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여행길. 2년여 만의 외국 방문이다. 인천국제공항에 아직은 항공편도 여행자들도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중동과 북아프리카처럼 식량을 수입하는 지역에서는 ‘빵값 폭동’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행을 떠났다. 2년 동안 발이 묶여 있었던 터였기에, 오랜 베프와의 여행을 앞두고 마치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처럼 한껏 꿈에 부풀었다. 무얼 볼까 어디서 묵을까 의논하느라 톡방은 연일 부산스러웠다. 마침내 시작된 여행. 늘 그렇듯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즐겁다.
세계가 이렇게 닫혀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전염병이 갑자기 세상을 휩쓸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방역 봉쇄로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갑자기’ 들이닥친 전염병은 아니었다. 이미 20년 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있었고, 몇 년 뒤에는 신종플루가 세계를 강타했다. 인간이 야생을 야금야금 침식해들어가면서 야생동물들의 외딴 서식지들이 인간 거주지역과 맞닿게 되고, 야생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흘러들어오는 ‘스필오버’가 일어난다. 모두 오래 전부터 경고음이 들려왔던 것들이다. 다만 2년 전부터 이어진 코로나19는 전파 범위가 이전 케이스들보다 넓었을 뿐이다.
팬데믹 초기의 크루즈 소동이 생각난다. 일본 요코하마 부근에 정박한 크루즈 여객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감염자가 확인되면서 일본 당국의 대응이 논란이 됐던 일 말이다. 당시 일본은 감염자 통계에 이 배 승선자들을 포함시키지 않는 희한한 계산법을 택해 눈총을 받았다. 문제의 그 배,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사건 뒤 각국이 크루즈 입항을 금지시켰다. 대만 앞바다에서 일본 오키나와 항해를 거부당해 억류 아닌 억류 상태로 있어야 했던 ‘슈퍼스타 아쿠아리우스’, 홍콩에서 항해를 중단한 ‘월드드림’, 이탈리아에서 이슈가 된 ‘코스타 스메랄다’... 호화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오가는 크루즈 관광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었지만 전염병으로 그 꿈은 ‘악몽’이 돼버렸다.
세계에서 크루즈 관광 붐이 일기 시작된 것은 1980년대부터다.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하면서 관광업계의 핫한 상품으로 떠올랐다. 카리브와 북·중미 노선, 스페인과 이탈리아·그리스 일대를 도는 지중해 노선, 스칸디나비아 피요르들을 도는 북유럽 노선, 홍콩과 일본 사이 태평양 항구들을 오가는 아시아 노선 등 다양한 루트들이 개발됐다. 국제크루즈라인협회(CLIA)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780만명이던 연간 세계 크루즈 탑승객은 10년 뒤 3000만명으로 늘었다. 팬데믹이 시작될 당시 세계 55개 크루즈사가 278개 대양노선을 운영하고 있었고, 고용 인원이 117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마이애미와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카니발코퍼레이션은 세계 최대 크루즈 운영사로 직원 12만명에 선박 102척을 두고 10개 브랜드의 라인을 운영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운영사는 일본 카니발재팬의 모기업이 바로 이 회사다. 팬데믹 이후 2년 동안 이 회사가 운영하던 모든 크루즈 상품이 취소 또는 축소됐다. 회사 측은 보유한 배들을 팔고 자회사들을 매각했다.
전염병 때문에 타격을 입었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크루즈에 대한 세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크루즈 선박들이 미치는 환경 영향을 감시하고 평가해온 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은 “크루즈는 환경에는 재앙”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은 9,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10억 달러 규모의 유람선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오염시키면서 이 떠다니는 도시들을 관광객들로 가득 채우려 무슨 짓이든 한다.” 이 단체는 크루즈선들이 바다에 하수와 음식물 쓰레기를 툭하면 불법으로 바다에 버리고, 항로를 오염시켜 해양생태계를 파괴한다고 비판한다. 일례로 카니발은 폐기물 불법 배출로 미국에서 4000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은 적 있다.
또 다른 크루즈회사 디즈니는 중미 바하마에 항구를 만들려다 산호초와 해양 야생동물의 이동패턴을 교란시킨다는 이유로 환경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로얄캐리비안이라는 회사는 화학물질과 폐유를 버려 미국에서 역시 거액의 벌금을 물었다. 2021년 말 이 회사는 ‘데스티네이션 넷 제로’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유람선이 내뿜는 탄소배출을 줄이고 상쇄해 ‘순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들이 바다 생물들에게 어느 정도나 구명줄이 돼줄 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점점 늘어나는 ‘크루즈의 로망’을 생각하면 고민거리는 점점 더 늘어난다. 즐기고 싶은 게 늘어나고 즐길 여력이 커질수록 생각해봐야만 하는 일들도 더 늘어나는 법이다.
크루즈는 그래도 아직은 너무 먼 남의 나라 여행객들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나 비행기는 다르다. 팬데믹에 타격받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지정학적 충격 속에, 기후 대응은 슬금슬금 관심사에서 지워져가는 분위기다. 기후 대응이 너무나 ‘절박하다’고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미래 세대는 호소하지만 ‘절박함’의 등급에서 기후대응은 이번에도 또 밀리고 마는 것일까.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기후 대응은 세계의 ‘대세’로 굳어져가고 있다.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느냐가 ‘첨단이냐 아니냐, 윤리적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시대다.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COP26)에서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다임러,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중국 BYD 등 10여개 자동차 회사가 내연기관 차량을 2040년까지 단종시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이 생산하는 차량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25%정도다. 포드는 2030년까지 전체 생산차량 가운데 40%를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했다.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와 스웨덴 볼보는 2030년까지 가능한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더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 스웨덴 볼보도 마찬가지다. 기술전문매체 기즈모도는 “가솔린 차량이 멸종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전체에서 인류가 내뿜는 이산화탄소 가운데 약 5분의1이 배와 비행기,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에서 나오며 그 가운데 절반을 자동차가 차지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추산으로는 2019년 미국 전체에서 사람들이 내뿜은 이산화탄소의 29%가 교통수단에서 배출됐다.
전기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렇게 되묻는 사람들이 많다. “석유와 가스를 태워서 전기를 생산하는데, 그걸로 충전하는 전기차가 과연 환경친화적이냐”고. 태양광 등 지속가능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더 좋겠지만, 화석연료를 태워 만든 전기로 움직인다 할지라도 전기차가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럽의 한 컨설팅회사가 각국에서 발전 과정에 배출되는 탄소를 포함한 전기차의 직간접적인 탄소배출량을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분석한 자료가 있다. 석탄 발전의 탄소배출을 줄인 '청정석탄' 기술이 많이 보급됐지만 유럽에서도 폴란드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여전히 오염이 심한 재래식 석탄발전을 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기름을 태우는 차량보다 전기차의 탄소배출이 계산해보면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부분 나라에서는 전기차의 환경 우위가 입증됐다. 결국 전력을 얼마나 깨끗하게 생산하고 있느냐와 직결되며, 전기차 전환이 발전부문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원의 비중을 늘리는 일과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엔 항공기나 선박에 대해 생각해보자. 팬데믹으로 국제회의들이나 외교활동이 대부분 화상회의로 전환됐고 항공 교통에 따른 탄소 배출은 확 줄었다. 인도에서 열린 화상 국제보건회의 참석자들이 한 장소에 모일 때와 온라인으로 회의를 할 때 탄소배출량이 얼마나 차이나는 지 계산해봤다. 2022년 4월 1474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흘 간 열린 국제회의가 분석 대상이었다.
온라인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배출된 탄소량은 6.44입방톤. 참석자들이 실제로 모인 것은 아니지만 다들 전기를 쓰며 회의를 했으니 배출량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이 회의가 오프라인으로 열렸다면 배출됐을 탄소량은 355.85입방톤으로 추산됐다. 화상회의를 한 덕에 탄소배출량이 55분의1로 줄어든 것이다. 이 계산을 한 학자들이 권고한 내용은 단순하다. "학술회의는 되도록 화상회의 방식을 채택하라.”
그렇다고 출장이나 여행을 모두 없앨 수는 없다. 항공산업이 세계 탄소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다. 항공업계도 세계의 대세가 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따르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지속가능 항공연료(SAF), 즉 석유가 아닌 식물성 기름을 쓰면 항공기의 탄소배출량을 많게는 80%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30년까지 항공기의 지속가능연료 비중을 5.2%로 높인다는 목표를 잡았다.
하지만 이런 연료는 아직은 너무 비싸고, 대량생산되는 단계도 아니다. 자동차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이 낮아진 것처럼 항공 부문에서도 투자와 생산을 늘려 지속가능 연료 기술을 발전시키고 값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 젯블루, 유나이티드항공 미국 항공사들은 지속가능연료 비중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시작했고 미국 정부도 보조금 지원을 결정했다.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은 2030년까지 100% 지속가능연료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비행기에는 쉽사리 탄소배출을 줄이기 힘들게 만드는 문제가 더 있다. 전기차의 경우 차량 운행 자체에서는 탄소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청정연료를 쓰더라도 항공기 탄소배출은 적어도 20%는 남는다. 그럼 어떻게 ‘순 제로’로 만들 수 있을까? 나무심기를 지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탄소를 내뿜은 만큼 상쇄를 해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배출하는 양과, 이를 상쇄해줄 양을 어떻게 측정할 지가 문제다. 환경단체들은 자칫 '그린워싱', 즉 녹색인 것처럼 포장만 하는 이미지 세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기비행기, 수소비행기 이야기도 나온다. 2021년 9월 엔진제작사 롤스로이스가 제작한 전기비행기가 영국에서 15분간의 시험비행을 마쳤다. 에어버스는 2035년까지 수소연료로 움직이는 항공기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크루즈 이야기를 꺼냈지만 사실 대양을 오가는 배의 대부분은 사람이 아닌 화물을 운반한다. 세계에서 교역되는 물품의 90%가 바다로 이동한다. 아직까지 선박업계의 탄소 줄이기 고민은 다른 부문을 따라오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사라진 도시들에서 한때 야생동물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터키 이스탄불 주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는 돌고래들이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 헤엄을 쳤다. 이스라엘 대도시 하이파의 거리에는 멧돼지들이 나타나 인적 없는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졌다. 알바니아에는 플라밍고 떼가 날아들었고, 태국의 핫차오마이 국립공원에서는 거대 해양 포유동물인 듀공이 바다를 노닐었다.
전염병으로 한껏 우울했던 세계인들의 마음을 달래준 뉴스들이었지만 모든 게 그냥 해프닝으로 끝난 것 같다. 지구는 여전히 인간들에게 접수된 상태다. 여행지에 나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같은 인간들에게. 이번 여행길에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길까.
* 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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