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이삼성. 한길사.

길지만 밀도 있는 책이었다!!!
방대한 듯하지만 논지가 명료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신다.
대체로 오래된 글들이라,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고 중국의 권위주의화가 심해지고 미국이 개판;;을 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분석이 궁그뫄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용어는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구조와 그것이 이 지역에서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방식과 그 고유성을 해명하기 위해 필자가 2000년대 초 이래 제기해온 개념이다. 그것은 태평양전쟁, 중국 내전,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세 개의 전쟁을 통해서 구성된 이래 오늘까지도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동아시아 제국체제는 중국이 동아시아질서의 중심을 이루던 천하체제를 대체한 것으로서, 일본과 미국이라는 동아시아 지정학 차원에서의 두 신흥 제국이 중심을 이루는 질서였다.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달리 한반도와 동아시 아 전반에서는 긴장의 구조가 오히려 더 분명해져가던 1990년대 말부터 필자는 한반도 평화의 동아시아적 맥락에 대한 이론적•개념적 접근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제기는 그러한 동아시아의 전후 구조 인식에서의 개념적 공백을 메꾸려는 하나의 시도였으며,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전후 우리의 삶의 구조에 대한 우리 자신의 아시아적 전망의 내용을 채우려는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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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중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미국의 동아시아 경영이 일본과의 유서깊은 연합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미국과 영국의 방조하에 가능했고, 이후 일본은 명실상부한 제국 클럽의 일원이 된다. 미일 제국주의 연합의 두 번째 주요 요소는 '전략적 경제 동반자' 관계였다. 1930년대 말 일본이 독일 나치스와 추축국 동맹을 맺고 마침내 미국을 향해 전쟁을 도발하기 얼마 전까지 미국은 일본의 중국 침략의 바탕이 되는 전략물자들의 일차적인 공급망이었다. 난징학살이 진행된 1937년에서 1938년 초의 시점에서도 일본에 항공폭탄을 제공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1940년 1월 말까지도 미국은 일본에 석유와 폭탄의 주원료인 폐철 등 전쟁문자 수출을 계속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투하라는 두 개의 충격적인 사건은 근대 100년에 걸친 미일관계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는 결정 적인 이미지들로 작용해왔다. 그로써 일본과의 연합이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의 근저였다는 사실은 쉽게 가려진다.
-40-41
미국과 신중국 사이에 갈등은 불가피했지만, 전쟁도 불사하는 대결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역사는 아직 열려 있었다. 1949년 여름과 가을 중국 공산당은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탐색했다. 미국은 그 해 10월 신중국과 외교관계를 거부하는 결정을 공표했고,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신중국과 관계를 맺는 것도 막았다. 마오쩌둥은 그해 12월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과 우호동맹조약을 협상한다. '기회의 창'은 그렇게 닫혀갔다
이로써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원형이 구성된다. 미국과 일본이 동일체가 되고, 내면에서 정체성이 전환된 중국대륙 사이에 대화 가능성이 사라지고
1) 지정학적 긴장
2)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으로 인한 긴장
3) 그리고 역사적 인식의 간극으로 인한 역사심리적 긴 장이라는 세 차원의 긴장 구조가 들어선다.
이와 동시에
1) 한반도와
2) 타이완해협에 소분단체제들이 모습을 갖추어가고
3) 인도차이나에서는 전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미일연합과 중국대륙 사이의 대분단 기축의 원형이 초기 국면의 소분단체제들과 상호작용하기 시작한다.
-42
어떤 질서를 '체제'로 정의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체제를 구성하는 단위들에 대한 개념화, 그리고 단위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속성 있는 상호작용 패턴의 확인이다. 대분단체제론은 첫째, 이 질서 속 갈등구조의 중층성을 주목한다. 우선 중국대륙과 미일동맹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대분단의 기축으로 정의한다. 그다음 한반도와 타이완해협, 그리고 1975년까지 베트남에 존재했던 분단 상태를 민족분단 또는 '소분단'들로 정의한다. 둘째, '대분단의 기축'을 구성하는 세 가지 차원의 긴장 요소들을 주목한다. 지정학적 긴장, 정치사회적 체제 와 이념의 긴장, 그리고 역사심리적 긴장이다.
-447
(1) 지정학적 차원
전후 동아시아를 '냉전체제'론이 아닌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의 한 가지 의미는 전후 동아시아 질서 재편성의 주된 동력을 미소관계가 아닌, 중국과 미일동맹의 관계에서 찾는 데 있다. 또한 냉전-탈냉전의 이분법을 넘어서, 그 두 시기를 관통하는 변화와 함께 본질적 연속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2)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으로 인한 긴장
1980년대 후반에 전개되는 동아시아 반공파시즘 정권들의 민주화 배경의 하나로 중국의 탈전체주의화와 시장화 혁명을 꼽을 수 있다. 그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긴장의 요소는 퇴색하되, 다른 내용의 정치사회적 체제와 이념의 이질성이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긴장이 그것이다. 필리핀, 한국, 타이완 등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 사회들에서 전개된 민주화 물결은 1989년 중국의 톈안먼사태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한반도 소분단체제에서 북한 핵문제가 대분단체제의 기축관계와 상호작용하며 긴장을 재충전시키듯이, 타이완해협의 소분단체제에서는 타이완의 독립 지향이 대분단 기축관계와 상호작용하며 긴장 재충전에 기여하게 된 것 이다.
(타이완이 문제라는 것처럼 들리네;;)
(3) 역사심리적 긴장
전후 동아시아를 전후 유럽의 냉전체제와 구분짓는 결정적인 차원. 전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가 유럽과 다른 고유성의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대분단체제에서 역사심리적 긴장은 일본과 중국의 관계에만 그치지 않고 미일동맹과 중국의 문제가 된다. 대분단체제는 미국이 중일 사이의 역사심리적 긴장을 자기화하는 장치다. 첫째,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세계라는 초국적 이념공동체에서 일본은 역사반성의 책임을 면제받았다. 둘째, 미일동맹의 존재조건은 일본의 과거에 대한 역사 담론을 억압하고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하는 이념 담론을 부각하는 데 있다.
탈냉전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역사심리적 긴장을 해체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면에 위치시켰다. 탈냉전은 이념 담론의 퇴장을 의미했다. 그 공백을 역사 담론이 메꾸었다.
-43-48
러시아 사회의 권위주의적 속성은 지정학적 중간지대 사회들의 친서방 지향을 강화시키면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기 의식을 고조시킨다.
서방에 대한 러시아의 저항과 도전은 2010년대에 들어 활성화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긴장 심화라는 맥락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다. 상하이협력기구로 표상되는 유라시아대륙연합의 존재를 전제로 할 때만 2014년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대담한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198
(전체적으로 배운 게 정말 많은 책이지만 미국 책임으로 모든 걸 설명하면서 ‘미국의 적’들에는 대단히 관대하게 구조적, 지정학적으로먼 설명하는 경향.)
역사심리적 인식
‘진정한 반성을 거부하는 일본'이라는 현상은 일본의 문제인 동시에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객관적인 질서의 구조적 문제다. 이 질서의 중심축의 하나인 미일동맹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라는 원죄와 미국의 대일본 원폭투하라는 반인도적 응징이 서로를 상쇄하면서 동맹의 심리적 기초를 마련했다. 역사적 가해와 고통의 상환 방정식 위에 미일동맹이 서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동맹을 통해서 특히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이웃 사회들에 대한 일본의 역사반성의 필요성을 면탈했다. 이로써 미국은 중일 사이 의 역사심리적 긴장을 자기화했다.
-179
나라들 혹은 사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문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 간 폭력'(inter-Social violence)과 그로 인한 '집단적인 역사심리적 상처'(collective historico-psychological scars)가 효과적으로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면서 사회들 사이에 긴장 과 갈등의 요인으로 남은 것을 가리킨다.
이 역사 문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한 사회가 다른 사회들에 대 해 평화와 인도를 해친 폭력의 크기와 양상이다. 역사문제의 원천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전후에 그 폭력에 관해서 가해국 사회와 피해국 사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인식의 간극이다. 이 간극은 가해자 국가와 사회의 '역사반성'의 충분성 여부를 둘러싼 갈등으로 존재하게 된다. 역사반성에는 사죄와 배상 요구에 대한 수용성(responsiveness)이 포함된다.
동아시아 사회들에서 일본의 과거에 대한 원한의 깊이는 일본의 범죄가 전개된 과거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맥락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또 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부정의 태도는 전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영향이 크다.
-283-284
다나카 유키(Yuki Tanaka)가 지적했듯이, 독일이 제노사이드에서 우세를 보인다면, 일본은 특히 전쟁 기간 중 전쟁포로들에게 가한 폭력에서 예외적이었다. (대규모) 포로처형이라는 불법행위를 2차 대전 중에 범한 군대는 "일본군 외에는 예가 없다.
왜 일본군만이 그러한 폭력성을 발휘했는가. 다나카는 메이지 시대 말기와 타이쇼 시대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점차 강화되어가고 있던 사실에서 주요 원인을 찾는다. 일본인의 고유한 민족성의 발로가 아니라, 특정 시대 특정한 정치질서가 빚어낸 특정한 역사적 시대적 조건의 결과였다고 인식한다.
우쓰미 아이코는 일본 군대 안에서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던, 일본 군인 자신들이 '포로가 될 경우'에 관한 행동지침에 주목했다. 특히 그 시대 일본 군대가 군인들에게 주입시킨 이데올로기적 세뇌 양상에 초점을 맞춘다.
-287-288
피해자로서의 역사인식을 공유한 정치공동체들은 모두 분열된 채로 각각 이질적인 초국적 이념공동체에 편입되었다. 이 상황이 전후 동아시아질서에 미친 결과는 세 가 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가해자 정치공동체의 통일된 역사의식은 새롭게 속한 초국적 이념공동체에 의해 보호받았다.
2) 피해자 정치공동체들 내부의 이념적 분열로 인해 이들 사회에서 역사문제는 부차화되었다. 이것은 역사문제의 해소가 아닌 '웅결된 지속'을 뜻했다.
3) 역사인식의 타자화 문제는 냉전기의 담론에서 부차화되었을 뿐 이념적 타자화와 일치했고, 대륙과 미일동맹 사 이의 지정학적 타자화와도 또한 일치했다. 이렇게 삼중으로 결합된 타자화 사이의 상호유지적 상호작용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본질적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336-337
중국은 국력신장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과거의 역사적 치욕을 보상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반면에 일본은 보통국가화를 지향하면서 역사적 수정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안에서 중국과 미일 동맹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져갈 수 있는 시대적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이다.
-594
한 가지 유의할 측면은 한일관계의 특수성이다. 북한과 일본의 적대적 구조는 20세기 전반 아시아대륙과 일본 사이에 형성된 간극이 냉전체제와 결합되면서 응결된 과정의 일환이다. 반면에 남한과 일본의 역사심리적 분단은 … 전 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일본을 한국과 함께 묶어 대륙봉쇄를 위한 지역통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마모되는 효과가 있었다. 미국의 적극적인 중개로 이루어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발전한 경제관계가 그러했고, 또한 미국을 매개로 일본의 지배집단과 한국의 보수 정치 사회세력 사이에 형성된 실질적인 연합의 관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1980년대에는 실질적인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이라는 형태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의 지역통합과 실질적인 군사공조관계는 역사심리적 간극의 발전적 해소에 바탕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이라는 매개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고 두 나라의 사회지배층 중심의 군사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진행된 통합이었다.
-715-716
유럽과 동아시아 전후 질서의 차이
전후 유럽의 지역질서는 미소 냉전을 직접 투영하는 질서였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처음부터 미중관계를 축으로 구성되었고, 미소 냉전은 미중관계를 매개해서만 동아시아에 반영되었다. 이 질서 안에서 미국의 역할은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국가와의 연합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럽의 지역질서는 냉전과 탈냉전의 이분법이 명확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질서였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그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통시성이 있다. 변화 못지않은 강한 연속성을 띤다.
-183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오스트 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오토만 제국 등 네 개 제국이 모두 해체되고 이들 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럽 내 약소민족들이 독립했다. 이에 따라 '유럽 제국체제'는 종언을 고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우는 대부분 사회들이 제국과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상태로 구획된 채, 제2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독일의 침략전쟁은 유럽의 다른 사회들에 대한 식민지배와 중첩되는 것이 아니었다. 반면에 전전의 동아시아는 제국체제로서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적 지배라는 상처 위에 침략전쟁과 제노사이드의 범죄가 중첩되기에 이른다.
-284-295
마지막으로 반인도적 범죄의 문제다. 전전과 전시를 포함해 전쟁 수행과 직접적인 관련 없이 민간인들에 대해 가해진 반인도적 범죄들이다.
전시에 일본이 범한 반인도적 범죄는 다시 크게 세 항목으로 구별할 수 있다. 제1은 제노사이드, 즉 난징학살이며 제2는 강제동원, 제3은 전시 여성의 성노예화 문제다.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라는 문제와 함께, 그러한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양국 사회를 정신적• 심리적 차원에서 격리시키는 지 속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일본의 정부와 사회가 사죄와 반성 및 화해를 위한 전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메꾸어지기 어려운 심연이다. 민간인에 대한 반인도적 범죄는 유럽에서 더 큰 규모로 전개되었지만, 지역질서 전체에 던진 역사적인 충격과 지속적인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반인류적 범죄가 훨씬 더 심각한 유산을 남겼다. 나치에 의한 제노사이드의 피해자는 유럽 각 사회들 안에서 공동의 소수자였던 유대인이었다. 그 만큼 같은 제노사이드라 하더라도 그것이 지역질서에 초래하고 남기는 충격에는 심오한 차이가 있었다.
-298
중국
신보수주의 집단에 속하는 인물로서 대중국 봉쇄론을 가 장 강력하게 설파한 인물들은 리처드 번스타인과 로스 먼로였다. 이들은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국을 지향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반면에 부상하는 권력에도 불구하고 현상유지 세력으로 남을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들도 없지 않 았다. 앨러스태어 존스턴은 중국 지도자들이 자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증대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는 현상유지적인 국가로 남을 것으로 보았다.
다만, 존스턴은 두 가지 경우에 중국이 미국 중심의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중국 국내적인 사회정치적 격동에 직면할 경우다. 둘째는 미중 간의 안보딜레마가 악순환을 거듭할 경우다.
실용주의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중국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게 전략적 동반자는 더 이상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도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중국의 선택 또는 미국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중국이 미국의 적이 될 가능성은 엄존한다고 말한다. 브레진스키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존스턴이 지적했듯이, 중국에 대한 포용론자와 회의론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부상하는 세력으로서의 중국이 중미관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불안정의 일차적인 원천이라고 본다.
-578-578
1995년 8월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은 필리핀을 방문해 남중국해의 분쟁을 언급하면서 이 지역에서 "항해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근본적 이익(Fundamental interest of the Us)"이라고 선언했다. 남중국해의 여러 섬들은 중국에게는 영토적 주권의 대상이지만, 미국에게는 이 지역에서 항해의 자유를 확보하는 요충지들(choke points)이다.
이후 미국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안보협력을 강화했다. 이 국가들과 미국은 공동 군사훈련을 조직했다.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는 새 안보조약을 맺었다.
2000년대 들어 부시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은 남중국해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반에서의 중국 연안 도서 지역들에 대한 미국의 패권 적 통제를 미국의 사활이 걸린 이익으로 명시했다. 2001년 9월 말에 발표된 부시 행정부의 「4개년 방위정책검토」 (Quadrennial Defense Review, QDR) 역시 "세계의 핵심 지역들을 적대적인 세력이 지배하는 것을 막는다"고 명시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미국이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는 핵심 지역은 네 곳이다. 유럽과 동북아시아에 '중동 및 서남아시아'가 덧붙여진다. 덧붙여 새로이 독립된 '핵심 지역' 개념으로 제출하고 있는 것이 '동아시아 연해 지역'(East Asian littoral)이다. "동아시아 연해국이란 일본 남부로부터 오스트레일리 아를 거쳐 벵갈만(Bay of Bengal)에 이르는 지역으로 정의된다."
동북아시아란 일본과 한국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아시아 연해국이란 타이완• 필리핀• 인도네시아 • 브루네이• 파푸아뉴기니 • 말레이시아 • 태국·오스트레일리아•남중국해와 그 밖의 핵심적인 인도네시아의 국제 해협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타이완과 필리핀 사이의 공해상을 포함한 남중국해 전반에 대한 미국의 해상패권 장악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사활적 측면임을 공식화한 의미를 갖는다.
-588-589
타이완
차이잉원 총통은 2020년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한다. 2019년 여름부터 고조된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와 그 후 강력해진 중국의 홍콩 민주파 억압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타이완 국민은 홍콩 민주주의의 소멸을 통해 이른바 일국양제의 운명을 목도했다. 타이완 민중은 동아시아의 양극 적 군사동맹체제 강화 쪽에 편승하는 제1의 선택만 남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조건에서는 타이완이 독자 핵무장이라는 제2의 선택까지도 정중동으로, 즉 이스라엘처럼 '핵실험 없는 핵무장'의 길을 꿈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에게도 난감한 일일 뿐 아니라, 중국 정부의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선택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다.
-232
(타이완 핵위협론??? 뒷부분에도 나오지만, 타이완 문제를 ‘동어시아 대분단체제와 상호작용하고 강화하는 소분단체제이자 미국의 동아시아 핵심 이익으로서 매우 중시하는데, 극히 중국 중심적이다. 기본적으로 국가=단일 행위자로 보면서 지정학적 선택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성향과 상관 없이 현실주의적이며, 특히 ’사람들‘이 아닌 정권의 지정학적 이익을 당연시한다는 느낌.)
탈냉전과 함께 타이완해협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내적 긴장을 표상하는 자로서의 지위를 오히려 새롭게 확인한다. 첫째, 정치적 이념적 분단선이 새롭게 확인되기에 이른다. 1987년 타이완에서는 민주화과정이 시작되었다. 이와 달리 1989년 베이징의 톈안먼사태는 중국 정치질서의 반자유주의적 속성을 재확인해주었다.
둘째, 유럽에서 탈냉전은 이미 약해져 있던 동구권 공산주의 체제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했다. 그것은 범유럽 통합의 기초가 되었다. 반면에 타이완의 위상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셋째, 미국에서 소련을 대신해 중국 위협론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타이완은 중국 견제와 미국의 동아시아 해상패권의 보루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획득했다.
-635
한반도
문제는 이후 문재인 정부의 행보였다. 트럼프가 평화조약 협상의 조속한 진전을 촉구하는 북한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폼페이오의 평양 방문을 취소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국면에서 미국은 볼턴과 매티스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이 대북 평화조약 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이 국면에서 선택한 것은 평화조약 문제를 미국 정부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었다. 그해 9월 19일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과 9.19 군사합의'를 타결하고 다음 날인 20일 밤 서울에 돌아와 귀국 기자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평화협정은 북한 비핵화 완성 이후의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못 박았다.
이후 한국의 언론과 시민사회 안에서도 '평화협정'은 사실상 금기어가 되고, 그 비전의 공백을 '종전선언'이 메꾸면서 '평화협정 협상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평화담론'이 지배하게 되었다.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실마리이자 흔히 말하는 마중물이 되려면 평화협정 협상에 대한 논의로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선언 개념은 "평화협정을 북한 비핵화 뒤로 미루는 명분”으로 소비되고 말았다.
전쟁 후의 평화조약은 평화과정의 출구이지만, 새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평화협정은 그 과정의 맨 앞에서 진지하게 협상되어야 하는 입구일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간과할 때, 정치적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는 종전선언을 평화과정의 맨 앞에 두고,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평화협정 자체는 북한 비핵화 뒤로 미루는 우를 범하며 귀중한 시간들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83-85
‘한반도의 봄'이 꽃을 피울 수 없었던 데에는 트럼프 행정부에 의 해 시작된 대분단체제 기축관계의 제3국면의 특징, 즉 미국의 대중국 경제봉쇄 흐름이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김정은과의 실행가능성이 불투명한 평화협상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대 중국 경제봉쇄를 실행할 명분과 그 동아시아적 조건이 더 필요했다.
존 볼턴의 국가안보실과 짐 매티스의 국방부는 북한이 언제 파기할 지 모르는 평화협상을 위해 중국과 협력하기보다는, 중국의 부상을 억제할 방법을 찾는데 더 부심했다.
-213
우리 모두 에게 세 가지의 숙제가 남겨져 있다. 하나는 북녘땅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 둘째는 나라가 중복되어 상쟁하는 현 상태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건설하는 것, 그리고 셋째 「3.1독립선언문」이 말했듯 "동양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다. 불행 중 다행은 이 세 과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동아시아 공동안보로 연결하는 구체적 고리의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의 동북아시아적 심화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영구적 비핵무기지대로 협약하고 주변 핵보유국들이 이를 존중하면서 동아시아에서 그들 핵무기의 역할을 제한하고 줄여나가는 질서, 즉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366-368
한반도의 거시적 안보의 조건은 동아시아 국제정치구조 가 세력균형의 조건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세력균형 자체가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세력균형체제의 성격이다. 군사주의적 경쟁 속에서 진행되는 공포와 긴장의 세력균형은 언제라도 위험하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규범이 발전하는 세력균형체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830
제국담론 비판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신자본주의적 세계경제를 주관하고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전쟁을 수단으로 세계질서를 규율하게 되자, 영미권과 일본처럼 과거 제국 건설의 역사적 경험을 가진 큰 사회들의 지적 담론에서는 20세기 말 이래 '제국 개념의 도덕적 복권' 현상이 풍미하게 된다.
제국은 더 이상 폭력과 제노사이드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20세기 전반기 제국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문명을 표상하며 세계 질서를 담지하는 질서표상의 지위를 다시 누리게 된 것이다. 서양과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1세기에 걸친 반식민지화의 비극을 경험해야 했던 중국에서조차도 21세기 들어 국력 팽창과 함께 제국담론이 번성하기에 이르렀다. 전통시대 중국 중심의 지역질서를 표상했던 '천하'의 개념이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재가공되어 바람직한 미래 세계질서를 표상하는 개념으로 재활용되는 지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제국'은 다시 "문명과 질서의 표상"으로 부활했고, 이와 함께 약소민족 사회들의 작은 정치공동체들, 그들의 국가와 그 구성인자로서의 민족은 존재이유와 존재근거를 부정당하는 지적 풍토가 형성되었다. 제국은 질서의 담지자로 남아야 하고, 국가는 사라지고 있거 나 사라져야 할 존재로 치부되는 것이었다. 이 말은 실제로는 큰 사회의 국가권력은 제국화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심지어 바람직하며, 반면에 작은 사회들이 구성한 작은 정치적 공동체들의 자율성은 쉽게 희생되어도 좋다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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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크리스톨은 1967년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미국은 이미 "제국적 권력"(imperial power)을 가진 제국이라고 선언했다.
그러한 전환을 미국 지식인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미 제국'을 냉소가 아닌 긍정과 경외의 대상으로 만들어낸 결 정적인 계기는 미국 외교사학이 신보수주의의 제국긍정담론을 채택한 데 있다. 신냉전기에 속하는 1980년대 초, 미국 외교사학계에서 수용된 '초대받은 제국론'(empire as invitation)이 바로 그것이다. 이 새로운 담론의 리더는 존 루이스 개디스였다.
(탈냉전의 낙관이 꺼지고) ‘민주화된 사회들이 유엔을 매개로 수평적으로 연합한 코스모폴리스'라는 '민주적 세계화'의 비전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세계질서의 미래에 관한 지적인 공백을 재빠르게 메우며 풍미하게 된 개념이 '제국'이었다. 유엔이 (상대적으로) 민주적 세계화의 비전을 표상했다면, 제국은 '위계적 세계화'의 비전을 대표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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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도덕적 복권과 귀환은 세계 지식인 사회의 좌우 양측에서 경쟁적으로 진행되었다. 우파 담론에서는 신보수주의가 주도했다. 1990년대 초 찰스 크라오타머 등이 제기한 미국의 "보편적 지배"(universal dominion) 담론이 그것이다.
좌파의 제국 담론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중대한 기여를 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 이 서방 좌파 지식계에서의 제국 복권을 표상했다면, 동아시아에서 는 이른바 중국 신좌파 지성의 대표자라 할 왕후이와 일본에서 진보적 지성의 대표적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가라타니 고진의 저작들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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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제국 개념과 함께 천하 개념의 제구성이 시도되는 맥락에서 주목할 개념사적 현상의 하나는 '문명국가'(civilizational state)론의 부상이다. 중국을 서구 중심의 주권국가 질서(베스트팔렌 국가체제)의 범주로부터 분리시키고, 미국과 중국 등을 다른 국가들과 다른 '문명국가'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을 제국'의 개념으 로 복원시키는 개념사적 부담을 덜면서 적어도 동아시아 차원에서 중국 중심의 지역질서, 그리고 먼 미래상에서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 내지 세계 차원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사유하는 개념으로 동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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