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에 쓴 글)
이라크전쟁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각에서는 전쟁의 부정적인 영향은 잠시뿐이고, 오히려 유가가 떨어져 세계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은, 전쟁이 세계 경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쪽에 힘이 실려 있다. 현재 각국이 겪고 있는 침체의 원인은 이라크전쟁보다는 구조적인 데에 있고, 또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변수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전쟁 자체의 파급효과는 1991년 걸프전보다 오히려 적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라크전 이후 세계 경제가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은 근거가 불확실하다"면서 특히 미국이 전쟁 비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전비와 관련해 미국 내에서도 각 기관들의 추산치가 서로 다른데, 당장의 공격 비용만 따져 1000억달러가 들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이라크 재건비용이 장기적으로 1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전비와 전후재건비용에 대한 면밀한 측정 자체가 어려우며, 미국이 전비 충당계획과 구체적인 재건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4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구조적인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쟁 효과'로 미국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리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유가(油價)의 경우 "전쟁 기간 단기적 급등, 이후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낙관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에너지전문가들은 이라크전이 끝난다고 해서 산유량이 갑자기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라크의 현재 석유생산량은 1일 150만-200만배럴. 전쟁이 끝나자마자 생산량이 몇배씩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라크 석유가 세계 유가를 끌어내리려면 최소한 몇달 이상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또 유가만 가지고 경기회복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도 많다. 지금 미국과 유럽의 중동 석유의존도는 걸프전 때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현재의 경제 침체는 유가와는 결정적인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베네수엘라 파업사태와 같은 다른 변수들이 현재의 단기적 고유가 현상의 주범인 마당에, 전쟁 이후 유가 하락-경제 회복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국 문제는 세계경제를 회복세로 전환시킬 근본 처방이 없다는 것. 미국의 엄청난 전비 소요, 그로 인한 재정적자, 총체적인 경기 침체와 실업난 등을 구조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잠깐 동안의 주가 상승 외에는 별다른 회복효과를 노리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전쟁이 한창인 4월3일 쓴 글)
이라크전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전후 세계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던 낙관론에도 금이 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의 경제지수들이 모두 경기악화를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전문가들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인하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국제 금융기관 협의기구인 국제금융협회(IIF)는 1일 각국 경제정책 입안자들에게 금리인하등을 비롯해 경기 부양을 위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IIF는 각국이 경제회복을 위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지 않을 경우 세계경제의 침체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IIF는 "선진7개국(G7)이 이라크전쟁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에 효과적이고 통일된 대응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주요국 중앙은행과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경제회복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찰스 달라라 IIF 총재는 이라크전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정책들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할 필요가 있다며 "각국이 이라크전이 조기 종결되리라는 기대감만으로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세계경제는 이라크전의 영향을 톡톡히 받고 있다. 미군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이라크를 조기에 장악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이라크의 재래식전술에 발이 묶이면서, 전후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동시에 발목을 잡혔다. 이라크전으로 미국 경제가 고전을 겪고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괴질 파동이 겹치면서 아시아권까지 경제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 제조업활동지수는 지난달 2001년 9.11 테러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인 46.2를 기록했다. 가계소비지출도 둔화됐다. 로이터/NTC리서치의 유로존 구매관리지수는 지난 10년동안 최저인 48.4로 나타났다.
프랑스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2.5%로 잡았다가 지난달 1.3%로 낮춘데 이어 한달도 안돼 다시 1%로 하향조정했다. 영국과 독일의 소매지수와 일본의 단기경제관측(단칸)지수 등도 모두 떨어졌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초 미약하게나마 회복가능성을 보여줬던 세계 경제가 이라크전 여파로 인해 다시 추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음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장관회의와 세계은행 회의에서는 이처럼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전후 세계경제의 회복방안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FT는 "국제사회는 이라크전 지지여부를 놓고 양분돼 있지만 경제대책에서만큼은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노나는' 군수업체들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에게는 전쟁만한 기회가 없다. 세계경제가 이라크전 장기화로 발목을 잡힌 상황에서도 군수산업체들은 전쟁의 수혜를 톡톡히 입고 있다. 특히 레이시온, 노드럽 그루먼, 제너럴 어타믹스, 록히드 마틴 등 미국의 대표적인 무기회사들은 이번 전쟁으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언론들은 1일 보도했다.
WSJ는 레이시온, 노드럽 그루먼, 제너럴 어타믹스 3사(社)의 주가가 전쟁 직전부터 시작해 연일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생산하는 레이시온은 재작년 아프간전쟁 때에도 개전 첫날부터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 며칠 새에 50%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던 바 있다. 세계 최대 미사일 생산업체인 이 회사는 98년 이후 한때 토마호크 미사일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는 지경까지 갔었으나, 유고 공습으로 숨통이 트이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아프간 전 첫날 토마호크 미사일 50기를 쏟아부었던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는 지금까지 700기를 투하했다. 이 미사일은 1기에 110만-120만달러를 호가하는데, 특히 미 공군에서 사용하는 특정 기종의 경우 180만-2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이시온의 연간 토마호크 생산량이 100기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전쟁 시작 후 열흘남짓 만에 7년치 생산분량을 몽땅 소요한 셈이다. 전쟁 초기 미군 전비의 대부분을 고가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차지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B2 스텔스 전폭기를 생산하는 노드럽 그루먼도 전쟁 수혜자 중에서 빼놓을 수 없다. 축구장 절반만한 크기의 B2기는 한 대 가격이 26억달러(약 3조2000억원)에 이른다. 미군은 이번 전쟁에서는 사상 최초로 B2기를 본토 밖으로 빼내 인도양의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섬에 배치했다. 무인정찰기 '프레데터'를 생산하는 제너럴 어타믹스, F16 전투기와 C130 수송기 등을 만드는 록히드 마틴 등도 이라크전쟁으로 엄청난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올 국방예산으로 약 750억달러(약 90조원)를 책정해놓고 있다.
미군 무기공급 같은 직접적인 이익 외에도 군수산업체들은 이번 전쟁을 일종의 쇼케이스(전시장)로 생각하며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TV화면을 통해 24시간 생생하게 전달되는 폭격장면은 군수산업체들에게는 돈 안드는 홍보전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무기거래중개인인 타마르 가벨닉은 1차 걸프전 뒤 미국 군수산업체들의 해외 수출계약액수가 급등했던 것을 들면서 "이들 기업들의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은 CNN방송"이라고 말했다. 1991년과 92년 각각 100억, 110억달러였던 미 군수산업체들의 수주액수는 93년 200억달러로 2배 가까이 올랐었다.
(아프간전 때에도 비슷한 기사를 썼더랬습니다. 그때 레이시온 사례를 소개하면서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미국의 군산복합체'라는 표현을 집어넣었는데요. 덕분에 국회의원 모씨에게서 격려의 메일을 받은 동시에, 레이시온사 한국 홍보대행사로부터 유감의 뜻을 전달받았지요^^)
미국의 이라크전쟁 비용은 얼마나 될까.
최첨단 무기들을 총동원하게 될 이번 전쟁의 전비(戰費)와 관련해 미국의 각 정부기관과 민간 연구소들은 200억달러에서 1조6000억달러까지, 천차만별의 추정치를 내놓고 있다. 당초 미 의회 예산국은 지난해 전쟁이 2개월간 이뤄질 경우를 상정, 280억∼370억달러가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었다.
미 하원 예산위원회는 300억∼600억달러, 래리 린드시 백악관 수석 경제비서관은 최대 2000억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300억∼500억달러의 군사비용에 전후 점령·평화유지 비용으로 매년 50억∼200억 달러가 더해질 것으로 추정했고,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550억~120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추정들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전비 규모가 계속 커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 국방부도 이라크전 소요비용을 600억달러로 추산했다가 뒤늦게 추정치를 고쳐 지난달 말 950억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이는 미 정부의 부담비용만 계산한 것일 뿐, 전쟁이 시작되면 직접적인 군사공격에만 500억-1000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전후 재건비용까지 합치면 무려 1조6000억원이 필요하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유고의 코소보와 동티모르, 아이티 등의 경우를 분석한 뒤 "이라크의 국가규모로 미뤄볼 때 전후처리비용은 6000억달러에서 최악의 경우 10년간 1조6000억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미국에 현실적인 전비 충당계획이 없다는 점. 미국은 전후처리 비용의 상당부분을 이라크 석유 판매로 조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1991년 걸프전 때처럼 유전을 파괴할 경우 석유 증산이 힘들어질 수 있고, 또 미국이 이라크의 기간시설을 많이 파괴한 상태여서 당장 증산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라크 유전개발로 전비를 조달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라는 부정적인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걸프전 때에는 총 761억달러가 소요됐는데, 미국은 그중 12%만을 부담했으며 나머지는 사우디아라비아(29%), 쿠웨이트(26%), 독일(16%), 일본(10%), 아랍에미리트연합(7%) 등이 나눠 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국가들은 미국의 압력 때문에 비용을 추렴한다 하더라도 전후 이라크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국한하겠다는 입장이다. 터키 등 중동국가들은 오히려 미국에 기지제공 등에 대한 보상과 경제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걸프전 때에는 약 5억달러, 아프간 전쟁에서는 각종 후방지원을 포함해 1억달러 정도를 지원했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이번에는 더욱 큰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국방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미국의 과거 대규모 전쟁 비용
▲ 남북전쟁(1861-65년) 620억 달러(전쟁 당시 GDP의 104%)
▲ 미국-에스파냐 전쟁(1898년) 96억 달러(3%)
▲ 제1차 세계대전(1917-1918년) 1906억 달러(24%)
▲ 제2차 세계대전(1941-45년) 2조8963억 달러(130%)
▲ 한국전(1950-53년) 3359억 달러(15%)
▲ 베트남전 (1964-72년) 4943억 달러(12%)
▲ 제1차 걸프전(1990-91년) 761억 달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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