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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인간계의 일에 적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 되기 쉽다.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다가도 전쟁이나 폭력같은 사안을 접할 때면 불현듯 '본능'을 강조하면서 인간 역시 동물의 일종이더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악한에게 면죄부를 주는 짓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비유' 정도로만 해석한다면 생명체들이 겪고 있는 일들은 분명 사회의 메커니즘을 읽는데에 도움을 줄 때가 많다. 다윈의 진화론이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로 환원이 됐듯, 특히 '진화'와 관련된 현상들은 사회의 흐름과 비슷하게 흘러갈 때가 많다.
기후변화와 같은 대대적인 격변기를 거치면서 멸종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생물들은 과연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을까. 격변을 거친 뒤의 혼란은 언제나 있는 것이고, 승자와 패자도 늘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승자들은 살아남아 강고히 성을 구축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시카고대학의 데이빗 야블론스키라는 지구물리학자가 11일 미 국립과학아카데미 회보에 새 논문을 발표했다. 대대적인 멸종기를 거친 뒤 살아남은 종들이 '정말로 성공했나'라는 주제를 다뤘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화석기록들을 토대로 한 통계학적 연구로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야블론스키 교수는 중생대의 몇차례 멸종기에서 살아남은 해양생물 속(屬)들의 계통수를 그리는 방식으로 연구를 했는데, 결과는 당연한듯 보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한다. 살아남은 생물들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한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엄청난 상실을 감수해야 했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멸종 이후에 남은 속들은 10-20%의 개체를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예 사라지는 것보다는 성공적이었지만 강고한 성을 구축하고 온전히 살아남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들의 일부는 무참히 '떨어져나갔다'. "TV 프로그램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살아남은 자'라고 해서 모두 승자는 아니다". 야블론스키 교수는 "진화적인 대격변의 기간이라 해도 'all or nothing'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생존자들의 유전자의 일부는 살아남은 친척들에게서 받은 것이지만 또다른 일부는 사라진 종족들에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으로 상당수의 경쟁자들이 떨어져나갔다고 해서 생존집단들의 여건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남은 자들은 남은 자들대로 싸워야 했다. 야블론스키 교수는 멸종기 이후 수백년간,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는 이런 '불쌍한 승자들'의 행렬에 'Dead Clade(단계통군: 공통의 조상에서 진화한 생물군) Walk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종족들이 다 '데드 클레이드'에 들어가는 것들이다.
멸종하지는 않았더라도 종족을 많이 잃은 속들은 이후의 환경변화에서 적응의 원동력이 되는 유전적 다양성을 잃게 돼 작은 변화에도 쉽게 위기를 맞는 '멸종하기 쉬운(extinction-prone)' 종족이 돼 버린다. 심지어 큰 타격을 받지 않은 집단이라 할지라도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드는 일종의 병목(bottleneck)에 걸려 '데드 클레이드 워킹' 그룹들이나 마찬가지로 상실의 시대를 겪게 된다고 야블론스키 교수는 설명했다.
유전적 다양성의 병목에 걸린 생명체들이 택하는 생존전략은 다양하다. 어떤 종족은 꾸준히 한길로, 또 어떤 종족은 다양성을 배가하는 방향으로. 결과는? 공룡은 죽었고, 우리(지구상에 현존하는 생명체들)는 살아남았다.
운석의 충돌이든, 빙하기의 도래이든, 세계적인 경쟁이든 간에 대격변은 일부를 남기고 일부를 떨궈낸다. 그러나 떨어져나가지 않고 남은 자들은, 그들대로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 그 싸움에서 '다양성'을 복원해내지 못하면? 죽음이다. 나는, 스스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던 소시민들은, 공룡이 될까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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