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주도할 정치력이 있는 후보들은 출마가 금지되고, 지도자급 인사들은 가택연금을 당했다. 비판적인 언론은 이미 폐쇄됐고 지식인들은 망명했거나 재갈이 물렸다. 하지만 ‘더 많은 자유’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이란 사람들의 꿈은 탄압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14일 대선을 앞두고 개혁파 후보가 사실상 ‘단일화’되면서, 개혁 지지자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8명의 대선후보가 정해졌을 때만 해도 개혁파에게는 희망이 없어보였다. 가장 기대를 걸었던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의 출마가 좌절되면서 보수파들끼리의 경쟁이 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를 일주일도 안 남겨두고 중도온건파인 하산 로하니가 급부상했다.
당선 가능성이 적었던 개혁파 후보가 사퇴하고 로하니에게 힘이 실리면서, 투표 보이콧까지 고민했던 개혁세력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13일 “개혁파가 모멘텀(추동력)을 얻었다”고 분석했다.
이란 프레스TV는 로하니가 “이번 선거에 이란의 운명이 달려 있다”며 막바지 캠페인에 전력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개혁파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지난 11일 테헤란 시내에는 5000여명이 모여 로하니를 연호했다.
2009년 개혁파 후보를 지지하며 ‘녹색운동’ 바람을 일으켰던 여성 유권자들이 로하니의 사진을 들고 다시 모였다. 강경보수파 정권 8년을 거치면서 개인자유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특히 핵 문제에 따른 제재로 악화된 경제난이 이번 대선의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 점은 개혁파 정권 시절 서방과의 핵 협상대표를 맡아 비교적 원만하게 대화를 했던 로하니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현 정권 핵 협상대표인 사이드 잘릴리는 당초 유력 후보였으나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거친 언변으로 서방과 쓸데없이 마찰을 빚어온 탓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테헤란 시장인 모하마드 바케르 칼리바프가 현재 수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한자릿수였던 로하니 지지율이 지난 11일 공개된 이포스 조사에서는 26.6%로 껑충 뛰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반관영 메흐르통신 조사에서는 칼리바프가 1위였다. 여러 조사에서 부동층과 무응답자가 40%에 이르고 있다. 14일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21일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결선에서 보·혁 대결이 벌어질 경우 승패는 점치기 힘들다. 자유와 개혁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긴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이란인들의 정서는 ‘이슬람 체제 수호’ 분위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선거 시비가 있긴 했지만, 2009년 대선에서 강경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은 66%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했다. 예상 밖 선전을 하고 있는 로하니는 개혁의 기수라기보다는 ‘최고지도자가 받아들여줄 수 있는 선’의 중도온건파일 뿐이라는 지적도 많다.
로하니, 결선투표서 잘릴리와 겨룰 수도” 이란 전문가 유달승 교수 인터뷰
경향신문 배문규 기자
중동 정치 전문가인 한국외대 이란어과 유달승 교수(사진)는 12일 이란 대통령 선거가 중도파 하산 로하니 후보의 부상으로 보수 대 개혁 구도로 치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문일답을 통해 이란 대선 전망을 들어봤다.
- 대선 후보에서 개혁파가 배제된 이유는.
“이제까지 여성이 입후보하지 못한 데 대한 후보 자격 논란은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두 번이나 지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를 탈락시킨 일은 초유의 사태였다. 2009년 대선 직후 개혁파 목소리에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가 정치적 위기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 하산 로하니 후보가 떠오르며 당선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후보 8명 가운데 유일한 개혁파인 모하마드-레자 아레프는 (사퇴했지만) 존재감이 낮았다. 로하니는 보수, 진보, 중도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인이다. 개혁파 구심이 없는 상황에서 모하마드 하타미, 라프산자니 두 전직 대통령이 로하니를 지지하면서 개혁파 세력의 표가 결집하고 있다.”
- 보수파 후보 가운데 누가 결선투표에 갈 것으로 보나.
“사이드 잘릴리와 모하마드 칼리바프가 유력하다. 칼리바프가 1위라는 조사 결과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잘릴리가 유력해 보인다.
- 잘릴리는 어떤 인물인가.
“하메네이가 지지하는 후보다. 핵 협상 과정에서 ‘벼랑 끝 전술’을 시도하며 불필요한 발언으로 갈등을 조장했다. 이 때문에 강경보수로 분류된다.”
- 로하니는 어떤 인물인가.
“최고지도자나 보수세력과 관계가 원만하고 정책 공조도 나쁘지 않다. 보수파도 용인할 수 있는 후보라는 점에서 최적의 후보는 아니더라도 차선책은 될 수 있다. 로하니는 ‘이슬람 좌파’로 불린다. 이란 혁명 이후 시장경제와 사회주의경제 가운데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좌파와 우파로 나뉘었다.
개혁파와 보수파는 이슬람을 교조적으로 적용하느냐 자유롭게 적용하느냐의 차이다. 성직자 출신인 로하니는 온건한 실용주의자로 분류된다. 선거의 핵심 이슈인 핵 문제와 국제사회 제재에 따른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서방과의 전면적인 대화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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