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에 이어 호주 동부에서도 동시다발 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온도가 올라가고, 식생이 메마르고, 산불이 잦아지는 것이라 말한다. 수십 곳에서 치솟는 화염은 기후변화의 역습인 셈이다.
abc방송 등 호주 언론들은 수십 곳에서 동시에 일어난 산불로 동부 뉴사우스웨일스주 일대가 불길에 휩싸여 최소 3명이 숨지고 주택 150채 이상이 불탔으며 수천 명이 대피했다고 10일 보도했다. 소방당국은 12일부터 시드니 광역도시권에도 ‘대재앙’ 단계의 경보가 발령된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위험도를 6단계로 나눈 화재경보체계를 2009년 도입했다. ‘대재앙’은 그중 가장 위험한 6등급이다. 시드니에 6단계 경보가 내려지는 것은 이 제도가 도입된 후 10년만에 처음이다.
남극이 더워지면 호주엔 산불이
소방당국은 관목지대에 사는 주민들에게 대도시나 쇼핑센터, 공공시설 등으로 이동하라고 권고했다. 위험지역의 학교들에는 휴교를 권했다. “화재 규모가 최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12일에는 산불에 위협받는다 해도 도움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스코스트, 일라우라, 숄헤이븐 등 북서부 지역에는 5등급인 ‘극도의 위험’ 단계의 경보가 발령됐다.
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지난 7일부터 산불이 시작돼 10일 현재 70여곳에서 화재가 이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소방관들까지 합세해 1300여명의 인력이 화재 진압에 나섰으나 고온과 강풍, 건조한 날씨가 겹쳐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 당국은 미국과 캐나다의 소방인력을 지원받는 방안을 협의 중이며, 군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남반구에 있는 호주는 봄철인 이 시기에 산불이 자주 일어나지만, 올해에는 규모가 유난히 크다. 지난달 과학자들은 남극의 기온이 이례적으로 올라가면서 호주에 극단적으로 고온건조한 날씨를 부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로 이 시기 남극 상공의 기류가 바뀌고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호주에 여파를 미친다는 것이다.
북극 주변을 에워싼 대기의 장벽이 깨지면서 한기가 밑으로 내려오게 만드는 ‘북극진동’은 최근 몇년 새 과학자들이 주시해온 현상이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찬 기류가 밑으로 흘러내려와 겨울철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을 오히려 더 춥게 만드는 것이다. 남극에도 이와 비슷한 ‘남극 진동(Antarctic polar vortex)’이 있다. 멜버른 모나시대학 ARC기후변화센터 연구팀이 지난달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남극진동이 약해질 때 호주의 기온이 올라가고 강우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팀이 1979~2016년의 기후자료를 분석해보니 남극 상공의 기류가 약해지면 호주는 고온·건조한 정도가 4~8배 심해졌다.
타이가, 시베리아의 냉대림이 불탄다
올여름 러시아 내륙 사하자치공화국에 있는 야쿠츠크 일대가 대형 산불에 휩싸였다. 북극권에서 450km 정도 떨어진 야쿠츠크는 연평균 기온이 영하 8.8도로, 지구상에서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 중 가장 추운 곳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도시를 비롯해 시베리아의 여러 지역들이 산불에 시달렸다. 야쿠츠크 주민들은 도시를 메운 연기에 ‘숨 쉬기도 힘든’ 상황이 되자 집 밖에도 못 나가고 며칠씩 버텼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한 바 있다. 오랫동안 안정돼왔던 생태계가 산불로 무너지자 숲속의 곤충들이 도시로 날아와, 주민들은 벌레 고통도 함께 겪어야 했다.
러시아의 북부 내륙지방은 2015년과 2018년에도 대형 산불이 휩쓸었다. 시베리아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일어난 산불은 3211㎢를 불태웠고, 연기가 캐나다 북부로까지 이동했다. 올해에는 5월부터 산불이 번지기 시작했고 규모는 더 컸다. 러시아 소방당국에 따르면 3만㎢, 벨기에만한 면적이 불탔다. 하지만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올들어 불탄 면적이 그 4배인 12만㎢에 이른 것으로 본다. 첼랴빈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등 여러 도시의 공기질은 산불 때문에 심각하게 나빠졌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러시아 산불 연기가 알래스카와 캐나다 서부해안까지 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시베리아 곳곳에서 기온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북반구 내륙의 건조한 날씨에 온도가 올라가면서 ‘타이가’라 불리는 냉대림이 타들어가고 있다. 러시아 기상당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 새 타이가의 산불 발생건수는 3배로 늘었다. 숲의 밀도는 아마존이나 보르네오가 높지만, 면적으로 따지면 러시아 북부의 아(亞)한대 타이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숲이다. 타이가가 불에 타면 땅 속의 온실가스가 대거 풀려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다시 영향을 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2010년 여름 대형 산불이 났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는 직접 소방용 헬기를 조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러나 시베리아 냉대림 지역은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소방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기 힘들기 때문에, 주민 피해만 없으면 당국이 사실상 산불을 방치한다. 올여름에는 올여름에는 화재 규모가 너무 커서 군까지 투입했다.
‘산불 시즌’ 길어지는 캘리포니아
중국의 목재 수요에 맞추느라 타이가가 잘려나가는 것도 문제다. 토양이 대기에 노출되면 건조해지고 홍수와 산불이 늘어난다. 올 6월 이르쿠츠크에서는 홍수에 25명이 숨졌고 3만명이 대피했다. 당시 이르쿠츠크대학 연구팀은 “글로벌 기후변화와 지역적 기후변화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산불을 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로 불법 벌목을 지목했고, 시베리아 도시 크라스노야르스크 등에서 관리들이 나무 도둑질을 방기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불도 기후변화로 식생이 달라진 것과 관련돼 있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습하고 찬 기후 속에서 무성해진 나무들이 봄과 여름의 건기를 거치며 말라붙기 때문에 초가을 캘리포니아에서는 원래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화재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재 20건 중 15건은 2000년 이후에 발생했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워런 버핏이 캘리포니아 산불을 끌 수 있을까
지난 100년간 이 지역의 평균기온은 2도 올라갔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나무와 토양의 습기를 더 빨리 건조시켜 불붙기 좋은 상태로 만들었다. 가을비는 늦어졌다. 10월에 내려야 할 비가 11월 이후로 늦춰지고 심지어 12월에 시작되는 곳도 있다. 이 때문에 겨울 우기가 시작되기 전의 ‘파이어 시즌’이 75일이나 길어진 것으로 과학자들은 분석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일관된 경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비가 시작되면 이전보다 폭우가 쏟아지는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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