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칼 세이건.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10/27

이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읽었다.
세이건의 책 중에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에필로그>였고 이어서 <콘택트>와 <에덴의 용>,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봤다. 한동안 <코스모스>가 국내에 절판됐던 걸로 기억한다. 2004년 다시 출간된 뒤 친애하는 라꼬에게 강요하여 이 책을 내게 선물하게 했는데, 읽기까지 자그마치 22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는 진작에 까먹었을 것이니 상관 없다;;)
그 긴 시간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찰나일 뿐이지만 지구인에겐 매우 빠른 변화의 기간이었고,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에 와서 1980년 쓰여진 책을 읽고 있었다는.
명불허전. 정말 재미있었다. 세이건의 책은 늘 감동. 담달엔 역시나 사놓고 20년쯤 지난 것으로 생각되는 <창백한 푸른 점>으로 넘어간다.
군사 조직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는 범세계적 공통 현상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책과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군사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들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다루겠다고 단단히 다짐했다.
-14
재해를 뜻하는 disaster는 그리스 어로 '나쁜 별 이란 뜻이고, 유행성 감기를 뜻하는 influenza'는 이탈리아 어로 별의 영향을 뜻하는 influence 에서 온 말이고, 건배를 뜻하는 imazeltov는 히브리 어(본질적으로는 바빌로니아 어)로 '좋은 별자리' 다. 'Shlamazel‘ 이라는 이디시 어는 악운이 끊이지 않고 겹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 역시 바빌론의 천문학 용어에서 나왔다. 플리니우스의 주장에 따르면 로마에는 Sideratio'라 하여 '행성에 얻어맞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인 들은 행성을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여기에서 '고려하다'는 뜻의 consider 를 살펴보는 일도 유익할 것이다. 이 단어는 '행성과 함께' 라는 뜻인데, 진지하게 생각할 때에는 반드시 행성을 함께 고려했어야 했나 보다.
-90
지구라는 행성 위에 있는 국가들의 국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미국 국기에는 별이 50개 있고, (구)소련과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1개, 미얀마는 14개, 그레나다와 베네수엘라는 7개, 중국은 5개, 이라크는 3개, 상투메 프린시페는 2개가 있다. 일본, 우루과이, 말라위, 방글라데시, 대 만의 국기에는 태양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 브라질 국기에는 천구가 그려져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서사모아, 뉴질랜드와 파푸아뉴기니의 국기에는 모두 남십자성이 들어 있다. 부탄의 국기에는 지구를 상징하는 용의 여의주가 그려져 있고 캄보디아 국기에는 앙코르와트 천문 관측대가 그려져 있다. 인도, 대한민국, 몽골인민공화국의 국기에는 공 통적으로 천체 상징물이 들어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는 국기에 별을 쓴 경우가 특별히 많다. 이슬람 국가들은 초승달을 많이 쓴다. 모든 국기 중 거의 절반 정도에 천문학적 상징물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이것은 문화권을 초월하고 사상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92
(모든 챕터 앞에 맛뵈기 고전 인용문이 몇 개씩 붙어있는데 서구만이 아니라 세계의 오래된 말들을 모아놨다. 역시 세이건.)
케플러는 지구에 적용되는 측정 가능한 물리 법칙이 천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측정 가능하다는 것은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인류사에서 최초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에서 신비주의가 배제되었다. 이제 지구는 코스모스의 중심에서 하나의 지방으로 물러나야만 했다. 케플러는 역사의 한 꼭짓점에 서서 "천문학은 물리학의 일부다."라고 단언했다. 인류사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과학적 점성술사가 우리가 만난 최초의 천체물리학 자였던 것이다.
-115
보스턴 출신의 퍼시벌 로웰Perrival Lowell이 대규모의 천문대를 설립하고 심혈을 기울여 화성 생명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 한 연구를 시작했다. 로웰은 젊은 시절에 천문학을 취미삼아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준 외교관의 신분으로 당시 조선이라고 불리는 나라에 서 근무한 적이 있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178
(신기하네)
나는 화성의 지평선을 인류에게 처음 보여 준 영상을 그만 넋을 놓고 바라봤다. 이건 외계의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의 어느 풍경과 다를 바가 없는 자연 그대로 의 바위덩이와 모래 언덕들이 무심하게 놓여 있었고 지평선 멀리에는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성은 그저 하나의 ‘장소'일 뿐이었다. 머리가 반백이 된 광산 채굴꾼이 노새를 끌면서 모래 언덕 뒤에서 나타나기라도 할 것 같았다. 물론 그랬다면 화들짝 놀랐겠지만 말이다. 나는 베네라 9호와 10호의 금성 영상을 검토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렇지만 금성 표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전혀 없다. 여기야말로 어떻게든 우리가 다시 돌아오게 될 곳임을 나는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화성의 경관은 황량하고 붉고 아름다웠다.
-202
화성의 표면적은 지구의 육지 넓이와 거의 같다. 언젠가 화성 탐사가 완료되는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런 다음엔 화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이 지구를 잘못 사용한 수많은 사례가 있다 보니 이 질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만약 화성에 생명이 있다면 화성을 그대로 놔둬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비록 화성 생물이 미생물에 불과할지라도 화성은 화성 생물에게 맡겨 둬야 한다.
-221
그즈음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오가 또 다른 세상의 발견을 공표하고, 조르다노 브루노는 우주에 우리와 다른 형태의 생물들이 존재 하리라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발표와 주장으로 철저하게 비판받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대조적으로 네덜란드에서는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가 위 두 사람의 의견을 모두 지지하면서도 온갖 찬사를 다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의 아 버지 콘스탄틴 하위헌스는 당시 수석 외교관이었고 문학자, 시인, 작곡자, 연주자로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펴는 한편, 영국의 시인 존 던 Johin Domne의 절친한 친구로서 그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콘스탄틴은 화가 루벤스Rubens를 존경했고, 또한 청년 렘브란트를 발굴하였다. 그래서 훗날 렘브란트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게 된다. 하위헌스의 집은 세계 각지에서 온 온갖 종류의 진귀한 물건들로 가득 했고, 종종 세계 여러 나라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는 "전 세계가 나의 고향이며, 과학이 바 로 나의 종교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당대의 모티프는 빛이었다. 빛은 사상과 종교의 자유 그리고 지리적 발견의 상징이었다. 베르메르의 작품에는 빛의 오묘함이 절묘하게 표현돼 있다. 스넬의 굴절 현상 연구, 레벤후크의 현미경 발명 그리고 하위헌스의 빛의 파동설 등 당시 과학 연구의 중심 주제가 모두 빛과 연관된 것들이었다. 베르메르의 작업실에는 항해 도구들이 널려 있었고 작업실의 벽면에는 항해 지도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현미경은 응접실의 장식품이었다. 레벤후크도 화가 베르메르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했고, 호프바이크에 있는 하위헌스의 집을 자주 방문하며 그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236-237
수세기 전에는 탐험 여행에서 가져오는 '주요 상품'들 중의 하나로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자들이 들려주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현대판 탐험대도 여행담을 가져온다. 아니, 보내온다고 해야 맞다. 보이저 1호와 2호가 우리에게 보내 준 여행담을 좀 들어 보자. 귀가 아니라 눈으로 듣자. 보이저는 산산이 깨어진 수정구같이 금이 간 세상이나 북극에서 남극까지 온통 거미줄 같은 것들로 뒤덮여 있는 구형 천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감자처럼 생긴 작은 위성과 지하에 용암의 바다가 형성되어 있는 위성에 관한 이야기를 저 멀리에서 지구인들에게 들려준다. 우리는 황산의 호수가 널려 있고, 화산이 폭발하는가 하면, 또 피자처럼 생겨서 썩은 달걀 냄새를 풍기는 이상한 곳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된다. 그리고 지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지구와 같은 행성이 1,000개는 족히 들어 갈 목성에 대하여 참으로 놀라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243
공상 과학 소설과 UFO 문학에서 즐겨 다루는 소재가 문명과 문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러나 실제로 은하의 어느 두 문명권이 대등한 수준일 리가 없다. 우리보다 앞선 기술을 가진 문명권이 지구로 와서 무엇을 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그들의 기술과 과학의 수준이 우리보다 월등하게 앞설 것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지구 문명이 악의에 찬 외 계 문명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동족이나 다른 문명권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남과 어울려 살 줄 모른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후진성에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감은 우리 자신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또는 약간 후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저들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도 믿기 때문에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외계인의 성간 함대가 우리 하늘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들과 잘 화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506
우리의 과학과 수학은 여타의 문명과 공유될 수 있는 것이므로 광막한 성간을 가로질러 전달된 메시지라고 해도 그것을 해독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정말로 어려운 문제는 해독이 아니라 외계 생명을 탐색하는 연구에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미국 의회나 (구)소련의 중앙위원회를 설득하는 일이다. 문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과학자들이 비과학자들을 설득하여 외계 생명의 탐색 사업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얻어 내기가 불가능한 사회이다. 사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내부에만 투자하고, 통념이 사회를 철저하게 지배하여 별 세계의 탐색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할 수도 없는 사회이다. 다른 하나는 외계 문명과 접촉해 보고 싶다는 희망을 꿈꿀 수 있으며, 또 시민 전체가 위대한 이 꿈을 공유하여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위한 대규모의 연구가 실행될 수 있는 사회이다.
-507
외계 문명의 탐색이야말로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는 사업이다. 수백만 개의 이르는 별들을 모두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아무런 신호도 검출할 수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은하에서 문명의 발생이란 참으로 드문 현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적어도 하나의 확고부동한 척도가 마련되는 셈이다. 따라서 지구 생명의 고귀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 한 명 한 명이 개체로서 반드시 존중돼야 할 존재가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507-509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격렬 한 분노는 아주 먼 옛날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져서 아직도 우리 머리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파충류의 뇌, 소위 뇌의 R-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감정의 중재와 기억의 관장은 진화의 가장 최근 단계 에서 발달한 포유류와 인간의 뇌, 즉 변연계와 대뇌 피질에서 이루어 진다. 그러므로 앞에서 이야기한 갈등은 파충류와 포유류의 뇌가 일으키는 대립의 소산인 셈이다.
현대로 오면서 기계 문명과 함께 전쟁 수단도 급격히 발달했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우리'도 많이 변했다. 이제 우리는 분노, 좌절, 절망 등의 동물적 격정을 이성의 힘으로 달랠 줄 알게 됐다. 인류는 최근에 벌어진 세계적 불의와 지역적 불의를 행성 규모에서 어느 정도는 개선할 수 있게 됐다.
-524
대량 살상용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최상의 임금을 받고 여러 가지의 특권을 즐기며 때로는 해당 분야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까지 누린다. 그런데다가 이 회사들의 고용 구조가 종업원들로 하여 금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않도록 짜여져 있다. 이 점이 무기 개발이 지속될 수 있는 하나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하겠다.
무기 개발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익명이 보장되고 철저히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들 중에서 군사 영역만이 시민의 감시가 미치기 가장 어려운 성역으로 남아 있다. 군수 산업체들은 종사자들에게 타 분야에 비해 월등한 보상을 주고 서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으스스한 결속으로 끼리끼리 끌어안고 산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류 생존에 반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떠밀리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529-530
강대국들은 항시 가상 적국이 가진 문화적 하자를 지적하고 그들이 저지를지 모르는 비이성적 행태를 상정하여 사람이 아직 갖고 있는 파충류의 뇌를 자극하는 데 유효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자국민을 파충류적 행동 기제로 몰고 가고는 한다.
외계에서 우주인들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우리는 현재 지구 곳곳에서 진행 중인 군비 경쟁의 당위성을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각각의 표적을 향해 배치된 수만 개의 핵탄두가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인류에게 주어진 행성 지구를 보호해야 할 임무는 어떻게 됐단 말인가?
-531
사람은 이상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조금이라도 다른 성격의 사회를 믿을 수 없는 기괴한 존재로 간주하며 그들을 심히 혐오하고는 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으면서 말이다.
인간은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548-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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