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 바둑기계 '알파고'와 대전을 한다. 가리 카스파로프가 컴퓨터와 체스를 둘 때만 해도, 아시아 언론들은 "체스는 몰라도 바둑은 기계가 둘 수 없다"고들 했다. 그러면서 체스와 바둑의 '수준'이 다르다며 난 데 없이 아시아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그 근시안적인 문화우월주의는 이제 완전히 무색해졌다.
중요한 것은 체스냐 바둑이냐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기계에게 따라잡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개인적으로 이분을 느무 좋아함...
2014년 10월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는 독일 자동차회사 아우디가 베를린 서쪽 오셔슬레벤에서 새로 개발한 자동차의 주행 실험을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실험이 눈길을 끈 것은, RS7이라 이름 붙여진 이 새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달리는 ‘무인 차량’이었기 때문이다.
이 자동차는 시속 305킬로미터의 속도로 운전자 없이 달리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운전하는 차와의 경주에서도 코너 주행 등에서 훨씬 나은 실력을 선보였다. 사람이 판단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가장 정확하게 회전을 하는’ 코스를 찾아냈던 것이다. 아우디 기술자 페터 베르크밀러는 이 자동차가 “트랙의 왼쪽, 오른쪽 경계를 인식하고 가장 좋은 라인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아우디 측은 이 무인차에 ‘바비(Bobby)’라는 애칭을 붙였다. 그들에게 이 차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닌 ‘사람 같은 존재’였다. 아우디 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스스로 운전하는 차’들을 앞 다퉈 개발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해 독일의 일반 도로에서 시험 운행한 S클라스 세단은 100km 무사고 주행에 성공했다. 미국 보스턴의 컨설팅회사 럭스리서치는 “2030년까지는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 시장이 87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저항세력의 지대공미사일과 수류탄 공격을 피하기 위해 프레데터와 섀도, 레이븐 등 무인항공기(UAV)들을 투입했다. 그러나 무인기, 속칭 ‘드론(drone)’은 이제 더 이상 전쟁터에만 나타나는 첨단 기계가 아니다. 지난해 6월 도미노피자 영국 본사는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손님에게 드론으로 피자 2판을 배달했다. 에어로사이트라는 회사가 제작한 드론을 이용한 ‘시범 배달’에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이 무인기에는 ‘도미콥터(DomiCopter)’라는 이름이 붙었다. 리모콘을 조작해 움직일 수 있는 무인 로봇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곳, 위험한 곳에 들여보내는 원격 조종 로봇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원자로 내부를 들여다보는 작업에 로봇이 투입됐다. 카메라를 달아 공중에서 촬영하는 ‘헬리캠’은 지금도 방송 촬영에 널리 쓰인다.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방송에도 이런 장비가 쓰였다.
사람은 ‘일’을 한다. 노동은 사람이라는 존재와 뗄 수 없다.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노동은 몸을 사용하고 움직이며 인식을 만들어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과 노동 사이에 ‘기계’가 깊숙이 끼어들고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인공두뇌의 탄생은 SF 소설이나 영화의 흔한 레퍼토리다. 하지만 이미 기계는 인간과 공생하고 있으며 노동의 영역에서 상당 부분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BMW 공장. 사진 WIKIPEDIA
문제는 어떤 부분까지 대체할 것인가, 그리고 노동의 많은 부분을 기계가 하게 됐을 때 인간의 삶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앞으로 10년 후, 대략 2025년 무렵의 세계가 어떻게 변화해 있을지를 상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우리의 일과 일자리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은 기계와 노동의 관계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집 한 채를 프린터로 뽑아내는 시대가 온다면
이미 20세기에 기계화가 많이 이뤄지면서 육체노동은 어느 정도 기계에게 넘어갔다.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자동화’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그런데 이제 사람 대 기계의 2라운드가 본격 시작되고 있다. 20세기를 휩쓴 자동화 흐름이 ‘블루컬러’라 불리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일을 대체했다면, 지금은 서비스업과 사무직 노동자들이 기계와의 경쟁에 직면해 있다. 이전에는 주로 대량생산 공장에서 사람들이 기계에 일감을 내줬으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계와의 경쟁에서는 특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들조차 위기에 몰릴 수 있다.
기술 전문가들이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으킬 주역’으로 꼽고 있는 3D 프린팅에 대해 들여다보자.
“갓 구운 통밀 블루베리 머핀 냄새가 부엌의 푸드 프린터에서 조금씩 나기 시작한다. 달지 않은 유기농 머핀을 만들기 위해 당신이 사용하는 카트리지는 최고급품이다. 머핀의 레시피는 여러 유명 레스토랑이나 리조트의 수제 빵집들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당신은 크레인이 신축 주택 맨 밑에 있는 토대 위쪽에 큰 노즐을 설치하는 것을 지켜본다. 노즐은 전체적인 지형을 스캔하면서 설계도를 적절하게 변경하는 동시에 시멘트와 합성 건축자재를 짜내는 작업을 한다.”
미국 코넬대 공대 교수인 호드 립슨과 기술 전문가 멜바 컬만은 지난해 공동 출간한 <3D프린팅의 신세계>에서 3D 프린팅이 일상에 깊숙이 끼어들어 ‘모든 것이 공상과학 영화가 되는’ 미래의 모습을 이렇게 상상했다. 요리사가 공들여 다듬은 레시피로 정성껏 만든 요리가 세상에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푸드 프린터’에 음식재료를 집어넣고 다운로드받은 요리법을 입력해 쿠키와 빵을 만들어 먹고, 설계도를 입력한 뒤 거대한 노즐로 집 한 채를 ‘출력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에 아파트가 아닌 작은 단독주택이라도 한 채 짓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벽체를 집터에 앉히는 모습을 상상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www.unixmen.com
통칭 3D 프린팅이라고 불리는 이 제조기술은 마치 정보를 입력해 A4 용지에 인쇄를 하듯, 재료와 디자인을 입력해 제품을 출력하는 기계장비와 이를 이용한 제품 생산을 가리킨다. 3D 프린터는 컴퓨터에서 전달되는 정보에 따라 재료를 한 층, 한 층 쌓아가는 방식으로 물건을 찍어낸다. 분말 형태의 플라스틱을 넣고 열을 가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들이 주를 이루지만, 금속 가루를 레이저로 녹여 물건을 생산하는 단계로도 이미 발전하고 있다.
이런 프린터는 언제, 어느 정도나 일반화될까. 3D 프린터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1980년대였는데 30여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상용화되는 단계에 들어섰으니 섣불리 미래를 예단하긴 힘들다. 하지만 군사용으로 시작된 거대한 컴퓨터가 대중화의 흐름을 타고 개인용 컴퓨터(PC)라는 형태로 집집마다 들어가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3D 프린터가 일반 기업이나 가정에까지 확산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파리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1986년 만든 영화 <더 플라이(The Fly)>에는 물체를 전송하는 기계가 나온다. 기계의 한 쪽 장치(입력 장치)에 사람이 들어가면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분자구조를 기계가 읽고 ‘분해’해서 다른 쪽 장치(출력 장치)를 통해 재조립해 내보낸다. 사람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전송’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공상과학영화에나 어울리는 상상력일 뿐이며, 인체와 같은 복잡한 구조물이 이런 방식으로 출력될 수 있다고 예측하긴 힘들다. 하지만 인체보다 훨씬 덜 복잡한 물체들을 ‘디자인 설계도’만 입력해 뽑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사실상의 물체 전송기를 갖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작품'. www.businessinsider.com
이것이 가지는 함의는 엄청나다. 멀리 있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공장에서 부품을 생산할 필요 없이 내 사무실에서 3D 프린터로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더군다나 이 요물 같은 기계장치는, 부품을 따로 따로 조립할 필요도 없이, 여러 부품들이 결합된 완성된 형태의 제품을 출력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조립라인’도 사라지게 된다. 물론 대량생산용 제품들을 이 프린터로 굳이 하나하나 시간 들여 찍어내는 것은 아웃소싱된 사업장에서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 생산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3D 프린팅이 경쟁력을 갖는 부문은 다품종 소량으로 생산되는 제품들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특화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나만의 사출성형기가 생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조만간 3D 프린팅 기술이 환자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신체 조직’을 찍어내는 바이오프린팅(bioprinting) 단계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단계에 이르기 전에 이미 이 기술이 직업과 일자리에 큰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2014년 10월 부산에서 개최된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회의의 연계 행사로 ‘월드 IT쇼’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한국 3D 프린터 제조회사인 코봇은 국내 최대 크기인 AL1040 3D 프린터를 선보였다. 가로 1.5미터, 세로 1.5미터의 이 프린터 옆에는 조각품처럼 보이는 여성 상반신 모형이 함께 놓여 있었다. 행사장을 찾은 이들은 3D 프린터로 뽑아낸 이 모형에 큰 관심을 보였다. 회사 측은 앞으로 실물 크기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자식 대신 부모님을 돌봐 드리는 로봇
심지어 ‘예술’조차도 기계와의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나뭇가지가 반복되면서 점점 커져나가는 형상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입체 구조물의 디자인 파일을 3D 프린터에 입력해 작품을 만든다면 이 작품이 온전히 고안자만의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컨셉트’를 제시한 것은 분명 사람이지만, 그것을 형상화한 것은 컴퓨터이고, 직접 만들어낸 것은 조각가의 손이 아닌 프린터일 테니 말이다.
일본 리켄(이화학연구소)이 만든 돌봄로봇 '로베어(ROBEAR)'. 사진 리켄(www.riken.jp)
무엇보다 역설적인 것은, 노동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될 법한 간병 같은 돌봄노동에 기계들이 투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고령화 때문에 노인들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처지인 일본에서는 돌봄노동을 대신해줄 로봇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개호(介護·간병)로봇’이라 불리는 이 로봇들은 인체를 본뜬 형태에서부터 침대형, 신체 부착형 등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는 2013년 24억 엔의 예산을 돌봄로봇 개발 분야에 책정했다. 일본은 현재 인구의 25% 정도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고령층 비율은 2025년에는 3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필요한 인력만 244만 명에 이를 것으로 일본 정부는 내다보고 있다.
사회 전체가 돌봄노동을 책임지고, 적절한 보수를 받는 돌봄노동 일자리가 생겨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소모가 많은 돌봄노동은 보수가 낮은 데다 종사자들의 이직률이 매우 높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돌봄노동을 대신할 로봇 개발에 여러 기업들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들이 속속 탄생하면서 돌봄노동을 대신할 로봇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당장 2015년부터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말할 수 있는 로봇 ‘페퍼(Pepper)’를 시중에 판매할 계획이다. 2014년 6월 이 회사가 공개한 이 로봇은 인체의 모양을 본뜬 형태에 키는 1.2미터, 무게는 28킬로그램 정도다. 로봇의 하체는 두 다리 대신 한 덩어리로 돼 있고, 밑바닥에 바퀴를 달아 움직여 다닐 수 있게 했다. ‘손가락’을 구부리고 펴거나 머리, 어깨, 팔과 손 등을 움직일 수 있다. 소프트뱅크의 설명에 따르면 페퍼는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를 통해 감정 상태를 추정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주변 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는 알고리즘도 탑재돼 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인간과 ‘소통’하는 로봇인 것이다.
A future with a caring robot? Really, it’s armless- The Times.
스웨덴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50%의 전문가들이 “2050년까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2075년까지로 시한을 늘리면, 90%의 전문가가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즉 대부분의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 안에는 인간 수준의 두뇌를 가진 컴퓨터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C-패스(C-Path)라는 시스템은 여성의 유방 조직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본 뒤 유방암에 걸렸는지를 자동으로 진단하고 생존율을 예측한다고 한다.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가 병리학자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했던 일 중의 어떤 부분은 기계가 대신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맞춰 사람이 해야 할 일의 범주가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인공지능을 갖고 사람들의 서비스를 대신할 로봇들이 등장하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그 중간 단계에서부터 이미 인간의 노동과 일자리의 구조에는 변화가 올 것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이든, 여러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해주는 ‘동시통역 기계’이든, 무인 배달기계나 3D 프린터가 됐든, 모두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런 것들이 쓸모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기는 힘들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디지털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장치들의 발전에는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었다.
인공지능과 인간-기계의 융합을 예견한 책인 <특이점이 온다>에서 레이 커즈와일은 어느 순간 기술발전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기계와 인간의 차이가 사라지고 통합되는 시점에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2040년 중반이 되면 비(非)생물학적 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도 여전히 (그 문명은) 인류 문명일 것이며 인간성을 초월하는 게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말이다.
SF 같은 상상력이 가져올 미래는 과연 장밋빛일까
우리 앞에 놓인 미래가 환상적이고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 사이를 기계가 더 많이 벌려놓을 수도 있다. 사실 가난한 이들과 ‘수퍼 리치(super rich)’ 사이의 갭이 미국 실리콘밸리만큼 큰 곳도 많지 않다. 실리콘밸리의 팔로알토에서는 아침이면 벤치를 점거하다시피 한 노숙자들을 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최대 도시인 새너제이에서 20분 거리에 ‘정글’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큰 ‘노숙자 공동체’를 부르는 말이다.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산업 종사자들의 중간소득은 2013년 현재 연간 9만4000달러였다. 이는 미국 전체 중간소득 5만3000달러를 훨씬 웃돈다. 그런데 정작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역 중 하나인 샌타클라라 카운티 주민의 19%는 빈민이다.
여기는 '정글'. 아마존이나 아시아 어느 곳의 빈민촌이 아니다. 실리콘 밸리 바로 옆에 있는 슬럼이다. 사진 AFP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게 될수록, 기계와 비슷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은 아무래도 낮아질 것이다. 더군다나 ‘새로운 기계 시대의 도래’는 ‘세계화’와 함께 사람들에게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의 주요 산업들은 공장을 값싼 나라들로 옮기는 ‘아웃소싱’이라는 큰 변화를 겪었다. 단순 반복 노동으로 이뤄진 산업들은 아시아 등지의 저임금 국가들로 옮겨갔다. 이런 일들은 장차 기계의 노동으로 대체하기가 가장 쉬운 것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동화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현재 ‘낮은 임금’을 무기로 일하고 있는 저개발국의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 세계적으로 빈익빈 부익부가 악화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개발된 나라들 안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많이 배우고, 새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성공할 가능성도 높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수입이 줄어들거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기계들에 적응해서 빈틈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이런 재교육 과정을 국가와 사회가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뒤처지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종류의 일자리가 없어질 때, 그 일에 종사했던 이들이 다른 기술을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아주 짧다면 ‘일시적인 실업’에 그치겠지만, 안타깝게도 세계의 기술발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밝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기계시대에 사람들이 적응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새 일감을 찾는다 해도, 새 일로 벌어들이는 돈은 예전에 벌던 것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사라진 기업 혹은 직군에 비해 새로 생겨난 일자리의 수가 터무니없이 적을 수도 있다. 일례로 사진 공유 앱을 만든 인스타그램은 10억 달러 넘는 가격에 페이스북에 팔렸는데, 이 회사의 직원은 겨우 10여명이었다. 웹 시대에 밀려 파산하고 만 코닥은 직원 수가 최대 14만5300명에 이르렀다. 이 일자리 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가 지구촌 모두에게 던져진 숙제일 것이다.
이미지 www.humanmachineinteraction.org
변화는 결국 ‘사회적’이다. 산업혁명으로 지구의 환경이 버려졌다면, 기계와 경쟁하고 공존하는 시대에는 ‘인간의 노동력’이 버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기계의 고용주가 될지,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빼앗기는 생산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단순하게 두 갈래로 나눠지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렇듯 우리의 노동을 대신하는 기계들을 쓰는 사람이면서, 기계에 밀려 어떤 부분에서는 예전의 노동이 아닌 새로운 노동을 개발해야 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기계가 사람 대신 생산해준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비자일 것이다.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들은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고, 기계들의 네트워크는 결국 사람들의 두뇌에서 나오는 정보를 통해 발전할 것이다.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기계와의 경쟁>, <제2의 기계 시대-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시작된다>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 기술발전이 인간의 노동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봤다. 책 제목에서 알 보이듯 두 사람은 ‘기계와의 경쟁’과 ‘기계와의 공생’이라는 두 측면에 주목한다. 3D 프린팅이 됐든 드론이 됐든 돌봄로봇이 됐든, 이런 기술들이 늘면 어떤 일자리는 줄어드는 대신에 어떤 직업은 새로 생겨날 것이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직종·계층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해내는 비즈니스맨들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면서 또한 사회 제도와 법규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내다보기는 힘들지만 다차원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흐름에서 소외되는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지식이라는 자산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접근할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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