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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브 아차리아, <21세기 지정학>

딸기21 2026. 8. 9. 16:43

21세기 지정학 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
아미타브 아차리아, 최준영 옮김, 21세기북스(2026)


미국 패권(혹은 서구의 지배)이 쇠퇴하고 중국이 뜨면 세계가 망할 것처럼 떠드는 서구를 향한, 인도계 미국인 학자의 일갈. 저자의 논의에 동의하든 안 하든, 이래서 학문이든 무엇이든 다원성, 다양한 시각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듯.
서구가 현재의 국제정치의 모든 걸 다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1) 고대 근동에 비엔나 체제 비슷한 강대국 클럽과 외교 시스템이 있었고 2) 그리스를 서구의 뿌리라 예찬하지만 지금의 유럽보다는 페르시아와 상호작용한 체제였으며 3) 인도 아쇼카왕읜 관용의 정치를 보여줬고 4) 중국에는 백가쟁명이 있었으며 5) 이슬람이 보전한 과학과 철학은 유럽 계몽주의의 모태였고 6) 현대 국제정치의 인권과 개발 등등 아이디어에도 비서구가 기여했다는 역사적 예시를 통해 반박한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은
1) 모든 문명들은 지금처럼 세계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상호작용을 했고 서로 보고 배웠다. 그걸 부인하고 서구만 강조하니 역사적 선례들에 무지하게 되며, 지금의 세계를 만드는데 비서구가 기여한 것(때로는 착취를 당함으로써)과 현대의 발전에 기여한 것조차 못 보게 된다.
2) 그리고 미국과 서구가 만들고 떠받쳤다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도 실제론 폭력적이고 착취적이고 나쁜 거 엄청 많았다. 그니까 미국이 쇠퇴하면 세계가 아수라장 될 거라며 호들갑 떨 필요 없다. 중국이 권위주의적이라 해서 세계를 독재국가로 만들려는 세력인 양 과장하지 마라. 다른 나라들은 다 손놓고 있느냐.  
3) 아마도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한 뒤 세계는 강대국 일국 패권도, 몇몇 강대국 다극체제도 아닌 멀티플렉스로 갈 거다. 국가 뿐 아니라 기업과 시민사회가 다 관여하는. 미국/서구 지배보다 오히려 공평해질 거다.

잼나게 읽었다.



미국과 서구 지배의 종말이 정말로 그렇게 나쁠까?
나는 특히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비서구 강대국들의 부상에 대한 서구의 두려움이 항상 과장되어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서구 우월주의 자체가 불안정, 불의, 무질서를 크게 초래했으며, 이러한 문제들이 서구의 쇠퇴로 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리는 국가 간의 협력과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 구조인 세계질서가 서구의 부상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우리가 서구의 발명품이라고 가정하는 많은 사상이 실제로는 다른 문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비서구 문명들도 평화, 협력, 도덕을 위한 메커니즘을 제공했으며, 이러한 사상들 중 상당수는 서구의 부상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규칙 기반 질서는 서구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새롭거나 미국적인 혹은 서구적인 것이 아니다.
-10-11

BCE 1352~BCE 1336년 바빌론, 하티, 이집트, 미탄니, 아시리아 간의 상호 교류는 일부 학자들이 '아마르나 외교 Amarma diplomacy'라고 칭하는 외교체제를 구성했다. 이 체제는 두 세기 동안 주요 강대국들 간의 전쟁을 방지하는 데 성공했다. 부분적으로는 그들 중 군사적으로 우세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속적 평화는 또한 공통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촉진한 호혜성과 평등의 규범 덕분이기도 했다. 3000년 이상이 지난 후, '문명화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다소 유사한 개념이 유럽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아마르나 시대에는, 유럽 문명 개념과 세계질서 사상의 근본이 될 인종적 편견의 증거는 없다.
-48-49

인도는
1) 문명이 정복이나 강압 없이도 어떻게 종교와 정치 사상을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지 놀라운 예시를 제공한다.
2) BCE600년경 인도 북쪽에는 '마하자나파다스Mahajanapadas'라고 하는 16개의 정치체가 있었다. 이 중 세습 귀족이 통치하는 다섯 곳을 '가나상가 gana-sanghas'"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공화정 체제였다. 통치자를 선택하는 방법은 주로 동료 귀족들이 행하는 선거였는데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및 로마 공화정의 방식과 다소 유사하다.
-90-91

유럽 계몽주의 시기, 공자의 저작을 포함한 많은 중국 서적들이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라이프니츠, 볼테르, 프랑수아 케네, 크리스티안 볼프,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등의 계몽주의 사상가들도 중국 그리고 그들의 철학과 경제에 대한 사상에 존경을 보냈다. 중국은 세습 봉건 귀족에 의존하던 유럽과는 달리 공개적 경쟁인 과거 시험으로 선발하는 관료제를 통해 황제가 통치하는 정치체제였다.
윌리엄 맥닐은 걸작 《서구의 부상The Rise of the West》에 다음과 같이 썼다. "도덕이 계시 종교에 의존하지 않는 중국 현자들의 모습 (~) 그리고 중국 사회의 시민 의식 (••) 세습 귀족의 부재와 공개 시험을 통한 정부 관직 임용 원칙은 모두 18세기, 특히 프랑스에서 점차 확산된 급진적인 사상 운동에 잘 부합했다. 볼테르와 일부 철학자들에게 중국은 유럽에 제시할 모델이 되었다.“
-138-139

로마는 안정적 평화를 위해서는 지배적 세력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근대적 사상을 낳았다. 오늘날 '헤게모니 안정 이론'이라는 정치학 용어로 알려져 있는 이 사상은 로마에서 19세기 후반 영국으로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공화정이든 제국이든 고대 로마는 서구의 역할 모델로 남아 있으며, 고대 그리스와 함께 서구 문명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이는 로마를 낭만적으로 이상화하는 동시에 페르시아, 인도, 중국 등 덜 지배적인 세계질서 시스템이 제시하는 로마식 통치 방식에 대한 대안들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구의 상상 속에서, 5세기 서방 로마 제국의 종말은 유럽의 암흑시대를 열었다.
-167-168

1235년 말리 제국을 건국한 순디아타 케이타는 〈만뎅 헌장〉으로 알려진 일련규칙을 선포했다. 유네스코가 요약한 내용에 따르면 그 조항들 중에는 "다양성 속의 사회 평화, 인간의 불가침성, 교육, 조국의 통합, 식량 안보, 약탈(또는 습격)을 통한 노예제도 폐지, 표현 및 무역의 자유"가 있다.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와 거의 같은 시기였다. 〈마그나 카르타>와는 달리 <만뎅 헌장〉은 교황이라는 상위 권위가 무효화할 수 없었다.
-266-267

식민지 내 민족주의적 시위와 저항 그리고 '제3세계'로 알려진 반식민 국제연합이 없었다면 유럽의 도덕적 혐오감과 경제적 피로만으로 식민지화를 종식시 켰을지는 의문이다. 뉴델리, 반둥, 아크라, 카이로, 베오그라드 … 이 도시들은 런던, 파리, 워싱턴 DC, 샌프란시스코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제국주의, 인종차별주의, 노예제도에 기반을 둔 유럽 세계질서는 주로 외부가 아닌 식민지 내부로부터 발생한 이러한 세력에 대한 저항 때문에 종식되었다.
-327

5일간의 반둥 회의 기간에 공식 대표단보다 더 많은 서구 스파이들이 몰려들었다는 말이 있다. 나는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의 방대한 정보 보고서들을 수집했는데 지금은 기밀 해제된 이 보고서들은 이러한 관찰 내용을 뒷받 침한다. 이 보고서들은 많은 것을 드러낸다.
영국은 가나 지도자 은크루마의 참석을 막았다. 정권에 입막음을 당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참관인 두 명만 보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메모는 영국이 미국의 승인하에 실론, 필리핀, 튀르키에 같은 '우호적'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공산주의 식민주의'와 공산 세 계의 종교의 자유 부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인도와 중국이 추진한 ‘평화 공존 5원칙'을 거부하도록 조언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반둥에 모인 국가들은 대규모 국제회의 운영 경험이 거의 없고 세계 정치에 독립적으로 참여한 지 몇십 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다섯 개 회의 주최국 중 어느 곳의 통제도 거부하는 회의를 조직했으며,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이 회의는 아시아-아프리카 간 합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반둥은 파리드 자카리아가 홋날 '나머지의 부상 the rise of the Rest'이라고 부르게 될,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현상 중 하나였다.
-366-367

식민지에서의 민족주의는 식민지인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유럽 사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혁명 운동에서 비롯되었으며, 운동을 이끈 다수는 현지 지도자들이었고 평범한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많은 이들은 식민 세력들이 세운 현지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식민지 관료 체제에 합류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사람 중 하나가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의 고전 소설 《인간의 대지This Barth of Mankind》 속 냐이Nyai(노인 여성이나 할머니에 대한 존칭) 온토소로다.
냐이는 "나는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 "유럽인들을 존경하라고 배운 적도 없어.”
요컨대, 민족주의와 민족자결이라는 유럽 사상이 반식민 저항에 영감을 주었을 수도 있지만 식민지에서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외세의 통치와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서 자체적으로 발생했다. 그리고 그 내용과 실체는 압도적으로 현지에 기반했다. 스페인에서 유학한 필리핀 민족주의자 호세 리잘, 케임브리지에서 교육받은 자와할랄 네루, 네덜란드가 설립한 공과대학교에서 교육받은 수카르노 등 해외 유학파 지도자들 뒤에는 문맹인 밍케의 장모 같은 수많은 대중이 있었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식민지 언어로 된 서적이나 신문을 읽으면서 '상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 세계 경험, 즉 비참하고 소외된 일상생활에서 비롯되었다.
-373-374

식민지 세계에서 나타난 민족주의와 세계질서에 대한 비전은 그들이 식민 세력을 통해 배운 것이라기보다 그들이 식민주의에 저항한 결과였다. 그들은 서구의 이상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 중심 세계질서의 어두운 진실을 인식하는 데 기반을 두었다. 그들에게는 과거와 현재의 비서구적 문명의 기여를 고려하는 더욱 진보적이고 보편적인 비전이 있었다.
아이티 대표단 단장이던 제라르 레스코는 1945년 유엔 헌장 초안 작성을 위한 샌프란시스코회의에서 인종차별 금지가 '주권 평등'과 동일한 비중을 가져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요구하며 드물게 목소리를 낸 인물이었다.
반둥은 처음부터 끝까지 식민주의, 인권, 인종차별주의 간의 본질적 연관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반둥회의는 부정적 에너지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그것은 탈식민지 시대 세계질서의 비전에 대한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창을 열었다. 그러한 비전은 탈식민지화와 인종 평등뿐 아니라 인권,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 배타적인 군사 동맹 가입이 아닌 유엔을 통한 집단 안보 그리고 세계 문명들 간의 우애를 강조했다.
-381-384

제3세계 국가들은 최소한 세 가지 방식으로 글로벌 의사 결정 원칙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인권, 국제개발, 인도주의적 개입 및 그 파생물인 보호책임(R2P)이다.
1) 학자이면서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기 이전에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평춘 창과 후일 레바논 외무장관을 지낸 찰스 말리크는 각각 유엔인권위원회 UNCHR 부의장과 보고관을 역임했으며,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의 진정한 숨은 영웅은 인도의 여성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 작가 그리고 위원회 위원이었던 한사 메타였다. 모두 백인 남성이 대표였던 영국, 프랑스, 호주가 제안한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원래 문구는 <미국 독립선언>에서 직접 차용한 "모든 남성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였다. 메타는 최종 〈세계인권선언〉 본문에 사용된 다음 문구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에 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
메타의 동료이자 변호사 및 정치인이었던 미노처(미누) 마사니도 〈세계인권선언〉의 반인종차별주의 규범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의 개입 덕분에 인종에 기반한 차별 금지를 규정한 제2조에서 피부색을 인종에 추가할 수 있었다.
오늘날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웹페이지는 루스벨트 여사를 찬양한다. 유엔 사무국 인권 부문을 이끈 캐나다인 존 프리는 선언의 청사진을 준비한" 것으로, 프랑스인 르네 카상은 "선언의 첫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메타와 마사니는 이곳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386-387

국제개발은 비서구 국가들이 큰 역할을 한 또 다른 사상이다. 통상적으로는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 같은 서구 지도자들을 국제개발 원조의 설계자로 본다. 그런데 국제개발의 원칙은 그보다 훨씬 먼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등장했다.
1) 1918년, 트루먼의 연설보다 30년 이상 앞서 중국 지도자 쑨원은 국제개발기구 창설을 제안하는 책을 출간했다.
2) 국제개발을 위한 대부 기관 설립에 대한 아이디어 일부는 미주은행IAB에 관한 논의에서 나왔으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에서 상당한 권력을 휘두르던 영국은 그러한 기관에 반대했으며, 대형 미국 은행들은 이 제안을 무산시키도록 미국 의회에 로비를 했다. 비록 미주은행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미국 관리들은 훗날 세계은행의 전신인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설립 조건을 마련할 때 그 아이디어들을 활용했다.
3) 동아시아의 기적에 IMF 또는 세계은행의 공로는 별로 없었다.
-388-389

비서구 세계에서 등장한 최근의 혁명적 경제 사상은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이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공로를 파키스탄 경제학자 마흐부브 울 하크에게 상당 부분 돌릴 수 있는데 그는 인간개발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된 인간 안보human security 개념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하크는 진정한 발전은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그 질과 분배에 달려 있다며, 높은 경제성장이 항상 사람들에게까지 내려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적 측면에서 아마르티아 센의 지원을 받았다. 캐나다, 일본, 노르웨이 등 많은 선진국들은 인간 안보 개념을 매력적으로 여기고 전후 외교 정책 접근 방식을 개발하는 데 차용했다.
-390-391

보호책임 개념의 기원은 전적으로 서구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한 개념이 탈식민지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프리카단결기구OAU는 1963년에 설립되었으며 비개입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내부 갈등을 처리할 권한을 주지 않는 이 규범에 좌절하기 시작했다. 비개입 원칙에 발목이 잡혀 있던 아프리카단결기구는 해체되고 1999년 아프리카연합AU으로 재탄생했다. 넬슨 만델라 같은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주도해서 만든 새로운 조직의 헌장에는 대량 학살이나 유혈 내전을 겪는 국가에 개입이 가능하다는 명시적 권한이 포함되었다. 아프리카연합은 <유엔헌장>조차 실패한 '인도주의적 개입'을 창립 헌장에 명시적으로 포함한 세계 최초의 다자 조직이 됐다.
이 의제를 추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외교관들 중 주목할 만한 인물은 수단 출신으로 훗날 남수단 외교관이 된 프랜시스 뎅이었다. 그의 작업과 연구 결과는 1996년 책 《책임으로서의 주권Sovereignty as Responsibility》으로 결실을 맺었다.
책임 있는 주권 개념은 '국제개입 및 국가주권위원회ICISs' 보고서에 가장 잘 표현되었다. 이 위원회의 공동의장 중 한 명은 아프리카단결기구와 아랍연맹, 유엔에서 근무한 알제리 외교관 모하메드 사흐눈이었다. 위원회의 또 다른 핵심 구성원은 인도 태생 라메시 타쿠르 교수로, 보호책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학계의 주목을 받게 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만델라 같은 지도자들의 지지는 보호책임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392-395

-요약하면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비서구 국가들은 식민지화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발전, 안보, 협력 증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라는 개념이 포착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서구가 여전히 자신들의 사상과 리더십을 찬양하는 세계질서의 서사를 통제하고 있지만 나머지 세계는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더욱 강력해졌다.
-403

이 책에서 나는 세 가지 큰 주장을 펼쳤다.
1) 세계질서, 즉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권력 구조, 경제적 연결, 정치 사상,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 단일국가나 문명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대부분 공동의 과업이다.
현대 세계질서의 공동 창조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낙관주의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서구가 쇠퇴하더라도 인간적이고 안정적이며 기능적인 세계질서가 가능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 다가오는 세계질서는 다문명적일 것이며 중국, 인도 또는 부활하는 미국 같은 어떤 단일국가나 서구, NATO, 유럽연합, BRICS 같은 어떤 국가 집단의 지배도 받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지배적 글로벌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 경쟁하는 강대국들이 전 세계적 규모로 안보와 질서를 형성하는 다극화된 세계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큰 국가, 중소 국가 그리고 일부 혁신적인 작은 국가뿐 아니라 정부, 기업, 시민 단체를 통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힘을 얻고 새로운 형태의 상호 의존성과 상호작용을 활용하여 세계질서를 형성하는 '글로벌 멀티플렉스‘로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다.
3) 이 탈서구적 질서가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두려워해야 할 재앙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질서 유지에 미국 같은 최고 권력이나 서구 같은 일부 국가 집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서는 세계 여러 곳에서 등장한 근본 사상과 제도에 기반을 둔다. 더 나아가, 이 책은 서구 지배의 종식이 실제로는 세계 전체에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세계질서에서는 약탈적 식민지화, 폭력, 인종차별주의, 불의로 인해 나머지 세계를 희생시키면서 서구에 불균형적으로 주된 혜택이 돌아갔다. ‘나머지 세계‘의 귀환을 바라볼 세계질서는 더욱 공평하고 상호 존중하는 글로벌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다.
-404-407

윌리엄 맥닐, 헨리 키신저, 니얼 퍼거슨의 책들이 지배하는 서구의 문명사 저작물에 비견될 만한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비서구 출판사도 서구나 나머지 세계에서 널리 사용할 역사 교과서를 제작한 적이 없다. 영어로 출간되고, 비서구 학자가 집필하고, 주요 국제 출판사가 출판 한 세계 주요 문명의 비교역사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븐 할둔의 저작이 아마도 그런 작품 가운데 마지막일 것이다.
국제 관계(IR) 분야는 비서구의 소외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시이다. 학문 분야로서의 IR은 영국이 세계 최대의 식민 제국이었을 때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학문은 미국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IR 이론과 서사, 교육, 연구에 대한 미국의 지배는 너무나 완전해서 하버드대학교 교수였던 고 스탠리 호프만은 IR을 "미국 사회과학"이라고 불렀으며, 그로부터 몇십 년 후에도 이 별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IR의 서구 중심적 서사는 그 범위가 전 세계적이다. 이 책은 이러한 낡은 학파를 끝내고, 세계질서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핵심 주장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학파를 설립할 것을 촉구한다.
-4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