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829

쿠데타 일으킨 엘시시, 이집트의 '킹메이커'에 만족할까

쫓겨난 무함마드 무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이 압델 파타 엘시시(58)를 국방장관에 임명했을 때만 해도, 이렇다할 경력도 없고 대중적 인지도도 낮은 50대의 엘시시가 이집트를 좌지우지할 인물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엘시시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이집트의 킹메이커로 부상했다. 엘시시는 무르시 정권에 ‘최후통첩’을 보낸 지 이틀만인 3일 무르시의 축출과 헌법 효력중지를 선언했다. 불과 며칠 새 벌어진 이 무혈쿠데타의 과정에서 엘시시가 보여준 모습은 주도면밀하고 카리스마 넘쳤다. 군 내에서조차 이렇다할 경력이 없고 야전사령관 출신도 아닌 엘시시는 무르시가 흔들리는 사이 치밀하게 군과 자신의 위상을 높였다. 엘시시가 미국 군사학교에서 공부할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미국..

이집트 ‘최후통첩’ 지나... 군부 침묵 속 일촉즉발 긴장감

이집트 정국이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최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군부의 압박에 밀린 무르시 정부가 연립정부 구성과 개헌을 제안했다. 하지만 대통령직 사퇴 요구는 계속 일축, 극도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은 3일 오후(현지시간) “연립정부가 정치적 교착상태를 풀 해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며 ‘국민적인 대화’를 제안했다. 무르시는 군부의 ‘최후통첩’ 시한이 지난 직후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무르시는 전날 발표한 정국 수습 ‘로드맵’에 들어 있던 연립정부 구성안을 다시 내놓으면서 이를 위한 ‘대화’를 할 것을 제시했다. 또 이슬람주의를 강조한데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줘 ‘파라오 헌법’..

중도-개혁파 로하니 당선, 이란과 세계에는 어떤 의미일까

지난 2009년 6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대선에서 재선됐습니다.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지지했던 시민들, 특히 여성들과 젊은이들은 좌절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부정선거라 규탄하며 시위를 하던 이들에게 정부는 경찰과 민병대를 동원한 '공격'으로 대응했습니다. 수백명이 숨졌고, 테헤란 시내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3년 6월 15일, 테헤란 시내는 다시 사람들로 메워졌습니다. 이번에는 축제 분위기입니다. 8년간의 억압 통치를 끝낼 개혁파 대선후보 하산 로하니의 당선을 축하하며 수만명이 거리로 나왔다고 알자지라방송 등이 보도했습니다. 올해 65세의 로하니는 개혁파의 사실상 '단일 후보'로 나서, 전날 대선에서 50%가 넘는 득표율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혁명 이후 계속돼온..

이란 대선, 중도-개혁파 하산 로하니 당선!

이란 대선에서 개혁파 하산 로하니가 압도적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로써 이란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강경보수파 정권에서 8년만에 개혁파 정권으로의 전환을 이루게 됐습니다. 14일 대선에서 로하니는 3670만 표 가운데 1861만 표를 얻어 50.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모스타파 모하마드-나자르 내무장관이 15일 발표했습니다. 당초 이번 선거에서는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못한 채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러야 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선거 막바지에 다른 개혁파 후보가 사퇴하면서 중도 온건 성향의 로하니가 사실상의 '개혁파 단일 후보'가 되면서 개혁파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란 대선] 개혁파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개혁파들의 대부 격인 하셰미 라프산자니와 모하마드 하타미 등 두 전직 대통령이 나서서..

개혁파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다... 14일 이란 대선

개혁을 주도할 정치력이 있는 후보들은 출마가 금지되고, 지도자급 인사들은 가택연금을 당했다. 비판적인 언론은 이미 폐쇄됐고 지식인들은 망명했거나 재갈이 물렸다. 하지만 ‘더 많은 자유’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이란 사람들의 꿈은 탄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14일 대선을 앞두고 개혁파 후보가 사실상 ‘단일화’되면서, 개혁 지지자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8명의 대선후보가 정해졌을 때만 해도 개혁파에게는 희망이 없어보였다. 가장 기대를 걸었던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출마가 좌절되면서 보수파들끼리의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를 일주일도 안 남겨두고 중도온건파인 하산 로하니가 급부상했다. 당선 가능성이 적었던 개혁파 후보가 사퇴하고 로하니에게 힘이 실리면서, 투표..

이란 대선 '여성 후보 자흐라'

자흐라는 이란 여성입니다. 2009년 6월 대선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측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을 때 경찰의 강경진압에 아들 메흐디를 잃었습니다. 평범하던 한 어머니는 그 뒤 정치투사로 바뀌었고, 이제는 이란 대선의 ‘유일한 여성 후보’가 됐습니다. “자애로운 신의 이름으로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립니다. 내 아들 메흐디의 인생은 짧았습니다. 아들은 인생을 도둑맞고 묘지에 묻혔습니다. 이제 이 묘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자흐라는 실존인물은 아닙니다. 이란의 유명 정치풍자 만화 의 주인공입니다. 4년 전 대선 부정선거를 비롯한 정부의 독선과 이슬람 신정의 억압을 풍자하는 만화 속 캐릭터인 자흐라가 온라인 상에서 오는 14일 이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

바그다드, 그 후 10년 (이라크 전쟁 10주년)

10년 전 '황해문화'에 이라크 전쟁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10년 후, 다시 황해문화(2013년 여름호)에 보낸 글입니다. 2003년 1월 18일, 영하의 추위 속에서 미국 워싱턴의 의사당 앞에 수만 명이 모여 ‘전쟁 반대’를 외쳤다. 미국을 ‘깡패 국가’라 부른 것은 북한도 이라크도 이란도 아닌, 미국의 시민들이었다. 시위대의 피켓 중에는 ‘정권 교체(Regime Change)’라 적힌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원하는 정권 교체의 대상은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악마 취급을 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부시 자신이었다. 시민들은 부시가 말한 ‘악의 축’이라는 발언을 부시에게로 돌리면서 “이 악이 우리 아이들 머리위에 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날 프랑스에서는 파리를 비롯한 40개 도..

시리아 둘러싼 '국제적 전선'

시리아를 둘러싼 상황.. 어디로 가는 걸까요. 아니 어디론가 가기는 가는 걸까요.유럽이 시리아 반정부군에 무기를 보내주기 위해 금수조치를 해제하자마자, 사실상 군사적 개입을 수반하는 ‘비행금지구역’ 소문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동안 비켜서있던 러시아는 이란을 끌어들이며 서방에 맞서 전선을 긋고 있습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마치 이라크전쟁 때처럼 서방 대 반서방 국제정치 전쟁이 벌어지는 양상입니다. 겉으로는요.먼저 불을 붙인 것은 유럽연합(EU)이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요구에 따라 유럽연합은 시리아 무기금수조치를 풀었습니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에 대공미사일을 공급하겠다”고 반격했습니다. 서방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걸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연합, 시리아 반정부군에 공식 무장의 길 열었다 러..

헤즈볼라, 아사드 지지 ‘내전 전면개입’ 선언… ‘독재 비호’ 도박

‘아랍 민중의 수호자’였던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독재정권의 방패로 전락하는 것일까. 헤즈볼라 지도자가 시리아 내전에 사실상 전면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헤즈볼라의 ‘정치적 자살’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가 하면, 이면의 정치적 계산을 놓고 추측이 분분하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25일 시리아 내전이 “완전히 새로운 단계를 맞고 있다”며 “우리의 전쟁이고 우리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나스랄라의 이날 연설은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마나르TV로 중계됐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지난주부터 다마스쿠스 북쪽 쿠사이르 탈환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곳 전투의 주축이 헤즈볼라 병사들이다. 레바논 일간 데일리스타는 다마스쿠스에서도 헤즈볼라가 반정부군과 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스랄라의 연설..

시리아 사태, 개입 꺼리는 국제사회

얼마 전 세이브더칠드런의 김희경 선배를 만나서 레바논과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촌의 비참한 실태를 들었습니다. 국제사회가 시리아 사태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팔을 걷어부친 것도 아닙니다. 왜들 이렇게 꺼리는 걸까요. 다국적군 공습으로 제공권을 확보하고 독재정권을 단시간에 몰아낸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는 주변국들과 지정학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데다 인구밀도도 높습니다. 그래서 ‘인도적 차원의 군사개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도적 차원의 군사개입이 필요한 때가 있지만, 자칫 민간인들이 더 많이 희생되게 만들 수 있죠. 1990년대 옛 유고연방 공습이 바로 그런 예였고요. 암만에 모인 '시리아의 친구들' 사진 www.naharnet.com 22일 미국 등 서방과 아랍권 11개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