 감염자 수는 2500명에 육박한다. 몬로비아라는 도시의 이름은 라이베리아가 건국될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먼로에게서 나왔다. 만약 미국에서 에볼라가 발병했다면 치사율이 이렇게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바이러스 자체가 몹시 무섭다고는 하지만 질병이 일어나고 퍼지는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동한다. 줄리아 덩컨-카셀 라이베리아 여성부 장관은 이 나라의 에볼라 감염자·사망자의 4분의3이 여성이라고 밝혔다. 여성들이 환자를 보살피는 일을 주로 맡기 때문이다. 에볼라 출혈열이라는 전염병은 지역 문제이자 인종 문제이고, 젠더 문제이며 결국 계급 문제, 돈 문제다. 

 

“미래의 도시는 이전 세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도시가 아니다. 21세기의 도시는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일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라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취약한 여성들이, 가난한 슬럼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서아프리카가 이 무서운 질병의 짐을 떠안는다. 정말로 전염병이 걱정된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아프리카인의 입국을 막고 인종차별적 격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웨스트포인트의 주민들을 돕기 위한 구호에 동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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