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쫓겨났지만 과거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재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죠. 얼마전 사망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미국과 겉으로는 앙숙이었지만 물밑에서 거래하던 인물이었고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미국의 대테러전에 협력하면서 미국의 경제원조와 군사적 지원을 받았는데요.
미국이 입으로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척하지만 뒤에서 독재정권을 지원해준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심지어 ‘아랍의 봄’으로 중동·북아프리카 군사독재정권들이 타격을 입은 뒤에도 미국은 여전히 여러 곳에서 독재자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외교잡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8곳의 독재정권에 대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대표적인 독재자는 적도기니의 오비앙 음바소고 대통령입니다.
적도기니는 아프리카 서부 적도 지역에 있는 작고 가난한 나라입니다. 음바소고 대통령은 1979년 집권해서 지금까지 32년간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카스트로가 물러나고 카다피가 사살된 지금은 음바소고가 세계 최장기 집권자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적도기니가 산유국이라는 이유로, 음바소고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부부와 오비앙 음바소고 부부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 투르크메니스탄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도 독재자로 꼽혔습니다. 그 중 우즈베크의 카리모프와 타지키스탄의 라흐몬은 1990년대 초반 두 나라가 옛소련에서 독립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장기집권하고 있습니다. 투르크멘의 이름 댑땅 긴 대통령님은 2006년에 독재자가 축출된 뒤 취임했는데... 새 독재자 명단에 끼셨군요 -_-
미국은 이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군수품 보급로에 위치해 있고 유라시아 내륙 러시아와 중국을 이웃한 요충이라는 이유 등등을 들어 독재정권에 원조를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 탓을 하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한국도 우즈베크와 자원외교를 한다면서 대통령이 수도 타슈켄트를 몇차례나 방문했고,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과도 끝까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고, 중동 민주화혁명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입장을 밝히지도 않았으니 내 눈의 들보라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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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크의 카리모프 대통령과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카리모프와 노무현
카리모프와 이명박
글허나...
대표적인 친미 독재국가는 뭐니뭐니해도 사우디아라비아죠.
사우디는 세계 어느나라보다도 전근대적인 봉건 압제국가입니다. 사우디 여성들이 존재조차 무시당하고 있다는 얘기 많이 들려오지만, 여성들이 특히 더 심하다는 것이고요. 사우디 남성들도 정치적 권리는 전혀 없습니다. 왕실이 석유자원에서 거둬들이는 이익을 독점하고 국민들에게는 최소한의 정치적 권리도 주지 않고 있죠. 하지만 사우디는 언제나 중동에서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입니다.
금목걸이 두르고 활짝 웃는 오바마와 압둘라 사우디 국왕
이웃한 걸프의 작은 섬나라 바레인도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전제군주 국가입니다. 올봄 바레인에서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를 했을 때 미국은 민주주의에 등을 돌렸습니다. 사우디가 바레인으로 군대를 보내 시위대를 진압했는데 미국은 묵인을 해줬습니다.
바레인의 경우 지배층은 이슬람 순니파이고, 국민들은 다수가 쉬아파 무슬림입니다. 순니파인 알칼리파 국왕은 국민들이 개혁을 요구하자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군대를 끌어들여 시위대를 유혈진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30명 이상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습니다. 수백명이 체포돼 갇혔고, 군사재판에 회부됐다고 합니다.
미국은 사우디 군이 바레인까지 와서 진압한 과정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했지만, 바레인은 미군 중부사령부 제5함대 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미국의 용인 하에 사우디가 바레인 왕실을 대신해서 시민들을 진압한 것이라고 봐야죠. 그 유혈사태가 벌어진 게 지난 2월인데요. 그 직전까지도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바레인이 순조롭게 민주주의로 가고 있다고 치하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알 칼리파 국왕이 개혁적인 지도자라고 치켜세웠습니다.
포린폴리시가 뽑은 또다른 독재자는 에티오피아의 멜레스 제나위 총리입니다. 제나위 총리는 1991년부터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습니다. 악명높은 멩기스투 공산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서방으로부터 대대적으로 환영을 받았고, 실제로 국제사회의 구호·원조를 받아 나라를 살리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집권을 하면서 독재자로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가 역내에서는 소말리아, 지부티 같은 나라들을 압박하면서 패권국가 행세를 하고 있는데요. 미국은 에티오피아가 소말리아 이슬람 세력을 적대한다는 이유로 지원합니다.
마지막, 포린폴리시가 독재국가로 지목한 곳은 베트남인데요. 좀 애매하네요.
포린폴리시는 외교전문지라기보다는 국제문제를 주로 다루는 우파 성향의 상업적인 잡지이고 좀 센세이셔널한 랭킹 기사를 많이 쓰는데요. 베트남은 인터넷을 통제하고 강제노동을 시켜 국제인권단체의 비난을 받는다는 점을 독재정권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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