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바람과 물] 지구를 지키는 여성들

딸기21 2023. 3. 1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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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의 사회활동가 이사투 시세이는 1971년 은자우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감비아는 세네갈에 삼면이 둘러싸여 있고 서쪽만 대서양으로 통해 있는 작은 나라다. 우리에겐 낯선, 부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곳에서도 은자우는 가난한 시골마을이었고 시세이 역시 이웃 여성들처럼 어릴 적 잠깐 학교를 다닌 것 외에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난하고 개발이 덜 된 마을조차 지구를 휩쓰는 자본주의 상품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상품의 물결은 소비가 끝나고 나면 곧 쓰레기의 물결이 된다.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그 쓰레기들을 치우고 재활용할 능력이 모자란다. 시세이는 1997년 여성들을 모아 은자우에 재활용센터를 만들었다. 왜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지,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 어떻게 환경을 망치는지, 그것들을 주워모아 어떻게 재활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센터는 쓰레기 줍기로 끝나지 않고 여성들의 삶을 키우는 교육장이 됐다. 글을 가르쳤고, 리사이클링을 해서 돈을 벌게 했다. 현지 언론들은 시세이를 ‘재활용의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역할은 리사이클링을 훨씬 뛰어넘었다. 여성들이 일을 하고 돈을 벌면 어떻게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자신과 주변의 삶을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알려줬고, 재활용과 ‘소득창출’을 연결시켰다. 

 

'리사이클링의 여왕'으로 불리는 감비아의 이사투 시세이. 출처  sisterhoodagenda.com

 

나무를 끌어안은 여성들

 

멕시코의 치아파스주. 한동안 치아파스는 국제뉴스의 핫스팟이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라는 게릴라 단체가 썩은 정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여 자치정부를 세웠다. 아스테카 원주민의 후손들이 수백년 전 에스파냐 점령자들에게 빼앗긴 땅과 역사를 되찾겠다며 21세기적인 소셜미디어 프로퍼간다 투쟁으로 세계에 신선하고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억압에 맞선 자유, 권위적 통제에 맞선 자치, 채굴에 맞선 보전, 환경과 함께 살아가는 삶. 하지만 그것이 공짜로 얻어지지는 않았다.

 

치아파스의 악테알이라는 곳에서 1997년 12월 우익 민병대가 원주민 45명을 학살했다. 사파티스타를 비호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당시 10살이었던 과달루페 바스케스 루나는 학살에서 살아남았고, 지금은 원주민 인권운동 지도자가 됐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바스케스는 원주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대형 개발 프로젝트들을 막고 자연과 원주민 공동체를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인도에는 ‘칩코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운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통’이자 사상이다. 우타르프라데시 주, 히말라야 산간마을의 숲을 어느 회사가 베어내려고 했는데 거기 맞서서 여성들이 숲 지키게 나선 것이 칩코 운동의 시초였다. ‘칩코(chipko)’는 힌디어로 ‘껴안는다’는 뜻이다. 당시 남성들은 다들 외지에 일하러 나산 탓에 마을에는 여성과 아이들, 노인들 밖에 없었다. 여성들은 노래를 부르며 잘려나갈 나무들에 몸을 묶었다. “나무를 베려면 내 등에 도끼질을 하라!” 

 

과달루페 바스케스 루나. 출처  https://twitter.com/YasnayaEG/

 

이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70년대였지만 그 뿌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30년대에 라자스탄의 한 마을에서 군주가 궁전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자르려 하자, 한 여성이 나무를 끌어안고 막다가 살해됐다고 한다. 그러나 300여년 뒤 히말라야 여성들은 이겼다. 기업은 다른 마을의 숲으로 눈을 돌렸지만 그 마을에서도 여성들은 나무를 끌어안았다. 1980년 인디라 간디 당시 총리는 칩코 운동이 벌어진 말라야 지역에서 15년간 벌목을 금지시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월 20일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행정명령서 한 장에 서명을 했다.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키스톤 XL 송유관’ 사업을 취소하는 행정명령이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환경운동가들은 이 송유관에 반대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석유주의자들 편을 들었지만 바이든 정부로 바뀌면서 환경주의자들이 이겼다. 

 

송유관 반대에 앞장선 것은 환경단체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었는데, 그 중에 위노나 라듀크의 이름이 눈에 띈다. 2000년 미국 대선 때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던, 미국의 환경정치에선 나름 유명한 인물이다. 원주민 여성네트워크를 이끄는 라듀크와 동료 활동가들에게, 백인들이 빼앗아간 땅과 망가진 자연과 사라져가는 언어와 토착민의 문화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되찾는 일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일하고 돌보고 가르치는 여성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환경 투쟁을 살펴보면 여성들, 특히 토착민 여성들의 이름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소수민족이나 빈민층 출신 투사들의 리스트를 봐도 마찬가지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의 누군가’ 혹은 ‘돈 있고 힘 있는 누군가’는 땅을 파헤치고 숲을 베어내고 바다를 더럽힌다. 개발은 꼭 필요하고, 누구든 전기가 들어오는 집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위생적인 환경 속에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발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늘 있고, 환경이 파괴되면서 먹고 살 길이 막히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약자는 가난한 사람들, 마이너리티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 적잖은 수는 소수민족 혹은 원주민이고, 약자 중의 약자인 여성들에게 피해가 집중된다. 

 

칩코 운동. 출처 wikipedia.org

 

저개발 지역의 여성들은 몸으로 환경을 마주하는 사람들이다. 아프리카 여성들은 기후변화로 말라가는 땅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고, 땔감을 주워와야 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고,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 땅이 오염되고 물이 마르고 식량이 줄어들면 가족 중에 먼저 배를 곯는 것도 여성들이다. 

 

이런 상황을 정반대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국제 여성단체 글로벌볼룬티어는 여성의 역할을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보는 사람’, 전통 지식을 배워 미래 세대에게 ‘가르치는 사람’, 저개발 지역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단체에 따르면 세계에서 여성은 농업노동력의 43%를 차지하는데, 이 수치가 70%로까지 올라가는 지역들도 있다. 여성은 가족을 먹여살릴 궁리를 하고 식단을 짜는 사람이다. 환경 파괴의 피해를 가장 먼저 깨닫는 지구의 카나리아들이고, 땅이 마르지 않게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고, 토착민의 지혜를 많이 아는 사람들이다. 유엔도 원주민 포럼과 토착민 선언 등에서 소수집단이나 저개발지역 여성들의 강점과 역할이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에 필수적임을 여러번 강조했다.

 

지구를 지키는 데에서 여성이 해왔고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반대되는 지표들도 있다. ‘토착민’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기후 대응의 중심축이 점점 기술과 산업의 변화 쪽으로 이동해가면서 남성 중심 위계구조가 재생산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예일대 환경대학원 출신들이 만든 ‘환경 일자리 투명성 조사’에 따르면 환경 관련 일자리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보다 임금을 덜 받는다. 유엔을 중심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 체제의 틀을 잡은 사람은 노르웨이 출신의 여성 정치인 그로 할렘 브룬틀란이었다. 그가 주도해서 발표한 1987년의 유엔 보고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50년도 넘는 역사를 지닌 유엔환경계획(UNEP) 수장을 여성이 맡은 것은 2019년에 이르러서였다.

 

‘녹색 정치’에 나선 페트라 켈리의 후예들

 

독일 올라프 숄츠 정부가 2021년 말 출범하자 세계의 시선이 베를린으로 쏠렸다. ‘앙겔라 메르켈 이후의 독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 사민당-자민당-녹색당이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연립정권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숄츠의 ‘남녀 동수’ 첫 내각에서 가장 주목받은 사람은 녹색당에 소속된 외교장관 아날레나 베어보크였다. 

 

‘세계 최초의 환경정당’인 녹색당의 오늘을 만든 사람은 창당 주역 페트라 켈리(1947-1992)다. 어린 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방사선과 암의 관계를 알았고, 반핵운동에 투신했다. 1960년대 유럽이 사회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 환경이 이슈로 부상하던 때에 켈리는 녹색당을 만들었고, 반핵과 평화와 환경을 연결시켰다. ‘나이든 백인 남성들’로 가득한 정치 엘리트들의 세계에서 녹색은 새로운 세대와 여성들의 문이 돼줬으며 베어보크 같은 후배들을 낳았다.

 

1987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보고서를 발표하는 그로 할렘 브룬틀란. 출처 유엔

 

녹색정치가 유럽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동아프리카 케냐에서는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여성’으로 유명한 왕가리 마타이가 녹색당을 만들어 이미 20년도 더 전에 의회에 진출했다. 서아프리카 세네갈에서는 생태학자 출신 녹색당 정치인이 2012년 환경장관을 지냈다. 

 

근래 두드러진 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여성 녹색 정치인들이다. 브라질의 마리나 시우바는 고무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태어나 열 여섯 살이 돼서야 글을 배웠다. 아마존 원주민들과 숲을 지키다 살해된 활동가 치코 멘데스와 함께 고무농장 노동자들을 위해 시위를 벌였고, 숲과 토착민을 착취하는 대농장들에 맞서 아마존 숲의 파괴를 막는 ‘지속가능한 채취구역’을 얻어냈다. 2000년대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노동자당 정부에서 환경장관을 지냈고 올 1월 룰라 재집권과 함께 다시 환경장관직을 맡았다. 

 

콜롬비아에서는 지난해 6월 대선이 실시됐는데 게릴라 투사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나라 역사상 첫 ‘좌파 대통령의 탄생’이라고들 했지만 그 못잖게 중요한 것은 프란시아 마르케스가 부통령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1981년생 흑인 여성 마르케스는 서부 카우카 지역에서 환경 파괴에 반대하며 싸운 토착민 운동가였다. 식민주의 착취,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들, 독립 이후 독재와 내전, 폭력과 파괴, 그 모든 굴곡진 역사를 유전자 속에 간직한 마르케스가 부통령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 녹색 정치, 여성 정치, 젊은 정치의 상징이 된 푸에르토리카 이민자 가정 출신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유전자에도 마르케스의 것과 비슷한 역사가 쓰여 있을 터다.

 

‘침묵의 봄’에서 툰베리 세대로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이 출간되고 2년 뒤인 1963년, 미 의회 청문회에 레이첼 카슨이 출석했을 때 청문위원장은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사람이 당신이로군요”라고 말했다 한다. 그 100년 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를 만나서 한 말을 따온 것이었다. 

 

2019년 9월 유엔총회장에서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나는 여기가 아닌 학교에 있어야 했는데, 당신들이 내 어린 시절과 꿈을 앗아갔다”면서 세계의 정부들과 기업가들을 질타했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돈과 경제성장이라는 동화 뿐”이라는 툰베리의 일갈에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주 행복한 어린 소녀”라며 비꼬았고, 우익 정치평론가는 “국제 좌파들에게 이용당하는” “정신적으로 병든 스웨덴 아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툰베리가 불을 붙인 ‘기후 파업’은 세계에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을 환기시켰고 곳곳에서 미래 세대들이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 

 

아마존을 밀어버리려 했던 브라질의 전임 대통령은 토착민을 이길 수 없고, 10대 소녀와 말싸움이나 벌이던 70대 트럼프가 미래 세대를 이길 수는 없다. 여성들은 가꿔왔고, 싸워왔다. 삶과 세계를 위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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