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21

[찌는 여름의 베트남] 베트남이라는 나라

6. 15 사파에서의 마지막 날. 오전엔 캇캇(Cat Cat) 마을 트레킹. 가이드 군이 이 마을 출신이라고. 내리막길 쭉 따라가면서 몽족 가게들 보는데 역시나 비싸게 불러... 그저 그런 폭포까지 가서 잠시 숨 돌려주고. 역시나 컨디션 땜시... 다시 오토바이 타고 호텔로. (보통은 오토바이 2만동, 우린 상태 안 좋아 협상도 잘 못한데다 가이드가 바가지에 동참하여 한번에 10만동씩... ㅠ.ㅠ) 점심 먹고 요니와 사파 읍내 구경. 조용하고 넘 좋다... 가게들도 이쁘고... 5만동 주고 카페에서 레모네이드 마시고, 베트남 차 한주전자 마시고. 요니와 함께 하는 이런 순간이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 뿐만 아니라 사파 자체가 넘 좋았다. 하노이의 공해와 소음과 바가지에 지칠 찰나에 산골 마을에서 푹 ..

[찌는 여름의 베트남] 사파 산골마을 여행

6. 12 하노이에서의 하루하루... 좀 지칠 수 있겠다 싶고 요니도 관광보다 좀 '노는' 걸 원하는 것 같아서 오전에 호텔 체크아웃하고 잠시 짐을 리셉션에 맡겨둔 뒤 거리로.맛있는 고기완자 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커피 한 잔 하고, 요니와 둘이 시내 중심가에 가까이 있는 Army Guest House(어떤 지도엔 Army Hotel이라 돼 있음)로. 거기 묵을 계획이었던 게 아니라, 거기 수영장이 있어서... 지금껏 내가 놀아본(?) 수영장 중에서 가장 깊었다. 가장 안쪽은 2.4m에 이르니...물 속에 들어가 바닥에 납작 붙으려면 수압 때문에 몹시 숨이 찼다.물은 살짝 짠 물... 이유는 모르겠으나 -_- 물안경 없이 눈 뜨고 놀기 딱 좋았음. 베트남 물가 생각하면 이용료가 싼 편은 아니었는데(정확한..

[찌는 여름의 베트남] 땅 위의 하롱베이, 땀꼭 & 호알루

6.11 베트남(이라 해봤자 하노이 근방이지만)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 하롱베이였다. 하지만 용이 내려온다는 천혜의 그곳은 바가지 관광으로 기분 살짝 잡쳐 100% 만족스런 나들이가 되지 못했고. 구원은 항상 의외의 곳에서 오는 법이니. 요니와 나에게, 하롱베이보다 더 좋았던 곳이 있었다. 바로바로~ 땅 위의 하롱베이라 불린다는 땀꼭 Tam Qoc, 그리고 베트남 최초의 수도였다는 호알루 Hoalu. 아만다 호텔 리셉션에 당일 여행 패키지를 예약했는데... 하롱베이 다녀왔던 그 조이트래블이네? -_- 하지만 이번엔 가이드 언니가 좋았어여... 언니가 아니고 애기처럼 귀여운 꼬마 제리. 이 가이드 아가씨, 키가 요니만하니 150cm 정도 되려나. 체구도 요니와 비슷한 정도. 베트남 사람들이 그리 크지..

[찌는 여름의 베트남] 하롱베이 수퍼울트라 바가지 여행

6월 9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짐 챙기고, 아침식사 하고, 이틀 묵었다고 그새 정들었던(?) 남하이 호텔을 뒤로한 채 하롱베이로 출발. 호안끼엠 호숫가 구시가지 어느 막돼먹은 여행사에서 예약한 막돼먹은 패키지 투어... 사실 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느 여행사에서 하든 다 섞이기 때문에 여행사 이름만 갖고는 패키지의 질을 알 수 없음. 하지만 이 하롱베이 여행은, 내 평생 가본 패키지 투어 중 최악이었음~~ 에헤라디야~ ♬ 승합차량 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그 와중에 패키지에서 빠지지 않는 상품 파는 곳 들렀다가. 뭐, 억지로 사라 하는 것도 아니고, 젊은 여성들과 특히 장애인들이 일하는 작업장에서 자수와 그림 등 만드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음. 오후 1시가 되어 하롱에 도착..

[찌는 여름의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첫날

베트남 다녀온지도 벌써 몇달...이 아니고 얼추 반년이 지나려 하네? 여행 기록 정리한다 하면서 게으름 피우다가 밀리고 밀려 이제야. 열흘 가량 관광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더랬는데 시간이 흐른데다가 그노무 게으름 땜에 무성의한 메모로 대신함. 6월 7일 아침 일찍 하네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환승하러 내린 김에 서울로 가서 요니가 엄청 먹고싶어하던 원효로 홍마반점 군만두로 점심.인천공항으로 돌아가서 저녁 7:30 대한항공 비행기 타고 베트남 하노이로.도착했더니 현지시간 밤 10시가 넘었고... 오자마자 비행기에 카디건 두고 내림... ㅠ.ㅠ고양이는 호기심 때문에 죽는다는데, 딸기는 건망증 땜에 죽을 것 같다. 하노이 시내 구시가지 두엉딴(Duong Thanh)의 남하이(Nam Hai) ..

미국은 여전히 독재자들 편

튀니지의 지네 벤 알리,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지금은 쫓겨났지만 과거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재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죠. 얼마전 사망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미국과 겉으로는 앙숙이었지만 물밑에서 거래하던 인물이었고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미국의 대테러전에 협력하면서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적 지원을 받았는데요. 미국이 입으로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척하지만 뒤에서 독재정권을 지원해준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아랍의 봄’으로 중동·북아프리카 군사독재정권들이 타격을 입은 뒤에도 미국은 여전히 여러 곳에서 독재자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8곳의 독재정권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America's Unsavory Al..

남중국해 갈등 점입가경

-베트남이 징병령을 발동했다고. 응웬떤중 베트남 총리가 어제 징병령에 서명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오는 8월 1일부터 발효되는 징병령은 전면적인 군대 동원령은 아니지만 전시 징병 기준을 정한 것이어서 눈길을 끕니다. 베트남이 징병령을 발동한 것은 1979년 중국과의 전쟁 이후 32년만에 처음이라고 합니다. 13, 14일 이틀 동안 중부 꽝남 성 40㎞ 해상에 있는 무인도에서 실탄 사격훈련을 했던 베트남 측은 “그 훈련은 미리 예정됐던 것이며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는 관련 없다”고 밝혔습니다.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어디까지나 해군이 꽝남성 해안에서 연례적으로 실시해온 정기적인 훈련의 하나”라면서 “훈련 수역도 베트남 영해이며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상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

어제의 오늘/ 1945년 베트남 독립선언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위치한 베트남은 남중국해에 면해 남북 1600㎞에 걸쳐 뻗어있다. 동서로 최대 폭은 650㎞로, 남북 길이가 훨씬 긴 ‘칠레형 국가’다. 국토는 북부의 고원과 통킹 삼각주, 안남 산지와 해안 저지대, 그리고 메콩강 삼각주의 다섯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원과 산과 평야와 삼각주와 해안을 모두 가진 비옥한 나라다. 특히 통킹, 메콩강 삼각주는 농경의 중심으로서 예로부터 베트남 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어 왔다. 남부 지역 거의 대부분에 해당되는 메콩강 삼각주는 해발 3m 이하의 저지대로 지금도 국민 절반이 이 곳에 살고 있다. 원래는 이웃한 캄보디아의 크메르 민족 땅이었으나 17세기 베트남 민족이 들어와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곡창지대를 차지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근현대사는 비옥한 땅..

어제의 오늘/ 미-베트남 국교 정상화

1995년 8월 5일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하노이를 방문, 응우옌 만 캄 베트남 외무장관과 만나 국교 정상화 협정에 조인했다.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나고 20년만이었다. 이로써 한국전쟁 이래 동·서 냉전 진영이 맞붙은 최대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은 완전히 끝났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참전병들이 국교 회복에 반대했지만 일반적인 여론은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베트남은 80년대 ‘도이모이(개혁)’ 정책을 실시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경제엔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미국 산업계는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과 자원을 가진 베트남 진출을 몹시 바라던 터였다. 2년 뒤인 97년 두 나라는 대사를 교환했고, 98년에는 부총리로 승진한 응우옌 만 캄이 미국을 방문했다. 하일라이트는 2000년 11월 빌 클린턴 미국 ..

THE NEWS 더 뉴스,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 아시아 언론의 눈으로 본 아시아

THE NEWS 더 뉴스,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아시아네트워크/푸른숲. 쉐일라 코로넬 외. 오귀환 옮김 ▷ 필리핀 시민들은 곧 아키노의 무능과 무경험에 좌절했다. 말썽 많던 그녀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1992년, 시민들은 보다 전문적인 지도자를 원했다. 국방장관과 군 참모총장으로 오랫동안 정부조직을 이끌어왔던 피델 라모스(Fidel Ramos)가 적임자로 보였다. 그는 필리핀을 아시아의 차세대 호랑이 경제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지녔고 실제로 필리핀은 높은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7년 말 몰아닥친 동아시아 경제위기로 희망은 사라져 버렸다. 필리핀이 한때 맛본 번영은 거품일 뿐이었고, 대다수 필리핀 시민들은 거품 밖 현실로 내팽개쳐졌다. ▷ 1770년 샤(Shah) 왕조는 무력으로 ..

딸기네 책방 2008.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