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

기억의 궁전

딸기21 2002. 6.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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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50 English>라는 영어책을 봤다. "딱 50문장만 외우면 영어의 말문이 터진다"는, 그런 책이다. 심심한 차에 문장 50개를 외워버리기로 했다(아직 출근하기 전의 일이다). 문장 하나하나를 외우는 것은 쉬웠다. 아주 쉬운 문장들이었으니깐... 


문제는 50개를 순서대로 외워야 한다는 것. 이 시점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으니, 단 하루만에 50문장을 00번에서 49번까지 순서대로 좌라락 외우는 개가를 올렸다는 것이다. 별로 힘 안 들이고, 침대에 드러누워 그림을 한번 훑었더니 정말 책에 써있는대로 쭈욱- 외워지는 것이었다. 이 어찌 '기적의 학습법'이라 아니할쏘냐.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의 부분부분에 문장을 걸어두면, 그림을 떠올리면서 문장들도 함께 떠올릴 수 있다는 건데, 오 놀라워라...

사실 그런 '기억법'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토마스 해리스가 <한니발>에서 심혈을 기울여 묘사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렉터박사의 '기억의 박물관'이었다. 화려한 궁전을 연상케 하는 박물관. 곳곳에 숨어 있는 기억들. 렉터박사의 명석한 두뇌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기에는 단순치 않은 문화적 맥락이 거기에 숨어 있다. 유럽에서는 나름대로 유서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기억술의 방법을 끄집어냄으로써, 렉터박사의 엽기적이면서도 화려하고 귀족적인 취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큰달, 작은달을 외우는 방법. 나는 어릴적 한 주먹만 가지고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외웠는데, '서양식'은 두 주먹을 놓고 외우게 되어있나 보네...


원래 저런 기억술(mnemonics)은 고대 희랍에서부터 있던 것이지만, 신앙적 차원에서 중세 유럽에서는 기억술에 대한 연구가 붐을 이루게 된다. 인쇄 이전 시대에는 기억술이 학문과 일상생활을 지배했는데, 무엇보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또 15세기 유럽의 예수회에는 신학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단다. 이냐시오 로욜라를 비롯한 일군의 수사들은 머리 속에 그림을 만들어서 '생생하게 떠올림'으로써 신학적 자기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을 했는데, 예를 들면 예수님이 고난을 겪었던 골고다 언덕이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곳, 그 장소와 장면을 머리 속에서 마치 스스로 겪는 것처럼 재구성함으로써 그 고통을 '함께'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리석은 백성들에게서 모욕을 받던 길, 처형장으로 가는 골목골목, 성전 앞의 좌판들, 처형장 주변의 수풀과 몰려든 사람들 따위를 그림처럼 그려내면서 체험 아닌 체험을 하게 되면 예수님의 고통이 전이되어오는 것과 함께 신앙이 고양됨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주장은 방법론이 본질을 대신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에 부딪쳤고, 주객이 전도된 기억술은 오래잖아 '기억의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는 운명이 됐다.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은 이 기억술의 신봉자였던 마테오 리치라는 인물을 통해 서양과 중국의 문화적 접점을 뒤쫓아간다.

시각을 이용한 기억술은 서양에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승려 의상이 남긴 화엄일승법계도나 만다라 같은 둥그스럼하고 네모난 것들(이렇게 무식하게밖에는 표현을 못 하겠다), 다라니(陀羅尼 dharani) 같은 것들이 일종의 기억술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다라니는 나중에는 '주문'(송주)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지만 원래는 경전을 계속해서 암송함으로써 본 뜻을 알게 된다는 것에서 출발을 한 것이다. 


화엄일승법계도는 사상을 시각적인 형태로 배치한 것인데, 뜻은 모르겠지만 형태는 卍자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재미있어서 눈에 띈다(만다라는, 인도미술을 배울 때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개념 중의 하나이다).



요즘 들어 나는 부쩍 '기억력'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바람에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단어나 사람 이름, 무슨무슨 용어 같은 것들을 기억하지 못해 수시로 안개 속을 누빈다. 심지어 얼마전에는 '헤르메스의 기둥'을 떠올리면서 '-의-'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아 헤맨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덤 속에 처박혀 있던 기억술을 뒤늦게 끄집어내겠다는 것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무언가를 외우기 위해서 단어들의 앞글자만을 따서 배열한다거나, 연상되는 그 무엇을 통해 기억을 더듬는다거나, 일련의 단어들을 노래 곡조처럼 만들어 외운다거나 하는 짓을 누구든 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짓을 많이 했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도 외우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고생대의 시간적 배열-선캄브리아기,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론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이다. 살아가는데 별로 쓸모없는 기억 중의 하나이지만.

'말로 외우는' 저런 방법 말고 그림으로 외우는 방법을 늘 꿈꿔왔지만 요새 부러운 것은 '젊은 뇌세포'는 아니고, 중세의 기억술이 보여주는 '풍부함'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머리 속으로 건물을 지으려고 해도 '그림이 안 그려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내 뇌 속에 궁전이건 신전이건 정원이건, 하다못해 작은 방이라도 그릴 수 있고 또 그 공간을 문화적 유산들로 빼곡히 채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점에서 마테오 리치가 부럽고, 한니발 박사가 부러운 것이다.
부러움에서 출발해 일단은 작은 책꽂이를 하나 만들어서 도서관의 서가처럼 이것저것 꽂아두려고 노력을 해보는데, 꽂아넣을 것들이 많지 않아 잘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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