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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고등법원 “합법 시위에 복면금지법 적용은 위헌”

딸기21 2019. 11. 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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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홍콩 이공대에 경찰이 진입해 시위대를 연행하고 있다.  홍콩 AFP연합뉴스

 

홍콩 법원이 시위대의 거센 반발을 샀던 ‘복면금지법’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렸다.

 

홍콩 고등법원은 18일 복면금지법이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현지언론들이 보도했다.

 

홍콩 행정당국은 지난달 5일부터 시위대가 마스크를 쓸 수 없도록 한 복면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그동안 시위대는 경찰의 검거에 맞서 신분을 숨기기 위해 마스크나 가면 등을 착용해왔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폭력이 고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이 법을 도입했고, 복면금지법을 어긴 시위자는 최고 1년의 징역형이나 2만5000홍콩달러(약 370만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이 367명에 이른다.

 

하지만 복면금지법은 더 큰 반발을 불렀고, 시위대는 법에 저항해 ‘가이포크스’ 가면 등 다양한 방식의 복면을 쓰고 시위를 계속해왔다. 야당 의원 25명은 복면금지법이 시행되자마자 법원에 ‘기본법에 위반된다’는 소송을 냈다. 이와 별도로 학생 지도자들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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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이 테러를 우려해 시위대의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두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이 나라들은 시민들의 대리인(의원)들을 민주선거로 뽑기 때문에 입법 과정의 민주성이 보장돼 있지만 홍콩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991년 제정된 홍콩자유법에 ‘기본권은 국가(홍콩)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공 비상사태 때에만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는 점을 들어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또 입법권이 없는 행정당국이 법을 제정한 것은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고등법원은 시민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복면금지법이 기본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함으로써 시위대의 편을 들어줬다. 법원은 합법적인 집회와 행진에서조차 복면을 금지한 조문과, 경찰이 시민에게 복면을 벗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부분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불법 집회’에 복면금지법을 적용하는 것은 인정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지난 5일 홍콩이공대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시위를 하고 있다.  홍콩 AFP연합뉴스

 

그동안 캐리 람 장관과 행정당국은 긴급정황규제조례(긴급법)를 들며 복면금지법 등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조치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고등법원 판결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캐리 람 장관이 긴급법을 근거로 야간 통행금지나 인터넷 차단 같은 강경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으나, 고등법원 판결에 따라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긴급법은 1922년 영국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졌다. 1967년 영국 통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할 때에도 이 법이 동원됐다. 마지막으로 긴급법이 발동된 것은 1973년 ‘오일쇼크’ 때 일광절약시간제(서머타임)을 도입하면서였다. 긴급법이 발동되면 행정장관은 체포와 구금, 추방, 압수수색, 재산 몰수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거리 교통통제는 물론이고 검열과 출판·통신금지를 시행할 수도 있다. 비판론자들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식민통치의 유산인 긴급법을 동원하는 것이 홍콩에 매우 위험한 선례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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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금지법뿐 아니라 긴급법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행정당국의 수반(행정장관)이 “공공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어떤 조치든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입법기관을 거치지 않은 채 과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홍콩자유법의 정신에 위반된다고 야당과 시민운동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판결에서 고등법원은 “긴급법은 행정수반이 공공안전에 위해가 되는 상황에서 법례를 제정하게 돼있는데 이는 기본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지만, 긴급상황 하에서 긴급법례를 제정하는 것이 합헌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홍콩 경찰, 이공대 진입 무더기 체포…부상자 속출

 

홍콩 경찰은 18일 새벽에 시위대를 무더기 체포했고 이 과정에서 40명 넘는 이들이 다쳤다. 중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에서 시위대가 체포해 이공대에 모이면서 이 학교는 시위대의 보루처럼 돼 있었고, 경찰의 최루탄과 물대포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강경파로 알려진 크리스 탕 차기 경찰청장이 현장에서 직접 진압을 지도했다. 중국 공안 당국은 홍콩과 인접한 광저우(廣州)에서 1000여명이 참여한 대규모 테러 진압훈련을 실시하며 시위대를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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