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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세계]웰다잉, '사람답게' 죽는다는 것

딸기21 2016. 1. 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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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동남부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살고 있던 주부 테리 샤이보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식이조절 장애에 이르게 됐다. 1990년 샤이보는 집 안에서 쓰러졌고,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병원은 샤이보에게 ‘지속적인 식물인간 상태(PVS)’라는 진단을 내렸다. 3년 뒤 남편 마이클은 아내가 누워있는 호스피스 시설에 인공 생명유지 장치를 떼어달라고 요청했다가, 시설 측의 설득을 받아들여 마음을 바꿨다. 하지만 1998년 플로리다주 순회법원에 보조장치 제거명령 청구소송을 내, 결국 허가를 받아냈다.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과 그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등 공화당 ‘생명론자’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선 ‘샤이보 논쟁’의 시작이었다.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서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죽음으로 이끄는 것을 안락사라 부른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약제를 투입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유지에 필요한 영양공급이나 약물 치료를 중단하는 것을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존엄사’는 최선의 치료를 했음에도 환자를 살려낼 수 없는 것이 확실할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질병에 따라 자연스레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샤이보의 경우 두 케이스의 경계선에 놓여있었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샤이보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뇌사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연명치료가 ‘의학적으로 완전히 무의미한’ 것인지 아닌지, 다시 말해 회복될 가능성이 전무한 것인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지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www.stlukes-hospice.co.uk


샤이보의 부모인 쉰들러 부부는 사위가 다른 여성과 재혼하기 위해 샤이보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법원 판결에 거세게 반발했다. 쉰들러 부부는 2001년부터 연방대법원에 딸의 영양공급 튜브를 다시 연결하도록 명령해달라며 여섯 차례나 청원을 했다. 이들의 호소가 세상에 알려지자 부시 대통령과 연방의회는 ‘샤이보법’이라 불리는 특별 법안을 통과시켜가면서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나섰다.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샤이보를 살리기 위한 한시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배우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시 ‘인간답게’ 살아갈 가능성이 희박한 샤이보가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해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는 쪽과,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의 치료를 중단해 사망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쪽이 맞붙었다. 시민단체들이 양 진영에서 여론전에 가세했다. 급기야 바티칸까지 ‘생명 대 죽음’의 논쟁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샤이보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모든 시도는 연방대법원의 거부로 좌절됐다. 15년 동안 호스피스 시설에서 영양공급 튜브에 의존해 목숨을 이어오던 샤이보는 2005년 3월 31일 결국 숨을 거뒀다. 법원 판결에 따라 튜브가 제거된 지 13일 만이었다.

 

BBC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열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등을 이끌었던 유명 지휘자 에드워드 다운스(85)와 발레리나·TV프로듀서 출신인 아내 존(73)은 스위스의 한 클리닉에서 2009년 7월 10일 동반 자살했다. 부부는 조력자살 전문 의료회사 ‘디그니타스 그룹’이 운영하는 취리히의 클리닉에 나란히 누워, 딸과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물을 투여 받아 생을 마감했다. 자녀들은 “54년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셨던 두 분은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으셨고, 침대 너머로 손을 붙잡고 함께 생을 마쳤다”며 부모의 뜻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에드워드는 1991년 엘리자베스2세 여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은 지휘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청각이 손상되고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됐다. 그래서 아내의 도움에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해왔다. 그런데 아내가 간암·췌장암 말기여서 몇 주 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에드워드는 노화해 신체 기능이 줄었을 뿐 아내와 같은 불치병 환자는 아니었지만, 아내와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뜨기를 원했다. 에드워드의 매니저였던 조너선 그로브는 “나도 두 사람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정말 용감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듬해 3월에는 영국의 유명 코미디언 존 히클턴도 지병에 시달리다가 디그니타스에서 죽음을 선택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뉴스에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낄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어가고 있다. 한국인의 2013년 평균기대수명은 여성 84.6세, 남성 78세다. 1990년 여성 76세, 남성 68세보다 각각 9년과 10년이 늘어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예상할 수 없다지만 아마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특별한 질병이 없다면 80대 혹은 90대까지 살 확률이 높다.


지금 언급한 두 가지 사건, 샤이보 생명연장 논란과 다운스 부부의 동반 자살은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과연 있을까

 

직업 전선에서 물러난 이후 혹은 자식들을 다 키워 분가시키고 난 뒤의 노년의 삶을 예전에는 ‘여생’이라 해서 ‘살고 나은 인생’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넘기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그러니 ‘늙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못잖게 중요한 것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다시 말하면 ‘어떻게 덜 아프고 덜 괴롭게, 가족에게 폐를 덜 끼치며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에드워드와 존 부부의 선택이 영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손잡고 생을 마감한 부부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했지만 죽음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 아직 없기 때문에 잘라 말하기 힘든 면이 많다.


의료진으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목숨을 끊는 이른바 ‘조력 자살(Assisted suicide)’은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시키는 존엄사나 극심한 고통을 받는 환자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와 큰 틀에서는 같지만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돕는다는 것은 간접적인 의미의 살인일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안락사(euthanasia) 즉 생명연장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의 역사는 오래됐다. 영어의 안락사라는 말은 그리스 단어 ‘eu(좋은)’와 ‘thanatos(죽음)’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좋은 죽음’을 뜻한다. 그리스 철학에서 갈라져 나온 로마 시대의 스토아 학파는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이유가 없을 때 자살을 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은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는 경우 삶을 스스로 끝내는 것을 받아들였다. 적에게 잡혔을 때 불명예를 당하지 않으려고, 혹은 공개처형 대신에 주어진 일종의 명예로운 선택권으로서 자살을 택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허용됐다. 자살이라는 단어보다 어쩐지 더 품격 높은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자결’이라는 단어도 그런 문화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자살이 금기시된 것은 기독교가 힘을 얻으면서다.


그럼에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근대 이후 다시 되살아났다. 네덜란드의 안락사 전문가 피터 아드미랄(Pieter Admiral) 박사에 따르면 1742년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자살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유럽과 미국에는 100년 전부터 안락사에 관련된 책들이 출간됐다. 1935년 영국에 세계 최초로 자발적안락사협회가 설립됐다. 3년 뒤 미국에서도 안락사협회가 출범했다.


그런데 곧이어 안락사라는 개념을 끔찍한 범죄로 연결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에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의사는 환자가 말기 진활을 앓고 있다면 그들이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러나 ‘좋은 죽음’은 곧 변질됐다. ‘가치 없는 생명’을 말살한다는 개념과 뒤섞여버린 것이다. 나치 의사들은 장애가 있는 이들, 노인들, 영구적으로 노동할 수 없게 된 사람들, 그리고 ‘열등한 인종’을 ‘사회 위생’ 차원에서 제거하는 데에 동원됐다. 이는 물론 안락사나 조력 자살이 아닌 명백한 살인이었다. 그러니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논하면서 나치의 예를 드는 것은 적절치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국가 혹은 사회적 권력과 ‘비자발적 죽음’의 문제를 완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가족이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살기 위해 다른 가족구성원의 안락사를 원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더 살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것을 진정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혹여, 보건예산을 잡아먹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정부가 정책을 정하거나 혹은 간호하는 사람의 이해관계에 맞춰 안락사의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하나? 점점 더 나이 들고 아픈 사람들이 늘어가는 시대에,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남용’을 막을 장치는 무엇일까

 

조력 자살을 원하는 이들을 ‘돕는’ 사람은 의료진일 때가 많다.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약품을 처방·공급해주는 이들이 주로 의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력 자살은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하는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이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2006년 개정된 국제의료윤리법은 ‘환자에 대한 의사의 의무’ 조항에서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존중할 의무가 있음을 늘 새겨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력 자살을 바라보는 이들은 죽음을 선택하는 이들의 결정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의료 윤리 차원에서 접근한다.


의료와 관계가 있는 국제법이나 의료관련 규약에는 명시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돕는 행위를 금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안락사나 존엄사, 조력 자살을 금지·규제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조금이나마 폭넓게 인정하는 쪽은 유럽이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에서는 안락사가 합법화돼 있다. 의료진이 환자의 생명연장을 중단시키는 안락사가 아니라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종 조치’를 취하는 조력 자살을 합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 스위스 정도다. 미국 오리건, 몬태나, 워싱턴, 버몬트 주는 불치병 환자들이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 의사가 자살용 약물을 처방할 수 있게 해준다.


안락사나 조력 자살을 허용할 수 있는 ‘선’과 관련해, 1981년 로테르담 법원이 제시한 ‘임종을 돕는 것이 범죄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환자의 자발적인 결정이여야 한다는 것, 여러 가능성을 분명하고 올바르게 이해한 환자가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 지속적으로 죽음을 바랄 경우에 한정된다는 것,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의사와 반드시 의논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죽음도 ‘삶의 질’의 한 표현이다

 

죽음의 여러 형태를 둘러싼 논란의 근본에 있는 것은 ‘삶의 질’이다. 삶의 질을 둘러싼, 우리 몸을 둘러싼 사고방식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달라져왔다. 이를 테면 유전자 연구가 발전하면서 몇몇 유전질환에 대해서는 환자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어떤 것을 질병으로 볼 것인지, 어떤 것을 생물학적인 운명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계속 달라지고 있다. 성적 정체성처럼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들조차 이제는 선택 가능한 것으로 상황이 됐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만성 질환이 증가하면서, 몸을 돌보고 노화에 맞서고 건강을 지키는 것 못잖게 ‘죽음의 경계선’도 유동적으로 돼버렸다. 과학기술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법이 달라지면 사회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게 된다. 존엄사나 조력 자살을 둘러싼 논란은 그런 변화의 첨예한 전선에 있는 주제들이다.


조력 자살의 대명사처럼 돼버린 디그니타스라는 기구는 1998년 스위스 변호사 루드비히 미넬리가 만들었다. ‘기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존엄성 있는 죽음을 돕는 기구’라 불리는 쪽을 선호한다. 스위스 법은 누군가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살을 돕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한다. 즉 ‘돈벌이’를 위해 누군가의 자살을 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디그니타스 측은 조력 자살을 위한 방법과 절차 등의 도움을 줄 뿐, 이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지 않으며 자신들은 이해관계가 없이 철저하게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의사와 법률가의 상담, 개개인의 환경과 의학적 상태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거쳐 죽음을 결정하게 되며, 실상 디그니타스에 찾아오는 이들의 대다수는 컨설팅을 받을 뿐 조력 자살을 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10년까지 디그니타스의 도움을 받아 자살한 사람은 1000명이 넘는다. 그런데 그 중 21%는 불치병을 앓거나 시한부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었으며, ‘삶의 황량함’을 떠나 존엄성 있게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디그니타스를 세운 미넬리는 ‘애틀랜틱’ 인터뷰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고통이 적고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의 죽음을 맞는 것이 “인간의 마지막 권리”라고 주장했다.


디그니타스는 이익을 취하는 기업이 아니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이 곳에서 고통 없는 죽음을 맞는 데에는 1만 스위스프랑(약 1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스위스행 자살 여행’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아무리 ‘존엄’한 이유를 붙인들, 결국은 죽음을 부추기는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스런 삶을 사는 대신 죽음을 택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죽음을 예고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미국 여성 브리트니 메이나드(29)는 2014년 11월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존엄사를 지지하는 단체인 ‘연민과 선택’(Compassion & Choices)은 페이스북을 통해 메이나드의 죽음을 알렸다. 메이나드는 결혼한 지 1년 된 신부였는데 악성 뇌종양 말기로 진단을 받았다.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이 선고됐다. 그는 고통스럽게 한 순간이라도 삶을 연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가족들과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싶다면서, 결혼 뒤 처음 맞는 남편의 생일 이틀 뒤를 ‘예정일’로 삼았다.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메이나드는 집도 오리건 주로 옮겼다. 오리건 주는 1994년 ‘존엄사법’(Dead with Dignity Act)을 제정해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조력 자살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메이나드는 죽음의 결심을 비디오에 담아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다. 수많은 이들이 그의 결정을 지지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메이나드는 존엄사를 옹호하는 진영의 상징처럼 부각됐다. 하지만 죽음을 세상에 ‘예고’하고 결행하는 것이 결국 자살을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기억하기와 떠나보내기

 

세상을 떠나는 방법뿐만 아니라 ‘떠나보내는 방법’도 고민거리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보내주는 것이 그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길일까? 혹은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세상을 뜬 사람은 자신이 영구히 기억되길 바랄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잊히길 바랄까?


미국 시카고에 있는 라이프젬(LifeGem)이라는 회사는 세상을 떠난 이의 주검을 보석으로 바꿔주는 회사다. 사람의 몸은 유기물이며, 탄소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2001년 설립된 라이프젬은 주검을 태우고 남은 재료의 성분을 변화시켜 보석으로 만들어준다. 당초 일리노이 주의 작은 도시 엘크 그로브에서 시작된 이 회사는 시카고로 본사를 옮기고 영국에 지사를 낼 정도로 커졌다. 죽은 이의 ‘성분’을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으로 만들어 곁에 두고 간직한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보내야 할 사람을 보내지 않고 결정화시켜 영구히 함께 한다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죽은 이의 몸을 물질화시킨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보내야 할 사람을 보내지 않고 곁에 둔다는 것이 정신적 통과의례를 거부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고대인들이 주검을 영구보존하기 위해 만들었던 ‘미라’의 화학적 변용 같기도 하다.


죽은 이의 몸에 대한 고민만이 아니다. 사이버 세상이 제2의 사회처럼 생활 속에 스며들면서, 사이버 상에서의 죽음도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1990년대 인터넷 사용이 늘면서 고인을 애도하고 기념하기 위한 ‘온라인 메모리얼’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명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들에게 신문 기사나 생전의 사진 등을 모아 보여주는 웹페이지 같은 단순한 형태로 시작했으나 요즘엔 온라인 추모사이트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서비스들도 등장했다.


떠난 사람의 온라인 프라이버시는 새로운 논란거리다. 온라인에서 과거의 말과 글이 영구적으로 떠도는 것을 막기 위한 ‘잊힐 권리’ 논쟁이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다. 2014년 5월 프랑스 파리 법원은 ‘잊힐 권리’를 인정, 개인의 요구에 따라 구글이 특정 자료를 삭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에서도 잊힐 권리를 주장하며 온라인 자료 삭제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됐다. 죽은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수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소셜미디어에 가입해 있다. 세상을 뜬 사람이 죽기 전 ‘어떤 사이트의 계정은 지워주고 어떤 소셜미디어에서는 계속 나를 기억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겨놓지 않은 바에야, 이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구글이 운영하는 지메일(Gmail)과 마이크로소프트 핫메일(Hotmail)은 요건이 충족될 경우 즉 입증된 유족 등이 요구할 경우 계정을 삭제해준다. 반면 야후(Yahoo!) 메일은 사자(死者)의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에 두는 입장이었다. 야후는 유족이든 지인이든, 죽은 이의 계정에 들어가 고인의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는 내용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권리가 있는 게 아니며(No Right of Survivorship)’, 죽은 이의 프라이버시를 남에게 ‘넘겨줄 수는 없기(Non-Transferability)’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5년 미 미시건 주 오클랜드 카운티 법원은 존 엘스워스라는 청년의 아버지가 아들이 숨진 뒤 이메일들을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고, 야후는 엘스워스의 이메일 계정을 내줘야 했다.


페이스북에서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죽은 이의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이슈로 불거졌다. 페이스북은 고인을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돕기 위해 죽은 이의 프로필을 ‘메모리얼’로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되면 사망자의 계정이 더 이상 ‘친구 추천’ 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으며, 계정 설정 변경도 없어진다. 하지만 기존의 친구들은 언제라도 그의 프로필을 보고 글을 올릴 수 있다. 이렇게 메모리얼로 등록하려면 사망자의 부음이 실린 기사나 사망확인서 등을 가족 혹은 지인이 페이스북 측에 제출해야 한다. ‘마이스페이스’ 같은 미국 소셜미디어도 이와 비슷한 사망자 메모리얼 정책을 갖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사망자의 가족이 일정한 양식의 증빙서류를 보내면 사망자의 계정이나 트윗 내용이 더 이상 게시되지 않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면서 죽음을 둘러싸고 고민해야 할 것들의 종류와 내용도 변화를 겪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고, 삶과 죽음을 둘러싼 논란도 더욱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꿰뚫는 한 가지 주제는 분명하다. 죽음 역시 삶의 질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하며,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향해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