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Capitalism & Modern Social Theory
앤서니 기든스. 박노영, 임영일 옮김. 한길사. 8/17

매우 매우 재미있었다.
내년엔 자본론과 분업론을 읽어야겠다.
아직은 읽지 않았으니까 그 책들에 대한 기든스의 독해는 나중에 다시 곱씹어보도록 하고, 일단 뒤르켕과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해석들 스크랩.
전통사회란 끊임없이 과거를 되돌아보는, 그리고 과거가 그 사회의 현재인. 그런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역사' 자체에 대한 관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과학이 존재하려면 변화가 편재하는 세계, 특히 과거가 어느 정도 사람들이 벗어나고자 애쓰는 질곡이 되어버린 세계가 그 전제조건이 된다.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이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면, 산업화 시기의 유럽은 사회학 탄생의 조건을 제공했다. … 그러나 늦은 18세기 이래 서구의 여러 나라의 경험이 얼마나 서로 달랐던가를 기억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 는 19세기에 있었던 사회사상의 주요 흐름의 형성이 바로 이 차이점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38-39
베버의 해석이 갖는 참신함은 종교개혁과 근대 자본주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베버의 저작이 나오기 이전에 많은 학자들이 이미 그런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상정했다. 주로 엥겔스의 저작에서 유래한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은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의 초기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적 변동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이라고 보았다.
베버는 이 관점이 부적절하다고 보면서 명백히 드러나는 하나의 변칙적인 현상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데, 이 변칙적 현상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독창성을 이룬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일상적 활동들에 대한 교회의 통제를 완화하기보다는 신도들에게 가톨릭보다 훨씬 더 엄격한 규율을 요구했고, 신도들의 모든 생활영역 속 에 종교적 요인을 주입했다. 행동에 관한 프로테스탄트교의 믿음들과 계율들의 특징은 경제 활동을 고무시킬 것처럼 보임직한 첫인상과는 전혀 다르다. 이 변칙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내용 분석과 그것이 신도들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의 평가는 물론, 경제활동의 한 형태로서 근대 서구 자본주의의 특정 특징들을 적시해서 밝히는 것도 필요하다.
“돈벌이는 더 이상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그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 인간을 지배한다.“(베버)
-250-252
‘당위'에 관한 모든 판단은 어떤 특수한 목적이나 일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채택되는 ’수단'의 측면으로 분해 해볼 수 있다.
과학적 분석은 특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존의 수단들이 적합한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266
정치적 행동은 '궁극적 목적윤리'(ethic of ultimate ends, Gesinnungsethik)에 의해 지향될 수도 있고 책임윤리 (ethic of responsibility, Verantwortungsethik)에 의해 지향될 수 도 있다. 궁극적 목적윤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정치적 행동이 이상의 수호를 향하게 하며, 수단에 관한 합리적 계산은 안중에 두지 않는다.
그런 행위는 결국 성격상 '종교적‘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종교적 행동과 일부 속성들을 공유한다. 궁극적 목적윤리 지향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유일한 의무는 자기 의도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일 뿐이라고 믿는다.
반면 책임윤리는 베버가 간혹 '결과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식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어떤 행위의 실제 결과는 의도했던 것과는 매우 다를 수도 있다. 이 점을 아는 정치적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가 전적으로 동기의 순수성에 의해서 통제되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에 비추어 행위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에 관한 합리적 계산에 의해서 통제되게 한다.
책임 윤리의 추구와 실용주의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철학으로서 실용주의는 특정 시점에서 실행 가능한 것을 진리로 파악한다. 그러나 베버는 실행 가능성을 '진리'의 척도로 취급하지 않는다.
-269-270
서구 자본주의의 형성 및 그것과 결부된 합리주의는 이 역사적 사건들(의 특정 측면들)이 일반적인 원리들, 법칙 비슷한 원리들로 그럴듯하게 포괄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들이 우리에게 중요해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것들의 독특성이다.
우주의 속성들의 일반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태양계는 전혀 중요할 것이 없다. 태양계에 대한 우의 관심은 우주의 바로 그 부분에 지구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이 사실은 법칙적(nomothetic) 지식과 표의적(ideographic) 지식의 분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구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주어진 법칙의 관점에서는 '우연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두고도 그 사건과 선행사건들과의 인과적 연결을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캐볼 수 있다.
-273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가 비범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권위의 근거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진짜임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카리스마적 권위에 복속된 자들의 의무라고 하는 생각 속에 있다."
상설적인 조직 형태와는 달리 카리스마 운동은 체계적으로 조직된 경제적 지원 수단이 전혀 없다. 수입은 이런저런 기부금, 또는 약탈을 통해 충당된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과거를 부정하며, 그런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다." 베버에 의하면 이것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카리스마 운동이 내세우는 이상들은 기존 지배체제의 이상들과 결부되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거듭되는 일상에 대한 혐오 때문에, 카리스마는 얼마간이든 좀 오랫 동안 존속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심한 변용을 거친다. 카리스마의 '일상화‘(routinization, Veralltaglichung)는 카리스마적 권위가 전통적 조직이나 합법적 조직으로 이전되는 것을 수반한다. 일상화의 결과 나타나는 권위 관계의 유형은 '승계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따라 대강 정해진다.
카리스마적 지배가 일상적이고 전통적인 형태로 변질되면 권력 장악자의 지위를 신성하게 정당화해주는 원천이 되며, 이런 식으로 카리스마는 사회생활 속의 한 요소로서 존속한다.
-309-310
관료제 국가의 성장은 정치적 민주화와 밀접히 연관되면서 진행된다. 민주주의자들의 평등 요구가 필연적으로 특권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복잡한 행정적•법적 규정들 의 탄생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관료제화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근대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가장 뿌리 깊은 긴장의 원천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낸다. 근대국가 내에서 민주적 권리 들의 확장은 새로운 관료제적 규제들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지만, 민주주의와 관료제는 기본적으로 대립적이기 때문이다. 베버에게 이것은 사회적 행위의 형식합리성과 실질합리성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모순의 가장 통렬한 예다.
즉 특권의 소멸에 도움이 되는 추상적인 법률 절차들의 성장 자체가 어떤 측면에서는 이전의 것들보다 더욱 '자의적'이고 자동적인 새로운 형태의 견고한 독점을 재도입한다는 것이다. 관료제적 조직은 학력에 따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비인격적으로 직원을 뽑아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요구에 의해 촉진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자리가 외부의 특권적 개인들이나 집단들의 영향으로부터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욱 더 총괄적인 행정권력 을 갖게 되는 관리층을 만들어낸다.
-339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내부적 결속과 경제적 발전을 성공적으로 촉진시키는 가운데 휘둘렀던 정치적 권력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베버의 접근, 나아가서는 그의 사회학 전반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 중의 하나다. 정치권력 행사의 실재성을 인정하려는 이 확고한 입장은 고전적인 유럽 자유주의의 가치들에 대한 확고한 집착과 대립된다. 이것이 베버의 많은 저작에서 그렇게나 강하게 드러나는 비애감 (pathos)을 낳은 주요인이다. 그는 근대사회의 전형적인 발전 노선과 자기가 서양문화의 특징적 에토스라고 여기는 가치들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발견한다.
-357
카리스마적인 혁신의 요점은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점에 있다. 지도자의 비상한 자질들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런 혁신적 행위는 지도자에 대한 카리스마적 애착이라는 비합리적 특성에 의거하므로 새로이 만들어지는 규범들은 당시의 사회변동이나 경제변동으로부터 '추론'될 수 없다.
베버에게는 주어진 어떤 이상들에 대한 집착은 그 이상들이 종교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 든, 또는 다른 어떤 무엇이든 간에, 그 이상들 자체의 내용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 있는 이해관계를 산출한다.
-394-395
뒤르케과 베버는 모두 근대적인 사회형태는 계급사회임을 인정하지만 이 계급분화를 본질적 특성이라고 보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뒤르켕의 생각으로는 '강제적 분업은 '비정상적 형태'이긴 하지만 반드시 사회적 분화의 확대 그 자체의 필수적 결과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계급투쟁은 계급제도가 타고난 재능의 배분과 일치하지 않거나 또는 더 이상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의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계급 갈등의 발생을 설명해주 는 것은 주로 부당한 계약을 강요하기 위한 경제력의 행사이다. 근대사회의 기본적인 조직원리는 유산자와 무산자의 계급체계로서 '자본주의적' 성격에서가 아니라 협동적인 직업적 분야들의 '유기적‘ 전문화에서 볼 수 있다.
뒤르켕의 입장에서 보면, 마르크스가 계급구조를 분업 속의 개인소외와 연결짓는 것은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435
마르크스주의의 술어로 말하자면, 뒤르켕과 베버 모두
'부르주아적인' 정치적 입장에 빠져 있지만, 그것이 그들 저작의 내용이 틀렸다고 쉽게 결론짓고 무시해버릴 합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뒤르켕과 베버의 정치적 견해들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전통적인 구별에 따라서 범주화하기 어렵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뒤르켕과 베버의 저작들은 한편의 낭만적 과잉민족주의적 보수주의와 다른 한편의 혁명적 사회주의로부터 주어지는 쌍둥이 압력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주의를 방어하려는, 또는 재해석하려는 시도에서 비롯 된 것이다. … 결과는 마르크스의 저작이 뒤르켕과 베버의 저작과 후자의 두 사람이 분명하게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몇몇 차이점은 근대 사회에서 일어나 는 분업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분화로 이해되는 분업-의 성장이 가져온 결과들에 관한 상이한 해석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44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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