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과학, 수학, 의학 등등 101

에드워드 윌슨, 생명의 편지

생명의 편지 The Creation 에드워드 윌슨. 권기호 옮김. 사이언스북스 지난해를 마무리하면서 읽은 책. 마무리를 할 것이 뭐가 있냐 싶지만, 로버트 카플란의 책으로 끝내려니 어쩐지 싫고 무언가 '좋은 책'으로 한 해를 끝내고 싶었다. 이 책이 국내에 번역출간된 것이 2007년이다. 그러니 10년 가까이 묵혀둔 셈이다. 윌슨의 'The Future of Life'를 읽고 나서 좀 헷갈렸던 것인지, '생명의 편지'도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꺼내어 보게 된 것은 딸 덕분이다. 딸에게 책을 권해주면서 보니 밑줄이 하나도 없는 것이 어째 생소한 느낌.... 다 읽고난 딸이 "너무 좋다"며 내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것도 벌써 몇달 전의 일이었다. 책은 윌슨이 미국 남부의 어느 '목사님'에게..

브라이언 그린, '멀티유니버스'

멀티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박병철 옮김. 김영사 '엘러건트 유니버스'하고 '우주의 구조'는 매우매우 어렵고 뭔소린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멋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멀티유니버스는... 브라이언 그린의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제목의 책에 끌리진 않았을 것 같다. 원제는 이고, 한국판 제목이 다중우주를 내세운 것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한국판 제목이 더 나은 듯하다. 오래 전에 사뒀던 책이 책장 어딘가에 숨어 있었고, 이사해서 책장을 정리하는 도중에 발견되어 뒤늦게 읽었다. 숨겨진 실체라니. 뒷부분에서 저자는 그 '실체'의 하나가 수학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수학에 문외한인데다 워낙 어려운 내용을 뭉뚱그려 '의미는 이런 거야~' 식으로 설명해놨기 때문에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전작들이 끈이론을..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나는 열 살 때까지 북부 독일의 숲으로 피난을 가서 6년 동안 살았다. 우리 가족이 가진 것은 아주 적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까마귀를 애완용으로 키웠고 딱정벌레를 수집할 수도 있었다.상쾌하고 맑고 영원한 마법에 싸인 세상. 이제는 그저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 생생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난 이미 그런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긴 하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후 나는 메인 주의 시골에서 십대를 보내면서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덫을 놓는 법을 배웠다. 메인에서 만난 스승들은 이미 오래전에 내게 집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고 통나무 오두막은 벌써 지어놓은 상태다.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7쪽) 얼마전..

싯다르타 무케르지, '의학의 법칙들'

의학의 법칙들 - 생명의 최전선, 가장 인간적인 과학의 현장에서 TED Books 8 싯다르타 무케르지. 강병철 옮김. 문학동네 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TED북스. 얇고 작고 짧지만 재미있다. 이 시리즈, 우습게 여기지 말고 보이는 족족 읽어야겠다.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를 근래 아주 재미있게 읽은 까닭에, 그 저자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믿고서! 펼쳐들었다. TED 강연을 정리한 간략한 책이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의사이고 학자인 무케르지의 이 책은 간단히 설명하면 그가 의학도들에게 전하는 '의사의 자세 혹은 의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들은 불확실하고 시시때때로 환자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무언가를 가지고서 생명을 다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원칙..

면역에 관하여

요즘 '안아키'라는 게 유행한다고 하는데, 마침 그 문제와 직접 연결된 책이 보여서 손에 들었다. 율라 비스의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다. 재미있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가 몸에 대해 생각하고 면역과 백신과 사회에 대해 이것저것 뒤지고 공부하며 생각한 것들을 쭉 풀어놓은 일종의 에세이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거부감의 근원과 역사를 살피고, 이런 현상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함의를 짚어본다. 백신을 거부할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왜 사람들은 거부하는가. '백신 뱀파이어'라는 제목의 1881년 전단은 백신 접종원들이 '순수한 아기'에게 가하는 '광범위한 오염'을 경고했다. 백신 접종 행위에 뭔가 성적인 면이 있을 거라는 두려움을 부추겼고, 그 불안은 팔에서 팔로 전달하는 백신 때..

화성 이주 프로젝트- 생존하라, 그리고 정착하라

화성 이주 프로젝트- 생존하라, 그리고 정착하라How We'll Live on Mars스티븐 L. 퍼트라넥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과학저널리스트의 TED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간명하면서도 재미있다. 영화 을 매우 보고 싶었으나 못 보고 지나갔다. 집에 화성에 대한 책이 한 권 더 읽는데, 맛뵈기 삼아 이 책부터 꺼내들었다. 토요일 오후 카페에 앉아 책장을 후다닥 넘겼다. 화성 이주 프로젝트라니, 멋지다! 화성으로 이사간다는 것은 아직은 상상에 불과하다. 책은 상상으로 넘쳐난다. 그 상상이 그들어맞을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지는 알 수 없다.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화성 이주라는 것은 온갖 장애물들을 끌어안고 있으니. 하지만 그저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신나는 기분. 책은 화..

진공이란 무엇인가

진공이란 무엇인가 Les avatars du vide마르크 라시에즈-레. 김성희 옮김. 알마 매우 얇은데 매우x10000 어려운 책. 근래 읽은 책들 중에 가장 얇고, 가장 난해한데, 가장 폼난다.'진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이 책을 읽는다고 진공이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진공이 그렇게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런 책을 과학자들이 힘들게 쓰지도 않았을 테니까. 진공은 무지무지하게 어려운 개념이고,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개념이다. 진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변화해왔으니. 때론 진공은 그냥 텅 빈 공간이었고,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었으며, 하늘이었고, 우주였다. 이 책은 '에테르'부터 '우주복사'까지, 진공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Disturbing The Universe 프리먼 다이슨 (지은이) | 김희봉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9-02-10 | 원제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올 여름 책을 펴들었는데, 분명 일전에 다 읽은 책이라 생각했음에도 밑줄 하나 없지 뭔가. '엥, 분명히 읽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재미있어서 한참을 쥐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줄 쳐 가며 다 읽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책꽂이에서 '줄.쳐.진.' 똑같은 책을 한 권 더 발견. 그러니까 두 권이 있었던 게 문제였어.... 이리하여 우리 집에는 밑줄 쫙쫙 쳐진 다이슨의 '20세기를 말하다'가 두 권이 되었다. -_- 나는, 한 과학자가 ‘인간의 ..

딕과 프리먼의 여행.

사막에는 빨간 꽃을 피운 선인장이 서 있었고, 우리가 앨버커키로 다가가는 동안 딕은 좋아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태양은 우리를 위해 빛났고, 경찰차가 우리를 환영했다. 딕은 경찰차가 우리에게 서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을 알아채는 데 한참이 걸렸다. 경찰은 우리가 책에 나오는 모든 교통법규를 어겼다고 공손하게 말해 주었고, 약식 재판을 하는 법정에 출두하라고 했다. 판사는 벌금 50달러를 내라고 했다. 판사는 자기가 내린 과속 벌금 중에서 이번이 가장 비싼 벌금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앨버커키의 기록을 깼다. 딕은 이때부터 그가 가진 최고의 능력을 발휘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타카에서 앨버커키까지 3200킬로미터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청혼하러 달려왔는지, 앨버커키는 얼마나 멋진 도시인지, 3년만에 처음 ..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이번 휴가는 도킨스, 굴드와 함께 보냈다. 오랫동안 쟁여두고만 있었던 도킨스의 돌베개만한 책 . 말해 무엇하리. 그리고 스티븐 제이 굴드의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이 책은 그동안 마음 속에(^^;;) 남겨두고만 있다가 몇달 전 결국 샀다. 교보문고를 지나가다가 매대에 올라있는 판다의 엄지를 보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굴드의 글을 읽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먼저 굴드, 한동안 도킨스, 그 다음엔 에드워드 윌슨에 빠져 있었고 심지어 제임스 왓슨과 르원틴의 책도 읽었건만 언제부터인가, 왜인지, 굴드를 잊고 지냈다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이유를 모를 것도 없다. 2002년 굴드아저씨가 세상을 뜬 뒤로 어쩐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기분이었으니. 샤르트르 대성당의 남쪽 수랑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