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을 노리는 현직 대통령이 다른 나라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내 정적의 부패를 거기서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내 정치에 남의 나라를 끌어들이고, 군사원조까지 지렛대로 삼았다.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외교관들까지 정적을 공격하는 일에 동원했다. 의회는 탄핵감이라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야당의 무모한 공격으로 비쳤다. 여야 의원수를 계산하면 탄핵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회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여론도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조사로 워싱턴이 연일 시끄럽다. 대통령은 하루에도 몇 개씩 민주당을 비난하며 욕설에 가까운 글을 트위터에 올리고, 비공개 청문회가 열리는 의사당 사무실에 공화당 의원들이 난입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발단은 정보기관의 내부고발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 그리고 이를 비판한 내부고발자의 항의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등장인물도 많고 진행과정도 복잡하다. 하루가 머다하고 증인을 소환해온 하원은 30일(현지시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 밀려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관련된 인물들의 행위와 전개 과정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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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스캔들’의 등장인물들
·트럼프 측: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 줄리아니,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폴 매너포트 전 선대본부장, 알렉산더 볼드민 NSC 우크라이나 전문가, 피오나 힐 전 백악관 러시아·유럽 담당 고문,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우크라이나 측: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유리 루트센코 검찰총장, 빅토르 쇼킨 전 검찰총장, 우크라 가스회사 부리스마 소유주 미콜라 즐로체프스키
·수사·정보기관: 익명의 내부고발자,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 마이클 앳킨슨 정보기관 감찰관(ICIG)
·외교관들: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 대사,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 대사, 커트 볼커 전 우크라 특사, 고든 선들랜드 EU 대사, 조지 켄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 마이클 매킨리 전 국무부 수석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의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애덤 쉬프 하원 정보위원장
·바이든 측: 조 바이든, 헌터 바이든
어떻게 진행됐나
2014.4
우크라이나에서 2013년 11월 친러시아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친서방 정권으로 교체됐다. 러시아는 그 사이에 2014년 3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이 문제로 미국과 러시아가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당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가스회사 ‘부리스마’의 이사가 됐다. 친러 정권 시절 생태천연자원부 장관 등을 지낸 부리스마의 설립자 미콜라 즐로체프스키는 돈세탁 등에 관여한 혐의로 영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처지였다.
2018.8.21
대선 때 트럼프 선대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가 2010~2014년 외국 은행에 6500만달러의 자금을 숨겨놓고 세금을 회피한 사실이 드러났다. 매너포트는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2000만달러 이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트럼프 선대본부장에서 물러났는데, 계좌 은닉 문제로 다시 우크라이나 연루설이 부각됐다.
▶트럼프의 위기?...특검에 기소된 측근들 잇따른 유죄 판결
2019.4.1
유리 루트센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이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 인터뷰에서 “2016년 바이든 부통령이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빅토르 쇼킨 검찰청장을 해임하라고 요구했다”는 주장을 했다. 루트센코는 “쇼킨이 헌터를 수사하는 것을 중단시키려는 목적이었다”라고 했지만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CNN등에 따르면 루트센코의 이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 반부패 활동가들이 부패 수사에 소극적인 쇼킨의 사퇴를 촉구했고 결국 교체된 것이었다. 루트센코는 뒤에 워싱턴포스트에는 “헌터가 우크라이나 법을 위반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6.12
ABC방송 뉴스진행자 조지 스테파노풀로스가 트럼프를 인터뷰하면서 “외국 정보요원이 대선 경쟁자의 정보를 주겠다며 접근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트럼프는 “당신도 듣고 싶지 않겠느냐. (내가) 듣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대선 때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공모가 있었다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조사결과가 나온 지 석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7.25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통화를 했다. 바이든을 수사하라고 우크라이나 측에 촉구한 사실이 뒤에 드러났고,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번졌다.
7.26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커트 볼커 미국 특사와 고든 선들랜드 EU 주재 미국 대사가 젤렌스키를 만났다. 젤렌스키 측은 이를 웹사이트에 공개하면서 “군사원조 문제를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하지만 뒤에 미 정보기관의 내부고발자가 “볼커와 선들랜드는 (바이든을 수사하라는) 트럼프의 요구에 어떻게 응할 것인지 젤렌스키에게 조언해줬다”라고 폭로했다.
8.12
정보기관 내부고발자가 마이클 앳킨슨 정보기관 감찰관(ICIG)에게 “상급자가 트럼프-젤렌스키 통화의 문제를 보고했는데도 무시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9.9
앳킨슨 감찰관은 민주당 소속 애덤 쉬프 하원 정보위원장에게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DNI)이 ‘시급한 우려’를 묵살했다”고 통지했다. 국가정보국장은 여러 정보기관들이 모은 정보를 총괄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정보기관 감찰관은 그 밑에서 정보기관들을 감시하고 부패·권한남용을 막는 일을 한다. 하원 정보위 등 3개 상임위원회는 트럼프의 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 측과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조사에 들어갔고, 백악관에 트럼프-젤렌스키 통화 정보를 요구했다.
9.18
정보기관 내부고발자가 트럼프와 외국 정상의 거래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알려졌다. 이튿날에는 내부고발자의 고발이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것이라는 보도들이 나왔다.
9.21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바이든을 조사하라는 압력을 넣었다”고 내부고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튿날 트럼프는 젤렌스키와의 통화에서 바이든에 관해 거론했다고 인정했다.
9.24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공화국을 지킬 수 있는가” 트럼프 탄핵절차 이끄는 낸시 펠로시
▶‘우크라 스캔들’로 트럼프 잡기…미 대선판 ‘민주당의 도박’
9.25
백악관은 젤렌스키와의 통화 기록을 일부 삭제한 뒤 공개했다.
▶민주당 “대통령 직권남용 드러나”…트럼프 “압력 전혀 없었다”
9.26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이 하원 정보위에서 증언을 했다. 내부고발자의 항의 내용을 인정하면서, 의회에 내부고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변명했다.
▶탄핵 방아쇠 당긴 민주당…트위터로 역공 쏟아낸 트럼프
9.30
하원 정보위가 트럼프 변호사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에 있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 관련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통화하면서 줄리아니를 몇 번이나 언급하며 칭찬했다. 줄리아니는 젤렌스키 측근들과 접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0.1
트럼프는 의회의 탄핵조사를 “쿠데타”라고 비난했다. 또 내부고발자가 누구인지 만나고 싶다며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다음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탈리아 방문 중 기자회견을 하면서 대통령을 옹호했다. 젤렌스키와 통화할 때 자신도 옆에 있었다면서 “미국의 정책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고 해명했다.
10.3
모든 의혹을 ‘가짜 뉴스’이자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폄하해온 트럼프는 백악관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중국과 우크라이나를 향해 “조 바이든과 관련된 의혹들이 있다면 조사하라”고 했다. 그 후 며칠에 걸쳐 그는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에 대해 “하류인생” 같은 표현들로 비난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트럼프 후원자들, 우크라이나 국영 가스회사 접수 시도”
10.8
백악관은 “의회의 탄핵조사는 불법”이라면서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무부는 선들랜드 EU 대사의 의회 증언을 막았다. 그러나 전현직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들을 비롯한 외교관들은 의회의 요구대로 출석해 증언하겠다고 했다.
10.11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는 하원에 나와서 트럼프가 국무부를 압박, 자신을 대사직에서 축출했다고 주장했다.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수사를 요구하라’고 독촉을 했고, 자신은 “공식 채널로 전달하라”며 거부의 뜻을 밝혔고, 그러고 나서 해임됐다는 것이었다. 버락 오바마 정부 말기에 임명된 요바노비치는 임기가 남아있었는데 지난 5월 교체돼 정치보복 논란이 일었다.
10.14
트럼프의 ‘동유럽 정책 담당관’으로 알려져 있던 피오나 힐 전 백악관 고문은 의회에 나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딜’에 관해 듣고서는 ‘마약거래’라며 격분했다”고 증언했다.
▶트럼프가 해고한 존 볼턴, 트럼프 행정부 폭파할 ‘핵폭탄’ 되나
10.16
트럼프와 하원 양당 지도부가 백악관에서 만났지만 언성만 높인 채 헤어졌다. 트럼프와 펠로시는 “무너졌다” “아픈 사람”이라며 상대를 비난했다.
10.17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트럼프에게 폭탄발언을 안겼다. 의회에 나와서 트럼프가 바이든 수사를 압박하며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보류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대가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파장이 일었다.
10.22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대사가 멀베이니 비서실장에 이어 결정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보류했다”고 했다. 뒤에 백악관은 우크라이나 군사원조가 중단되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10.23
탄핵조사가 열리는 하원 비공개 청문회장에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난입했다.
10.29
민주당은 하원의 트럼프 탄핵조사 절차 등을 규정한 결의안을 공개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우크라이나 전문가인 알렉산더 빈드먼은 의회에 나와 “트럼프-젤렌스키 통화를 들으면서 국가안보에 위험한 것이라 느꼈고 상급자에게 2번이나 문제를 제기했다”고 증언했다. 문제의 통화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의회 증언은 처음이었다. 빈드먼은 또 백악관이 공개한 트럼프-젤렌스키 통화 녹취록에 ‘부리스마’ 등 헌터 바이든을 겨냥한 것임을 보여줄 핵심 단어들이 누락됐다고 말했다.
10.30
신임 러시아 대사로 지명된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은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 대사 교체 등에 관여해온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앤더슨 전 우크라이나 협상특보는 하원 조사에서 “볼턴 전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줄리아니 문제를 경고했다”고 증언했다. 앞서 백악관 관리가 “볼턴이 줄리아니를 ‘수류탄’이라 불렀다”고 증언한 데 이어 다시 비슷한 증언이 나오자, 하원은 볼턴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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