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BTS, 미얀마, 아시아

딸기21 2022. 4. 5.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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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한 2월 23일, 영국 BBC방송 웹사이트의 메인 뉴스 화면에는 바이든이나 푸틴의 뉴스와 함께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의 2021년 매출이 31%나 늘었다는 기사가 떠 있었다. 코로나19 시대에 콘서트는 없어졌어도 스트리밍과 굿즈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방탄소년단. 다소간 고전적인 한국 이름보다는 어느 새 BTS라는 글로벌 네이밍으로 더 많이 불리는 이 아이돌 그룹의 행보는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모두 세계 언론을 장식한다. ‘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쌓아올린 실적에서부터 ‘아시아 미소년이 외모의 기준의 되고 있다’는 기사까지, 환호와 분석이 넘쳐난다.

 

BTS가 노래하는 ‘70억 개의 별’

 

그들의 팬이 세계에 1억 명에 육박한다는 추정치도 있지만 정확히 몇 명인지 알 방법은 없다. 공식 팬클럽 가입자 수나 여러 소셜미디어 계정 팔로어 수 등으로 몇몇 사이트들이 추산한 것을 보면 팬덤 규모에서 필리핀이 한국을 제치고 1위다. 이어 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순이다. 그 뒤로는 브라질, 미국, 대만, 멕시코로 순서가 매겨져 있다. 

 

BTS. / Getty Images

 

정보기술과 세계화가 만들어낸 글로벌 아이콘 BTS의 지구적 감성은 분명히 세상 모든 셀럽들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은 ‘70억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월드’라는 가사로 지구급 스타의 면모를 보여주며, 유엔 연설과 노랫말로 코로나19 시대의 모든 인류를 위로한다. 그들의 뮤직비디오에는 여러 피부색의 사람들뿐 아니라 수어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 비춰진 다양성은 파편적인 동시에 편파적이다.

 

‘퍼미션 투 댄스’의 뮤비 속 아시안들은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이 아닌 ‘아시아계 미국인’이고, 검은 피부의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로 보인다. 팬덤의 규모는 아시아 국가들이 압도적인데도 한국 언론들은 빌보드 순위와 그래미상과 웸블리를 언급하면서 ‘K팝의 개가’를 찬양하는 데에 열중한다. BTS를 비난할 마음은 없다. 한국인들과 한국 언론이 세계를, 그 속의 아시아를 바라봐온 방식의 반영일 뿐이며 GDP와 ‘구매력’을 기준으로 나라들을 줄 세우는 시각의 또다른 표현일 것이니까.

 

거대하고 복잡한 대륙, 아시아

 

한 대륙을 하나의 실체로 보는 데에는 함정이 많다. 한 나라조차 다양한 사회문화정치적 집단들의 믹스인데 거대한 대륙을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아시아 안에는 한중일이 있는 동북아도 있고, 관광지로만 접하는 동남아도 있고, 흔히 중동으로 불리는 서아시아도 있고, 세계의 노동력 공급원이 된 남아시아도 있다. 심지어 대륙의 북쪽에는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가 펼쳐져 있다. 남미나 중동과 달리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들은 지리적 근접성을 제외하면 하나로 묶기가 힘들다. 공통의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지식도 국가별로 국한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인도 전문가나 일본 전문가는 있어도 ‘아시아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언론 보도도 마찬가지다. 아세안 같은 공동 기구에 대한 것이나 금융위기 같은 예외적 상황에 대한 몇몇 기사를 빼면, 개별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닌 ‘범아시아 뉴스’는 확 줄어든다. 그래서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게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가 나름 ‘피봇 투 아시아’를 외치며 신남방 외교에 힘을 줬지만 언론 보도나 사회적 관심은 적었다. 여전히 한국인들의 촉은 서방을 향해 있고, 신남방 외교가 겨냥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 수준 자체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아세안 청년들의 상호 이미지 출처: 한-아세안센터, 2021 한-아세안 청년 상호 인식 조사 (https://www.aseankorea.org/kor/Resources/ASEAN_Talks.asp)

 

그럼에도 어느새 우리 곁에는 아시안들이 와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으로 200만 명이 넘는 한국 거주 외국인 가운데 아시아계가 175만명으로 가장 많다. 북미계 16만7000명, 유럽계 7만5000명에 아프리카계는 2만명이 못 되고 남미는 5000명이 넘는 정도다. 아시아만 놓고 보면 중국계 65만명, 베트남 21만명, 태국 18만명, 우즈베키스탄 7만5000명, 필리핀 5만명, 몽골 4만2000명, 캄보디아 4만1000명, 네팔 4만명, 인도네시아 3만7000명, 카자흐스탄 2만9000명, 일본 2만7000명, 미얀마 2만6000명, 스리랑카 2만2000명, 대만 1만9000명, 방글라데시 1만6000명, 파키스탄 1만3000명, 말레이시아 5500명 순이다. 

 

이 기나긴 숫자들의 목록 속에는 숨겨진 진실도 있다. 한국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어떤 나라 출신들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 유독 여성 이주자 비율이 높은 나라도 있다. 한국인들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특정 분야의 노동자들이 많은 국가가 그런 예다. 한국이 경제발전을 거듭하면서 밀어낸 노동분야에 그들이 들어와 있다. 그들은 우리가 대놓고 말하지 않는 가려진 아시안들이다.

 

175만 명의 이웃들

 

우리가 깨닫든 혹은 미처 깨닫지 못하든 간에,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에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2015년 4월 네팔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인들이 보여줬던 연대의식이 그런 예다. 구호 지원과 모금이 줄을 이은 데에는 재난의 규모도 물론 영향을 미쳤겠지만, 한국에 와 있는 네팔인들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됐을 것이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다카의 의류공장 건물인 라나플라자가 무너진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최종적으로 11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지만 사고 직후 알려진 사망자는 90여명이었다. 다음날 한국 신문들을 보니 기사가 거의 없었다. 최종 사망자 숫자에 비해서는 첫날 알려진 피해 규모가 적었다 해도 1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은 참사였는데 보도는 턱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사건의 디테일들이 속속 알려지면서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함께 착취적인 의류산업 관행에 대한 관심이 일었고,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각성이 일어났다. 비참히 숨져간 여공들이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의 이면을 보게 만든 것이다.

 

[경향신문] 라나플라자 참사 5년… '안전주권' 되찾으려는 방글라데시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1812032200011

 

필리핀에 몰래 실어보낸 쓰레기 컨테이너 소동은 어땠던가. 2018년 한국의 폐플라스틱 수출량은 6만7441톤인데 그 중 80%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5개국으로 향했다. 말이 좋아 수출이지, 재활용 명분의 쓰레기 떠넘기기다. 그 해 7월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보내졌던 6500톤의 한국발 불법 폐기물이 적발됐다. 악취와 침출수, 유독가스 때문에 현지에서 이슈가 됐고 주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 쓰레기들은 결국 한국 정부가 가져와 폐기처분했다. 2년 간 필리핀이 한국에 되돌려보낸 불법 폐기물 컨테이너는 80개에 이른다. 아시아의 개도국들을 내려다보면서 미국이나 유럽국들의 우월적인 시선과 행태에 스스로를 동화시켜가던 우리를, 필리핀에 떠넘긴 쓰레기 덕분에 돌아볼 수 있었다. 

 

아시아의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 때론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치면서 백신 확보 경쟁에 불이 붙었다. 모더나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미국과 유럽 회사들의 백신 개발 움직임에 우선적으로 관심이 쏠렸지만 실상 세계에서 백신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것은 인도의 백신회사 세럼인스티튜트였다. 인도 정부의 조치에 따라 세럼이 백신 수출을 유예하자 한국에서도 ‘백신 비상’이 걸렸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베트남에서는 한국 바람이 일었고, 이것이 역수입돼 한국에서도 베트남의 축구한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2021년 4월 남중국해 싸움 와중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잠수함이 침몰했다. 사고가 난 KRI낭갈라402호는 1970년대 말 독일에서 제작된 잠수함이지만 2009~2012년 한국 대우조선에서 업그레이드를 한 것이었다. 잔해가 발견되기 전 추측만 무성할 때 국내외 언론들은 앞다퉈 대우조선 측의 코멘트를 받아갔다. 

 

In this file photo, taken Nov. 18, 2020, Defense Minister Suh Wook (2nd from R) and Army Chief of Staff Gen. Nam Yeong-shin (2nd from L) look at weapons at the Defense and Security (DX) Korea 2020, an international defense industry fair, at an exhibition center in Ilsan, north of Seoul. (Yonhap)

 

방산대국으로 변모해온 한국은 세계 9위 무기수출국으로 부상했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1 세계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한국이 5년간 팔아온 무기의 절반이 넘는 55%가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아시아에 수출됐다. 중동까지 합하면 이 비율은 거의 70%로 늘어난다. 터키와 인도에는 K9 자주포를 넘겼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과 이라크에는 T-50 고등훈련기를 팔았다. 중동에 대전차 유도무기인 현궁을 팔고 동남아에 잠수함과 호위함을 수출했다. 인도네시아와는 한국형전투기 KF-21 사업도 함께 하고 있다. 

 

서로 배우며 키워온 아시아의 민주주의

 

무기 수출에 대한 자긍심 넘치는 보도에 비해 아시아 국가들의 인권 상황이나 억압받는 소수민족에 대한 보도는 양적인 면에서 적기도 하고, 반중 감정을 자극하는 중국의 위구르 탄압 뉴스처럼 정치화된 양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 눈길을 끄는 것은 언론 보도를 넘어선 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관심이다.

 

홍콩 사태는 중국의 억압적인 체제와 비민주성에 대한 경계심을 환기시킨 사건이었다. 그 사건 이후 ‘친중파’에 가까웠던 중국 전문가들이나 중국 보도를 전문적으로 해온 저널리스트들의 시각도 위기의식과 경계심 쪽으로 확연히 이동해갔고, 경제적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들의 감정은 혐오 쪽으로 치달았다. 한국의 정치지형도와도 맞물려 홍콩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논쟁이 전방위로 펼쳐졌다. 아이돌과 드라마, 게임과 셀럽 소식들이 주로 올라오는 ‘더쿠’ 사이트도 논쟁판이 됐다. 이 사이트의 ‘차방(중국드라마 게시판)’에서는 중화권 스타 배우인 양미가 ‘오성홍기를 지지합니다’ 웨이보 글을 올린 것, 위구르족 출신 최고 스타인 딜라바 딜무라트(디리러바)가 미국과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노예노동 논쟁’에서 중국 정부 편을 든 것 같은 사안들이 종종 이슈가 된다.

 

필리핀 피플파워 혁명이 일어났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어쩌면 그 사건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아시아’인지도 모르겠다.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 코라손 아키노, 하늘 높이 치켜든 V.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이 그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지만 미래를 과거로 덮을 수는 없다. 독재자를 몰아낸 아시아의 이웃 필리핀의 시민혁명을 보며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의 꿈을 키웠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5·18 희생자 유족 등이 모인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이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규탄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얀마인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3.10 / 연합뉴스

 

미얀마의 활동가들은 오랫동안 한국에서 고국의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싸움을 해왔고 한국의 시민사회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미얀마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연대활동을 해왔다. 마침내 아웅산 수지의 정부가 수립됐지만 미완의 민주주의는 이내 군부 쿠데타에 뒤집혔다. 미얀마에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한국 시민들의 연대의식과 공감은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버마족이 소수민족 로힝야를 상대로 제노사이드를 저지를 때에 그런 연대감이 더 먼저 터져나왔으면 좋았으련만, 국내의 특정 종교집단의 반대 때문에 로힝야 난민을 못 받고 ‘기독교 카렌족 난민’만 받는 그런 수준을 넘어섰더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미얀마 시민사회에 대한 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은 그래도 반가운 일이다. 아시아 이슈라는 인식은 하지 않았을지언정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이들을 그래도 이전의 난민들보다는 따뜻하게 받아준 한국인들의 수용적인 태도가 반가운 것처럼 말이다.

 

‘시장’을 넘어 지구 시민사회의 동료로

 

미얀마의 시위 진압을 보면서 80년 광주를 떠올렸다는 이들도 있고, 민주주의를 앞서 쟁취한 시민들로서 책임감과 연대감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다. 미얀마에 투자해온 한국 기업들의 윤리적 책임 문제에 대한 관심도 이전보다는 한층 커진 듯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시아 곳곳 시위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얘기는 에피소드일 뿐이지만 홍콩의 민주화 운동가들은 직접 한국의 경험을 거론하면서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로컬과 글로벌, 반도와 대륙. 굳이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콕 집어서 더 촉구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은 지역 문제나 지정학적 분석보다 기후변화나 팬데믹이나 생명윤리나 인공지능 같은 이슈들이 더 크고 중요한 뉴스가 되는 시대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시아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그곳에 사는 수많은 이들을 값싼 노동력 공급원으로 여기고 그들이 사는 나라를 시장으로만 보는 관점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 공통의 숙제를 풀기 위해 함께 해야 하는 사람들, 역사의 고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헤쳐온 지구 시민사회의 동료로 보기 위해. 그리고, 우리 안의 낯설지 않은 이웃들을 더 이해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 수준을 더 높이기 위해. 

 

곡절이 많을 지언정 우리는 점점 더 그런 쪽으로 향해가고 있다. 다양성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이고,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연대를 더 표시하는 쪽으로. 어쩌면 우리가 회피해온 베트남전이라는 현대사의 단면을 직시하게 될 때가, 아시아 속 한국이 안고 있는 역사의 한 매듭을 푸는 시점일 지 모른다.

 

* <아시아브리프> 2022년 4월 4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