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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지식인- 책도 어렵고, 현실은 더 어렵고.

디아스포라의 지식인 Tactics of Intervention in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1993)레이 초우 (지은이) | 김우영 | 장수현 (옮긴이) | 이산 | 2005-02-19 요즘 디아스포라 문제에 관심이 좀 있어서 이 책을 읽고 싶었는데, 알라딘 서재에 페이퍼를 올렸더니 역자인 김우영 선생님이 마침 그 페이퍼를 보고 친절하게도 책을 보내주셨다. 김선생님은 윌리엄 맥닐 ‘전염병의 세계사’를 번역하신 분이어서 여차저차해 연결이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산에서 나온 책들을 여러권 번역하셨다. 그런 연유로 책을 손에 넣었고, 지난달 멀리 여행할 때에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배낭에 넣어갔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시간 때울겸 읽기에는 버거운 책이었다. ‘디아스포라’의 개념..

딸기네 책방 2006.06.08

'그'와의 짧은 동거

'그'와의 짧은 동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아, 재밌다. 그와의 짧은 동거에, 작가는 굳이 '그'라고, 작은 따옴표를 붙였다. 그건 잘못된 거다. 그 작은 따옴표 때문에 나는 불필요하게, 미리부터 '그'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궁금해하게 됐단 말이다. 이 책은 아무런 궁금증 없이 읽어야만 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이다. 재미있었다. 실은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이런 '그'를 하나씩은 안고서, 동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동거대상은?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면 나의 '알렙'은? 혹은 나의 트라우마는? 나의 콤플렉스는? 기피하고 싶지만 피해갈 수 없는 나의 친구는? 여러가지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만든 만화가 끝나고, 대사들이 머릿속에 남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딸기네 책방 2006.06.06

무지개곰

한국듀이에서 나온 트루북 테마동화라는 20권짜리 유아용 그림책 시리즈를 샀다. 어린이 책시장이라는 것이 워낙 왜곡돼 있어서, 제법 큰 시장(한국 출판계에선 어쩌면 가장 큰 시장인지도 모르겠다)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라든가 제품의 질 같은 것이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몇십만원씩 정가를 붙여놓고 그 몇분의 1로 후려쳐서 판다거나, 아직도 일본 책들 그대로 베껴다 판다거나 하는 것들. 너무나도 한국적인 ‘책 돌려가며 애 잡기’ 독서풍토도 맘에 안 들고 말이다. 암튼 충동적으로 주문한 책이 지난 토요일에 도착했다. 전혀 사전 지식 없이, 그림이 꽤 이뻐보이는데다가 값이 싸길래 주문을 했는데 예상밖의 보물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 보석같은 책, 마이클 모퍼고라는 영국 작가가 쓰고 마이클 포먼이라는 화가가 그린 ‘..

딸기네 책방 2006.06.05

콜롬비아의 딸, 잉그리드 베탄쿠르-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콜롬비아 이야기.

콜롬비아의 딸, 잉그리드 베탄쿠르. 잉그리드 베탄쿠르. 이은진 옮김. 뿌리와이파리. 5/30 콜롬비아. 보떼로의 나라, 오리노코강이 흐르는 나라, 마약왕과 마피아들이 설치는 나라, 게릴라와 납치범 천지인 나라, 축구를 잘하지만 월드컵에는 못 나오는 나라. 보떼로, 네루다 같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특권층 부모 밑에서 태어난 여성정치인의 일대기. 제목이 멋지게 들려서 재작년 위인전 좀 읽어야겠다 생각했을 때 충동구매를 해놓고 펼쳐보지도 못한 채 꽂아만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 전철 안에서 쉬엄쉬엄 읽을 책이 뭐 있을까 해서 책꽂이를 뒤지다가 ‘적당한 두께’라는 점 때문에 이 책을 집어 가방에 넣었다. 뭐 대단한 기대는 안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라고 하면 추리소설..

딸기네 책방 2006.06.01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 변두리에서 역사를 보라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 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 편. 동아시아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대만 같은 나라들은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역사 문제를 얘기하기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이 동아시아 나라들이 얽히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의 일도 아니고, 유사 이래의 일이거나 혹은 몽고 시대의 일이거나 그보다 더 뒤에 명나라 때의 일이거나 임진왜란 때의 일이거나 국공내전 때의 일이면서, 현재의 일이기도 하다. 이 동네, 우리 동네 복잡한 문제는 때로는 ‘청산’의 대상이기도 하고 때로는 ‘규명’의 대상이기도 한데 그 문제들이 국경선에 일치해서 입장이 갈리는 것도 아니다. 그 안에는 국가도 있고 국가가 아닌 집단(대만의 본성인, 일본의 오키나와인과 아이누, 아시아 일대의 조선족과 사할린 한인들 등등)도..

딸기네 책방 2006.05.30

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 신화, 묵시록, SF.

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 알려지지 않은 쿠르드족 이야기. 힐미 압바스. 조경수 옮김. 이매진. 5/29 이것은 신화인가? 쿠르드족으로 독일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압바스 왕가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어릴적부터 들어 알고 있던 쿠르드족의 신화를 독일어로 적었다. 이 책은 그 독일어본을 번역한 것인데, 이것이 진짜 쿠르드족의 신화인지, 아니면 힐미 압바스의 상상과 각색이 들어간 것인지, 혹은 쿠르드족의 이름을 내건 현대적인 SF 소설인지. 우울하고 원대하고 심오하고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이야기다. 어떤 부분에서는 SF 작가 아서 클라크의 절대 정신, 보편적 자아를 연상케 해서, 꼭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보는 것만 같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반지 제왕’의 최후의 전투를 보는 것처럼 장대한 느낌을 줬다. 아주아..

딸기네 책방 2006.05.29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울며 읽은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김혜자. 오래된미래 탤런트 김혜자씨는 어릴때 눈이 하도 까맣고 커서 주변에서 “인도인 같다”고 했다고 한다. 그 얘기가 책에 나오는데, 할머니가 되었지만 김혜자씨 눈은 지금도 까맣고 크고 맑아보인다. 오드리 헵번이 늙어서도 살 안찌고 바싹 말라서 지적으로 보이고 순수해 보이고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젊었을 때 모습처럼 요정 같이 이뻤는데 김혜자씨도 그렇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꽃이 되었건 회초리가 되었건 몽둥이가 되었건, 때려도 되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을까. 인도인처럼 크고 까만 눈을 한 최고의 배우, 김혜자씨의 책에는 크고 까만 눈을 한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눈이 크고 까만 것마저도 슬프게 느껴지는,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는 아이들, 진짜 인도 아이들도 있고 아프가니스탄의..

딸기네 책방 2006.05.29

[스크랩] 뮈모 괼리, 눈물의 저수지

뮈모 괼뤼- 지상의 고난의 호수 옛날에 무한한 존재들의 눈물이 끝없이 밤낮으로 흘렀는데, 그 까닭은 그 존재들, 신에서 생겨난 자들이 비참하게도 인간이라는 그릇의 자의에 복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 어찌나 탄식하고, 어찌나 많은 한숨으로 평소에는 그리도 위엄 있는 천상의 공간들을 채웠던지, 빛으로 충만한 존재들마저도 그 비탄이 속으로 파고들어 더는 맡은 임무를 완수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아주 늙은 성스러운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존재인 쉬미(靈)를 불러 빛의 공간들에 만연한 슬픔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그러나 쉬미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깊이 고민한 끝에 쉬미는 암흑의 정령들을 불러 상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담한 자들의 이름 없는..

딸기네 책방 2006.05.24

토끼 울타리.

토끼 울타리.도리스 필킹턴. 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5/19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회사에 들고 왔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길지도 않거니와 재미가 있어서 후다닥 넘겼다. ‘혼혈아들을 원주민들 틈에 버려둘 수 없다’는 이유로 호주 백인들이 몰리 자매 세 소녀를 이름만 학교일뿐인 강제수용소에 넣었는데, 소녀들은 그곳을 탈출해 백인들이 쳐놓은 토끼막이 울타리를 따라 2400km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이 소녀들은 ‘혼혈’이었고, 책에는 백인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혹은 무의식중에 원주민들을 죽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 속의 백인들은 자기네들 멋대로 혼혈 소녀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실제로 그런 측면도..

딸기네 책방 2006.05.19

현대 일본의 역사- 그저 무난한 역사책

현대 일본의 역사 A Modern History of Japan: From Tokugawa Times to the Present앤드루 고든. 김우영 옮김. 이산 세미나용으로 샀는데 꽤 비싸다. 일본 근현대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기 위해서 이 책을 교재로 골랐는데, 그런 용도로 볼 때엔 나쁘지 않았다. 미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는 일본사를 ‘근대성’과 ‘연관성’이라는 맥락에서 조명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서문에서 밝혔는데,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한국어판 서문을 비롯한 저자 서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본적인 특성과 근대성 사이의 무게중심을 바꾸기 위해 이 책에 A Modern History of Japan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제목은 일본이라는 장소에서 전개된 특별히 ‘근대적..

딸기네 책방 2006.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