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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홍콩 문제' 떠안은 한정 상무위원, 경제통합으로 실마리 찾을까

딸기21 2019. 11. 11. 16:00

2019.11.06

 

홍콩 문제를 총괄하는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EPA 자료사진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5일 홍콩과 마카오를 총괄하는 중국 최고위 지도자 한정(韓正) 상무위원과 만났다. 공산당 지도부의 ‘경제통’인 한 상무위원을 만난 직후, 캐리 람 행정장관은 광둥·홍콩·마카오를 묶는 거대 광역 경제권 조성 프로젝트를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시위 사태의 기저에 깔린 홍콩 경제 사정에 대한 불만을 ‘경제로 풀겠다’는 공산당의 뜻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강경진압 속에서도 홍콩의 시위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고, 반중·친중 시위대의 충돌과 시위대·정치인에 대한 공격사건이 잇따르면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홍콩 문제로 공산당 지도부 안에 갈등이 불거질 조짐도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홍콩 업무를 담당하는 한 상무위원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한 상무위원이 홍콩 사태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시 주석은 2017년 10월 열린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 1차 전체회의(19기 1중전회)에서 상무위원 5명을 새로 임명했다.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시 주석 본인과 리커창 총리를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을 모두 물갈이한 인사였다. 2003~2012년 상하이 시장을 지내고 이후 상하이시 당서기로 있었던 한정은 이 때 상무위원이자 상무부총리로 선임됐다.

 

공산당 지도부는 시진핑 파벌과, 여전히 남아 있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파벌로 크게 양분돼 있다. 올해 65세인 한 상무위원은 장쩌민 주석 시절 ‘상하이방’의 일원으로 승승장구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된 이래 홍콩 관련 업무는 상하이에 기반을 둔 장쩌민계가 관행처럼 맡아왔다. 쩡칭훙(曾慶紅), 장더장(張德江), 그리고 한 상무위원으로 이어지는 계보다.

 

공산당의 입김에 따라 움직이는 해외 기반 중국매체들도 시진핑 계열과 장쩌민 계열로 나뉜다. 미국에서 중국 시각을 전하는 매체 중 보쉰은 장쩌민 계열, 둬웨이(DW뉴스)는 시진핑 쪽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의 온라인매체 HK01는 시진핑 계열이다. HK01 소유주 유펀호이가 10년 전 DW뉴스도 매입했고,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중국어·영어 온라인 뉴스를 내보내며 중국 정부의 스피커 노릇을 하고 있다. HK01은 지난 8월 한 상무위원이 정치국 내에서 홍콩 문제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5일 상하이에서 열린 훙차오 국제경제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상하이 신화연합뉴스

 

한 상무위원은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한 뒤인 6월 12일 한 차례 선전을 방문했고 이틀 뒤인 14일에는 캐리 람 장관을 만났다. 그 다음날인 15일 캐리 람 장관은 시위의 발단이 된 송환법 시행을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6월 30일 한 상무위원은 다시 선전을 찾았다. 홍콩의 중국 귀속 기념일인 7월 1일에는 해마다 기념행사를 하지만 올해에는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이를 앞두고 한 상무위원이 한 달 새 두 번째로 홍콩과 인접한 선전을 방문한 것이었다.

 

시 주석이 홍콩 문제에 대해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으나, 물밑에서 벌어진 한 상무위원의 이런 움직임은 베이징 지도부가 홍콩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한 상무위원과 캐리 람 장관의 이번 만남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한 상무위원의 행보를 통해 시 주석과 공산당 지도부가 홍콩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려 하는지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2003년 만 48세에 상하이의 역대 최연소 시장이 된 한 상무위원은 업무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조한 행정으로 고속성장하던 상하이 경제에 날개를 달았고,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던 상하이 부동산 붐을 옹호했다. 2006년 상하이 공산당 부패스캔들이 터지자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의 지시로 부패청산에 나서 당 업무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장더장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출 때 중국 지도부의 의중이 친중파 캐리 람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강경 발언들을 함으로써 홍콩 정국을 결정지었다. 지난해 한 상무위원이 뒤를 이어 홍콩·마카오를 총괄하게 되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정치보다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임자보다 홍콩에 ‘소프트한 접근’을 할 사람”이라며 홍콩 문제를 맡을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한 상무위원 역시 홍콩의 자유선거와 독립성 강화에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홍콩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경제성장 드라이브를 걸고 홍콩의 경쟁력을 높일 인물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경제보다 정치적 갈등이 주된 이슈가 됐다. 한 상무위원은 홍콩인들의 뜻을 무시한 베이징의 결정이 빚은 후폭풍을 처리해야 하는 힘든 임무를 짊어지게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6일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6일 한 상무위원은 홍콩 시위가 “일국양제 시스템을 해치는 것”이라면서 더욱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천명했다. 그의 움직임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공산당의 홍콩 대응계획은 ‘시위 강경진압, 경제발전 추진’으로 요약된다. 자유무역항으로 홍콩이 누려온 입지는 이미 흔들린지 오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홍콩과 중국 본토 동남부의 경제통합을 가속화하는 것인데, 이는 한 상무위원이 강점을 갖고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의 홍콩 대응에 시 주석을 비롯한 지도부가 불만을 갖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반정부 온라인매체 투이당(탈당)뉴스는 공산당이 홍콩 시위 관련 정보들을 전력 수집하고 있고 이를 한 상무위원이 총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콩의 반중 감정과 시위 강도가 예상을 뛰어넘자 베이징은 충격에 빠졌고, 홍콩 행정청뿐 아니라 공산당 홍콩 연락판공실과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등의 기능에도 의문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이 기관들이 송환법 시위 초기에 상황을 ‘낙관적으로’ 평가해 베이징에 보고함으로써 안이한 대응을 불렀고 사태를 오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에서 한정은 책임을 벗어날 수 없는 위치다. 시 주석이 5일 직접 나서서 캐리 람 장관을 만나 ‘지도부의 지지’를 보여준 것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