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과학, 수학, 의학 등등 103

크리스 밀러, <칩워>

칩워 크리스 밀러. 노정태 옮김. 부키. 11/1 재미있었다. 전형적인 칩의 사례를 들어보자. 일본이 소유하고 있으며 영국에 본사를 둔 암ARM이라는 회사에서 캘리포니아와 이스라엘에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이, 미국에서 만든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반도체 설계도를 디자인한다. 설계도는 대만의 설비로 보내지는데, 그곳에서는 일본에서 온 극히 순수한 실리콘 웨이퍼와 특수한 가스를 사용한다. 원자 몇 개 정도의 두께로 새기고, 배치하고, 측정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공작 기계가 반도체 설계도를 웨이퍼에 그려 넣는다. 이런 장비를 제작하는 선도적인 기업은 다섯 곳으로 하나는 네덜란드, 하나는 일본, 나머지 셋은 캘리포니아에 있다. 칩은 패키징과 테스트를 거치는데 테스트는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

무스타파 술레이만, <더 커밍 웨이브>

더 커밍 웨이브 THE COMING WAVE 무스타파 술레이만, 마이클 바스카 정리. 이정미 옮김. 한스미디어 10/26 첫 번째 책 준비할 때부터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기술 등에 대한 책을 조금씩 읽어왔는데 ChatGPT 이후에 확실히 우려를 담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알파고로 유명한 딥마인드 공동창업자가 쓴 것인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줄 치고 스크랩할 부분이 많아진다. 아세모글루의 책이 디지털 디스토피아의 사회경제적 측면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더 디테일한 기술적인 측면과 구체적인 해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을 생산적이고 유능한 존재로 만드는 핵심을 소프트웨어, 즉 알고리즘으로 추출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러한 생각을 염두에 두고 나는 2010년 여름 런던의 러셀 스퀘어R..

린 마굴리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김영 옮김. 리수. 6/7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히 슈뢰딩거의 그 유명한 강연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슈뢰딩거 트리니티 강연 50년을 맞아 펜로즈, 굴드, 다이아몬드 등등 쟁쟁한 이들의 글을 모은 을 읽으면서 번역;; 문제로 골치아팠던 기억이. 이 책은 아주아주 재미있다. 이것도 를 통해 알게 됐는데, 근래 읽은 최고 재미난 책이다. 슈뢰딩거의 질문 이후, 50년 플러스 알파의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많이 확장됐는지를 생각해봄. 기후위기라는 달갑잖은 액셀러레이터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1944년에 출간된 명저

닉 보스트롬 '슈퍼인텔리전스'

슈퍼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 닉 보스트롬. 조성진 옮김. 까치 경제학자 로빈 핸슨은 과거의 경제, 인구 수치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규모가 이전보다 2배 증가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다음과 같이 추산하고 있다. 즉 홍적세(Pleistocene)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22만4,000년이 소요되었고, 농경 사회에서는 909년이, 그리고 산업 사회에서는 6.3년이 걸린다고 한다 (핸슨의 모델에서는 현시대의 발전 양상을 농업과 산업이 혼합된 형태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 전체를 보았을 때, 현재의 증가율이 산업 사회의 증가 기간인 6.3년에 아직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과거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견줄 정도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발전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면, 세계 ..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7월 한 달 동안 기계, 인공지능, 자율주행, 나노기술 등에 대한 책을 몰아서 읽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당장 주어진 미션(언제 달성할지 모르지만)이 있기도 했고. 첫번째로 잡은 것이 스웨덴 태생의 미 MIT 물리학교수 맥스 테그마크의 (백우진 옮김. 동아시아)이었다. 집에 쟁여둔 지는 좀 됐는데 게으름피우고 있다가 끄집어냈다. 손에 잡자마자 순식간에 읽었다. 아주 재미있었다. 저자는 생명을 1.0, 2.0, 3.0으로 구분한다. 1단계는 박테리아이고 2단계는 인간이다. 3단계는 진화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몸과 의식)를 학습하고 설계해나가는 단계, 즉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인류를 대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기도 하다. 대체할..

페드루 페레이라, '완벽한 이론'

완벽한 이론-일반상대성이론 100년사 페드루 페레이라. 전대호 옮김. 까치. 일전에 읽은 에 이어, 이번엔 상대성이론 100년사. 과학적 상상력은 도통 없으니 책의 내용을 이해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무쟈게 어려운 수학적 물리학적 설명을 대부분 생략하고도 이 책은 차고도 넘치게 재미있다. 양자혁명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역시 초반부의 주인공은 아인슈타인이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이어지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를 이어받고 뒤집어보고 궁리해보며 '우주'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수많은 물리학자들. 로저 펜로즈나 마틴 리스의 책은 한 10년 전에 읽어본 듯한데, 그 때도 "어렵긴 하지만 정말 멋지다!" 감탄하면서 읽었더랬다. 100년 전 상투메 프린시페에서 빛의 굴절을 관찰한 아서 에딩턴에서부터 프레디 ..

헬레나 크로닌, '개미와 공작'

오래도록 읽지 않은 채 꽂아둔 책들을 꺼내어 읽어야지 하면서 두꺼운 책 목록을 만들었다. 그 중 첫 번째로 꺼내든 것이 헬레나 크로닌의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이다. 사이언스클래식이니 책의 질은 높을 것으로 보이고... 추천사를 읽는데 꽤나 재미가 있었고, 누가 썼나 봤더니 최재천 교수님이다. ^^ ‘협동과 성의 진화를 둘러싼 다윈주의 최대의 논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의 제목이 주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개미는 협동, 공작(의 그 쓸모없어 보이는 화려한 꼬리깃털)은 성 선택을 상징한다. 다윈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던, 다윈주의의 의붓자식 혹은 다윈주의에 반하는 증거 따위로 생각됐던 이타주의(협동)의 진화와 성 선택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잡아서 그것들이 다윈주의 역사 속에 어떻게..

아구스틴 푸엔테스, '크리에이티브'

크리에이티브-돌에서 칼날을 떠올린 순간아구스틴 푸엔테스. 박혜원 옮김. 추수밭. 5/24 요새 이런 책을 어쩐지 연달아 보게 된다. 태영씨가 보내준 책을 회사 책상에 놓아두고 있다가 펼쳐들었는데 순식간에 읽었다. 스티븐 핑커의 (지난 주 참석한 독서모임의 어느 분이 '간지나게 꽂아두고 읽지 않은 책'으로 첫손 꼽았던)나 크리스토퍼 보엠의 , 제러미 리프킨의 와 프란스 드 발의 , 그리고 넓게 보면 유발 하라리의 . 각기 조금씩 결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 "인간의 본성은 폭력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진화했다고 말하는 책들이다. 는 주로 고인류학적 증거에 초점을 맞춰서 인류가 서로 협력하며 진화했다고 말한다. 거기에다가 '창의성'이라는 것을 결합시켰다. 누군가의 창의성이 협력을 통해 강..

프리먼 다이슨, '과학은 반역이다'

"50년 전 영국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 훌륭한 수학자인 고드프리 해럴드 하디는 나의 스승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에서 일반인에게 수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하디는 응용할 데도 없는 아주 쓸모없는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데 인생을 허비했노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부의 분배에 불평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술이 발전하거나 삶의 파괴를 더 노골적으로 조장할 때, 흔히들 과학이 쓸모 있다고 말한다.' 사방에서 전쟁의 포성이 귀청을 찢고 있을 때, 하디는 이 말을 썼다." (42쪽) 다시, 프리먼 다이슨. 이번 책은 (김학영 옮김. 반니)인데, 서평과 에세이가 적당히 섞여 있다. 이전 책들에서 이미 읽은 에피소드들이 좀 겹쳐 있고, 내가 접한 적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책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