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1147

우리 집

"우와, 감이 많이 열렸네. 나 고등학교 때 저 나무에서 감 많이 땄었어." 얼마전에 차를 타고 지나다가 홍제동 골목의 어느 집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고 이렇게 말을 했더니, 남편은 "어떻게 네가 저 집 감을 땄느냐"면서 의아해했다. 나의 남편은 부인의 말을 늘 흘려듣기 때문에, 저런 질문을 하곤 한다. 언젠가 지나치면서 이미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아주 오래 전에 화장터가 있어서(이미 옛날에 국민학교로 변했지만) 지금도 '화장터길'이라고 불리는 샛길 가운데 있는 그 집, 감나무에 가지가 늘어지도록 감이 열려있는 그 집은 원래 우리집이었다. 지금도 우리집이라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 그 집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요 며칠 드물게 짙은 안개가 끼더니, 오늘은 하루종일 밖이 뿌옇고 흐리다..

간장선생

비디오로 '간장선생'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아지님이 빌려왔길래...당근(?) 중국영화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비디오 예고편 지나가고 나니까 화면에 '東映'이라는 자막이 뜨더군요. 어, 일본 영화잖어...올초에 비디오로 '춤추는 대수사선'을 보고나서 엄청나게 실망했으며 또한 봄에 영화관에서 '올빼미의 성'이라는 재미없고 엽기적인 영화를 본 뒤 일본 영화에 대한 꿈(?)을 잠시 접은 차였는데... 이마무라 쇼헤이. 히히히...이름을 들어본 기억이...방금 전에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꽤나(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유명한 감독이군요.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모두 제목을 들어본 적이 있는 작품인 걸 보면요. 황금종려상...이것도 유명한 상이죠, 아마. 전쟁, 공습, 폭격, 등화관제. 좋지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

일본에서 2400만명이 봤다는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초대형 히트작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을 봤다. 후배를 따라 시사회에 갔었는데, 사람들이 몰려서 시사회장이 북적북적했다. 미야자키라는 이름, '관객동원**만명'이라는 카피의 설득력 같은 유인요인들이 있어서 그랬는지. 관객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재작년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국내상영을 앞두고 열린 시사회에서의 그 썰렁한 반응에 비하면 어제는 영화보는 사람들 모두, 웃기거나 귀여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웃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특유의 가볍고 달콤하고 코믹한 부분들이 여러번 나왔는데 나는 사실 별로 웃지 못했다. '헤이세이 폼포코 너구리대전쟁'을 볼 때에는 달걀귀신이 나와서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는데. 영화는 아주..

와이키키 브라더스, 수안보의 신파극

며칠전 '고양이를 부탁해'의 자극이 상당히 진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영화를 또 봤습니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저 원래 감독 이름 알고서 영화보는 일 별로 없는데요, 신문들이 하도 극찬을 해놨길래...이름을 외워 갔지요. '세친구'라는 전작이 있다고 하는데, 보지 않아서 비교는 못하겠구요. 여튼, 이 영화 보지 마세요. 각 신문의 영화담당 기자들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답니다. 특히, 영화 팜플렛에 감상문이 한단락 소개돼 있던 한국일보의 박모 기자. "울다가 웃다가 어쩌구" 했다는데, 대체 이 영화보고 왜 울다가 웃었는지... 감정이 대단히 풍부한 모양입니다 그려. 세상에, 아직도 이렇게 상투적이고 고전적인 영화를 만들다니! 재미 되게 없더군요. 무거운 얘기, 밑바닥 얘기만 하면 신문에..

제주도에서

어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저 어디 갔나 궁금하셨죠?(별로 안 궁금했나?) 일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어제 오후 1시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3박4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했는데요. 이번에는 저의 컨디션이 컨디션인지라, 사진은 별로 안 찍었어요. 덕분에 아지님도 혼자 몇장 박고 말았죠. 스캐너가 있어서 보여드리면 좋을텐데^^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먹는데에 중점을 둔 여행이었다고나 할까요. 가기 전에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두고 갔거든요. 갈치구이, 옥돔구이, 전복죽, 해물뚝배기, 갈치조림 등등. 갈치조림은 못 먹었지만 다른 것들은 다 먹었구요, 또 제주 흑돼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구이랑 아주 맛있는 해물돌솥밥도 먹었답니다. 버터에 뜨거운 밥 비벼먹는 거,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맛있었습니다. 아휴, 또 먹고싶..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엄마, 우리 눈가에는 왜 털이 많아" "사막에 모래가 많아서." "발톱은 왜 두개야" "사막에서 잘 걸어 다니려고" "등에 있는 혹은 뭐고" "사막에서 오래 견디려고" "근데 왜 우린 동물원에 있어?" 늘 들르는 홈페이지에 갔다가 이 글을 발견했다. 다들 어디선가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내용일텐데. 그런데 갑자기, 아, 이게 웃긴 얘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를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죄책감과 위화감, 긴장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꿈대로라면 서른 한살의 나는 지금쯤 이집트의 어느 고분에라도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콘티키같은 뗏목을 타고, 혹은 짐 크노프의 기관차를 타고, 돛단배라도 타고서 어딘가에서 모험을..

배에 인터넷을 깔다

인체의 일부분을 기계화한 안드로이드, 생체기계 따위를 공상과학영화에서 많이 보신 분들! 여기에 있는 한 인간은 배에 인터넷을 깔았으니 참으로 대단한 네티즌이 아닌가요.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여덟개의 손가락으로 배를 두드리고 있다. 인체의 일부(혹은 상당부분, 혹은 전부)가 로봇화한 생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1) 기능적 기계인간 이른바 '후크 선장 증후군'. 인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것. 그러나 기계의 몫은 어디까지나 상실된 신체기능을 보전하는데 국한될 뿐, 인간의 총체적 자아와 사고기능에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다만 논란거리는, 기계의 범주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것. 딸기의 독단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안경이나 보청기 따위를 몸에 장착해 신체 기능을 보완한 경우는 기능..

피해다니기

항상 하는 얘기지만, 그리고 결코 자랑은 아니지만 언제나 자기방어를 잘 한다고나 할까.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그저 스스로 마음 편하기 위한 기제들을 잘 만들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여우의 신포도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덕택에 언제나 '미련'이 없다. (좀 '미련'하기는 하지만^^) 돈들여 가방을 산 뒤에는 다른 가방 가게 앞을 지나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산 가방이 제일 예뻐보인다. 사람이니까,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하는데 늘상 남보다 쉽게 선택을 하고도 여간해서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났을 때 별로 가진 것(이쁜 얼굴 같은 것^^)이 없어 보여서 하느님이 선물로 그런 남다른(?) 능력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재미있냐고 ..

은빛 여우

지난 주말에 조지 마틴의 판타지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열심히 읽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냐면, 내 몸통이 거의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듯이, 각 등장인물들에게는 가문의 문장이라는 게 있다. 나는 내 문장을 '은빛 여우'로 정했다. 왜냐? 멋있어보일 것 같아서. 얼음과 불의 나라는 동부, 서부, 북부, 남부로 나뉘어 있는데 주인공은 북부의 영주이다. 그러니 내 눈에 북부가 가장 멋있어 보일 수밖에. 실은 나는 추운 곳을 아주 싫어하는데, 주인공을 따라서 북쪽 나라에 살기로 했다. 주인공보다 더 훨씬 북쪽에. 북쪽 나라에는 언제나 늑대가 있다. 그러니 나도 내 문장을 늑대 종류로 정해야 하는데 주인공 집안의 문장이 바로 다이어울프(늑대)가 아닌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늑대..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내 그림자 중의 하나는 모든 그림자가 그렇듯이 늘 나를 따라다니는데, 그림자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정답게 생각하는 놈이다. 내가 간간이 사색을 할 때마다 내 뒤에서 나를 흘낏흘낏 바라보는 이 그림자는 가끔씩 건방지게도, 내 등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이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도 한다. 내가 지뢰찾기에 열중해 있을 때, 내가 컴퓨터 고스톱을 치고 있을 때, 내가 홈페이지에다 시덥잖은 소리를 쳐넣고 있을 때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나 생긴 것처럼 들여다본다. 어린 아이들은 손가락을 자기 코 앞에 갖다대고 그걸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눈알을 가운데로 모으는 놀이를 한다. 난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그 놀이를 하는데, 손가락을 동원하지 않고 맨 얼굴로도 코 주위에 눈알들이 모이게 할 수가 있다. 그림자는 생선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