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남동쪽 사막에 알우데이드라는 공군기지가 있다. 카타르 땅에 있지만 이곳은 온전한 카타르의 영토라 보기 힘들다. 인구 280만 명 가운데 자국민은 12%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인 카타르는 육해공군을 다 합쳐도 병력이 1만2000명이 채 못 된다. 카타르가 택한 방어수단은 국방의 아웃소싱이다. 1996년 수도 도하에서 30km 떨어진 곳에 알우데이드 기지를 짓고 3년 뒤 미군을 ‘유치’했다. 미군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 이라크 공격 때 이 기지에서 전투기를 발진시켰다.
B52 전폭기와 호넷 전투기가 날아오르던 시절에도 군사시설이라 언론의 이목을 피해가던 이 기지는 요즘 전쟁 때보다 더 어수선하다. 아프간이 전쟁 20년만에 다시 극단조직 탈레반에 장악되고 난 뒤,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을 떠난 비행기들이 미군은 물론이고 그들과 함께 탈출한 외국인들과 아프간인들을 이곳에 내려놨기 때문이다. 중동 최대의 미군기지인 알우데이드는 갑자기 아프간 난민과 외국인들의 중간기착지가 돼버렸다. 이곳뿐 아니라 도하 주변의 또다른 미군기지인 캠프앗사일리야도 카불을 떠나온 이들로 붐빈다.
두 곳에 머물고 있는 아프간인은 약 8500명. 애당초 민간인 거주시설이 아니니 환경은 열악하고, 물과 위생설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초 미국이 카타르 측과 맺은 협약에 따르면 카타르가 임시 비자를 내주기로 한 아프간인 숫자는 8000명이었고 이미 그 한도를 초과했다. 이 때문에 카불을 출발하려던 미군 항공기들은 발이 묶였다. 미 abc방송이 25일 입수해 보도한 자료를 보면 카타르 측은 시설이 포화상태라고 미국에 볼멘 소리를 내고 있고, 알우데이드는 미국의 ‘인도적 책임’을 따지는 시험대가 됐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바레인을 비롯해 ‘4개 대륙 20여개국’이 자국 내 미군기지를 일단 난민 캠프로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덕분에 카타르의 부담은 조금 덜어졌는지 모르지만 이제 아프간은 세계의 이슈이자 고민거리로 변했다.
14세기 북아프리카의 여행자 이븐 바투타는 모로코에서 베이징까지 이어지는 여행의 기록을 남기면서 아프간 일대를 가리켜 “산세는 험하고 사람들은 웅강(雄强)하다”(<이븐 바투타 여행기> 정수일 역주, 창비)고 적었다. 아프간을 가리켜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말을 종종 써왔다. 그러나 역사는 배우려 하지 않는 자에겐 교훈을 주지 않는다. 2001년 9.11 테러 한 달 뒤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부를 숨겨주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 탈레반 정권을 공격했다. 아프간이 결코 순순히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했으나 ‘제국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도 탈레반 정권은 전쟁 개시 한 달여 만에 카불에서 쫓겨났다. 당시만 해도 그 전쟁이 20년을 끌 줄은, 베트남전을 넘어 미국의 최장기 전쟁이 될 줄은, 탈레반이 부활해 카불로 귀환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34개 주의 주도 가운데 처음으로 남부 님로즈의 주도 자란지를 함락한 것이 8월 6일이었다. 수도 카불에 입성한 것은 16일, 딱 열흘이 걸렸다.
3년에 걸친 미군의 점령통치가 끝나고 새 헌법에 따라 아프간의 민선정부가 출범한 것이 2004년 12월이었다. 많은 아프간인들이 탈레반 정권 시절에 비해 더 개방적이고 더 현대적이고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민선 정부는 전국을 장악하지 못했고 내분과 부패가 심했다. 부족주의와 전근대주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약속한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아프간에 가져다주지 못했다. 미국 유학파 출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이 진격해오자 국민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쳤다. 미군의 지원에 의존하던 아프간 정부군은 반격을 포기했고, 탈레반은 거의 저항조차 없는 상태에서 카불을 장악했다. 미군이 준 아프간 정부군의 무기들은 고스란히 탈레반 손으로 넘어갔다.
[SIGAR] WHAT WE NEED TO LEARN: LESSONS FROM TWENTY YEARS OF AFGHANISTAN RECONSTRUCTION
당초 미국과의 약속에 따르면 미군이 나가는 대신에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권력을 나눠갖기로 돼 있었다. 그래서 카타르 등지에서 협상이 진행돼왔다. 아프간 초대 민선 대통령을 지낸 하미드 카르자이가 탈레반을 상대로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카불이 넘어간 이상 협상은 공염불이 됐다. 이제 국제사회의 ‘아프간 협상’은 탈레반 정부를 원조금으로 달래고 얼러 극단적인 여성탄압과 살상을 막아보기 위한 것이 돼버렸다. 미 아프간재건 특별감사관실(SIGAR)에 따르면, 미국이 직접적인 전쟁비용과 아프간 재건 등에 쓴 돈은 2조2610억달러에 이른다. 그 돈을 쓰고도 미국은 끝내 탈레반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이란 전문가 하미드 다바시 교수는 최근 알자지라방송 논평에서 탈레반의 파죽지세 공격을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공세에 빗대 블리츠크리크(blitzkrieg, 전격전)라 불렀다. 그는 “미국은 아프간에 ‘새롭게 개선된 탈레반’을 이별선물로 남겼다”면서 “미국은 자신들이 떠나면 저들이 아프간을 장악할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되돌아온 탈레반은 2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알자지라방송은 탈레반이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특수부대의 모습에서 그들의 ‘진화’를 포착했다. ‘바드리313’이라는 특수부대의 전투원들은 통일된 군복에 스키용 마스크 같은 발라클라바(복면)를 썼고, 미국제 M4 라이플에 야간투시용 고글까지 갖추고 있다. 더이상 전통복장 ‘샬와르’에 터번을 쓰고 샌들을 신고 구식 러시아산 칼라슈니코프를 든 모습이 아니다.
정치 감각도 과거와는 달라 보인다. 과거에 그들은 척박한 나라의 외톨이 무장조직이었지만, 이제 탈레반 지도자들은 지역 정치와 세계 정치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며, 자신들의 정권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안다. 다바시 교수의 표현을 빌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포가 아니라 통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권력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자신들이 더 이상 ‘야만인’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카불 점령 뒤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은 세계의 시선을 의식해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을 거론했고, 국제사회의 원조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파키스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아프간이슬람프레스(AIP)는 탈레반 대변인이 외국인이나 기업, 투자자의 아프간 내 은행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 약속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 Taliban spokesman, in first news conference in Kabul, pledges no reprisals.
그럼에도 그들이 진짜로 달라졌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적다. 여성들의 교육과 취업을 허용할지 ‘이슬람법 안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탈레반 고위 사령관 중 한 명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로이터통신 인터뷰를 통해 “이슬람 학자들이 협의해 법 체계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민주주의가 아닌 이슬람법에 따라”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체제는 없을 것”이라고 못박으면서 “우리나라에는 기반이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탈레반이 근간으로 삼는 것은 샤리아(이슬람 성법) 통치다. 아랍어로 ‘길’을 뜻하는 샤리아는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말과 실천에서 끌어난 광범위한 도덕적, 윤리적 원칙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을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이슬람 학파에 따라,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샤리아를 중시하는 이슬람국가들조차도 모두 다른 법체계를 갖고 있다. 탈레반이 만들겠다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에미리트’가 샤리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탈레반의 변화를 주목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이슬람연구센터의 HA 헬리어 연구원은 알자지라방송에 “탈레반은 1990년대와는 다른 새로운 아프간을 마주해야 하며, 여성과 그밖의 집단들에 이미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아프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톨로방송의 여성 저널리스트들이 탈레반의 카불 장악 뒤에도 일을 계속하고 있고, 심지어 탈레반 지도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하지만 헬리어의 낙관적인 예측과 달리 국영방송 RTA푸슈토의 여성 앵커 샤브남 다우란은 방송국에서 쫓겨났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달라진 제스처를 쓴들 그들은 변함 없이 이슬람 수니 극단주의 추종세력이라는 것이다. 카타르에서 국제사회와 협상해온 탈레반 대표단 대변인 수하일 샤힌은 알자지라방송에 “여성도 이슬람 율법에 따라 기본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종교 교리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며, 그 결정권은 남성 극단주의자들이 쥐고 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4일 인권이사회 보고에서 “탈레반에 장악된 아프간에서 민간인 즉결 처형과 여성 탄압이 저질러진다는 보고가 있다”면서 그들이 여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결국 ‘레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조직원들이 민간인 집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다고 하지만 전투원들이 집집마다 뒤지며 ‘반대파’를 색출하고 있어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유엔 보고서는 지적했다.
[PS] Why Nation-Building Failed in Afghanistan- DARON ACEMOGLU
국제사회의 대응은 분주하지만, 아프간의 미래보다는 자국민들의 철수와 난민 수용 같은 시급한 일처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3일 윌리엄 번즈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카불에서 탈레반의 ‘외교’를 떠맡고 있는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만났다. 바라다르는 이 만남에서 미군이 예정된 철수 시한인 8월 31일을 넘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튿날인 24일 주요7개국(G7) 화상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테러 위험을 들며 카불 공항에 남아 있는 미군 5800명이 시한에 맞춰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기 자국민을 실어나르느라 정신 없는 다른 나라 정상들은 미군이 철수를 늦춰줄 것을 요구했지만 바이든은 거부했다.
정상들은 이 회의에서 탈레반 정권을 ‘인정해줄 수 있는 조건’을 논했다. 우선은 20년간 자신들과 협력한 아프간인들의 안전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고, 향후 탈레반을 인정할 것인지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에서 정상들은 “특히 우리는 탈레반이 테러를 막고 여성과 소수민족의 인권에 보호하고 정치안정을 추구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탈레반에 경고를 보내긴 했지만 탈레반의 집권이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정상은 없었다. 퇴임을 앞두고 난제를 떠안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5일 의회 연설에서 “탈레반이라는 아프간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아직 남아 있는 독일군과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무사해 빼내오려면 탈레반과 협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G7 정상들이 군대 철수를 논의하는 동안, 파키스탄의 샤 메흐무드 쿠레시 외교장관은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등 아프간 주변 4개국을 잇달아 방문해 협력을 논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같은 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아프간 문제와 관련해 양국 간 소통을 늘리자는 대화를 나눴다. 탈레반의 바라다르는 이미 7월에 두 나라를 방문해 사실상 집권을 인정받았다. 왕이 외교부장이 7월 바라다르와의 만남에서 탈레반을 아프간의 주요 정치세력으로 처음 인정한 데 이어,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한 뒤에는 카불 주재 대사가 탈레반 측을 만났다.
[The Atlantic] An ‘Early Test Case’ for a China-Led World
최근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아프간의 광물자원에 눈독을 들여왔음을 부각시키는 보도를 잇달아 내보냈다. 과거 중국 기업들이 아프간 측과 체결한 구리광산이나 유전 채굴 계약은 이후 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실효가 없었다. BBC는 “중국 혹은 어느 나라로부터든 투자를 받을 수 있으려면 탈레반은 이전 아프간 정부보다는 유능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바꿔 말해, 탈레반이 도망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정부보다 더 확고하게 권력을 틀어쥐고 치안을 유지해줄 수만 있다면 중국의 투자를 받아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이미 95억달러에 이르는 아프간 중앙은행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한 터라 탈레반의 중국 의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탈레반의 잠재적 자산 중에 손꼽히는 것은 휴대전화 등에 반드시 필요한 광물인 리튬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아프간의 리튬 매장량이 “파낸다면 1조달러 가치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탈레반이 여성과 소수민족에게 이전보다 포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테러를 막는다면 국제사회도 결국은 그들을 정부로 받아들일 것이며, 현재 관망 중인 중국 기업들이 리튬을 캐내러 몰려갈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아프간 서쪽에 있는 이란도 탈레반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수니 극단조직 탈레반은 서로에게 적대적이었으나, 미군 철수가 역내 패권을 노리는 이란에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아프간은 에너지 사정이 심각하다. 아프간에도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기는 하지만 개발은 요원하다. 아프간에 석유를 공급해오던 이란은 탈레반의 공시가 본격화된 6일 수출을 중단했다. 카불 함락 뒤 아프간의 기름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다급해진 탈레반은 이란에 손을 벌렸고, 이란은 25일 다시 아프간에 기름을 보내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이 아프간의 생명줄을 다시 이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란 등 주변국으로부터 연료를 수입할 때 관세를 이전 정부 때보다 70% 줄여준다며 손짓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아프간에 지난해 이란은 340만톤의 석유를 아프간에 팔았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으로서는 아프간으로의 수출을 늘리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란산 석유가 들어가는 경로인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와 님로즈 일대는 탈레반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아프간의 옛 정부는 미국 눈치를 봤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이란에도 최근 미국에 더 적대적인 강경파 정부가 들어섰다. 로이터는 이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양국 교역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봤다.
어떤 나라들은 아프간의 위기 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세계은행의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경제 사정은 아주 심각하다. 전체 가구의 60%는 농업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척박한데다 올해는 가뭄까지 겹쳤다. 치안도 정치도 불안정하고 인프라는 부실한데다 재산권 보호도 취약하고 부패는 극심하다. 작년 국내총생산(GDP) 198억 달러의 43%가 외국에서 들어온 원조금이었다. 공공지출의 75%를 원조금으로 때웠다. 다른 저소득국가들과 비교해도 치안비용이 GDP의 28%로 매우 높았다. 아편 재배와 마약 밀매, 불법 광물채굴 등 불법 경제의 비중이 높다.
2003~2012년 10년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4%에 이르렀지만 어디까지나 원조금 덕분이었으며 2010년대 후반에는 성장률이 2.5%대로 떨어졌다. 외국돈의 유입이 줄자 거기에 의존하던 서비스업 일자리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원조국들이 회의를 열어 2024년까지의 지원책을 논의했지만 미국이 발을 뺄 것으로 예상되던 시점이라 지갑을 잠그려는 나라들이 많았다.
탈레반 대공세로 외국 원조기구들도 빠져나가고 미흡한 인프라조차 작동을 멈추면서 아프간 사람들의 고난은 이미 시작됐다. 유니세프는 아프간 아이들 1000만명이 시급한 도움을 필요로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긴급 구호자금 2억달러를 마련해달라고 각국에 애원하고 있다. 데이비드 비즐리 WFP 사무총장은 아프간 인구 4000만명의 3분의 1에 이르는 1400만명이 가뭄과 분쟁과 코로나19와 경제악화 속에서 먹을 것조차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2년 이후 아프간에 총 53억달러를 원조해온 세계은행은 탈레반을 믿을 수 없다며 원조를 중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23일 아프간에 내줄 예정이었던 4억4000만달러의 지원금을 동결해버렸다. 서방은 탈레반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겠다면서, 원조금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은행] The World Bank In Afghanistan
당장의 위기도 문제이지만, 아프간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그나마 20년 동안 쌓아온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힘겹게 치른 선거의 경험, 여성들에게도 점차 개방돼왔던 학교 교육, 자유로운 언론과 치안 노력 같은 것들 말이다.
2019년 아프간의 15세 이상 여성 취업률은 22%에 이르렀다. 탈레반 정권 시절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세계은행 통계로 봤을 때 1979년 18%에 불과했던 문자해독률은 2011년 31%에서 2018년 43%로 올라갔다. 여성교육율은 낮고 학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아이들이 300만명에 이르지만 변화는 분명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다시 뒤집혔다. 아프간의 유일한 여성 기숙학교인 ‘아프가니스탄 리더십스쿨(SOLA)’은 탈레반이 카불을 수중에 넣자 학생 수십명과 교직원들을 동아프리카 르완다로 피신시켰다. CNN에 따르면 이 학교를 세운 샤바나 바시지-라시크는 그 자신이 과거 탈레반 정권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여성이다. 탈레반이 집권했을 때 6살이었던 그는 억압 속에서도 딸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은 아버지 덕에 ‘비밀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했고, 탈레반에게 목숨을 잃을까 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탈레반이 무너진 뒤 SOLA를 만들어 여자아이들을 가르쳐왔으나 20년만에 돌아온 탈레반 때문에 어렵사리 만든 학교를 국외로 옮기게 됐다. 그는 트위터 글을 통해 르완다에서 학교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난민이 된 여학생들이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소녀들뿐 아니라 아프간의 지식인들, 관료들, 언론인들, 교육자들이 탈출을 시작했고 그 행렬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카불을 떠나 카타르로 대피한 독립언론인 빌랄 사르와리는 알자지라방송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아프간에서도 가장 교육받고 능력 있는 세대를 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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