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석유와 이라크 전쟁

딸기21 2003. 3. 1. 10:46
이라크 하면 석유가 떠오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다. 이라크전쟁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데, 내 주변에 계신 분들 중에 이라크전과 석유의 관계를 쓰라는 분들이 있으시다. 

그 분들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미국은 이라크의 석유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도 노리고 있다, 그래서 싸운다"라는 식의 아주 단순한 구도인데,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은 보통 장기적 전략적인 것이고, 당장의 전쟁에서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무진장 퍼가려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단순논리로는 국가라는 행위자의 모든 행동을 일관되게 표현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이라크 전쟁의 본질은 석유전쟁이다. 조지 W 부시와 콜린 파월이 수차례 "이라크 공격 목적은 석유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이라크전쟁이 석유전쟁이라는 데에 이견 있을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부시와 파월의 발언은 그럼 뭔가. 남들이 자기네들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건가? 물론 그건 아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니까(부시가 말을 좀 바보스럽게 하긴 하지만). 러시아 프랑스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이라크 석유 우리가 낼름 집어삼키는 거 아냐, 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그러나 미국이 '낼름 집어삼키는' 것은 아니더라도 '장기적 전략적'으로 이라크 자원을 노리는 것은 맞다. 이라크를 넘어서, 카스피해 넘보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전쟁은 비록 국가간의 싸움 형태로 벌어질 지언정, 국가(정부)를 움직이는 것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에너지자원을 장악하기 위한 각국의 치열한 생존경쟁 뒤켠에는 국가의 틀과 민주주의의 명분을 빌린 석유메이저들간의 싸움이 있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석유매장량을 갖고 있지만 유엔의 경제제재를 비롯한 정치적 요인들 때문에 유전 개발은 상대적으로 지체됐다. 이라크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유전 73곳 중에 채굴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15곳에 불과하다. 제일 큰 유전인 키르쿠크(이라크전 판도를 읽을 때에 대단히 중요한 지명임)는 1920년대에 개발됐는데 아직도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한다. 하루 60만-70만 배럴을 여기서 파낸다. 

이라크 석유는 사우디산에 비해 강점이 많다. 우선 황 함유량이 적다. 정제비용이 적게 든다. 채굴비용 자체도 적게 든다. 사우디는 유정을 하도 많이 긁어대서, 지하 150m 천연 암반유를 뽑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라크는 다르다. 손으로 파내면 그냥 석유다. 모술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라크 북부에 있는데, 바그다드에 이어서 이라크에서는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모술을 가리켜 이라크 사람들은 '석유 위에 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석유가 바닥 얕은 곳에서 퐁퐁 쏟아져나온다는 얘기다.

이라크 석유는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높다. 전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가재건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이고, 따라서 대대적인 유전개발에 나설 것이 확실하다. 때문에 세계 석유메이저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축출만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이라크 유전 개발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프랑스·중국 기업들이다. 1997년 러시아의 루크오일이 이라크 서부 쿠르나 유전 개발권을 따냈고 뒤이어 중국 인민석유공사와 프랑스계(이탈리아 합작) 토탈피나엘프가 각각 루마일라와 마이눈 유전개발에 들어갔다. 반면 세계 최대의 에너지기업인 미국 계열의 엑손 모빌과 영국의 영국석유회사(BP), 영-네덜란드계열인 로열더치셸이 이라크 시장에서만은 뒤처져 있다.

여기엔 다 사연이 있다. 미국과 영국 메이저들은 20세기 중반까지 이라크 석유를 제주머니에서 돈전 꺼내듯 파내 갔다. 1940년대에 이라크에 카심정권이 들어섰었다. 전형적인 '민족주의 정권'이다. 미국이 이걸 두고볼 리 없지. 카심 정권은 석유국유화 하려고 했다가 2년도 못 가서 뒤집어졌다. 그러나 70년대, 이라크 뿐 아니라 중동 전체에 민족주의 바람이 불었다. 이라크에서도 석유산업 국유화조치가 시행됐다. 사실 그 전까지 세계 석유시장은 일곱자매들(Seven Sisters)라는 년들이 잡고 있었는데, 오일쇼크 때 퍽퍽 얻어맞았다. 90년대가 돼서 일곱자매들은 어쩔 수 없이 인수합병으로 몸불리기를 했고, 석유 세상은 너댓개의 '아줌마들'이 나눠 갖게 됐다.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다. 이 때 이란을 쳐내기 위해 이라크에 이란 군사정보를 넘겨주며 바그다드-백악관 라인을 튼 놈이 바로 도널드 럼즈펠드라는 인간이다. 이름이 어떻게 도널드냐. 오리새끼만도 못한 놈. 어쨌든 이 인간이 레이건의 특사로 이라크에 와서 후세인 꼬셔서 자기네 편 만들고, 이란 군사정보 제공해주고, 동네 방위 노릇 하게 만들었다.

전쟁은 오래 갔다. 이란은 이라크보다 사상자 수가 몇배에 달했는데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호메이니는 멍청이 바보가 아니었으니깐. 뒷심으로 버텼다. 이라크는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졌다. 석유산업도 많이 죽었다.

전쟁이 끝난 것은 88년. 2년 뒤에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그 1년 뒤에는 걸프전이 일어났다. 이라크는 미국에 괘씸죄로 걸려서 얻어맞았다. 그냥 얻어맞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밥그릇도 빼앗겼다. 유엔이 제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수조치. 무시무시한 말이다. 저렇게 유식한 말로 써놓으면 그게 뭔지 사람들이 알기가 힘들다. 금수조치의 정확한 표현은 '굶겨죽이기'다. 

하도 많이 굶어죽으니까 96년 유엔이 이라크를 쪼끔 봐주기로 했다. 굶겨죽이지는 말고, 적당히 굶겨서 진을 빼놓기만 하자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석유-식량 교환프로그램'이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이라크는 석유를 팔아 밥하고 약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때 석유수출을 하면서 이라크가 미.영 기업들에게 밥숟가락을 들려줄 리가 없다. 이라크는 석유수출을 재개하면서 러시아·프랑스 기업들에 이권을 내줬다. 미·영 기업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눈앞에서 달아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라크 석유를 둘러싼 경쟁구도는 유엔 외교무대에서의 대립구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미.영 vs 러.프.중. 이걸 뒤집는 것이 미.영 석유사들이 목적이다. 뒤집는 도구(뭐라고 하나, 뒤집개라고 하나?)는 부시와 블레어다. 이라크 외교전 뒤에 석유메이저들이 숨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이번 석유전쟁에서 본질적인 측면은, 메이저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물론 그것도 치열하지만) 메이저 연합 vs 국가(중동 정부들)간이 싸움이라는 얘기다. 

국가의 틀을 빌린 다국적기업 대 중동 국가들의 총체적인 석유싸움. 당장 후세인 정권이 축출되고 이라크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기술이나 돈이 모자라 다국적기업들을 불러들이겠지만, 그렇더라도 석유개발권을 다국적기업들에 순순히, 몽땅 내어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요르단 암만에서 석유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전 이라크 석유장관 이삼 알 찰라비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찰라비는 "이라크 국민들과 석유관리들 사이에는 유전을 국가가 관리해야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 석유사들의 진입을 허용하기는 하겠지만, 70년대 오일쇼크 이전처럼 민간자본에 모두 내맡기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앞으로의 '석유전쟁'에서는 메이저들 간의 이권싸움 못잖게 석유메이저들 대(對) 중동 국가들간의 싸움이라는 본질적인 양상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은 이미 9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우디를 보자. 70년대부터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가 석유화학분야를 독점하고 있다. 아람코가 사업의 일부분만 민간에 매각한다 해도 석유전문지들은 해설하느라 분주하다. 아람코의 일거수일투족이 석유시장에서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석유전문가들은 "아람코는 사우디 그 자체"라고 말한다. 

뻥이 아니다. 사우디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석유 수입으로 메꾸고 있다. 돈줄, 밥줄, 왕정의 생명줄이다. 그런데 사우디의 천연가스전을 개발하기 위해 3개의 다국적 컨소시엄이 98년 구성됐지만 압둘라 왕세자가 협상을 질질 끌고 있다.

쿠웨이트에서는 엑손 모빌과 BP가 99년에 북부 유전개발권을 따냈다. 그런데 의회가 반대를 해서, 아직 개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형국인데 이라크에서부터 국가관리체제의 틀이 깨지기 시작하면 중동의 석유·천연가스는 도미노처럼 다국적 기업들에 넘어갈 것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