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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텐센, '번영의 역설'

번영의 역설 -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The Prosperity Paradox: How Innovation Can Lift Nations out of Poverty (2019년)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에포사 오조모, 캐런 딜론. 이경식 옮김. 부키 경영학자 겸 컨설턴트인 크리스텐슨과 제자, 편집자가 함께 쓴 책. 원조와 개발의 큰 몫을 시장이 가져가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구호가 아니라 '번영'의 싹이 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동네에서 '지배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단순한 시장예찬, 시장만능론이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혁신'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번영하는 나라들은 혁신 덕에 잘 살게 됐다'고들 하지만 저자들은 '혁신'을 ..

딸기네 책방 2021.07.13

에이미 추아, '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의 책은 에 이어 두 번째. 첫 책도 두께에 비해서는 밀도가 떨어졌고,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인종/민족/부족/젠더 등등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모두 '정치적 부족주의'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분석보다 프레임'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처음 읽을 때에는 꽤 흥미로웠는데 스크랩을 하려고 보니 빼곡히 베껴적어둘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고. 하지만 그런 분열은 세계적인 현상이고, 중요한 포인트들은 한국사회에도 통하는 것이어서 재미있었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 정체성은 ‘국가’가 아니라 인종, 지역, 종교, 분파, 부족에 기반을 둔 것들이다. 미국의 안보에 매우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곳들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 유의 집단..

딸기네 책방 2021.07.12

흑해에 꽂은 미국의 칼... 바이든식 '근육 자랑', 줄 서는 나라들

‘미 해군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 미군 구축함 로스(USS Ross)호가 6월 말 우크라이나 남서부 항구 오데사에서 출항해 흑해에서 군사훈련을 벌였다. 이지스 방공시스템을 탑재한 알레이버크급 순항미사일 구축함 로스호는 1997년 취역해 지중해와 아드리아해, 발트해 등에서 활동해온 전함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로스호를 방문해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우호관계를 치하했다. 존 D 존 함장은 CBS방송 인터뷰에서 로스호를 소개하면서 적들의 군함과 전투기와 잠수함들까지 막아낼 수 있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라고 표현했다. 흑해에서 러시아를 찌르는 맥가이버칼이라는 얘기다. 이 배는 흑해에서 진행 중인 합동군사훈련 ‘시브리즈(SeaBreeze) 2021’의 기함 역할을..

[구정은의 '수상한 GPS']유로 2020과 유럽의 정치적 풍경

7일 저녁(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유로(UEFA 유럽 축구 선수권대회) 2020 4강전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덴마크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하루 전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이탈리아와 11일 저녁 맞붙게 된다. 영국은 축구 종가를 자부하며,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프로축구 리그로 유명하다. 하지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그동안 월드컵과 유로에서 거둔 성적은 종주국의 명성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월드컵의 경우 자국에서 열린 1966년 대회에서 한 차례 우승한 것 말고는 결승에 올라간 적이 없다. 유로에서는 1960년 첫 대회가 시작된 이래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고 4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두 메이저 대회에 결승에 진출하게 된 것은 무려 55년만이다. 7일 경기 ..

[추천사]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직접 만드는 게 답

10년 후 미래를 바꾼다는 것 ‘질병X disease X’에 대비하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는 2018년에 나왔다. 지카, 에볼라, 사스에 준비 없이 당한 인류가 미래의 유행병에 맞서려면 연구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질병X’,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우리는 또 속수무책이었다. 어제의 교훈은 오늘을 바꾸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일은? 코로나27, 코로나39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 급변하는 미래를 예측하려 애쓰는 대신 우리의 의지로 10년 후를 만들 수 있을까? 2015년에 출간된 《10년 후 세계사》는 ‘미래의 역사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당시 그 책을 읽고 “시대를 관통하는 글로벌 이슈를 횡으로 종으로 그려냈다”는 감상을 남기기도 했다. 우리가 만들 미래 점점 나빠지는 세상,..

[책 소개]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출판사 책소개] “한 사람이 그렇게 큰 증오를 일으킬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세요.” 배제와 억압, 전쟁과 빈곤의 세계에 서서, 인간과 비인간, 지구의 공존을 꿈꾼 사람들의 24가지 말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전쟁으로 찢긴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나선 여성, 양차 세계대전이라는 질곡과 몸의 장애를 끌어안으며 전쟁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자고 호소한 사회주의자, 명분 없는 전쟁을 막기 위해 무기를 파괴하는 활동을 조직한 가톨릭 사제가 있다. 지금은 ‘내전’과 ‘난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시리아를 오랫동안 좀먹은 독재 정권과 억압적인 질서의 실상을 자신이 쓴 시들로 폭로한 망명 시인이 있고, 여섯 자녀 중 다섯을 ‘애버리지니 보호위원회’에 도둑맞은 아..

[경향 서평]<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배제와 억압에 맞서는 목소리들

배문규 기자 2020.12.03 여기, 사람의 말이 있다 구정은, 이지선 지음 | 후마니타스 | 392쪽 | 1만8000원 “한 사람이 그렇게 큰 증오를 일으킬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세요.”(노르웨이 노동당 청년동맹의 어느 소녀가 한 말) 는 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나고, 온전히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책이다. 책에는 알려진 혹은 조금은 낯선 24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이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는 어렵다. 도처에서 배제와 억압, 전쟁과 빈곤, 그리고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책의 등장인물이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전쟁으로 찢긴 사회를 재건하기 위..

[한겨레 서평]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내일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나

10년 뒤를 결정할 기술 변화와 인간, 그리고 정치 비관할 수밖에 없는 현재에서 ‘가느다란 낙관’ 찾기 10년 후 세계사 두 번째 미래: 우리가 결정해야 할 11가지 거대한 이슈 구정은·이지선 지음/추수밭·1만6000원 전대미문, 사상초유, 미증유…. 이뿐인가. 공전, 파천황, 희유, 희대, 전무후무…. 언론이 흔히 쓰는 말이다. 이제까지 들어본 적도, 있어 본 적도 없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니. 코로나19 대유행도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역사를 부정하는 말이다. 당대 사건과 사물을 과장하고 부풀리는 데 이용된다. 전대미문에, 사상초유란 없다. 이미 예비되어온 일이다. 코로나19만 해도 그렇지 않나. 이밖에도 인간 역사에는 인류를 몰살 직전까지 몰아붙인 질병과 전쟁, 참사가 허다했다. 그렇다면..

[구정은의 '수상한 GPS'] 열파(heat wave)에 덮여가는 지구

캐나다와 미국에서 기록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지 언론들이 북서태평양 열파(Western North America heat wave)라 부르는 현상이다. 예년 6월의 평균 기온을 11~19도 웃도는 기온에, 캐나다의 경우 6월 말까지 103곳에서 최고 기온 기록이 생겨났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고온현상이 확장되고 있고,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다. 6월 29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라이튼 지역 최고기온은 49.6도. 캐나다 역사상 최고치다. 6월 27일 46.6도, 28일 47.9도에 이어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캐나다 최고기온일뿐 아니라 세계의 북위 45도 이상 지역에서 역사상 관측된 최고기온이라고 한다. 이 지역뿐 아니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곳곳에서 낮 기온이 40도를 넘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