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76

[기협 칼럼] 기자의 윤리, 기자의 범죄

기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윤리의식 혹은 도덕성이 필요할까. 윤리의식의 절대적인 양을 측정할 수는 없으니 질문을 좀 다듬어보자. 기자에게는 ‘보통 사람들’ ‘독자들’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이나 도덕성이 필요할까. 기자의 윤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있는가 하면, 취재와 보도를 하면서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가 있다. 둘은 분리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하나일 수도 있다. 기자들이 취재나 보도를 하면서 금품을 받아선 안 되고, ‘취재 편의’라는 명목으로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받아서도 안 된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보도를 해서도 안 된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해서도 안 되고, 특정 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해서도 안 된다. 이론적으로 기자들이라면 이쯤은 안..

[기협 칼럼] 불편해져라 민감해져라

‘미투’가 뜨거운 이슈였던 지난해, 기획시리즈의 하나로 ‘남성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담은 글이었다. 그 뒤 1년, 더 나아진 사회에 대한 희망적인 소식 대신 버닝썬과 연예인들의 불법촬영이 사회를 달군다. 버닝썬 클럽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술집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당한다니. 하지만 이 뉴스의 ‘밸류’를 평가하는 데에서 확실히 여성과 남성의 체감도는 다른 것 같다. 언론은 어떤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매체는 일련의 사건을 놓고 피해자들을 찾아낸다며 2차 가해를 하고, 또 어떤 쪽에서는 성범죄 보도의 원칙을 가다듬는다. 소셜미디어에는 사건의 흐름 못잖게 보도 행태를 주시하는 ..

[기협칼럼] 불과 글, 기자와 글

뉴미디어로 뉴스의 형태가 바뀌면서 신문기자들도 영상을 고민하고,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 20여 년 동안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살았지만 글이 아닌 무언가 다른 형태로 생각을 내놓는 것에 아직 나는 익숙하지 않다. 글이 아닌 무언가를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렇다 해서 딱히 ‘글쓰기’를 놓고 고민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고민’은 대학 시절 일본 적군파 다미야 다카마로가 책에 썼던 것처럼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글쓰기를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고, ‘글쟁이’라든가 ‘글을 쓰는 걸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는 인식도 없다. 신문기자이지 작가나 시인은 아니니까. 그렇게 나는 기자의 글과 시인의 글 사이에 분..

[구정은의 세상]아고라와 유치원···국회의원들을 벌 주려면

다음이 아고라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한다. 다음 뉴스는 사이트에 “그동안 ‘대한민국 제1의 여론광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습니다. 이제 15년간의 소임을 마치고 물러납니다”라는 안내글을 올렸다. 여론광장의 큰 축이던 게시판들은 ‘게시물 백업’이라는 최후의 서비스와 함께 사라진다. 아고라도,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미네르바’도, 이젠 지나간 이름들로 남게 됐다. 싸이월드나 프리챌처럼 한 시절 사람들을 끌어모으다가 쇠락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적지 않지만 아고라의 소멸은 ‘빛이 바래기 마련인 추억’을 넘어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기자 초년병 때, PC통신이 막 유행하고 있었다. “나우누리 아이디 @koje***는 무엇무엇이라고 지적했다”는 식으로 유저 반응이 기사에 인용되곤..

[기협 칼럼] 취약한 사회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전화가 불통이다. IPTV로 즐겨 보던 중국드라마를 못 보게 된 것 정도는 별일 아니지만, 인터넷만 끊긴 게 아니고 전화가 아예 먹통이 된 건 처음이었다. 우리집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뭔가 사고가 났구나 하면서 동네를 서성이다가 3G 연결망이 이어진 곳을 찾아 뉴스를 확인했다. KT 아현지사에 화재가 났다고 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은 다행이지만, 정보기술(IT) 사회의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족 중 한 명이 어느 통신사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이날 먹통 사태에 대해 대뜸 꺼낸 말은 “KT가 금융사업에 치중하면서 엔지니어들을 많이 잘라냈다”는 것이었다. 일요일, 우리 부서의 이혜인 기자가 취재를 해보니 그동안 KT가 구조조정을 참 많이도 했던 모양이었다. 그 회사만..

[구정은의 세상] 맘들의 분노, 맘들을 향한 분노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아이들에게 써야 할 돈을 멋대로 빼내 물건을 사고, 월급도 수당도 마음대로 정해 보너스를 챙기고 아들딸에게까지 줬단다. 엄마들이 충분히 분노할만한 일이다. 경기 김포에선 아이 엄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는 소문이 돌아 학대교사로 지목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생각 없는 젊은 엄마들, 제 아이만 귀한 줄 알고 헛소문에 휘둘려 ‘신상털기’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에 대한 분노가 쏟아졌다. ‘맘카페’는 온라인 적폐로 지목됐다. 엄마들의 분노, 엄마들을 향한 분노. 비난과 손가락질의 강도를 보면 후자가 훨씬 더 센 것같다. 근래 여론의 바로미터처럼 돼버린 청와대 청원을 보면 사립유치원 비리를 뿌리 뽑고 처벌을 강화하라는 청원에는 8000여명, 아동..

[구정은의 세상] 난민이 싫으면 석유를 끊어라

예멘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 건 2015년 초의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습을 시작한 뒤 인구 2800만명 중 2200만명이 외부 도움에 끼니를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고, 19만명이 나라를 떠나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전까지 예멘은 난민을 내보내는 나라가 아니라 밖에서 온 난민을 끌어안고 사는 나라였다. 소말리아에서 도망쳐 예멘으로 간 사람이 28만명이니, 지금도 예멘에서 나온 난민보다 예멘이 받아들인 난민 숫자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예멘 난민 사태’는 사우디가 일으킨 일이다. 2011년 ‘예멘판 아랍의 봄’으로 장기집권 독재자를 몰아낸 뒤 집권한 압두라부 하디라는 인물이 당초 정치세력들 간 권력을 나눠갖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가 자기 정당에서까지 축출되고 결국 쫓겨날 판이 됐는데, 사우디가 하..

[기협 칼럼]가난은 날씨가 되어 온다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오니 무더위가 그래도 좀 수그러들었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경신하던 8월 초의 그날, 스포츠 중계하듯 기상청의 공식 측정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던 여름. 서울역 근처 쪽방촌을 취재하고 온 기자의 기사엔 찜통 더위 속에 방안에 누워 선풍기 한 대 틀어 놓고 하루를 보내는 어떤 이의 코멘트가 들어 있었다. “그래야 하루가 가니까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잠을 자야만 시간이 가니까 잔다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 더운날 오체투지를 하던 쌍용자동차 사람들, 그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박정희 대통령 말씀’을 외치던 사람들, 이 여름 한국의 풍경이었다. 태풍이 온다고 며칠 전부터 예보가 흘러나오고, 더위를 식혀줄까 가뭄을 해갈해줄까 은..

[구정은의 세상]대통령이 할 일, 민주노총이 할 일  

한낮의 기온은 40도 가까이 치솟고. 남쪽 바다는 아열대로 바뀌어가고. 추위도 더위도 불평등해서, 힘든 사람은 이 폭염을 더 힘들게 견뎌내야 하고. 여전히 거리엔 천막 하나 펼쳐 놓고 농성 중인 사람들이 남아 있고.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이 여름의 풍경들. 그래도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과 KTX 해고 승무원들 문제처럼 오래도록 끌어온 이슈들이 해결되는 걸 보면서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누군가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고,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미완의 승리이자 부족한 타협책일 터다. 그래도 그 고통에 사회가 공감했고, 지난한 세월의 마무리를 짓게 됐다는 건 말 못할 아픔 속에 거둬낸 성과다. 그 힘든 싸움을 해낸, 이겨낸 분들을 ‘피해자’라는 말로 표현하는 건 어쩐지 죄송스럽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쌍..

[기협 칼럼]가짜난민

제주도에 들어온 500여명의 예멘인들을 비난하며 반대 시위를 하고, 이들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청와대 청원을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상상했던 대로인 동시에 상상 이상이다. 이미 난민 유입문제로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던 구미 국가들도 한국의 이런 노골적인 모습에는 좀 놀란 것 같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섬으로 도망쳐온 예멘 난민 500명에 한국인들이 분노했다”고 적었고, 독일 도이체벨레는 “한국인들은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들어오자 저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은 “한국의 반 난민 백래시가 전쟁을 피해 망명지를 찾아온 예멘인들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말 그대로 백래시(Backlash)인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그 역작용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나는 걸 백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