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기자협회보] 맥사(MAXAR), 상업 위성이 보여주는 대결과 갈등의 세계

딸기21 2023. 6. 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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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테론 암초. 중국명 화양자오(华阳礁). 필리핀에선 칼데론 리프. 말레이시아 이름은 터룸부 칼더론, 베트남 식으로는 바이처우비엔. 남중국해에 있는 바위의 이름입니다. 면적은 0.22㎢, 섬이라기에도 뭣한 곳을 중국이 매립해 사방이 직선으로 이뤄진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스프래틀리 군도, 중국명 난샤(南沙) 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에 속한 암초랍니다.
 
남중국해 분쟁의 역사는 꽤 됐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미국이 가세해서 중국과 본격적으로 날을 세우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중국이 이 바다의 바위들에 시설물을 짓기 시작했고 2012년부터 그 사실이 확인되면서 분란이 거세졌습니다. 
 

Fiery Cross Reef.


미국의 한 장성이 만리장성에 빗대 ‘모래 장성(Great Wall of Sand)’이라 불렀던, 남중국해의 중국 군사시설들을 세상에 알린 것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웹사이트에 공개한 위성 사진들이었습니다. CSIS는 ‘아시아 항해 투명성 이니셔티브’라는 프로그램과 함께 ‘아일랜드 트래커’를 운영합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 베트남, 대만 등이 짓고 있는 암초의 시설물들을 위성사진들로 비교분석하는 겁니다. 

중국이 ‘공사중’인 28개 섬/암초 가운데 하나인 ‘피어리크로스’의 사진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중국에서는 융슈자오, 필리핀에서는 카기팅안, 베트남에서는 다츄땁으로 부른다는 설명과 함께 바위 전체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나옵니다. 직선으로 도로를 내고 사각형으로 구획을 맞춰 지은 구조물들이 보입니다. 세부 이미지로 가면 2009년 이후로 찍힌 사진들이 쭉 뜹니다. 아직 모래바닥 뿐인 2014년의 모습들, 2015년 준설을 하는 장면들, 건물이 들어서 있는 2016년의 생생한 사진들. 화질이 정말 좋습니다. 
 
[CSIS] ASIA MARITIME TRANSPARENCY INITIATIVE

수비(Subi) 암초의 사진들도 유명합니다. 반지 모양 암초 한쪽을 깎아내 작은 만(灣)으로 만들고 구조물을 짓는 모습이 2012년부터 쭉 기록돼 있으니까요. 작년에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미스치프, 수비, 피어리크로스 3개의 암초를 “중국이 완전히 군사화한 곳”으로 꼽으며 “중국이 공격 능력을 확장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Subi Reef.


중국의 해상공세를 보여주는 ‘증거물’인 이 사진들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미 우주항공국(NASA)이나 미국 정부와 관련된 기관에서 나온 것들이 아닌, 민간기업의 민간위성이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마다 ‘디지털글로브’ 혹은 ‘맥사(MAXAR)’라는 마크가 붙어 있습니다. 위성사진을 제공한 회사 이름입니다.

1992년 미 의회가 ‘원거리 토지측량정책법’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자원과 농지를 효과적으로 연구, 개발할 수 있도록 인공위성 사진들을 지리정보에 활용할 수 있게 한 법이었죠. 미국 에너지부에서 자금을 대는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서 일했던 월터 스콧이라는 학자가 월드뷰이미징이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회사는 1993년 원거리 토지측량정책법에 따라 고해상도 상업용 촬영 허가를 받은 최초의 기업이 됐답니다. 
 
이 회사는 얼리버드, 이코노스, 퀵버드, 지오아이, 월드뷰 1~4호 등 여러 개의 위성 시스템을 갖춘 전문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 사이에 회사 이름은 ‘어스워치’를 거쳐 디지털글로브로 바뀌었지요. 2009년 뉴욕 증시에 상장됐고 2017년에는 캐나다의 우주개발 회사 MDA와 합쳐져 맥사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2019년에는 달 궤도에 우주정거장을 놓는다는 NASA의 ‘루나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의 주요 부품 공급업체로도 선정됐습니다.
 

https://www.maxar.com/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 회사는 정밀 위성사진들을 가지고 상업용 지도제작, 에너지 개발과 환경 분야 지리정보 구축 등을 해주면서 광업, 물류, 위성통신 등 다양한 분야의 고객들을 상대합니다. 미국 국방과 정보 분야, 국제 안보·정보 분야도 영업 대상에 포함됩니다. 원래 스콧이 연구소에서 했던 일이 ‘스타워즈’ 계획으로 알려진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의 전략방어 이니셔티브에 따라 우주 기반 요격체를 개발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 자체가 1952년 옛소련의 핵무기 개발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냉전의 산물이었고요.

게다가 맥사로 통합된 한 축인 MDA는 한때 노스럽그루먼 계열의 미사일·위성회사 오비털 사이언스 산하였죠. 맥사 자체는 무기회사가 아닌 우주공학 첨단기술 회사이지만, 복잡한 지분구조들과 이리저리 갈라지고 합쳐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무기산업, 군수산업과 만나게 됩니다.

맥사의 사진들이 기름을 부은 남중국해 갈등은 과학기술과 군사·정보 분야의 결합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사진을 찍어 공개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패권주의 야심을 드러내며 야금야금 암초들을 장악해 이웃나라들을 자극하는 중국의 행보가 문제인 것이고요. 미-중 경쟁의 와중에 맥사와 CSIS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아마 거대한 빙산에서 흘러내린 물 한방울 만큼의 정보일 뿐일 거예요. 그렇다 하더라도, 안보나 국제지정학과 관련된 자료를 누구든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은 굳이 따지자면 원망스럽기보다는 고마운 일입니다.
 

"P3DR™ is a stand-alone software solution to automatically georegister imagery to the Globe in 3D, a worldwide foundation with resolution of 50 cm or better and 3 m accuracy in all dimensions." www.maxar.com


그러면서도 뭔가 두려운 것은, 이 갈등이 어디로 치달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겠지요.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외치며 저 멀리 유럽 동맹국들의 군함들까지 끌어들여 시위를 하고, 중국은 대만을 위협하며 갈등 수위를 높이고. 올 2월에 중국의 ‘첩보 풍선’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해서 소동이 벌어졌는데, 저 멀리 우주공간에서 민간 위성들이 미국 어느 첩보기관보다도 맹활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좀 어쭙잖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맥사이지만 엄청난 돈을 벌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작년에 1억5000만달러 적자를 봤고 올 5월 애드번트 인터내셔널이라는 사모펀드에 64억달러에 팔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맥사의 위성사진들은 뉴스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직후 국경을 넘어 밀고 들어가는 러시아군 차량행렬을 찍어 보여준 것이 맥사였습니다. 이달 6일 러시아군에 점령된 헤르손의 카홉카 댐이 폭파되는 모습, 물에 잠긴 주변 지역, 침수된 터미널 등등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공개했고요. 

맥사의 위성사진들을 분석하는 한 청년의 스토리가 지난해 블룸버그통신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체첸의 군사기지에 있는 투폴례프 Tu-160 전략폭격기들의 사진이었는데,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하기 위해 이동배치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은 알아보기 쉬운 깔끔한 이미지들이지만 실제로 위성이 찍어보내는 것은 그리 명확하지 않다는군요. 수만 장의 위성사진을 컴퓨터가 분석할 수 있으려면 먼저 인공지능(AI)을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위성사진들을 보면서 수백 개의 윤곽을 찾아내 이미지 정확도를 높이는 법을 AI에게 알려준 것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미국의 20대 청년이었습니다. 과거 ‘장애’로 구분하던 자폐 스펙트럼을 ‘신경다양성’ 측면에서 바라보자는 목소리가 요즘 많습니다. 체첸의 폭격기들을 찍은 사진 뒤에 AI 시대의 일자리와 신경다양성의 결합이라는 또 다른 테마가 들어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시 지정학적 갈등과 정보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상업용 위성 이미지와 데이터는 국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각국 정부가 상업용 위성을 사용하여 병력의 이동과 공격의 영향을 추적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지난해 연방정부 기관들의 ‘상업용 위성 이미지 계약’을 감사한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올린 글입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변을 지나는 러시아 군 차량행렬을 찍은 맥사 위성사진도 친절하게 붙여놨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부 상무부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법무부 등 연방정부 10개 기관이 상업용 위성회사들과 이미지 공급계약을 맺고 있다고 합니다. 제일 많이 계약한 것은 NASA인데 2018년 이후 위성사진 값으로만 7570만달러, 약 1000억원을 썼다네요.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미국이 전쟁을 민영화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맥사는 그 민영화의 한 가닥에 불과한 민간 정보회사라고 볼 수 있겠지요. 상업 정찰위성이 보여주는 대결과 갈등의 세계는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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