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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 1년, 칠레 광부들은 지금

딸기21 2011. 10. 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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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3일 칠레 북부 사막지대의 산호세 구리광산에 갇혀 69일간 사투를 벌이다 구출된 33명의 광부들('Los 33')이 세계의 이목을 끌었죠. 오늘로 1년이 됐네요.

광부들 구출작전 때에 칠레 대통령도 현장에 갔고, 세계 주요 방송들이 생중계를 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전했는데요. 하지만 그때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던 광부들 중 상당수는 1년 동안 힘겨운 적응을 해야 했고, 일부는 약물중독, 알콜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외신들은 1년동안 지상에서의 사투를 벌여온 광부들의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칠레 언론에 보도된 사연입니다. 33명의 광부 중 한 명인 에디손 페냐(35)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페냐는 두달 넘게 갱도에 갇혀있으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로 우울함을 달래고 기운을 냈다고 했고, 무사히 구출된 뒤에는 칠레 국민들 사이에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페냐 뿐 아니라, 지난해 칠레는 지진까지 겪은 차였기 때문에 광부 구출이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희망을 주는 이벤트처럼 되었죠.



광부 중 한명이 지하에서 매일 수㎞씩 달리기를 했다고 해서 특히 유명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페냐입니다. 페냐는 구출된 뒤 미국 뉴욕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다시 화제가 됐습니다. 유머도 있고 말을 잘 해서 인터뷰와 방문 요청이 쇄도했고,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집을 방문하고 현지 토크쇼에 나와 엘비스 춤을 흉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스타로 떠오른 그 자신은 정작 갑작스런 유명세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고통받았던 모양입니다.

페냐는 지금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재활병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계속 술을 마셨다. 광대짓을 한다는 느낌을 지우려고 애썼지만 어딘가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구출된 뒤에 일종의 외상후 후유증으로 이유없이 울거나 소리지르는 등의 이상행동을 하게 됐고, 거기에 술까지 마시니 생활이 무너졌습니다.

의료진은 절제된 생활을 하라고 했지만 유명세 때문에 국외로 많이 돌아다니다보니 폭음을 멈출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행사나 방송에 나가 돈을 벌었지만 한달 새 1200만 페소(약 2800만원)을 탕진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코카인에까지 손을 댔고, 나중에는 폐인처럼 돼버린 자기를 누가 볼까봐 집 밖에 나갈 때문 주변을 살피는 지경이 됐습니다. 가족들 설득을 받아들여 지난 8월말부터 재활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전화나 인터넷을 쓸 수 없고 식단도 통제됩니다. 다시 갇힌 셈이 된 거죠.




광부들 모두, 처음에는 페냐처럼 정신없이 불려다녔습니다. 여러 기관의 초청을 받아 스페인, 이스라엘, 그리스, 영국, 미국 등지로 돌아다녔습니다. 할리웃 스타 데미무어나 제시카 알바와 만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신적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일부는 건강 문제로 조기에 광산에서 은퇴했고, 광산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사람들도 후유증 때문에 다시 취업하기 힘든 처지라고 합니다.

이들을 둘러싼 외부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구출현장에 와서 화려하게 자기 모습을 부각시켰고 그 덕에 구출 직후엔 지지율이 65%로 치솟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 교육개혁 문제 때문에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져서 정치적 궁지에 몰려 있고, 광부들을 위한 사후 대책 같은 것에는 정부가 등돌리고 있습니다.

정부가 그 때 광부들을 돕는다며 의료진을 구성했지만, 구출된 사람들의 사생활과 관련된 요인들이 많기 때문에 사후관리, 즉 생활적인 측면에서의 관리를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국민여론도 처음에는 광부들의 사투에 박수를 보내는 쪽이었지만 나중엔 “살아나온 이들이 너무 돈을 밝힌다”는 비판론 쪽으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광부 31명은 지난 7월 정부에 광산 안전관리에 소홀했다면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그래서인지, 대대적인 구출 1주년 행사 같은 것도 없는 듯합니다. 정부는 광부 구출 1주년을 별로 부각시키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가려 하고 있고 언론도 인기 떨어진 광부들을 그리 조명하지 않는 분위기랍니다. 퍼스트레이디인 세실리아 모렐 여사와 전직 광업장관들이 13일 산호세 광산이 있는 코피아포를 찾아가 중국 정부가 기증한 기념물 제막식을 하고, 몇몇 구출된 광부들이 와서 당시의 구출작전을 그린 영화를 관람할 거라고 하네요.

에르난 데 솔미니악 광업장관은 광산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안전감시 전문인력을 2배로 늘렸고, 정부는 내년 말까지 7000여개 광산의 안전검사를 할 거라고 합니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칠레에서는 17명이 광산 사고로 숨졌습니다. 아직 올해가 지난 것은 아니지만, 작년 사망자 45명에 비하면 산술적으론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극적인 구출사건 뒤에서 여전히 죽어가는 광부들은 있다는 거죠.

생사의 기로에서 간신히 살아난 광부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찾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는 반면에, 산호세 광산을 운영하던 산 에스테반 광업회사의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별다른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칠레 언론들은 이 회사 전직 경영자이자 소유주인 알레한드로 본과 마르셀로 케메니가 여전히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찰 조사만 받았을 뿐 아직 기소도 되지 않은 상태랍니다. 칠레 광산안전관리국(Sernageomin)과 지역보건부, 그리고 사고 뒤 신설된 작업안전위원회가 경영주의 책임이 있다고 밝혔지만 처벌까진 오리무중인 듯합니다.

광부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외신에 모아놓은 것을 인용해봅니다.

마리오 세풀베다(41)- 당시 두번째로 구출된 광부죠. 지금 산티아고에서 이벤트 업체를 차려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리오 고메스(65)-규폐증(珪肺症)에 걸려 은퇴하려고 합니다. 정부 연금으로 살고 있습니다.
빅토르 사모라(34)-안정적인 직업 없이, 자기 집 거실을 가게로 만들어 청과물을 팔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면증을 호소합니다.
프랭클린 로보스(53)- 전직 축구선수 출신으로, 구출된 뒤 구조대팀과 축구경기를 해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코피아포 축구클럽 기술 스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역시 정부 연금 수급자입니다.
클라우디오 아쿠나(36)- 사고 뒤 트라우마 때문에 새 일자리를 얻지 못해 애먹었지만 지금은 광산으로 돌아갔습니다.
빅토르 세고비아(49)- 지하에서 일기를 적었던 광부인데요. 택시와 스쿨버스 한대씩을 가지고 영업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록 덕분에 ‘로스33’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오기도 했지요. 정부 연금을 받습니다.
아리엘 티코나(30)- 딸 에스페란사와 함께 주로 집에 있습니다. 일자리도 못 찾고 외상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니엘 에레라(28)- 후유증 치료 중입니다.
호세 오헤다(48)- 역시 후유증 치료를 받는 중이고, 정부 연금으로 삽니다.
파블로 로하스(46)- 실업상태에서 연금으로 삽니다.
오마르 레이가다스(57)-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해 파트타임 강연 등을 하고 있습니다. 연금 수급자.
알렉스 베가(32)- 안정된 일자리가 없어 임시직 기술공으로 일하고 있으며, 여전히 치료 중입니다.
사무엘 아발로스(44)- 실직 상태. 역시 파트타임 강연.
레난 아발로스(30)- 심리적 문제로 치료 중.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2)- 맨 첫 구출자로 스타가 됐던 사람이죠. 실직 상태. 칠레 북부 코야와시에서 광산 일자리 찾는 중.
요니 바리오스(51)- 한때 의사지망생이었던 관계로 지하에서 광부들 간호사 역할 맡았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 규폐증 환자. 창고 하나를 소유하고 아내 수사나 발렌수엘라와 함께 근근이 먹고살며 허덕이는 처지. 연금 수급자.
다리오 세고비아(49)- 칠레 사업가이자 자선가 레오나르도 파르카스의 도움을 받아 코피아포에 채소가게를 열었습니다. 연금 수급자.
루이스 우르수아(55)- 작업반장으로 지하에서 동료들을 다독이는 리더십을 발휘했고, 맨 마지막으로 구출된 진정한 영웅이었죠.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강연 다니면서 연금 받아 살고 있습니다.
후안 안드레스 이야네스(53)- 역시 일없이 강연... 연금 수급자.
후안 카를로스 아길라르(50)- 강연 다니려고 연습 중. 연금 수급자.
에디손 페냐(35)- 앞서 얘기한 대로... 약물·알콜중독자 재활센터에서 치료 중.
클라우디오 야네스(35)- 실업자여서 경제적으로 곤궁해지자 강연 일선으로...
오스만 아라야(31)- 실업자. 심리치료 중. 정부 재정보조 전무.
카를로스 마마니(25)- 유일한 볼리비아 국적 광부. 여전히 칠레에 있지만 실업자. 인터뷰 거부.
리차드 비야로엘(28)- 심리치료 중.
지미 산체스(20)- 막내 광부였던 사람. 병원에서 나왔지만 정신적 후유증 호소.
라울 부스토스(41)- 남부 탈카와노로 이주, 강연에 집중.
페드로 코르테스(27)- 실업에 파산 상태. 전기기술 훈련 중...
카를로스 부게노(28)- 실업자, 자선단체에 의존.
에스테반 로하스(45)- 실업자, 연금 수급자.
카를로스 바리오스(28)- 친구와 작업용 차량 운행해 먹고 살고 있음
호르헤 가예기요스(56)- 일 없이 강연 다님. 연금 수급자.
호세 엔리케스(55)- 2011년 10월 12일, 1주년 앞두고 스페인어·영어로 출간되는 <광산의 기적(Miracle in the Mine)>이라는 구술 기록 출간. 공식적인 일자리 없지만 광산으로 돌아가려 함. 연금 수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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