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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내년 세계 최초 '안락사 합법화 국민투표'…시민과 의회의 엇갈린 의견

딸기21 2019. 11. 14. 16:40

 

뉴질랜드가 내년에 안락사를 합법화할 것인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늘고 고령화가 진행중인 세계에서 ‘존엄한 죽음’, ‘죽을 권리’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법안이 통과됐거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뉴질랜드가 처음이다.

 

뉴질랜드헤럴드 등 현지 언론들은 13일 오후(현지시간) 국회에서 ‘생명종식 선택법안’이 통과됐다고 보도했다. 여러 정당들은 당론을 정하지 않고 의원들이 각자 투표를 할 수 있게 했다. 결과는 찬성 69표 대 반대 51표였고, 안락사 합법화 문제는 내년 국민투표에서 최종 결정되게 됐다. 통과된 법안에 따르면 안락사를 택하려는 사람은 질환의 말기에 이르러 의사가 ‘6개월 시한부 생존’ 판단을 내린 상태여야 하고, 치유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어야 한다. 환자가 스스로 안락사를 결정할 판단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의사 2명이 승인을 해야 한다. 의료진이 먼저 환자에게 안락사를 제안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도 달렸다.

 

안락사 합법화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뉴질랜드가 세계에서 처음이다. 국민투표는 내년 11월 20일 실시되기 때문에 앞으로 1년간 거센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안락사 합법화를 지지하고 있다. 지난 7월 조사에선 응답자의 72%가 회복될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죽음을 택할 권리를 주는 것을 지지했다. 자신다 아던 총리도 합법화를 지지한다.

 

하지만 종교계 등에선 반대 움직임이 거세다. 의회에서 16개월 간 법안을 토론해온 생명종식 법안 위원회에는 시민 3만9000명이 서명을 제출했는데 90%가 반대 의견이었다. 의회 토론에서도 찬반이 팽팽했다. 이번 법안 통과를 앞두고도 의원들이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의사당 밖에서는 생명옹호론자들이 집회 열고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던지라고 촉구했다.

 

뉴질랜드 국회에서 13일 ‘생명종식 선택법안’이 통과된 뒤 법안을 제출한 데이비드 세이무어 의원(가운데)이 웰링턴의 의사당에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안락사를 합법화한 이 법안은 내년 11월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웰링턴 AP연합뉴스

 

뉴질랜드의 1961년 개정 형법은 ‘자살을 돕거나 선동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1995년 ‘존엄사법’이 의회에 제출됐으나 반대 61 대 찬성 29로 부결됐다. 2003년에도 존엄사법안이 올라왔는데 이 때에는 반대 59대 찬성 58로, 한 표 차이로 부결됐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행동(액트)당의 데이비드 세이무어 의원이 2015년 만든 것이다. 2017년 12월 의회에 공식 제출됐고 지금까지 총 8차례 독회를 통해 토론이 벌어졌다. 논쟁 과정에서 포퓰리즘 정당인 ‘뉴질랜드퍼스트’ 당의 요구로 국민투표 회부 조항이 덧붙여졌다. 지금까지 의회 표결만 3번을 했다. 2017년말 첫 표결에선 찬성과 반대가 76 대 44, 지난 6월엔 70 대 50, 이번 마지막 표결에선 69 대 51이 됐다. 시민 여론과 달리 의원들 사이에선 반대표가 늘어났다.

 

'웰다잉', 사람답게 죽는다는 것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논쟁을 불러왔지만, 흔히 ‘자발적 안락사’(VE)라 불리는 것과 ‘조력자살’(PAS)이라 불리는 것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자발적 안락사의 경우 뉴질랜드처럼 단서를 붙여 벨기에,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캐나다에서 허용하고 있다. 자발적 안락사는 의료진이 약물 투입 등으로 환자의 사망을 돕는 적극적 안락사와, 급식·약물 투입을 중단하거나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해 인위적 생명연장을 그만두는 소극적 안락사가 있다. 한국에서는 2017년부터 연명의료 의향서를 희망자들이 미리 작성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연명의료 중단’(VRFF)으로 일종의 소극적 안락사 개념이다.

 

손 잡고 생을 마감한 부부

 

조력자살은 의료진이 약물 등을 처방하되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가리킨다.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들에선 조력자살도 합법이다. 스위스의 경우 안락사는 금지하지만 조력자살은 허용한다. 미국과 호주의 일부 주들도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