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6212

새로쓴 일본사

새로 쓴 일본사 要說 日本歷史 (2000) 아사오 나오히로 엮음. 연민수, 이계황, 임성모, 서각수 옮긴김. 창비 2003-03-20 ‘새로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역사책치고는, 특별히 ‘이데올로기적으로’ 편향되었다거나, 좌파적이라거나, 극단적인 뒤집어보기를 시도한다거나 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사에 이제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같은 몽매한 독자들 입장에서는, 일본사 개론서로 대단히 훌륭한 책이고, 까만 별 일곱개 정도는 주고 싶다. 책은 일본사를 선사시대에서부터 아주 최근(1990년대 이후)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그래서 책이 좀 두껍다). 단락별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엮었는데, 최근의 연구 성과와 학계 견해까지 되도록 수록하려고 애쓴 기색이 역력하다. 고대사..

딸기네 책방 2004.10.02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조너선 D. 스펜스 (지은이) | 주원준 (옮긴이) | 이산 | 1999-08-03 조너선 스펜스의 책 몇권을 읽었고, 아직 읽지 않은 몇권이 책꽂이에 꽂혀 있다. 스펜스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역사’의 풍요로움을 생각하게 되고, 좀더 비약해서 말하자면 ‘인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무엇이다 딱 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이 따라붙는 분야가 존재하듯이, 분명 인문학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스펜스가 보여주는 역사는 무엇보다 풍요롭다. 그가 유려한 문장을 통해 들려주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내가 스펜스의 책을 뽑아들 때에는 ‘옛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서 손을 뻗치는 것이고, 역사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서 ‘옛날 사람들의..

딸기네 책방 2004.10.01

다카시 후지타니, '화려한 군주'

화려한 군주 다카시 후지타니 (지은이) | 한석정 (옮긴이) | 이산 | 2003-11-07 출판업계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출판사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온 책이라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출판사는 분명 있다. 내게는 '이산'이 그런 출판사다. 이산에서 나온 몇편의 책들은 모두 내게 풍요로운 독서의 기억을 선물해주었고, 이 책 '화려한 군주' 역시 그랬다. 이 책에는 '근대 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는 "절대주의 국가의 화려한 의례와 상징들은 근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전제 아래(물론 이같은 전제는 에릭 홉스봄 등의 선배들에게서 나온 것이며 저자의 독창적인 고안물은 아니다),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근대 일본의 ..

딸기네 책방 2004.09.30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 서남동양학술총서 20 백영서, 전형준, 정문길, 최원식 엮음 / 문학과지성사 상상의 공동체? 내셔널리티의 문제는, 참 뭐라 단언하기 힘들다. 누구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하고, 이건 오만가지 책들에서 인용되는 걸로 봐서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상상 나부랭이'로 치부해버리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 하지만 '민족이란 무엇이다'(그것을 '국민'으로 번역하든 '민족'으로 번역하든)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해도, 분명한 것은 있다.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국민, 민족, 부족, 종족, 인종, 종파 등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규정된다. 이름을 지은 사람이 타인이든 자신이든 간에, 이런 이름들이 따라붙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긴 힘들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

딸기네 책방 2004.09.28

에페수스/터키의 음식

야간 버스 8월7일--이라고 메모장에 적혀 있구나. 에페수스로 떠나는 날이었다. 시르케지 부둣가의 괜찮은(다시 말하면 비싼) 까페에서 네스까페를 마셨다. 밤중에 호텔을 나와 BOSS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터미널로 향했다. 터키는 철도보다는 버스가 가장 활용도가 높은 교통수단인데, '오토갸르'라고 부르는 터미널도 있고, BOSS처럼 별도의 터미널을 버스회사에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스탄불에서 '오토갸르'라고 하면 보통 시 외곽의 큰 터미널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 오토갸르가 아닌 보스의 터미널에서 야간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을 출발한 것은 밤 11시도 넘어서였다. 터키 서부 해안, 즉 에게해에 면한 쿠샤다시라는 관광지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야간버스 중에서도 매우 비싼(1인당 32달러) 것을..

머리로는 '맛의 달인', 입에는 '인스턴트'

집 근처 대형 수퍼마켓에 갈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나라에도 백화점 수퍼마켓에 가면 모양 좋은 '완제품 음식'들이 진열돼 있기는 하지만, 서울에 살 때에는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도쿄에 와서 보니 사정이 좀 다르다. 수퍼마켓 1층에서는 방금 지어진 밥이나 초밥, 생선회를 밥 위에 뿌려놓은 '치라시 즈시', 달걀프라이를 얹은 오므라이스와 국수볶음을 도시락 모양으로 예쁘게 담아 판다. 라면이나 밥 위에 얹어먹는 소스 종류는 말할 것도 없고, 냉동식품도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닭고기와 감자 혹은 치즈와 새우를 넣은 고로케, 연근과 완두콩에 어묵을 묶어넣은 튀김, 검붉은 소스까지 뿌려져있는 냉동 햄버거,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당고(꼬치) 모양의 각종 튀김들....

테러 시대의 철학

테러 시대의 철학 지오반나 보라도리. 김은주, 김준성, 손철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9.11과 나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대형 테러가 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회사에서 두 명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딪쳤다고, 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TV를 켰다. CNN방송은 아무 설명도 없는 채로, 불타오르고 있는 무역센터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죄로 부랴부랴 선배들에게 연락을 하고 회사로 달려가 호외를 만들었다. 그 뒤로 두달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정신없이 외신을 들춰보고 기사를 '써제꼈던' 날들이었다. 나는 그때 임산부였고, 뱃속의 아이는 아마 태중에서 '테러'와 '전쟁'이라는 두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아이가..

딸기네 책방 2004.09.24

보스포러스

이스탄불같은 도시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세상 모든 곳이 나름대로 '특별함'을 갖고 있겠지만, 이스탄불이야말로 특별하다. 도시가 갖고 있는 역사로 보자면, 사실 역사가 수천년씩 된, 이스탄불보다 훨씬 오래된 도시들도 많다. 제국의 수도였던 도시들도 많고, 아름다운 도시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에 대해 '특별하다'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보스포러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을 찾은 여행객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는,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곳', 바로 보스포러스다. 지도를 첨부하면 좋겠지만 귀찮아서... 걍 내가 그렸다. 아주아주 무식하게 그린 것으로, 실제 이스탄불 주변의 모습은 저것과 굉장히 다르다는 점을 우선 말씀드리며... (그럼 대체 왜 그렸단 말인가요) 이스탄불..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고모리 요이치 | 다카하시 데쓰야 (지은이) | 이규수 (옮긴이) | 삼인 | 2000-04-10 일본 지식인 18명의 '내셔널리즘 비판'을 묶은 것인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서경식의 에세이에서 극우파들의 주장이 투영되는 매스컴의 문제, 전쟁과 성폭력의 문제 등을 다소 잡다하게 엮어놨다. 일본 내에서의 역사논쟁을 상세히 알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글도 있고 해서 전반적으로 재미는 없었다. '내 어머니를 모욕하지 말라'는, 서경식의 절규를 읽으면서 좀 울기는 했다. 1. 결국 역사란, 감출수 있는 것도, 감춰서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역사는 파헤치고, 읽어내고,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다. 2. 모순은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식민지의 가난한 여성'들에게 가해진 가장 극단..

딸기네 책방 2004.09.22

요즘 먹고 사는 것들

내가 무슨 '요리'를 하겠냐고. 아무튼 나도 먹고 살고는 있다. 그것도, 오로지 내 손으로 만들어먹고 살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도 요새는 잔뜩 사다먹고 있으나 기본은 역시나 내가 스스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것. 아지님도, 꼼꼼이도 음식을 못하니 할 수 없지. 날마다 '오늘은 뭐해먹을까' 주부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많지 않은데다, 내가 다니는 수퍼에서 파는 물건들로 재료가 한정돼 있으니 선택의 폭이 넓을리 없다. 국은 미역국, 조개국, 북어국, 시금치된장국, 가끔씩 된장찌개, 오늘은 감자국, 뭐 이런식이다. 며칠전에는 오뎅(어묵국) 끓이는 어묵이 싸게 나왔었다. 썩둑 썬 대파, 양파 반토막, 다시마, 무, 멸치, 마늘 두 쪽, 어묵을 넣고 푹푹 고았더니 제법 진국같은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