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고령화와 연금 고민은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죠죠. 세계의 언론들, 전문가들은 이 이슈를 어떻게 다른지 들여다봤습니다. 먼저 구글 영문 뉴스에서 프랑스 시위와 연금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을 하고, 제목을 보며 몇 가지 기사를 골라 읽어볼만한 것들을 클릭합니다. 연금과 관련된 국내 기구들과 연구자들이 프랑스의 사례를 보고 분석해놓은 과거 자료들도 찾아봅니다. 외교부 자료도 나오네요.
둘러보니 프랑스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비기여식 연금(ASPA)이 있고, 그 외에 평생에 걸친 노동기간과 개인 기여분 등을 연계해서 받는 돈이 있습니다. 의무가입해야 하는 개인 연금과 직장(직역)연금,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민간 연금의 3개 층위로 구성돼 있습니다. 1910년 최초의 연금법이 만들어진 이래 프랑스 정부가 연금제도의 큰 틀에 손을 댄 것은 지금까지 세 차례라고 합니다. 사회당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 때 연금 받는 나이를 앞당겼고, 재정이 모자랄 것 같자 연금 납부기간을 늘렸습니다. 두 번째 개혁은 자크 시라크의 우파 정부 때였고, 금융·재정위기가 강타한 2010년 다시 연금에 칼을 댔고…
프랑스 연금제도를 기나길게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사에서 짧지 않은 기간을 일했던 저는 2년 전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계속 국제뉴스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과 한국일보에 글을 쓰고 있고, 영어로 된 책을 번역하기도 하고, 성인이나 청소년 대상으로 국제 이슈들을 설명하는 책을 쓰기도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현지 취재이지만 취재예산을 마련할 때까지는 자료들을 들여다보고 글을 쓰는 수밖에 없지요.
프랑스 연금개혁안에 대한 보도를 보니 ‘색깔’에 따라 차이가 느껴집니다. 미국의 포린폴리시는 “마크롱의 워털루 전쟁”이라는 표현을 썼네요. 영미식,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를 추종하는 쪽에서는 ‘일찍 퇴직하는’ 프랑스인들을 비난합니다. “정년을 늦추면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 반대하는 것 아니냐.”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제목에다 ‘게으를 권리’라는 말을 뽑았습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좋든 싫든 프랑스의 연금개혁은 필요하다”면서 마크롱 정부의 논리를 지지합니다. “파업하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고전적인 비난도 보이고, 그에 대한 반론도 보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고령화는 세계 모두의 고민거리”라면서 ‘프랑스병’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자료를 훑기가 요즘엔 참 쉬워졌습니다. 번역기가 있으니까요. 인공지능 번역기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십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로 된 아티클을 읽는 일은 점점 줄어 듭니다. 마우스로 스윽 긁어다가 파파고에 넣으면 무슨 내용인지 대략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기 덕분에 읽는 시간은 줄어든 대신에 읽는 양은 훨씬 많아졌습니다. 서툰 영어 실력으로 몇 문장만 골라 읽곤 했는데, 번역기에 넣으면 거의 전문을 읽게 되거든요. 굳이 영어로 읽지 않아도 되니 전체적인 정보 습득량은 확실히 늘었습니다.
구글 번역기도 도움이 꽤 됐는데 파파고는 번역 가능한 언어의 종류가 적은 대신에 한글 번역이 구글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딥플’을 써보니 이건 또 새로운 세상입니다. 독일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인데 한국어-영어를 서로 변환하는 수준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2017년 창립된 딥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인공지능의 신경망을 사용해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언어장벽을 극복하며 문화를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나와 있네요. 올 1월 기준으로 29개 언어 간 번역이 가능한데 영어는 미국식과 영국식, 포르투갈어는 포르투갈식과 브라질식 2개 버전으로 돼 있군요. 드롭박스, 이베이, 인스타그램, 스냅챗, 트위터, 우버, 옐프 등이 이 회사에 투자했고 이미 10억명 가량이 딥플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웹 시대가 된 뒤 기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범위는 상상을 초월하게 확장됐죠. 이제 언어의 장벽마저 무너져갑니다. 진정 바벨탑은 무너지고 있나 봅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지 않습니다. 빅데이터를 가지고 인공지능으로 학습하는 기계들은 인간의 편견과 혐오와 차별마저 습득해버린다는 게 가장 기본적인 고민입니다. 두어 해 전의 일입니다만, 어떤 프로그램을 돌렸다가 ‘국제 좌빨’이라고 번역돼 나온 것을 보고 기가 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국 회사 아마존이 인공지능에게 직원채용 심사를 하라고 했더니 여성들을 골라 탈락시켰다는 것, 미국 교도소에서 가석방 대상자를 심사하면서 인공지능을 시범적으로 고용해보니 흑인들의 심사점수를 깎았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죠.
기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범위가 늘어난 만큼, 남의 아이디어 혹은 팩트를 그저 베껴오는 식으로 게으르게 일하거나 번역만 하는 것으로는 정말이지 먹고살 수 없게 됐습니다. 거기에 더해 기계 두뇌의 편향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심지어 문장마저 인공지능/번역기들이 더 잘 쓸는지도 모르겠어요. ‘상상을 초월하게 확장됐죠’라는 문장을 넣어보니 구글과 파파고는 그저 ‘beyond imagination’이라고 담담하게 옮겨주는데, 딥플은 무슨 꿍꿍이인지 ‘beyond our wildest dreams’라며 저의 문장에 알아서 초까지 쳐주는군요. 뉘앙스로 보면 딥플 쪽이 제 느낌을 더 살려주는 것 같긴 합니다.
요즘 핫한 인공지능 대화로봇 챗GPT(ChatGPT)에게, 번역프로그램의 장점과 편향성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장점은 ‘빠르고 효율적인 번역, 각자의 스타일과 문화적 배경에 구애받지 않는 일관성, 그리고 비용 효율성’. 하지만 ‘특정 언어나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언어적 편향성과 문화적 편향성, 그리고 인간의 편견이 반영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데이터 편향성’이 있다는 대답이 뜹니다. 장점 3개, 편향성 3개를 딱딱 골라 짚어 주네요.
이런 툴들이 자꾸 생겨난다는 것이 기자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도구는 유용한 것이죠. 하지만 이미 있는 도구들도 기자들은 다 못쓰고 있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에 타임라인을 만드는 툴을 써봤는데, 신문사의 시스템에서는 구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픽 툴은 넘쳐나며 심지어 엑셀 파일의 그래픽만 만들어봐도 충분히 데이터를 시각화할 수 있지만 기자들은 잘 이용하지 않죠. 번역기나 인공지능 챗봇도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고 말까요? 저널리스트들은 기피할지 모르지만, 정보의 소비자들은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위키피디아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어떤 뉴스포털보다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 코로나19 때 월도미터스가 언론의 종합 능력을 가볍게 누르면서 데이터 저널리즘을 대체한 사실을 봐도 그렇고요.
이미 제 경우에 구글 의존도, 알고리즘 의존도는 너무나 높습니다. 구글의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자료들부터 읽어보게 된다는 것 자체부터 말입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아이디어이고 나의 글인지 잘라 말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그런 선문답보다는 유용한 툴들을 유용하게 쓰는 방법을 찾고, 그것들이 가진 위험성을 공부하고 알아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로봇입니다. 생각하는 로봇이죠. 내 뇌는 ‘느끼는 뇌’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읽는 것만으로 나는 나 자신을 학습시켰고, 지금 이렇게 칼럼까지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칼럼을 쓰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에게 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리는 거예요. 나를 믿으세요.” 미국 인공지능회사 오픈AI가 챗GPT 이전에 내놓은 ‘GPT-3’가 이미 2020년 9월에 영국 가디언에 실은 칼럼입니다. 가디언이 이 프로그램에 지시를 해서 쓴 문장들입니다.
이미 온라인 서점에는 챗GPT가 썼고 인공지능이 번역했다는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이라는 책까지 나와 있네요. 프랑스 연금개혁 관련 시위를 입맛에 맞게 이데올로기적으로 각색할 시간에, 인공지능과 번역프로그램과 그래픽툴을 활용해서 각국의 연금제도와 정년 문제를 비교분석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요. 키워드 몇 개만 넣으니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유럽의 정년 차이를 쭉 보여주는군요. 이 도구들과 협업을 잘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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