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크리스틴 로젠. 이영래 옮김. 어크로스. 9/11

재미나게 읽었다. 여러가지를 생각하면서.
특정 유형의 경험들이 우리 삶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서로 얼굴을 맞대는 상호작용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여러 활동과 같이 진화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경험들이 그렇다. 매개 기술은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힘이었다. 여기서 ‘기술‘이란 컴퓨터, 스마트폰, 스마트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 미래에 등장할 삽입형 기구는 물론, 이런 장치들이 수집할 데이터를 번역해줄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인터넷 플랫폼을 의미한다.
아직은 이런 매개자의 역할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선택할 권리가 우리 손에 있다.
-11-12
굳이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개선하지 않고도 새롭고 편리한 경험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명확성과 일관성이 사라졌다. 자신의 경험을 불신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주위의 세상과 어울리는 대신 자신만의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현실은 더 이상 합의의 결과가 아니다.
-13
이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개인이 아닌 사용자다. 이 세계는 우리가 현실보다 더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계속 갖지 않는다면 기술로 진보한 세계는 만날 수 없다. 소멸하고 있는 근본적인 인간 경험을 붙잡지 못한다면 공통의 현실과 목적에 대한 의식이 약해진 세상, 인간의 판단에 대한 불신으로 문화와 정치가 양극화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지난 20년간 우리가 경험한 기술 변화는 사회적 안정이나 도덕적 진화를 이끌지 못했다. 사실 정교한 발명품과 플랫폼들은 인간 본성의 가장 나쁜 면을 끌어내도록 설계되었다. 인 스타그램의 정신적 지주는 ‘루미'가 아닌 ‘홉스‘다.
-15
이 책은 디지털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나는 X세대다) 성인기에야 이 새로운 세상을 접하고 있는 나 자신의 경험에서 발전한 것이다. 냉소주의로 유명한 X세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디지털 이전 시대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나 X세대의 향수는 모호한 감정이 아니라 의미 있는 무언가를 실제로 상실한 경험에 기반을 둔다. 디지털 기술이 포화된 세상에서 거의 성인으로 성장한 아들들을 보면 그 상실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런 고민은 반기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기술에 의해 계속 변하고 재편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19
나는 이 책에서 '우리'라는 집합명사를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란 기술적 특이점Singulariy 또는 다른 형태의 아웃소싱된 의식에 도달하거나 인공지능이 우리를 모두 대체하는 날까지는 실체를 가진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인간 공동체를 뜻하는 약칭이다.
-20
경험에는 역사가 있고 그것은 우리 육체에 흔적을 남긴다. '눈 밖에 났다', ‘앓던 이가 빠졌다', '손을 씻었다, '입이 무 겁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육체는 은유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수학자 아이작 밀너가 1794년에 남긴 말처럼, 계몽주의 시대의 걱정거리가 "높은 자리에 있는 위대한 자들이 자신들에게 영혼이 있음을 잊은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들에게 몸이 있음을 잊어버린 것이다.
-25
경험은 개인 특유의 것이기 때문에 직접 마케팅할 수가 없다. 마케팅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다. 비평가 롭 호닝이 지적했듯이 "경험 자체보다 선호가 더 유용해지면····모든 '경험'이 선호에 대한 사회적 논쟁의 형태를 띠게 된다."
-39
(Rob Horning, "Presumed Conspicuous," New Inquiry, May 2, 2012.)
표정은 원시의 언어다. 우리 얼굴에 다른 포유류보다 털이나 머리카락이 적다는 사실은 우리 표정이 더 잘 보이고 우리 감정이 더 쉽게 읽힌다는 의미다. 그러나 표현을 읽는 것은 기량이다. 분노와 경멸의 차이, 행복과 놀라움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에는 평생에 걸친 연습이 필요하다.
-58
코넬대학교의 제프 행콕 교수는 컴퓨터 매개 의사소통이 더 능란한 거짓말쟁이를 만든다면서 "동기 향상 효과 motational enhancement efect"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상대방을 마주한 상태라면 미세한 경련이나 수상한 눈의 움직임으로 진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망설이게 된다. 행콕은 화면을 매개로 의사소통을 할 경우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동기가 더 커지고 거짓말이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함께 있을 때는 비언어적 신호가 신뢰감 향상에 도움이 된다. 사회과학자들은 전화, 줌, 메시지보다는 직접 대면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상대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능력은 온라인으로 소통한 사람들보다 직접 대면한 사람들이 훨씬 좋았다.
또한 온라인에서 누군가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 할 때와 직접 대면에서 상대방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 할 때의 행동이 달라진다. 토론토대학교의 연구원들이 대화의 질을 분석한 결과, 온라인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직접 만난 사람들보다 상대에 대해 질문하는 횟수는 적고 자신에 대해 언급하는 횟수는 많았다.
-60-61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징수원이 보내는 인사나 미소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자동화 비용을 평가할 때 거의 포함되지 않는 질적 손실이다. 18년 동안 이 다리에서 일한 통행료 징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의 미소는 때로 사람들이 그날 처음으로 마주하는 미소였을 것입니다."
사람이 근무하는 톨게이트의 불편함을 그리워할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톨게이트가 사라진 것은 컴퓨터 등의 기술이 인간의 손길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문화 전반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72
뮬러와 오펜하이머는 노트북을 사용하는 학생이 손으로 필기하는 학생에 비해 개념적 질문에 약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트북으로 필기하는 사람은 정보를 처리하고 자신의 말로 재구성하기보다 강의를 그대로 받아쓰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학습에 불리하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는 손으로 적을 때 정보를 더 잘 유지한다. 손으로 기록할 때는 키보드를 이용할 때보다 속도가 훨씬 느려서 요약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0
몸은 우리의 연약함을 상기시키고 자 아의 우월감을 제한한다. 몽테뉴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에 앉아 있는 사람도 결국 제 엉덩이 위에 앉아 있을 뿐이다."
기술 시대에는 이런 겸손을 찾아보기 힘들다. 신기술 덕분에 우리에게 허락된 힘과 비교하면 우리가 매일 몸으로 하는 일상적인 과제들은 사소하고 하찮아 보인다.
하지만 편해졌다는 것은 우리 몸의 불가피한 쇠퇴를 수용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120-121
우리는 관계 유지를 마치 할 일 목목에 올릴 항목 정도로 여긴다. 인간의 상호작용에서도 효율성이 우선이고 사회가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상호작용에서 효율성, 예측 가능성, 반복 가능성과 같은 기술의 미덕을 모방하면서 사생활에서도 기술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조장한다.
올더스 헉슬리는 조지 오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1984》의 악몽이 내가 《멋진 신세계》에서 상상했던 것과 더 닮은 세상으로 바뀔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헉슬리는 무엇이 이런 디스토피아를 초래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전체주의적 세계 정부나 카리스마 있는 폭군이 아니다. "변화는 효율성에 대한 욕구가 불러올 것이다."
-144-145
아주 짧은 틈새 시간도 채울 수 있는 너무나 많은 방법이 있다 보니, 기대 심리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기다림을 기대보다는 지연으로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이제 기다림은 정상적인 인간 경험이 아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164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예전의 텔레비전 광고가 그랬듯이 "세상 사람들에게 콜라를 사주고 싶어"라는 노래를 유쾌하게 흥얼거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이 목마를 때를 알고 싶어 한다. 그때를 알게 되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안토니오가 말했듯이 당신은 “고양이가 우유를 핥듯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210
매개된 쾌락을 수용하다 보면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경험에 거부감을 느끼고 불신하며, 다른 사람이 추천하거나 평가하거나 순위를 매기지 않은 대상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많은 리뷰가 돈을 받고 작성되거나 봇에 의해 생성되거나 그 식당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올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도 나의 기호를 대리로, 가상으로 지지받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226
"과거에는 인내가 통제할 힘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현대 생활의 속도를 통제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여겨진다. 현대의 속도는 우리가 통제하지 않으면 우리를 통제한다. 인내는 더 이상 무력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는 인내심이 곧 힘일지도 모른다." 하버드대학교의 미술사학자 제니퍼 L. 로버츠의 말이다.
-241
기술을 완전히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아마존이나 스포티파이에서 책이나 음악을 추천하는 것처럼, 기술 회사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 장소를 제시하는 것은 뜻밖의 경험이 아닌 정교한 공학적 기술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다. 우리에게는 사회적 충동이 번성할 공적 공간이 필요하다. 덕과 공동체에 대한 글을 쓴 마크 버논은 "우리는 가족, 애정, 공동체, 사회로 연결된 타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낸다. 그러나 우리에게 타인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 공동체가 우리가 잘 사는 데 필요한 기량의 저장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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