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6000개가 넘는 언어들이 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화가 지구의 모든 곳을 뚫고들어가면서 사라지는 것은 생물종만이 아니다. 전통문화들이 ‘현대화’라는 명목 하에 사라지면서 언어들도 함께 ‘죽는다’. 특히 태평양·인도양의 섬나라나 아프리카, 미주 지역 미개발지역의 소수민족 언어들은 세계화의 파상공세 속에 나날이 사라지고 있다.
소수민족 보호단체인 서바이벌 인터내셔널(SI)은 4일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인류 최고(最古)의 언어’ 중의 하나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인도 여성 보아 스르(사진)가 노령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인도양 안다만 제도의 고유 언어인 ‘보(Bo)’ 언어를 말할줄 아는 단 한 사람이었던 보아가 사망하면서 이제 보 언어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숨진 보아를 통해 보 언어를 연구해온 인도 언어학자 안비타 아비 박사는 “인류의 역사가 담긴 가장 오래된 언어 중의 하나인 보 언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우리 모두의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SI의 스티븐 코리는 “보 언어의 소멸은 인류라는 공동체가 갖고 있던 많은 부분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와 말레이반도 사이, 벵골만 남부에 위치한 안다만 제도는 안다만 섬과 니코바르 섬 등 2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한 군도로 구성돼 있다. 이 지역에는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소수민족들이 오래전부터 거주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왔지만 영국 식민지를 거쳐 지금은 인도령 자치지역이다.
안다만은 태평양의 뉴기니 지역과 함께 인류학자·언어학자들이 인류문화의 보고로 여겨온 곳이다. 하지만 근래 외지 유입인구가 증가하고 힌디·벵골 계통 언어 사용자가 늘면서 토착 언어들은 계속 사라져왔다. 지난 석달 사이에만 안다만 제도에서 사용되는 언어 두 종류가 사라졌다. 보아가 사용했던 보 언어는 약 6만5000~7만년 전 생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지금까지 남아있던 세계 여러 언어들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였다. 아비 박사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해온 언어가 마침내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가 30만명이 넘지만 토착민인 ‘그레이트 안다만’ 부족은 사망한 보아를 포함해 54명밖에 남지 않았었다. 그 중 최고령이었던 보아는 지난 30여년간 부족민들 중에서도 보 언어를 아는 유일한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나머지 50여명 중 대부분은 전통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청소년·아이들이다.
영국 식민지와 태평양 전쟁, 일본군의 점령, 2004년의 아시아 쓰나미 등 온갖 풍파를 헤치고 살아왔던 보아는 생전에 대화를 나눌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마침내 자신 밖에 남지않게 되자 힌디어를 배워 의사소통을 했지만, 할머니가 불러주는 옛 노래들을 부족 아이들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며 슬퍼했다고 한다.
지난 2008년 1월에는 에야크 이누이트족의 ‘나-데네’ 언어를 말할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던 마리 스미스 존스가 사망했다. 2003년 12월에는 러시아 북부 콜라반도에 사는 사미족 소수언어 ‘아칼라 사미’를 말하는 마지막 사람이었던 마르자 세르지나가 세상을 떴다. 그 전해에는 호주 원주민 소수언어인 ‘가아구주’의 유일한 사용자였던 빅 빌 네이지에가 숨을 거뒀다. 이들과 함께 이 언어들도 모두 사멸했다.
미국 비정부기구 ‘위기에 처한 언어를 위한 기금(ELF)’에 따르면 세계에서 현재 통용되는 언어 6000여개 중 절반은 이번 세기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휴양지 뉴칼레도니아의 하에케, 지레 등의 언어는 남아있는 사용자가 30명도 되지 않는다.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군도의 언어들 중에는 사용자가 1명밖에 남지 않아 사실상 수명이 끝난 언어들이 상당수다. 그 언어들에 담긴 역사와 인류의 지혜도 함께 소멸하는 것이다. SI는 “안다만의 몇 안 남은 원주민들은 생계를 정부지원에 의존하면서 외지에서 들어온 질병에 시달리고 알콜·약물중독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게 왜 나인지,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건지 나는 몰라요. 분명히 말하지만, 마음이 아파요. 정말 마음이 아파요…” (마지막 에야크어 사용자였던 마리 스미스 존스)
세계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대부분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질은 심각하게 저하될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삶의 의미 자체를 상실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니엘 네틀, 수잔 로메인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중에서.
'딸기가 보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책을 생각한다. (3) | 2010.03.05 |
---|---|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사의 (0) | 2010.02.18 |
아이티 지진 계기로 본 '재난의 정치학' (0) | 2010.01.27 |
2009 스러진 별들 (0) | 2009.12.27 |
경향신문이 뽑은 <2009 세계 10대 뉴스> (0) | 2009.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