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이삼성. 한길사.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용어는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구조와 그것이 이 지역에서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방식과 그 고유성을 해명하기 위해 필자가 2000년대 초 이래 제기해온 개념이다. 그것은 태평양전쟁, 중국 내전,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세 개의 전쟁을 통해서 구성된 이래 오늘까지도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국체제는 중국이 동아시아질서의 중심을 이루던 천하체제를 대체한 것으로서, 일본과 미국이라는 동아시아 지정학 차원에서의 두 신흥 제국이 중심을 이루는 질서였다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달리 한반도와 동아시 아 전반에서는 긴장의 구조가 오히려 더 분명해져가던 1990년대 말부터 필자는 한반도 평화의 동아시아적 맥락에 대한 이론적•개념적 접근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제기는 그러한 동아시아의 전후 구조 인식에서의 개념적 공백을 메꾸려는 하나의 시도였으며,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전후 우리의 삶의 구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아시아적 전망의 내용을 채우려는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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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중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미국의 동아시아 경영이 일본과의 유서깊은 연합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미국과 영국의 방조하에 가능했고, 이후 일본은 명실상부한 제국 클럽의 일원이 된다. 미일 제국주의 연합의 두 번째 주요 요소는 '전략적 경제 동반자' 관계였다. 이 관계는 일본이 1930년대에 들어 '서양과의 연합' 국면을 지나 중국 본토에 대 한 전쟁을 본격화하는 국면에까지 이어진다. 1930년대 말 일본이 독일 나치스와 추축국 동맹을 맺고 마침내 미국을 향해 전쟁을 도발하기 얼마 전까지 미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의 바탕이 되는 전략물자들의 일차적인 공급망이었다. 난징학살이 진행된 1937년에서 1938년 초의 시점에서도 일본에 항공폭탄을 제공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1940년 1월 말까지도 미국은 일본에 석유와 폭탄의 주원료인 폐철 등 전쟁문자 수출을 계속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투하라는 두 개의 충격적인 사건은 근대 100년에 걸친 미일관계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는 결정 적인 이미지들로 작용해왔다. 그로써 일본과의 연합이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의 근저였다는 사실은 쉽게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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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신중국 사이에 갈등은 불가피했지만, 전쟁도 불사하는 대결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역사는 아직 열려 있었다. 1949년 여름과 가을 중국 공산당은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탐색했다. 미국은 그 해 10월 신중국과 외교관계를 거부하는 결정을 공표했고,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신중국과 관계를 맺는 것도 막았다. 마오쩌둥은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과 우호동맹조약을 협상한다. '기회의 창'은 그렇게 닫혀갔다
이로써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원형이 구성된다. 미국과 일본이 동일체가 되고, 내면에서 정체성이 전환된 중국대륙 사이에 대화 가능성이 사라지고
1) 지정학적 긴장
2)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으로 인한 긴장
3) 그리고 역사적 인식의 간극으로 인한 역사심리적 긴 장이라는 세 차원의 긴장 구조가 들어선다.
이와 동시에
1) 한반도와
2) 타이완해협에 소분단체제들이 모습을 갖추어가고
3) 인도차이나에서는 전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미일연합과 중국대륙 사이의 대분단 기축의 원형이 초기 국면의 소분단체제들과 상호작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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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정학적 차원
전후 동아시아를 '냉전체제'론이 아닌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의 한 가지 의미는 전후 동아시아 질서 재편성의 주된 동력을 미소관계가 아닌, 중국과 미일동맹의 관계에서 찾는 데 있다. 또한 냉전-탈냉전의 이분법을 넘어서, 그 두 시기를 관통하는 변화와 함께 본질적 연속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2)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으로 인한 긴장
1980년대 후반에 전개되는 동아시아 반공파시즘 정권들의 민주화 배경의 하나로 중국의 탈전체주의화와 시장화 혁명을 꼽을 수 있다.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긴장의 요소는 퇴색하되, 다른 내용의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이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긴장이 그것이다. 필리핀, 한국, 타이완 등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 사회들에서 전개된 민주화 물결은 1989년 중국의 톈안먼사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한반도 소분단체제에서 북한 핵문제가 대분단체제의 기축관계와 상호작용하며 긴장을 재충전시키듯이, 타이완해협의 소분단체제에서는 타이완의 독립 지향이 대분단 기축관계와 상호작용하며 긴장 재충전에 기여하게 된 것 이다.
(타이완이 문제라는 것처럼 들리네;;)
(3) 역사심리적 긴장
전후 동아시아를 전후 유럽의 냉전체제와 구분짓는 결정적인 차원. 전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가 유럽과 다른 고유성의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대분단체제에서 역사심리적 긴장은 일본과 중국의 관계에만 그치지 않고 미일동맹과 중국의 문제가 된다. 대분단체제는 미국이 중일 사이의 역사심리적 긴장을 자기화하는 장치다. 첫째,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세계라는 초국적 이념공동체에서 일본은 역사반성의 책임을 면제받았다. 둘째, 미일동맹의 존재조건은 일본의 과거에 대한 역사 담론을 억압하고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하는 이념 담론을 부각하는 데 있다.
탈냉전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역사심리적 긴장을 해체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면에 위치시켰다. 탈냉전은 이념 담론의 퇴장을 의미했다. 그 공백을 역사 담론이 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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