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도시가 있습니다. 도심은 텅 비었고, 곳곳에 부서진 채 버려진 집들과 공장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습니다. 시 정부는 파산했으며 주민들은 떠났습니다. 한때는 ‘자동차의 메카’라 불렸던 미국 미시간 주의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입니다.
2014년 10월 블룸버그통신은 이 도시의 집과 건물 6000채를 매입하겠다며 경매에 참여한 한 투자가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6000건의 부동산 매입가격으로 투자가가 제시한 것은 320만 달러(약 34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입찰자가 제시한 금액은 집값 비싼 뉴욕에서라면 그럴싸한 타운하우스 한 채를 살 수준의 액수이지만, 디트로이트에서는 가압류된 부동산 6000건을 한몫에 매입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 입찰자가 사들이고 싶어 한 부동산은 소유주가 세금을 못 내 압류된 채로 버려진 주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미 도시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은지 오래됐고, 버려진 건물들은 갱들의 소굴처럼 돼버렸습니다. 디트로이트는 2013년 7월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내고 회생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당국이 압류해 경매에 붙인 부동산은 13만 건이 넘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을 사들이겠다고 나선 사람은 카지노와 부동산 사업을 하는 허브 스트래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스트래더는 언론의 관심이 쏠리자 며칠 지나지 않아 입찰 신청을 철회해버렸습니다.
성사되지는 않았어도, 이 일은 디트로이트의 쇠락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자동차의 도시, 모터시티(Motor City) 혹은 모타운(Motown)이라 불리던 디트로이트의 명성은 온데간데없고 퇴물이 된 도시는 헐값 부동산 신세가 됐습니다. 한쪽에선 새로운 움직임도 보입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빌프리트 봄머트는 도시농업운동을 다룬 책 <빵과 벽돌(Brot und Backstein)>에서 디트로이트의 또 다른 모습을 전합니다. 공장도 사람도 떠나간 디트로이트의 빈 터를 ‘개간’해 채소를 키우는 도시의 농민들입니다. 이들은 일부러 유령 도시가 된 디트로이트를 찾아가 밭을 일굽니다.
다른 방식으로 모타운을 되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라이언 멘도자는 사람은 독일 베를린과 이탈리아 나폴리를 오가며 일하는 예술가입니다. 그의 고향이 디트로이트입니다. 멘도자는 디트로이트에 있던 2층짜리 집을 유럽으로 옮겼습니다. 거처를 옮겼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집을 옮겼습니다.’ 2016년 2월 25일 디트로이트프리프레스에 그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44세의 이 예술가는 디트로이트의 집을 뜯어서 배에 싣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네덜란드로 가져갔습니다. 그는 “이것은 연결(connection)과 관련된 일”이라고 했습니다. 멘도자는 이미 고향을 떠난 지 24년이 넘었습니다.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가 사회 안에 뿌리내린 문제들을 봤을 때 내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는 끌어안는 것이었다. 나는 끌어안는 길을 택했다.”
다시 조립된 옛집에 그는 ‘흰 집’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미국 권력의 상징인 백악관(The White House)과 이름이 같지요.
이 집은 그 자체로 번영과 쇠락을 오간 도시의 상징이자 퍼포먼스가 됐습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아트페어에 출품된 멘도자의 이 ‘작품’은 화제가 됐습니다. 멘도자는 전시회가 끝난 뒤 흰 집을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으로 다시 옮겨 미술품 거래소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예상하지 못했던 비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폐허 포르노’라는 것이었습니다. 폐허를 상품으로 삼아 구경거리로 만드는 일이라는 비판입니다.
슬럼 관광이나 범죄현장 관광을 ‘블랙 투어리즘’이라 부르듯, 디트로이트의 폐허를 눈요깃거리로 만들었다는 비난이 일었습니다. 그의 작업도, 그에 대한 비난도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디트로이트는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 됐다는 사실, 그 속에 담겨진 사람들의 희로애락은 무너져 방치된 집을 담은 한 장의 사진, 혹은 한 건의 뉴스 기사가 돼버렸다는 사실이겠지요.
디트로이트가 21세기의 버려진 모타운이라면, 아마존 가운데에는 지난 세기의 버려진 모타운이 있습니다. 1920년대에 영국과 네덜란드의 고무 농장주들은 동남아시아에서 카르텔을 형성하고 고무 값을 올렸습니다. 당시 세계 자동차의 절반을 생산하던 미국 포드 사의 경영자 헨리 포드는 이 담합에 화가 나 아마존에서 고무나무를 재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포드는 밀림 속에 포드란지아 Fordlandia라 알려진 도시를 지었습니다.
“도시에는 주택 2백 채, 1천 명의 독신 남성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대형 병원, 영화관, 교회, 학교가 있었다. 건물들은 망고나무와 야자나무, 유칼립투스 가로수가 늘어서 있고 모두 전기 가로등으로 밝혀지는 대로를 따라 들어서 있었다. 또한 미국인과 브라질인 전용으로 각각 테니스 코트와 수영장, 스퀘어댄스를 위한 광장과 홀 열여덟 개짜리 골프 코스를 갖춘 사교 클럽도 두 군데 있었다. 포드란지아는 급수관과 하수관, 50킬로미터에 이르는 도로와 철도, 창고와 기계 공장, 항구를 갖추고 있었다.”
캐나다 출신의 인류학자 겸 탐험가 존 헤밍은 <아마존>에서 이 정글도시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야심만만한 계획이었으나 오만함에 눈 먼 인간이 자연의 힘을 무시했을 때 자연은 종종 인간의 야심을 무력하게 만들곤 하지요. 포드란지아가 그랬습니다. 포드란지아는 순식간에 아마존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변모했으나 잠시뿐이었습니다. 포드자동차는 이 지역에 심을 고무나무의 종자를 수마트라에 있는 타이어회사 굿이어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가져왔는데, “이것들은 단 28그루라는 위험스러울 만큼 작은 유전자 풀에서 수집된 것이었다. 수액을 매우 많이 생산하도록 육종되었지만 남아메리카 잎마름병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1935년에 잎마름병이 퍼져 포드란지아는 쓸모없게 돼버렸습니다. 그러자 헨리 포드는 베우테하 Belterra 지역에 더 큰 포드란지아를 건설했습니다.
“이번에는 주택 8백 채와 여러 영화관, 오락 회관 세 채, 축구장 다섯 개가 지어졌다. 5백만 개의 종자가 베우테하에 심어졌다. 오늘날 관광객들은 이 미국식 도시의 잔해를 방문해 십자로 난 길과 베란다와 정원, 전형적인 철제 소화전, 멋진 물탱크로 둘러싸인 교외 주택들을 구경할 수 있다. 1941년이 되자 베우테하의 플랜테이션은 번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베우테하에는 7천 명의 주민과 360만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러나 또 한 번 파괴적인 전염병이 돌았다. 타파조스 강의 플랜테이션에 거의 천만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헨리 포드는 1945년 마침내 고무 한 번 채취하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했다. 그는 포드란지아와 베우테하를 브라질 정부에 50만 달러에 매각했다.” (존 헤밍, <아마존> p.514)
이렇게 해서 밀림의 모타운은 유령도시가 됐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구경하러 오는 이들조차 별로 없는 포드란지아의 쓸쓸한 흔적을 담은 사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디트로이트가 파산신청을 한지 다음달이면 3년이 되는군요. 지금 디트로이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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