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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워런 버핏이 캘리포니아 산불을 끌 수 있을까

딸기21 2019. 11. 4. 09:27

미국 캘리포니아주 벤투라 카운티의 샌타폴라에서 2일(현지시간) 소방관이 ‘마리아 화재’로 불에 탄 숲을 돌아보고 있다. 지난달 31일 전력회사 서던캘리포니아에디슨(SCE)이 이 지역에서 멈췄던 전력공급을 재개하고 13분만에 화재가 난 것으로 드러났다. 샌타폴라 AF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회사인 퍼시픽가스·전기(PG&E)는 ‘산불의 주범’으로 지탄을 받아왔다. 이 회사의 낡은 전력설비에서 시작된 불씨가 2017년, 2018년, 그리고 올해에도 캘리포니아 곳곳을 불길에 빠뜨렸다. 지난달 소노마 카운티에서 일어난 ‘킨케이드 화재’의 경우 2일(현지시간) 현재 거의 70% 진화됐지만 46㎢ 넘는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PG&E의 송전탑 부근에서 전선의 스파크가 삼림에 옮겨붙으며 불이 났다고 회사 측은 발표했다.

 

PG&E는 산불을 막기 위해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예측되면 ‘예방적 단전(PSPS)’이라는 이름으로 전력 공급을 일부 중단하고 있다. 지난달 이 회사는 사전 통보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단전을 했고, 200만명이 전기공급이 끊겨 고생을 했다. 정작 고압송전선 일부는 계속 운영을 하는 바람에 화재를 막지도 못했다. 킨케이드 화재를 비롯해 최근 캘리포니아에 번진 산불 중 최소한 3건 이상이 이 회사 설비 때문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화재로 캘리포니아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20만명 이상에게 강제대피령이 내려졌고 곳곳의 전기가 끊겼다. ‘역대 최대규모’라던 2017년의 산불 피해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초대형 화재를 분석한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자료에 따르면 산불의 84%는 사람 탓이었고, 나머지 16%는 번개 같은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주 당국이 대응해야 했던 산불의 95%는 인간의 활동으로 일어났다.

 

미국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회사인 퍼시픽가스·전기(PG&E)의 하청업체 직원이 지난달 31일 대형 화재를 일으킨 가이저빌의 송전설비를 수리하고 있다.  가이저빌 AFP연합뉴스

 

최대 요인은 송전선 등 전력설비의 스파크였다. 지난해 86명의 목숨을 앗아간 ‘캠프 화재’는 PG&E의 송전선이 고장나면서 일어났다. 이 화재로 패러다이스라는 소도시의 90%가 불탔고 1만3900가구가 집을 잃었다. 서던캘리포니아에디슨(SCE)과 샌디에이고가스·전기회사(SDG&E) 등 다른 전력회사들의 시설에서도 이미 숱한 화재가 일어났다.

 

작은 불씨가 초대형 화재로 번지는 데에는 지형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네바다주와 유타주의 사막에서 시작된 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내려오면서 강풍으로 변한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샌타애나 바람’, 북부의 ‘디아블로 바람’ 같은 것들이 이렇게 형성되는 강풍들이다. 강풍과 건조기후가 만나 산불이 번진다.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은 해안으로 빠져나가기 전까지 곳곳을 휩쓸면서 산불이 퍼지게 만들고 진압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기후변화는 이 과정을 증폭시킨다. 기온이 갈수록 높아지고 식생은 점점 더 건조해지고, 가을비가 오는 시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에 따르면 현대에 들어와 발생한 10대 규모 산불이 모두 1991년 이후 일어났다.

 

근본 원인은 전력생산 구조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0개 가까운 노후 발전소들이 천연가스를 태워 전력을 생산한 뒤 송전선으로 장거리 공급을 한다. 발전소 주변 많이 사는 빈곤층 주민들은 환경오염 피해에 시달리고, 민간 발전에 의존하면서 치솟는 전기요금에 고통 받는다. 송전시설의 잦은 고장과 그로 인한 화재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안긴다. 이 참에 전력공급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이 퍼지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북서부 가이저빌의 고속도로 주변 숲이 ‘킨케이드 화재’라 불리는 산불로 시커멓게 그을려 있고 불에 탄 차들이 방치돼 있다. 이 화재는 전력회사 퍼시픽가스·전기(PT&E)의 설비에서 일어난 불씨가 주변에 옮겨붙으면서 일어났다. 가이저빌 AFP연합뉴스
킨케이드 화재로 집을 잃은 가이저빌 주민이 잿더미가 된 집터를 뒤지고 있다.  가이저빌 AP연합뉴스

 

잇단 산불로 궁지에 몰린 PG&E는 한때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전력회사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520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1905년 창립된 오랜 역사의 이 회사는 최근 몇년 사이의 화재로 위기를 맞아 올 1월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무너져가는 이 전력회사에 투자를 해달라며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에 SOS를 보냈다. 앞서 4월에 블룸버그통신은 “버크셔해서웨이가 PG&E와 투자 협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버크셔해서웨이는 부인했다. 뉴섬 주지사는 지난 1일에는 “투자자가 나서지 않으면 주 정부가 PG&E를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버핏 측이 투자를 할 지는 알 수 없지만, 구제에 나선다 해도 이후 수순은 뻔하다. 곤경에 빠진 인프라가 민간 펀드로 넘어갔을 때 늘 그렇듯이 투자회사의 자금이 들어가면 운영 효율화 명목으로 수익성 낮은 지역의 전기공급을 줄일 것이고, 시설투자는 방치할 것이다. 화재는 더 잦아질 것이고, 당국은 결국 세금을 쏟아부어 구제해줘야 할 것이고, 요금은 올라가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환경단체들은 예측한다. 아시아태평양네트워크와 지역청정에너지동맹 등 환경단체들은 지난달 말 뉴스위크 기고에서 “억만장자가 우리를 구해줄 수는 없다”며 “우리 공동체의 전력공급 방식을 완전히 바꿀 때”라고 주장했다.

 

전력회사의 미봉책으로는 산불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계속 입증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LA 서쪽 벤투라 지역에서 일어난 ‘마리아 화재’는 서던캘리포니아에디슨이 잠시 중단시켰던 전력공급을 재개하고 13분만에 일어난 것으로 2일 드러났다. 이 화재로 1만1000명이 긴급대피를 해야 했다.

 

개빈 뉴섬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오른쪽)가 캐머런파크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전력공급 중단에 대해 설명한 뒤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캐머런파크 AP연합뉴스

 

지난 7월 뉴섬 주지사는 화재 피해지역을 복구하기 위해 210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드는 법안에 서명했다. 기금 일부는 전기요금을 올려 충당할 계획이다. 하지만 세금을 쏟아붓고 소비자들 지갑을 털 게 아니라, 전력회사들이 그동안 거둔 이익을 피해 복구에 내놔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환경·에너지단체들은 더 안전한 ‘공동체 소유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주 정부가 지역사회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스트베이 코뮤니티에너지를 비롯해, 이미 전력공급을 분권화해 지역공동체 단위에서 발전을 하는 실험을 하고 있는 곳들도 있다. 오클랜드 주민들은 노후 발전소를 없애고 태양광·풍력 발전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일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해의 ‘캠프 화재’ 피해지역을 다녀온 뒤 LA 시청 앞에서 열린 시위에 나와 “캘리포니아 산불은 기후 위기 때문에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툰베리와 시위대는 산불 다발지역에 완충지대를 만들고, 화석연료 사용허가 발급을 중단하고, 원유생산을 제한하는 3가지 요구사항을 뉴섬 주지사에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