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중동은 어디로 갈까

딸기21 2003. 3. 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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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연설을 통해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중동 전체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공언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달 초에도 '중동 민주화'라는 구상에는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중동 국가들은 이번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중동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려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이 말한 '중동 민주화' 구상은 중동 전역에 엄청난 격변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구상대로라면 전쟁 이후 중동에 정치적으로는 서구식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확산될 것이고 현재 중동 각국에 군림하고 있는 권위주의 정권의 상당수가 교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민주주의 확대'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미국이 중동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온 배경은 냉전 종식 이후 10여년에 걸친 국제적 역학관계의 변화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냉전 시절 중동에서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보루 역할을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의 효용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한때 미국의 최대 우방 중 하나였던 사우디는 이제는 미국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사우디식 석유관리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맞는 틀로 바꿔놓아야 할 필요성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사우디와 이집트의 '독재정권'을 미국이 끌어안고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동 내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워싱턴의 판단이다. 

중동의 '반미주의자'들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거론할 때 사우디 문제를 빠짐없이 지적한다. 사우디의 전제왕정은 부패와 독재로 악명높다. 사우디 왕정은 미국의 우산 속에서 낙후된 경제와 사회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강압적으로 내리누르면서 정권을 유지해왔다. 석유수입으로 국민의 기본생활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사회적 동요를 가까스로 무마해왔으나, 80년대 이후 계속된 저유가와 그로 인한 재정부족으로 인해 이같은 방식은 힘을 잃게 됐다. 사우디의 일간 아랍뉴스는 지난 5일 실업률이 31.7%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경제 침체는 사우디를 비롯, 석유 수입으로 간신히 버텨온 독재국가들에서 엄청난 사회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독재정권의 부패에 실망하고 경제난에 좌절한 젊은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테러리즘에 열광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 자신은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빈 라덴의 테러리즘이 확산할 수 있었든 것은 저변에 수많은 절망한 젊은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간 사우디 왕정을 지원해온 미국에게로 직접적인 공격의 화살을 돌리고 있고, 이미 2001년 9.11 테러로 미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사우디와 함께 이슬람권 친미의 또다른 축을 형성하는 이집트 역시, 미국의 막대한 재정지원으로 국가를 떠받쳐왔다. 그러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인 사우디와 이집트가 1991년의 걸프전 때와 달리 이번 이라크전쟁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국민들의 반미정서와 동요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짐'이 돼버린 사우디의 독재왕정을 더이상 놔둘 수는 없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 뒤 유가 하락을 유도함으로써 재정파탄 지경에 이른 사우디 왕정이 자연스레 무너지도록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식할 경우, 한마디로 '투표 공간'이 열릴 경우 이슬람 세력이 대거 부상할 것이 분명하다. 새로 수립된 '민주정부'들은 국유화정책을 위시, 민족주의를 표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제2, 제3의 '이란'이 생겨나는 꼴이 된다. 이르면 2020년 이후 미국과 러시아, 북해 등지의 석유생산은 하락곡선을 그리기 시작할 것으로 보이고, 세계 에너지 시장의 중동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들을 그냥 놓아둘 수도, 그렇다고 중동에서 본질적인 개혁이 진행되도록 두고볼 수도 없는 것이 미국의 처지다.

미국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면 중동에서 민주화 바람이 불고 소용돌이가 몰아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중동 전역에서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서방의 '지배'에 대한 거부감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 있다. 전쟁 뒤 미군이 이라크에 장기간 주둔하게 될 경우 반미정서로 가득찬 '이슬람 민중'들과 미국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생겨날 것이다. 

미국은 역내의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면서 갈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으나, 묘안을 쉽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지원 속에 버텨온 중동의 독재정권들, 서구화와 자본주의화를 더이상 피해나가기 힘들게 된 이들 정권들에게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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