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1134

Being Digital?

오늘 일요당직을 섰다. 어제도 일토였는데 일요일까지 회사에 가서 사무실을 지켰다. 귓속에서 아직도 히터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거린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소음에 시달리다 돌아오니 이번엔 환청이 나를 괴롭힌다. 집에 혼자 앉아있는 순간에도 '조용히 있을' 수는 없다. 집에 들어와 눈치를 살펴보니 남편이 빨래를 해놓고 나갔다. 국을 데워 저녁을 먹을까 하고 있는 참에, 관리실에서 스피커로 내 머리를 때린다. 베란다로 이어져내려가는 하수구가 얼어붙으니까 세탁기 돌리지들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아뿔싸, 아랫층 베란다 하수구 다 얼었겠네... 방송 담당을 그만두고 나니 집에 와 앉아있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내 귓전에서 웅웅거리는 가장 큰 소음 중의 하나인 ..

괜한 걱정

어제 초등학교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아이러브스쿨'에 가끔 들어가보지만, 사실 들어가봤자 나같은 사람은 별볼일 없다. 날 보고싶어하는 사람도 없고, 나 역시 특별히 보고싶은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그 두명이다. 두 친구와 용케 연락이 되어 어제 만났다. 종로3가 피카디리 극장에서 2가 쪽으로 오는 길에 오른쪽에 있는 롯데리아로 오라고 친구가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찾아가긴 잘 찾아갔는데, 전철역에서 헤매느라 한 10분 늦었다. 하필이면 어제는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오는 통에 애들이 나 기다리면서 굉장히 걱정했다고 했다. 내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난 어제 우리의 만남을 정말 눈 빠지게 기다렸다. 국민학교 졸업한 뒤에 중학교 다닐 때에도 동네에서 ..

앞뒤로 열린 가구

며칠 전 가구를 만들었다. 여성잡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홍대앞 '내가 디자인하고 내가 만드는 가구'에 주문을 했는데, 가장 맘에 드는 건 역시나 '내가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멋지게 폼나는 이쁜 가구는 아니니까 사실 '디자인'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을 떠올리면 안 된다. 그저 집성목을 이리저리 잘라 만든 보통 나무 가구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설계'를 하다보니 재미가 있었다. 내가 중점을 둔 것은 가구를 앞 뒤로 개방하는 것이었는데- 여느 가구처럼 벽에 붙여 세워놓는 것이 아니라 마루 가운데에 놓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높이 150센티, 폭 130센티, 너비 30센티. 맨 아랫칸은 현관 쪽으로 여닫이문을 달았고, 그 위의 두 칸은 마루 쪽으로 책꽂이를 냈다. 맨 위칸은 양쪽을 모두 '개방'했..

참새가 없는 세상

며칠전 누구누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참새 이야기가 나왔다. 참새 얘기가 나온 것도, TV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TV에 비친 참새를 봤는데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참새가 사라졌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참새시리즈는 한때 유행하는 농담의 대명사였는데, 요즘에는 골목에서 참새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걸까. 하긴, 골목 자체가 사라졌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골목의 문화' '골목살이'가 없어진 꼴이니까. (골목에 대해서는 지난해에 경실련 도시문화센터의 김병수 부장이 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던진 화두인데, 언젠가는 글로 써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골목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하여간에 참새가 사라졌으니 요즘 아이들은 아마 참새시리즈도 모르지 않을까. 내가 대학생일 때..

가죽 벗기기

(여러분, 제가 드디어 시를 썼습니다! ) 제목: 가죽 벗기기 호랑이의 가죽을 벗기는 전통적인 방식. 호랑이의 코와 입 부분에 십자형 칼집을 넣고, 호랑이를 묶어놓는다. 그 다음 호랑이의 똥꼬에 불을 놓으면 호랑이가 앗 뜨거 하면서 앞으로 뛰어나가겠지. 그런데 몸통이 묶여있으니, 알맹이만 처음에 만든 칼집으로 빠져나가고 가죽은 남는다. 호랑이는 이렇게 죽지 않고도 가죽을 남길 수 있다. 그럼 빠져나간 알맹이 호랑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기름기가 얇게 끼어있는 맨들맨들한 몸에 얼룩이 사라진 호랑이는 별로 무섭지는 않을 것이다. 겨울 나는데에는 좀 힘이 들겠지만. 이 방법은 개나 고양이 등 각종 포유류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방법으로 거북이의 등딱지를 떼어낼 순 없을까. 거북이 등을 막대기 따위로 ..

일요일의 상상

밖은 추울까. 좀전에 잠시 햇빛이 나는가 싶더니, 또다시 하늘이 회색으로 변했다. 비나 눈이 올 것 같은 날씨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토요일이었던 어제는 아침 9시에 일어나 집 뒤편 가게에 갔다온 것 외에는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뒹굴며 잠을 잤다. 가게에 갔다오는 길에 보니 보도블럭에 떨어진 물 자국이 미끄러웠다. 설마 저게 얼음이랴 싶었는데, 차들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놓은 시뻘건 드럼통 위에 고인 것이 분명히 얼음이었다. 가게 아저씨는 '얼음이 얼었네요' 하는 내 말에 무슨 봉창두드리는 소리냐는 듯이 '오늘 영하잖아요' 라고 했는데, 얼음이 언 것을 보니 그제서야 겨울이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오늘은 아예 찬 공기 속으로는 콧배기도 내밀어보지 않은채 집안에 틀어박혀 온돌공주 노릇을 하고 있다...

스무살과 서른살

며칠전,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을 만났다. 같이 인문대 학생회 일을 하던 친구들인데, 한 친구가 곧 결혼을 한다고 했다. 친구의 결혼을 핑계삼아 오랜만에 신림동 '그날이 오면' 앞에 모였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일단 '그날'에 들러 책 구경을 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왕이면' 그날에 가서 책을 사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교보같은 대형서점에서 책을 사는 건 '그날'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러나 물론 요즘은 알라딘에서 책을 산다. 이유는 단 하나, 싸기 때문에. 덕택에 책 구경하는 재미는 많이 줄었다. 책 구경을 하고 나서 혼자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신림동 녹두거리 맨 앞에 있는 커피숍인데 스파게티와 케이크를 같이 파는, '세련된' 가게였다. 예전에 '회빈루'라는 중국..

연락하는 방법

주말 내내 인터넷을 열어보지를 못했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데스크탑에서 메일함을 열었다. 뜻밖의 편지가 와 있었다. 과거에 나의 취재원이었다가 지금은 친해져서 친구처럼 된 어떤 사람에게서 온 쪽지인데 보낸 형식이 특이했다. 요즘 유행하는 '모교사랑'이라는 사이트에서 보낸 쪽지였다. 이상했다. 이 사람과 나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 어느 쪽을 뒤져봐도 동문이 아닌데. 미국에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미국에 갈 생각이니 가기 전에 얼굴한번 보자고 전화가 왔었는데 내가 게으른 탓에 생각만 하고 연락을 못 했었다. 지난달에 출국해서 계속 미국에 있는데, 전자수첩이 망가지는 바람에 연락처가 없어서 이렇게나마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내가 아는 ..

[2000 가을, 홍콩] 그 밖의 것들

☆ 홍콩의 공동묘지 이 사람들이 한국의 공동묘지를 본다면 무지하게 호사스럽다고 할 겁니다. 지나가면서 홍콩의 묘지를 구경했는데, 봉분 없는 대리석 묘석에 묘비만 있는 형태였습니다. 무덤과 무덤 사이의 간격이 아마 15-20cm 밖에 안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붙어있어서 꼭 무슨 새집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것도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같은 모양으로요. 홍콩사람들에게는 성묘(?)같은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 역시나 쇼핑천국 무슨 거리에 그렇게 에스컬레이터가 많은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핑몰임을 실감케 하는 것이 바로 그 에스컬레이터들입니다. 하다못해 육교같은 노천에까지(물론 지붕은 있지만) 에스컬레이터가 놓여있습니다. 어쨌든 다니기는 편한데, 이 사람..

[2000 가을, 홍콩] 친절한 홍콩사람들

☆ 차비를 대신 내준 여행사 직원, 잔돈을 치러준 출근길 아가씨 다른 곳을 여행해보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홍콩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일 겁니다. 홍콩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전철역에서 호텔까지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를 몰라 한참 헤맸습니다. 전철역 안 지도앞에서 지나가는 아가씨를 붙잡고 무작정 호텔 이름을 대면서 물어봤는데 이 아가씨가 마침 어느 여행사의 직원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버스 기사에게 저의 목적지를 얘기해주더니 차비까지 대신 내주는 겁니다. 더 놀라운 일은 버스에서 내려서 일어났습니다. 운전기사의 지시(?)에 따라 버스에서 내리는데 어떤 멀쩡한 총각이 호텔까지 저를 데려다주는 겁니다. 좀전의 그 아가씨가 하는 말을 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