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버려진, 남겨진, 잊혀진

북부흰코뿔소 '수단'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

딸기21 2015. 5. 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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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디언에 흰코뿔소 기사가 실렸지요. 세상에 단 하나, 이 생물종(種)으로서는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수컷 북부흰코뿔소. 

 

이 코뿔소의 이름은 ‘수단(Sudan)’이라고 합니다. 케냐의 사바나 지대, 라이키피아 주의 올페제타 보호구역에 살고 있는 이 코뿔소의 표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서글퍼지게 합니다. 전 세계에 단 5마리만 남아 있고, 올페제타에는 수단과 함께 암컷 두 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세계에 수컷은 오직 수단뿐이고요. 번식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이 종은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Sudan doesn’t know how precious he is. His eye is a sad black dot in his massive wrinkled face as he wanders the reserve with his guards. Photograph: CB2/ZOB/Brent Stirton/National Geographic

 

1900년대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는 코뿔소 50만 마리 정도가 살았습니다. 그 숫자는 1970년대에 7만마리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정도 숫자가 되면 멸종위기에 인접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하는군요. 

 

At home with the world‘s last male northern white rhinoceros

 

2011년, 코뿔소의 한 종류인 서부검은코뿔소가 완전히 멸종했습니다. 500만년 동안 지구의 초원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던 한 생물종이 이 행성에서 사라진 겁니다. 

 

코뿔소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금 현재 세계 곳곳의 보호구역에 2만9000마리 정도의 코뿔소가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몇몇 종은 서부검은코뿔소의 뒤를 따르게 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멸종 후보’가 바로 북부흰코뿔소인 것이죠. 

 

올페제타 보호구역을 둘러보시려면 여기로 

 

코뿔소를 멸종 위기로 몰아간 것은 인간들입니다. 환경파괴로 서식지가 줄어든 것 외에도, 사람들의 밀렵이라는 직접적인 위협요인이 그들을 절멸로 내몰고 있습니다. 

 

코뿔소의 종류와 생태에 대해 좀더 알아보시려면- 코뿔소는 말이었다!

 

뿔과 밀렵 뿔을 채취하기 위한 밀렵이 코뿔소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뿔은 오래 전부터 약용 및 조각의 재료로 진귀하게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뿔의 분말이 해열·최음제(催淫劑)로 효능이 있다고 믿어 왔으며 고대 중국 등에서는 뿔을 재료로 하여 아름답게 조각을 한 술잔 등이 사용되었다. 

코뿔소는 희소동물의 수출입을 규제한 워싱턴조약에서 대상종(對象種)으로 규정되었다. 저 설명을 꼼꼼히 읽다 보면, 코뿔소님들이 얼마나 많이 오해를 사 왔는지, 얼마나 극심한 고초의 세월을 겪어오셨는지를 알 수 있다. 

 

다시 북부흰코뿔소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들은 생김새에서 검은코뿔소와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북부흰코뿔소는 아프리카 중부의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수단에 주로 살아왔습니다. 하필이면 세 나라 모두 극심한 정정 불안과 내전을 겪은 나라들입니다. 제대로 보호시스템이 작동됐을 리 없지요. 

 

일례로 DR콩고의 가람바 국립공원에 살던 북부흰코뿔소의 경우, 1960년대에 개체 수가 2000마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1984년에는 15마리만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밀렵꾼들에 의해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진이 다소 끔찍하기 때문에 여기 올려놓지는 않습니다만, 소셜미디어에서 널리 유통됐던 ‘밀렵당한 코뿔소’의 사진이 있었지요. 산 채로, 코 부분을 도륙당한 코뿔소의 모습.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거대한 생명체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가디언에 따르면 코뿔소의 뿔은 kg 당 7만5000달러(약 8000만원)에 팔려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2014년 한 해에만 코뿔소 1215마리가 밀렵꾼에게 희생됐습니다. 갈수록 사정이 나아져야 하는데 밀렵꾼들은 오히려 요즘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2007년 밀렵꾼에게 죽은 코뿔소는 13마리 뿐이었는데 몇년 새 저렇게 밀렵 건수가 늘어난 겁니다. 

 

못된 인간들 때문에 북부흰코뿔소는 급기야 세계에 5마리 밖에 남지 않게 됐습니다. 그 중 세 마리가 올페제타 보호구역에 살고 있고요. 두 마리 암컷의 이름은 파투(Fatu)와 나진(Najin)입니다. 

 

Najin, a female northern white rhino at Ol Pejeta Conservancy. Photograph: Sun Ruibo/Xinhua Press/Corbis

 

수단은 체코의 동물원에서 구경거리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번식을 위해 올페제타로 옮겨온 것이랍니다. 몸무게 1.2톤, 올해 42살인 수단은 코뿔소로서는 늙은 편입니다. 코뿔소는 대략 40~50년을 살거든요. 

 

케냐 측에서는 어떻게든 수단이 새끼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300헥타르의 보호구역에서 사는 수단에게는 밀렵을 막기 위해 24시간 무장 경호원이 붙어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걸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이들 외에 검은코뿔소 106마리가 살고 있는 올페제타는 아프리카에선 가장 큰 코뿔소 보호구역입니다. 당국은 수단과 파투, 나진의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멸종시킨 것은 코뿔소만은 아니죠. 

 

 
섬에는 거인, 난쟁이, 잡종 예술가, 그리고 온갖 종류의 비순응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마다가스카르섬에는 몸길이가 겨우 1인치 밖에 안 되는 지상에서 가장 작은 카멜레온종(이것은 육상 척추동물 중 가장 작은 동물이다)이 살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지금은 멸종한 피그미하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코모도 섬에는 거대한 도마뱀이 살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바다를 헤엄치는 이구아나가 다른 파충류의 신체적 한계를 비웃으며 바다 밑에서 해초를 뜯어먹으며 살아간다. 뉴기니의 중앙 고원지대에서는 리본꼬리 풍조를 볼 수 있다.

 

인도양의 작은 산호섬 알다브라에는 갈라파고스 거북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용을 가진 큰거북이 살고 있다. 세인트헬레나섬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이언트집게벌레종-세상에서 가장 크고 또 아마도 가장 혐오스러운 벌레-이 살고 있었다. 자바섬에는 피그미코뿔소의 일종인 자바코뿔소가 살고 있으며, 하와이에는 다른 곳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기이한 새인 꿀빨이새가 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잘 알다시피 캥거루와 유대류가 살고 있으며 태즈메이니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도 희귀한 유대류인 주머니곰, 베통, 숲왈라비, 주머니고양이 등이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산타카탈리나 섬에는 방울 소리를 내지 않는 방울뱀이 살고 있다. 뉴질랜드에는 큰도마뱀 투아트라가 살고 있다. 모리셔스 섬에는 유럽인들이 침략해오기 전까지만 해도 도도가 살고 있었다.

 

데이비드 쾀멘의 <도도의 노래>에서 인용한 겁니다. 우리는 이미 도도새를 비롯해, 수많은 생물종들을 절멸로 몰았습니다.

 

세상에 나와 같은 종이 나 혼자 밖에 없다면. 나를 비롯한 단 몇 명 밖에 없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코뿔소나 동물은 아니지만, 비슷한 처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쓰던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겪는 사람들 말입니다. 지구상에는 6000개가 넘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화가 지구의 모든 곳을 뚫고들어가면서 사라지는 것은 생물종만이 아닙니다. 전통문화들이 사라지고, 언어들도 죽습니다. 특히 태평양·인도양의 섬나라나 아프리카, 미주 지역 미개발지역의 소수민족 언어들은 세계화의 파상공세 속에 나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게 왜 나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건지 나는 몰라요. 분명히 말하지만, 마음이 아파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에 실린 글입니다. 마지막 ‘에야크 언어’ 사용자였던 마리 스미스 존스의 말이라고 합니다. 북부흰코뿔소 수단의 서글픈 표정을 보며,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수단과 나진, 파투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게 왜 우리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이런 처지가 된 건지 우리는 몰라요. 분명히 말하지만, 마음이 아파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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