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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일본 자민당 파벌구조가 흔들린다?

딸기21 2021. 9. 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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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가 바뀐다고 한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지난 3일 밝혔다. 자민당 간부 회의에서 “코로나19 대책에 집중하고 싶고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고. 일본은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내각제이니, 스가가 총재 선거를 포기하면 자연스럽게 총리가 바뀌게 된다.

 

首相官邸で取材に応じる菅首相。自民党総裁選への不出馬を表明=9月3日 (47NEWS)


원래 스가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이달 말까지다. 만일 스가 집권 뒤 정국 흐름이 순조롭게 흘러갔다면 중의원을 해산해서 총선을 치르고 다시 총리를 맡아야겠지만 지금 여론으로 봐선 무리다. 자민당 총재선거로 우선 새 지도부를 갖춘 뒤에 총선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총재 선거는 17일 고시하고 29일 투개표를 진행한다니, 그 결과에 따라 차기 총리 후보가 정해질 것이다.
 
작년 9월에 장기간 재임했던 아베 신조 총리가 물러나고, 관방장관을 지낸 스가가 총선 없이 자민당 내부 결정으로 총재가 됐고 일본 정부 수반이 됐다. 스가는 집권 1년만에 물러나는 셈이다. 애당초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다. 아베의 측근이라는 것 외에는 자기 색깔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고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정치인도 아니었다. 그래서 관리형 총리, 다음번 총선까지만 정국을 관리할 징검다리 총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記者会見で経済政策を発表する自民党の岸田前政調会長=9月8日午前、国会 (47NEWS)

 

실제로 집권 뒤에 이렇다 할 성과도 없었던 것 같다. 스가에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베의 업적, 하나는 아베의 실책과 관련된 임무였다. 도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 그리고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코로나19 대응 체계를 정비하고 방역을 제대로 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또한 경제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이어져 있었다. 코로나19 속에 침체된 경제에, 도쿄올림픽이라는 모티브를 이용해 활기를 불어넣는 것 말이다. 하지만 둘 다 큰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 힘들었고 결국 스가는 총리직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이 감당할 과업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꼴이 됐다.

무엇보다 올림픽 자체를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치렀다. 당초 일본은 올림픽이 1조7000억엔, 약 20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긴급사태 조치가 계속 연장되는 가운데 대부분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고 경제효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코로나19 긴급사태로 인한 경제손실이 수십 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오히려 올림픽을 안 하니만 못 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닛케이평균주가 흐름

 

거기다가 스가 총리는 올해 72세로 젊지 않은 나이인데,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 행사에서 연설 내용 일부를 빼먹은 사실이 알려지는 등 말실수도 있었고 건강이상설까지 돌았다. 최근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다. 로이터통신은 일본 기업 250곳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58%가 스가 연임을 바라지 않는다는 응답을 했다고 보도했다. 스가 총리가 차기 총재직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 증시에서 주가가 상승한 것이 여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 차기 자민당 총재는 누가 될까. 총재 경선은 국회의원표 383표, 당원투표 383표 등 총 766표의 향방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유력시 되는 후보는 고도 다로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고노 담화’로 잘 알려져 있는 고노 요헤이 전 외무상의 아들이다. 고노 다로는 외무상과 방위상을 지내고 지금은 행정개혁담당상을 맡고 있다. 아베 정부 때부터 계속 요직에 있기는 했지만 다소 돌출적인 행보 때문에 일본 정계에서 ‘별난 사람(헨진)’이라 불리기도 한다.

 

東京・新宿の街頭モニターでは菅義偉首相の会見の様子が映し出された=9日午後、東京都新宿区(三尾郁恵撮影) (産経デジタル)

 

지난해 총재선거에서는 스가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조회장이 2위를 했다. 기시다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외무상이었던 사람으로, 그 역시 이번 총재 선거에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는 고노가 우세하다.

교도통신의 9월 4-5일 여론조사에서 고노가 지지율 약 32%로 2위였고 2위는 약 27%를 얻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었다. 기시다는 19%로 3위였다. 그러나 이시바는 자민당 안에서 주요 파벌들과 거리를 두고 나름 독자노선을 걸어온 인물로, 아베 총리 시절에도 계속해서 아베와 대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당 속의 야당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적지 않지만 당내 투표에서는 승산이 떨어진다. 

 

복병이 있다면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다. 여전히 자민당에 큰 지분을 갖고 있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밀어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만일 다카이치가 승리한다면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어쨌든 고노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이번에 다카이치가 얻을 표는 '아베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나 막강한지를 가늠하게 해주는 징표가 될 공산이 크다. 스가 총리까지는 '아베의 후계자'라는 구도가 먹혔지만 과연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일단 다카이치는 일반인 여론조사에서는 고노, 이시바, 기시다 3명에게 한참 뒤쳐지는 4%대 지지율을 보였다. 여성 정치인 중에 노다 세이코 간사장 대행도 출사표를 던졌는데 역시 지지율은 4%대이고 승산은 없어 보인다.

 

共同通信の電話世論調査による「次の首相にふさわしい人」 (47NEWS)


일본은 우리 이웃나라다. 두 나라 사이에 역사적인 앙금도 있지만 경제적, 정치적으로 밀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일본 정국의 향방이 중요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정치 이야기는 참 재미가 없다. 신선함이라든가,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 같은 것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총리 후보들만 봐도 모두 우리 귀에 익숙한 오래된 인물들이다. 그나마 자민당 총재선거를 덜 지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여성후보 다카이치도 아베의 극우노선 추종자다.

 

유력 후보 고노의 경우, 탈원전을 지지하거나 여성 천황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민당 방침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일본 정계에서는 지한파로 꼽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8~2019년 외무상이 바로 고노였다. 아베 정권의 외교정책을 이끌던 사람이고, 집권한다 해도 갑자기 정책을 모두 바꿀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UFO를 믿는 국방장관? 이시바 시게루와 '수월회'

혹시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총리가 되면 어떻게 될까. 방위상을 지낸 이시바는 자위대를 강화하고 안보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쪽이긴 하지만 일본 평화헌법과 도쿄전범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고,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과거사 부정 발언에는 비판적이었던 사람이다. 일본 국익을 위해서라도 주변국과 잘 지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니 만일 그가 정권을 이끌게 된다면 한일 관계에도 변화가 올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 아예 이시바가 총재선거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고노 다로를 지지할 가능성도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이시바는 9일 T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이 총재 선거에 출마할지 안 할지는 아직 ‘백지상태’라고 했다. 

 

고노 다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하나에, 노다 세이코(왼쪽부터) 47NEWS


이시바는 자기 이름을 딴 소규모 파벌을 이끌고 있는데, 거기에 속한 의원들이 이시바가 직접 총재 선거에 나가기보다는 고노에게 힘을 실어주고 차기 내각에서 지분을 얻는 방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바파의 몇몇 의원들은 이미 고노 지지를 선언했다. 이시바는 이미 네 차례나 당권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다섯 번째 출마했다가 또 떨어지면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울 것으로 스스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번 자민당 선거에서 이전보다는 파벌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스가 선출 과정에서나 스가 총리의 내각 임명에서는 철저하게 파벌안배가 기준이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사불란하게 계파에 맞춰 후보와 지지 군단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일본 언론은 "중진·소장파 의원 중심으로 유동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고 적었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호소다파인데 아베 전 총리가 무계파인 다케이치를 민다고 한 것도 그런 예 중의 하나다. 또 고노 다로는 아소 다로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에 소속돼 있지만 아소파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있다. 만일 이시바가 출마를 포기하고 고노와 손을 잡는다면, 그것 또한 기존 파벌의 틀을 깨는 일이 될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과거 에도시대 후기에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과 조슈번(지금의 야마구치현)이 동맹을 맺고 막부 시대를 흔든 ‘삿초 도메이(薩長同盟)’에 빗대 이시바와 고노의 ‘신(新) 삿초도메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파벌구조가 흔들린다는 것이 곧 고인물이 돼버린 자민당의 권력구조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젊은 의원들도 자기 이해득실에 맞춰 이합집산하는 것일 뿐이라는 분석이 더 많아 보인다. 당원 투표에서 새로운 흐름이 일고, 고노가 과반 득표에 실패하고 다른 후보들이 ‘하위 연합’을 결성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 봐선 일본의 새 정부가 아베-스가 시대에서 탈피해 새로운 흐름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본 경제사정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작년에 일본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후 최악인 -4.6%를 기록했다. 올해는 회복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더딘 편이다. 7월 말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전망’을 업데이트하면서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의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IMF가 예상한 올해 일본의 성장률은 2.8%로 4월에 내다본 것보다 0.5%포인트 낮아졌다. 미국과 영국은 7% 성장할 것으로 보는 등 주요국들 성장률 전망을 대체로 다 4월 예측 때보다 올려 잡았는데 일본만 낮췄다.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 코로나19 확산이 7월부터 다시 빨라진 것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지금까지 일본의 코로나 19 누적 감염자는 160만명이 넘고 사망자도 1만6000여명에 이른다. 7월 23일 도쿄 올림픽 개막 전에 누적 감염자가 85만명이었는데 그 후에 두 배로 늘었다. 8월에는 내내 하루 2만명대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달 들어서는 그나마 줄어들어 하루 신규 감염자 수가 1만명 안팎이다. 일본정부는 9일 도쿄와 오사카 등 19개 광역행정구역의 긴급사태를 이달 말까지로 연장했다. 12일 해제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결국 연장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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