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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바그다드 카페

바그다드 교외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몬수르의 알사아 레스토랑에 들렀다. vm라이드 치킨과 햄버거 같은 스낵을 함께 파는 간이 레스토랑 겸 카페인데 세련되고 서구적인 분위기여서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몬수르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인데, 알 사아의 카페 안에서도 데이트하는 남녀들이 여러쌍 보였다. 어떤 이가 라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라크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우리식과는 전혀 다르다. 차(茶)도 역시 마시는 방법이 다르다. 투르키쉬(Turkish coffee)라고 부르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탄 것인데 독특한 향내가 나고, 가루같은 것이 녹지 않고 씹힌다. 특히 작고 좁은 커피잔의 바닥에는 그 가루가 진흙처럼 가라앉아 있어서, 잘 모르고 끝..

인터뷰/ KOTRA 바그다드 무역관 정종래 관장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1970년대, 한국 노동자들은 '열사의 사막'에서 길을 닦고 건물을 올리며 부국의 기반을 만들었다. '중동'이라는 말을 들을 때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석유와 함께 흑백사진 속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땀에 젖은 얼굴일 것이다. 70년대 '오일붐'을 거쳐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90년대 걸프전으로 이어지면서 중동의 정세는 계속 변화해갔고 한국의 경제력도 비교될 수 없게 커졌지만, 여전히 중동은 우리에게는 석유라는 천혜의 축복을 받은 부러운 땅이다. 언제고 다시 다가올 엄청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전운이 감돌고 있는 이라크에서 국내 기업들을 위해 홀로 '수출전선'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바그다드무역관의 정종래(鄭宗來·40) 관장. 티그리..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더니.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 이라크 경제가 딱 그렇다. 바그다드 중심의 사둔 거리에는 상점들이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다. 바그다드의 시장들은 보통 오후 5시면 문을 닫지만 전자제품과 의류, 시계 따위를 파는 사둔의 상점가는 예외였다. 가게에서 파는 상품들은 볼품 없었고 물건을 사가는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고화질TV와 LCD 전화기, 보석류 같은 '사치품'들도 종종 눈에 띄었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는 불편이 없어 보였다. 잇단 전쟁과 오랜 금수조치 속에서도 이 정도의 경제를 유지하는 바탕은 물론 석유다. 한때 식량과 약품이 모자라 아이들이 죽어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96년부터 유엔의 '석유-식량 교환계획'이 실시된 뒤로 해마다 100억 달러 어치가 넘는 원유를 수출하면서 '굶어죽는다'는 ..

[이라크]산티아고와 함께 한 여행

오늘이 몇일인지, 지금 서울은 몇일인지 선뜻 계산이 되지 않는다. 서울을 떠나온지 며칠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새 날짜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엿새전 나는 서울에 있었고, 오후 4시에 요르단의 암만에서 온 이메일을 받았었다. 이라크에 오려면 빨리 암만으로 오라는. 이라크 정부 초청으로 대선 참관인단을 바그다드에 불러들이는데 거기 한숟가락 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에 부랴부랴 출장 신고를 했고, 겨우 2시간만에 정말 ‘번개불에 콩궈먹듯’ 결재를 받고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다음날 나는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을 거쳐 19시간 동안 비행을 했고, 10일 새벽에 어느새 나의 존재는 암만으로 이전돼 있었다. 이번 여행(업무가 아닌 나의 개인적인 감상의 측면에서, 이렇게 표현하기로 한다)을 떠나기 전 나는..

말 나온 김에, 사담의 가족 이야기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가족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커다란 금기인 듯했다.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가 국가의 권력을 나눠 갖고 아버지의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들 두 아들의 관계나 후세인의 가족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철저하게 터부시되고 있었다. 특히 후세인의 '버림받은' 부인 사지다의 이야기를 꺼내면 화제를 돌리거나 입을 다물기 일쑤였다. 후세인은 8명의 부인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첫째 부인은 1958년 후세인과 결혼한 사지다 타르파다. 생후 9개월에 고아가 된 후세인은 외삼촌인 카이랄르 타르파 슬하에서 자랐는데, 카이랄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반영(反英) 투쟁을 벌였던 인물로 후세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지다는 바로 카이랄르의 딸로, 학교 교사 출신이다. 후세인..

이라크 국민투표 참관기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7년 임기 연장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15일 오전 11시. 바그다드 시내 알 자마에 설치된 투표소에서는 공무원들의 독려를 받은 시민들의 투표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시민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투표함에 용지를 집어넣었고, 옆에서는 각국에서 온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투표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일당독재식 투표'로 진행된 이날 투표장의 모습은 후세인 정권이 주장해온 '이라크 민주주의'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투표장 밖에서는 '나암 나암 사담 후세인(후세인에게 찬성표를)', '사담은 우리의 유일한 선택' 따위의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라디오와 TV에서는 하루종일 후세인 찬가를 틀고 있었다. 전통 머리덮개 '아바'를 ..

[이라크]바그다드 인민경기장 풍경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4일 저녁 바그다드 시내 인민경기장에서는 사담 후세인 현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 축제가 열렸다. 이라크 프로축구리그 1,2위 팀간의 친선경기에 앞선 축하행사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사실상 축구경기가 아니라 후세인 우상화를 위한 정치집회였다. 타하 야신 라마단 부통령까지 참석한 이날 행사는 군악대의 행진과 이라크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공연, 패러글라이딩 시범 등으로 구성된 일종의 '집체극'이었다. 이라크 올림픽위원회의 하레스 아바위 위원은 "국민들을 위해 무료로 축구경기 관람 행사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라크에서는 축구가 이날처럼 종종 정치선전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체육분야는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가 주관하는 영역으로, 지난 6월 월드컵 기간에는 국영방송 3개 채..

[이라크]사마라의 탑

사마라(Samarra)에 갔던 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사마라는 바그다드 북쪽 120km, 자동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마을 없는 초지를 지나, 타리크가 모는 밴을 타고 갔다. 나를 맡은 인 사멜이 동행했다. 사마라에는 유명한 미나레트(사진)가 있다. 원래 미나레트는 모스크 옆에 있는 망루같은 것인데, 예전에는 미나레트에 사람이 올라가 큰 소리로 기도시간을 주변에 알렸다고 했다. 나는 모스크에는 4개의 미나레트가 있는 것이 정석(定石)이라고 들었는데, 이라크의 모스크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미나레트가 4개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카디미야의 모스크에는 4개가 있다"면서 자랑스럽게 대꾸한다.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카디미야의 황금돔사원을 말하는 것인데, 이 사원 외에 ..

[이라크]함무라비는 없다

말로만 들었던 바빌론, 그 바빌론에 도착했다. 타리크도 길을 모르는지 물어물어 찾아갔다. 말로만 듣던 이슈타르의 문(사진). 파랗게 칠한 벽돌에 사자를 돋을새김하고 노랗게 칠한 그 문은 물론 '가짜'다. 진짜 이슈타르의 문은 독일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여기는 바빌론이 아닌가. 고대 수메르의 수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네부차드네사르왕의 공중정원이 있는 곳. 대추야자나무가 있는 정원을 지나 진흙벽돌로 만들어진 성곽으로 올라갔다. 사담 후세인이 옛날의 공중정원을 80년대에 복원해놓았다. 복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황량한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벽돌은 진흙으로 만들었는데 굽지 않고 그냥 햇볕에 말린 것 같았다. 날은 몹시 더웠다. 낮기온이 40℃까지 올라..

[이라크]바빌론 가는 길

바빌론에 갔었다. 바빌론, 바벨. 이라크 사람들은 외국인에게는 (영어로) 바빌론이라 말하고, 자기들끼리는 그냥 바벨이라고만 부른다. 택시를 빌려 타고 갔다. 기아에서 만든 프레스코인가 하는 승합차인데, 운전기사 타리크(32)와는 그 뒤로도 한 이틀인가를 함께 다녔다. 한국산 전자제품 상점들이 몰려 있는 카라데 거리를 지나 바그다드를 벗어나니 허름한 집들, 주변에는 대추야자밭이 보인다. 바그다드가 있는 바그다드주(州) 바로 남쪽에 바빌론이 있는 바벨주가 붙어 있다. 승합차는 바벨주의 시작인 마무디야 마을을 지나는데, 여기도 도처에 사담의 얼굴이다. '나암 나암(예스 예스)' 하는 선전구호가 쓰인 현수막들. 곳곳에 일본제, 한국제 자동차가 보이는데 모두 20-30년전 것들이다. 흰 페인트로 덧칠한 도요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