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집트의 포트 사이드에서 축구경기 때문에 79명이 죽었다. 머나먼 온두라스의 코마야가 교도소에 불이 나서 360명이 숨졌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은 244년 만에 인쇄판 보급을 중단했다. 더불어 뉴스위크도. 통북투가 있는 아프리카의 말리에선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라이베리아의 인간백정 찰스 테일러가 드디어(!) 특별전범재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아직도(!) 그는 살아있다.
뭉크의 파스텔 버전 ‘절규’는 1억2000만 달러에 뉴욕 경매소에서 낙찰됐다. 일본의 도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워라는 '스카이트리'가 개장됐다. 6월에는 2117년에야 다시 찾아온다는 금성의 일식이 벌어졌다. 핀타 섬 거북 중에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외로운 조지가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에서 숨을 거둠으로써 이 종(種)은 완전히 멸종됐다.
CERN의 과학자들은 '신의 입자'라던 힉스 보손으로 보이는 새 입자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이번엔 진짜일까?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인도에서는 최악의 전력부족 사태로 6억2000만 명이 전기 없이 이틀을 버텼다. NASA의 로버 ‘큐리어시티’는 무사히 화성에 안착했다.
유럽연합과 캐나다는 이란에 등을 돌렸고 시리아에선 계속 사람들이 죽어갔다. 파키스탄의 옷 공장에서 불이 나 3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카리브 해의 바하마에서는 샌디라는 이름의 허리케인 때문에 209명이 숨졌지만 허리케인이 해마다 미국에 끼치는 몇푼 어치의 물질적 피해보다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필리핀에는 태풍이 들이닥쳐 1067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공격해 140명을 죽였다. 팔레스타인은 유엔 총회에서 참관국 자격을 얻었지만 한국은 표결에서 기권했다. 카타르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회의에서 교토의정서가 2020년까지 연장됐다.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가 숨을 거뒀고 휘트니 휴스턴도 세상을 떴다. ‘뫼비우스’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만화가 장 지로 역시. 미국 방송 CBS ‘60분’에서 “I'm Mike Wallace”라 말하던 저널리스트 마이크 월리스도 떠났다. 동화 작가 모리스 센닥은 꽃피는 봄에 하늘로 갔다. 샴푸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영국 아저씨 비달 사순, 아직 한권도 읽어보지 못한 멕시코의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 흘러간 이름 도나 서머. 모두들 세상을 떠났다.
사우디의 늙은 왕세제 나예프는 왕위를 물려받지도 못한 채 형보다 먼저 사망했다. 한인 폭동의 시발점으로 기억되는 로드니 킹, 서구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던 에티오피아의 멜레스 제나위 전 총리, 달에 다녀온 닐 암스트롱, 문선명, 에릭 홈스봄, 노로돔 시아누크 왕, 실비아 크리스텔. 그리고 한국에선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갔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지나, 올해의 마지막 날.
한 해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무 일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예쁜 찻잔들을 샀고, 사하라의 달빛을 보았다. 딸아이는 나와 발 크기가 같아졌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지난 1년은 내게 '떠나는 1년'이었다. 회사, 서울, 한국을 떠나 휴직을 하고 여기, 도쿄에 와서 지내고 있으니 떠나온 1년이 되는 것이고. 엄마는 회사를, 딸은 학교를 떠나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링을 했으니 둘 모두 '존재의 기반'이던 공간들을 떠난 것이고. (딸은) 공부하고 (엄마는) 노는 사이사이 베트남과 태국, 스페인과 모로코로 여행을 다녔으니 그 또한 떠났던 것이고.
(대선 결과로 정신이 뇌에서 떠났으니 그것도 떠난 건가. -_-;; )
이제는 나선형 계단을 한 층 올라갈 준비를 할 차례.
종말은 오지 않았고, 지구는 늘 그렇듯 23.5도 기울어진 채로 돌고 있고, 나는 새롭게 한 해를 맞는다.
글과는 아무 상관 없는 철 지난 뮤직비디오 하나. 영상이 참 이쁘다. 노래도 좋고.
저작권 문제로, 링크만 걸어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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