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의 모험.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오영환 옮김. 한길사. 10/6

전혀 몰랐던 인물인데 넘나 재미있게 읽음.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쫌 멋짐.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관념들이 도입되는 최초의 단계를 보게 된다. 이 관념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소수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변적인 착상으로서 시작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사회 체제는 새로운 원리에 완 전히 감염되는데 대해 면역성을 갖는다. 새로운 원리는 한정된 범위에 적용되는 흥미로운 개념 중의 하나로 자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관념은 기존의 질서에 대해서는 항상 위험한 존재이다. 가지각색의 사회 관습 속에서 구현될 수 있는 이 관념의 특수한 모습들 전체가 개혁의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63
새로운 ‘관념‘들이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왔다는 것. 관념들이 싹트고 자라나고 퍼지는 과정을 화이트헤드는 ‘모험’이라고 부른다.
2천 년 동안 철학과 종교는 서구인들 앞에 인간으로서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내걸고 그것에다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왔다. 이런 강력한 경향성 밑에서 제수이트 수사들은 파타고니아까지 나아갔으며 존 울먼은 노예제를 비난하였고, 토머스 페인은 사회적 억압과 원죄의 교리에 항거하였다.
제러미 벤담과 오귀스트 콩트는 이 일반화된 정서를 궁극적인 도덕적 직관으로서, 즉 어떠한 정당화도 필요로 하지 않고 또 그 정서와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관한 궁극적 이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로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형이상학을 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민주주의적 자유주의를 위해 막대한 공헌을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천 가 능한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하였고, 궁극적 개념 파악에 있어 견해를 크게 달리하고 있는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실천 가능한 표현양식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과학이론의 발달로 인하여 … '인도교'라는 저 보편적 박애는 인류 선별에 대한 예찬으로 대치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열등자의 인도적 절멸‘로 대치되기에 이른다. 홈은 '순수한 인류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과 같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94-95
기원전 1400 년경, 이집트 왕 아크나톤이 독자적 생각을 갖고 그 당시에 계승해왔던 종교적 개념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나갔던 진보적인 집단에 속해 있었 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자유의 사상적 섬광을 보여준 집단은 그 이전의 수천 년 동안에도 틀림없이 몇 번이고 산발적으로 생겨났을 것이다. 그 중의 몇몇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동이란 아주 정확하게 원상대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 만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차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111-112
불관용은 도덕적 열광이 빠지기 쉬운 죄악이다. … 회의주의적이건 아니건 간에 진보적 사상가들이란 모두 과거에 있어서나 오늘날에 있어서나 불관용적인 성향을 띠기 쉽다.
-113
자유를 효과적으로 추진하는 성격들 가운데 두 유형의 성격을 제외시켜야 한다. 한 가지 유형은 어느 정도의 진실에 도달하여도 절망하는 사람들, 즉 '회의주의자들'의 성격이다. 그리고 불관용의 심성을 가지고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멸행위이다.
-115
오늘날에는 경제조직이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분명히 어떤 새로운 것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는 전혀 예기치 못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산업과 교육을 통해 근대적 유형의 기능공들을 배출하면서부터 이 자유주의의 기반 전체가 광범위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대자본의 필요성은 교묘한 법률의 도움을 빌려, 유한 책임을 수반하는 상업 협동조합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허구적 인격(즉 법인)은 생리적 죽음으로부터 면제되며 자발적인 해산이나 파산이 아니라면 소멸될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인격'의 등장은 계약적 자유에 관한 자유주의적 이설의 효과적 의미를 적지 않게 변모시켰다. 오늘날, 사유재산은 주로 법률적 허구이므로 이러한 법률적 결정을 떠나서는 그 윤곽이 매우 모호해진다. 근대의 기능공은 옛날의 트라시마쿠스(“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와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을 강자의 의지라고 정의하기 쉽다.
-129
자유를 생각할 때 우리는 사상의 자유, 출판의 자유, 종교적 신앙의 자유 등에만 주목하기 쉽다.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물리적 자연의 견고한 습성, 그 철칙은 인간 고뇌의 장면을 결정한다.
자유의 본질은 목적의 실행 가능성에 있다. 인류는 자신들의 종 개념 정의에 속하는 경우까지도 포함해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목적의 좌절로 말미암아 주로 고난을 겪어왔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출판의 자유를 가져다준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목적에 따라 요리를 할 수 있게 하거나 온기를 제공해주는 불을 주선해주었다. 사실 인간에게는 행동의 자유가 먼저 필요하였다. 근대적 사고에 있어서 이러한 진리의 표현은 역사의 경제적 해석이라는 형식을 취해왔다.
-133
어마티야 센의 역량 접근이 떠오름.
그러므로 삶의 본성에 관한 문제를 떠나, 단지 삶에서의 성공을 위해 서만이라도 특수한 것으로부터 일반성을 이끌어내며,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하게 예증되어 있는 일반성을 찾아내는 비전문화된 재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반성적 능력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철학적 습관이다. 그것은 일반성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다.
-172
모든 시대의 성격은 그 시대 사람들이 부딪치는 물질적 사건(material event)에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반응은 그들의 기본적 신념-그들의 희망, 공포,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들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된다.
철학은 성격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주의의 초점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기본적 신념을 분명히 밝히 려는 시도이다.
-173-174
인공지능 시대에 철학이 더더욱 필요한 이유인 듯.
이상, 1부 사회학적 얘기는 끝나고 본격 철학 얘기로.
호기심이라는 말은 인간을 몰고갔던 저 내면적 동기를 다소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보다 넓은 의미의 ‘호기심'이라는 말은, 경험에서 식별된 사실은 반드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성의 열망을 뜻한다. 이는 혼잡하게 드러나는 사실에 만족하거나, 심지어 명백한 관례적 사태의 추이에 만족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문명을 과거의 안정된 상태로부터 몰아세우는 격렬한 자극요인인 호기심은 원리를 추상의 형태로 진술하고자 하는 욕구인 것이다.
이 호기심 속에는 결과적으로 장애가 될 비정한 요소가 들어 있다. 우리는 미국인 혹은 프랑스인 혹 은 영국인이지만, 저마다 아름다움과 온기를 가지고 있는 우리식의 생활방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호기심은 우리에게 문명을 정의하라고 부추긴다. 이런 일반화에 우리는 사랑하는 미국, 사랑하는 프랑스, 사랑하는 영국을 잃고 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우리의 정서는 이러저러한 특수한 것에 집착하는 데 반해 일반성(the generality)은 냉정한 불편부당성을 동반하고 나타난다.
-237
자유주의의 쇠퇴와 정체성 정치의 부활이라는 백래시를 예견한 둣. 살짝 웃프다.
개별 과학은, 과학적 설명이라는 과제에 아직도 이용되지 않고 있는 상상적 가능성을 인간의 상상력에 비축해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 매우 유사한 것을 일부 동물이나 식물, 또는 미생물의 역사에서도 보게 된다. 그것들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정글이나 늪지나 섬에 불분명한 자연의 부산물로서 몇 시대를 두고 잠복해 있다. 그 다음에 어떤 환경요인에 의해 외계로 빠져나와 문명을 변화시키 고, 제국을 파괴하거나 대륙의 산림을 파괴하기도 한다. 이런 것이 여러 철학체계 속에 살아 있는 관념들의 잠재적 힘이다.
'과학‘과 '철학'은 서로 비판하며, 서로 상상적 소재를 제공한다. 철학체계는 과학이 추상화하는 구체적 사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야 한다. 과학은 철학체계가 제시하는 구체적 사실들 속에서 자신의 원리를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사상의 역사란 결국 이러한 공동작업에서의 실패와 성공의 정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242-243
과학과 철학의 체계들이 왔다가는 사라진다. 저마다 한정된 이해의 방법은 마침내 고갈되고 만다. 각 체계는 그 전성기에 빛나는 성공을 거두고, 쇠퇴기에는 장애물이 되고 만다. 새로운 이해로의 이행은 상상력을 북돋우는 가장 심오한 직관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달성된다.
철학은 이제 그 마지막 봉사를 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동물적 향유 이상의 가치에 예민한 한 생물계의 종족이 광범위한 붕괴를 모면하기 위한 통찰을, 비록 그것이 희미한 것이라 하더라도, 탐구해야 한다.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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