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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게시판 정리해버리려고 묵은 창고를 열어보니 지난해 이맘때 올렸던 글이 남아 있었다. 머리 속에 다시한번 'Fernando'의 곡조가 맴돌기 시작한다.
일년이 후다닥 지나가버렸지만 <쏜살같이>라고 하기엔 그 화살이 빙빙돌며 날아가는 고비고비마다 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다. 언제든 지나온 시간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작은 점들이 모여 선으로 이어지는 그 무엇처럼, 매 시간시간 일분일초마다 매듭을 만들어놓는 것 아닌가. 빛은 입자와 파동이라지만, 문학적 의미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 입자에 혹은 그 매듭에 얻어맞아 눈에서 가끔은 불똥이 튀고, 그 파동의 골과 골 사이에서 즐거워하고 화내고 괴로워한다.
'Fernando'는 1년전 묶였던 매듭(이 매듭을 만들어낸 주체는 내가 아니었다)인데 새삼 다시 들먹여본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잖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는데 아직 글자 한개 얹어놓지 못하고 있으니.
2001/12/16
그저께부터, 벌써 여러차례 아바의 'Fernando'를 듣고 있다.
들어보니 귀에 익은 노래인데, 현채가 방명록에 가사를 올려주기 전까지는
그 노래가 'Fernando'인지, 내용이 어떤 거였는지 전혀 몰랐다.
There was something in the air that night
The stars were bright, Fernando
They were shining there for you and me
For liberty, Fernando
Though I never thought that we could lose
There's no regret
If I had to do the same again
I would, my friend, Fernando
그럴까. 무언가를 위해 싸운다는 것, 정말 중요한 건데,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는데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실은, 잊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Fernando를 들으면서 가슴 아파하고,
'다시 오지 않을 옛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얼마전, 씬지가 이번 방학 때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씬지는 (알려진 바대로) 나보다 10살 아래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10년전의 겨울'을 생각했다.
(주시기는 알텐데^^ 우리가 10년 전의 겨울에 뭘 하고 있었던가를)
아마 날짜도 이맘 때쯤 되었을 것 같은데-12월 중순.
나하고 주시기는 그 무렵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삼아...는 아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실은, 모종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회사에 출근을 하는 생활을
한달 가까이 했었다. 하루 10시간씩 서 있어야 하는 고달픈 생활.
비록 한달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처음 며칠은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그 뒤 얼마동안은 '적응'하느라 바둥거렸고,
뒷부분의 얼마동안은 나름대로 '권태기' 속에서 즐거운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하루는 눈이 왔는데-아침 일곱시쯤 집을 나서면서 그 눈을 보고
출근하기 싫어 거의 울 뻔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어서, 눈이 저렇게 왔는데 공장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크리스마스 때에는 회사에서 선물을 줬다.
포장된 선물을 각자가 뽑는 거였는데
(실은 알량하기 그지없는 선물-연말까지 연일 야근을 했었다)
나는 콤팩트(화장품)를 뽑았다.
내 옆에서 일하던 최정임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취직하기 전에 무슨 브랜드의 대리점에서 가게 일을 봤었다고 했다.
얘는 월급 40-50만원 받아서 화장품 사고 머리하는데 돈 들이는
몇 안 되는 애들 중 하나였다.
화장도 하지 않는 내가, 선물 중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콤팩트를 고른 것이
꽤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오후 내내 콤팩트 구경 시켜달라 하고, 들여다보고...
결국 못이기는체, "정임아, 그럼 니 꺼랑 내 꺼랑 바꿀까?" 하고
선심 써서 바꿔줬다.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더니 자기 꺼를 나한테 주는데
기껏 양초 한 개가 들어있었다--;;
그러더니, 다음날 오후가 돼서는 콤팩트를 들고 와서 다시 바꾸자는 거였다.
다른 애들이, '순진한 애(바로 나) 꺼 속여서 뺏었다'고 욕하더라나.
어쨌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몇주간을 보냈는데
사실 그 기간의 경험이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선배들이-그토록 목메어 외쳤던,
그리고 때로는 내 눈에 그 외침이 너무나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했던
'노동자'라는 존재들을 잠시 동안이라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정도.
그것이 나의 '문제의식'이었다면 '문제의식'이었고,
지금까지 기억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잊고 지내던 기억을 깨워준 것은 Fernando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머릿 속에서 조금씩 살아났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정리는 잘 되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의 어느 시기엔가-스물 몇살의 젊은 시절에 나는
세상에 대해 궁금해했었고,
'정의'라든가 '폭력'이라든가 혹은 '혁명'이라든가 하는 붉은 단어들을
생각 속에 담고 있었고
또 나 아닌 다른 사람들, 대의라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었고
사회적 강자와 약자,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내 인생에서 견지해야 할 '전선'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는 것,
비록 라이플을 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들이 많았다는 점.
정글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동지의 기타소리를 들었던
'혁명의 기억'들은 없지만,
스물 한 살의 겨울을 떠올리면서 가슴 한켠에
아린 감정들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래서10년지기에 해당되는 언놈은 민주노동당 가입하라고
친구들을 부추기질 않나...)
다시 돌아가라 하면, 결코 돌아가지 않을 시간이겠지만
There's no regret...라고 하면 될까?
(그 겨울을 함께 보냈던 친구의 답글)
10년 전 겨울
벌써 10년이 흘렀나.
하긴, 10년이라는 셈보다 더 깊은 골이 가로놓인 것같아...
지금은 그보다도 더 멀게 느껴지는군.
그래 생각난다...
첫날, 이리지리 길거리만 헤매다 애꿏은 직원모집공고 종이만
뚫어져라 쳐다봤지.
왜 그렇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섭고, 공장의 대문은 크던지...
정말 엄두도 나지 않던 날이었는데. 그래 10년이 흘렀네.
'너는 남자니까 열심히만 하면 공장장 금방 돼, 넌 여기 여자애들하고 달라.
내가 특별히 봐줄테니까 ...'
얼굴에 게기름 잔뜩 묻어나는 공장장이 그렇게 말했었는데...
출근하고 정말 말한마디 못하고 묵묵히 일만하다 집에 돌아오는 뒷길은
얼마나 씁쓸했는지...
'떡뽁이 같이 먹으러 갈래요?'
...안면도에서 중학교만 마치고 혼자 올라왔다던 그녀가 한 말이
내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줬는지 그 친군 아마 지금도 모르겠지.
하루는 납품하던 꽤 유명한 회사의 새파란 여직원 하나가 품질검사한다고 나왔었지.
겨우 스물두세살이나 돼었을까? 앞에 마구 쌓이는 옷감들도 주체하지 못하던 내게
'도대체 이게 뭐냐, 이렇게 다리니까 옷을 다 망쳐놓잖아.'
악악대며 반말 썩인 말투로 사장 옆에 세워두고
10분간이나 얼굴 벌걿게 닦여 세웠웠지.
평소 뚱하니 한마디도 안하던 쌀쌀맞은 왕고참 재봉사 누나는 커피를 뽑아줬고,
남자가 돼가지고 한마디도 못한다고 핀잔주던 어린 여공들이
그날 저녁 구로동 김밥파티에 끼워줬었지.
남자친구 사귄다고 친구들이 걱정하던 누구는
며칠후 끝내 모습이 안보였었는데...
한달 정도 있었지 아마. '여러분. 이런게 부당하지 않습니까'고
선동 한마디 할 기회가 있을줄 알았는데 웬걸,
하루 2만원도 안돼는 월급도 반밖에 못받고 아무 소리 못하고
공장을 나왔었는데. 뭘...
거기에서 내가 제일 바랬던 것은 우습지만 독서실이었어.
앉아서 책볼수 있는 작은 독서실. 딱히 노동법전이 아니더라도
연애소설이라도 꽂혀있는 독서실. 그런게 하나만 있었으면 했는데...
어차피 나야 다림질도 못하는데, 도움이 될리 없잖아?
그런거 라도 있으면 '이책이 진짜 짠한 러브스토리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딸기야...나중에 산책가자...
그러고보니 방글라데시 인민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모순에도
부르르 떨며 분노하던 저 친구를 만나본지도 꽤 됐네 :)
아, 시간 잘 간다....!
일년이 후다닥 지나가버렸지만 <쏜살같이>라고 하기엔 그 화살이 빙빙돌며 날아가는 고비고비마다 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다. 언제든 지나온 시간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작은 점들이 모여 선으로 이어지는 그 무엇처럼, 매 시간시간 일분일초마다 매듭을 만들어놓는 것 아닌가. 빛은 입자와 파동이라지만, 문학적 의미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그 입자에 혹은 그 매듭에 얻어맞아 눈에서 가끔은 불똥이 튀고, 그 파동의 골과 골 사이에서 즐거워하고 화내고 괴로워한다.
'Fernando'는 1년전 묶였던 매듭(이 매듭을 만들어낸 주체는 내가 아니었다)인데 새삼 다시 들먹여본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잖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는데 아직 글자 한개 얹어놓지 못하고 있으니.
2001/12/16
그저께부터, 벌써 여러차례 아바의 'Fernando'를 듣고 있다.
들어보니 귀에 익은 노래인데, 현채가 방명록에 가사를 올려주기 전까지는
그 노래가 'Fernando'인지, 내용이 어떤 거였는지 전혀 몰랐다.
There was something in the air that night
The stars were bright, Fernando
They were shining there for you and me
For liberty, Fernando
Though I never thought that we could lose
There's no regret
If I had to do the same again
I would, my friend, Fernando
그럴까. 무언가를 위해 싸운다는 것, 정말 중요한 건데,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는데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실은, 잊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Fernando를 들으면서 가슴 아파하고,
'다시 오지 않을 옛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얼마전, 씬지가 이번 방학 때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봤다. 씬지는 (알려진 바대로) 나보다 10살 아래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10년전의 겨울'을 생각했다.
(주시기는 알텐데^^ 우리가 10년 전의 겨울에 뭘 하고 있었던가를)
아마 날짜도 이맘 때쯤 되었을 것 같은데-12월 중순.
나하고 주시기는 그 무렵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삼아...는 아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실은, 모종의 프로그램에 의해서 회사에 출근을 하는 생활을
한달 가까이 했었다. 하루 10시간씩 서 있어야 하는 고달픈 생활.
비록 한달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처음 며칠은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고, 그 뒤 얼마동안은 '적응'하느라 바둥거렸고,
뒷부분의 얼마동안은 나름대로 '권태기' 속에서 즐거운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하루는 눈이 왔는데-아침 일곱시쯤 집을 나서면서 그 눈을 보고
출근하기 싫어 거의 울 뻔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어서, 눈이 저렇게 왔는데 공장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크리스마스 때에는 회사에서 선물을 줬다.
포장된 선물을 각자가 뽑는 거였는데
(실은 알량하기 그지없는 선물-연말까지 연일 야근을 했었다)
나는 콤팩트(화장품)를 뽑았다.
내 옆에서 일하던 최정임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취직하기 전에 무슨 브랜드의 대리점에서 가게 일을 봤었다고 했다.
얘는 월급 40-50만원 받아서 화장품 사고 머리하는데 돈 들이는
몇 안 되는 애들 중 하나였다.
화장도 하지 않는 내가, 선물 중에서 가장 비싼 축에 드는 콤팩트를 고른 것이
꽤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오후 내내 콤팩트 구경 시켜달라 하고, 들여다보고...
결국 못이기는체, "정임아, 그럼 니 꺼랑 내 꺼랑 바꿀까?" 하고
선심 써서 바꿔줬다.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하더니 자기 꺼를 나한테 주는데
기껏 양초 한 개가 들어있었다--;;
그러더니, 다음날 오후가 돼서는 콤팩트를 들고 와서 다시 바꾸자는 거였다.
다른 애들이, '순진한 애(바로 나) 꺼 속여서 뺏었다'고 욕하더라나.
어쨌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몇주간을 보냈는데
사실 그 기간의 경험이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선배들이-그토록 목메어 외쳤던,
그리고 때로는 내 눈에 그 외침이 너무나 가식적으로 보이기도 했던
'노동자'라는 존재들을 잠시 동안이라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던 정도.
그것이 나의 '문제의식'이었다면 '문제의식'이었고,
지금까지 기억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잊고 지내던 기억을 깨워준 것은 Fernando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머릿 속에서 조금씩 살아났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있겠지만, 정리는 잘 되지 않는다.
다만, 내 인생의 어느 시기엔가-스물 몇살의 젊은 시절에 나는
세상에 대해 궁금해했었고,
'정의'라든가 '폭력'이라든가 혹은 '혁명'이라든가 하는 붉은 단어들을
생각 속에 담고 있었고
또 나 아닌 다른 사람들, 대의라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었고
사회적 강자와 약자,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내 인생에서 견지해야 할 '전선'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는 것,
비록 라이플을 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들이 많았다는 점.
정글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동지의 기타소리를 들었던
'혁명의 기억'들은 없지만,
스물 한 살의 겨울을 떠올리면서 가슴 한켠에
아린 감정들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래서10년지기에 해당되는 언놈은 민주노동당 가입하라고
친구들을 부추기질 않나...)
다시 돌아가라 하면, 결코 돌아가지 않을 시간이겠지만
There's no regret...라고 하면 될까?
(그 겨울을 함께 보냈던 친구의 답글)
10년 전 겨울
벌써 10년이 흘렀나.
하긴, 10년이라는 셈보다 더 깊은 골이 가로놓인 것같아...
지금은 그보다도 더 멀게 느껴지는군.
그래 생각난다...
첫날, 이리지리 길거리만 헤매다 애꿏은 직원모집공고 종이만
뚫어져라 쳐다봤지.
왜 그렇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섭고, 공장의 대문은 크던지...
정말 엄두도 나지 않던 날이었는데. 그래 10년이 흘렀네.
'너는 남자니까 열심히만 하면 공장장 금방 돼, 넌 여기 여자애들하고 달라.
내가 특별히 봐줄테니까 ...'
얼굴에 게기름 잔뜩 묻어나는 공장장이 그렇게 말했었는데...
출근하고 정말 말한마디 못하고 묵묵히 일만하다 집에 돌아오는 뒷길은
얼마나 씁쓸했는지...
'떡뽁이 같이 먹으러 갈래요?'
...안면도에서 중학교만 마치고 혼자 올라왔다던 그녀가 한 말이
내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줬는지 그 친군 아마 지금도 모르겠지.
하루는 납품하던 꽤 유명한 회사의 새파란 여직원 하나가 품질검사한다고 나왔었지.
겨우 스물두세살이나 돼었을까? 앞에 마구 쌓이는 옷감들도 주체하지 못하던 내게
'도대체 이게 뭐냐, 이렇게 다리니까 옷을 다 망쳐놓잖아.'
악악대며 반말 썩인 말투로 사장 옆에 세워두고
10분간이나 얼굴 벌걿게 닦여 세웠웠지.
평소 뚱하니 한마디도 안하던 쌀쌀맞은 왕고참 재봉사 누나는 커피를 뽑아줬고,
남자가 돼가지고 한마디도 못한다고 핀잔주던 어린 여공들이
그날 저녁 구로동 김밥파티에 끼워줬었지.
남자친구 사귄다고 친구들이 걱정하던 누구는
며칠후 끝내 모습이 안보였었는데...
한달 정도 있었지 아마. '여러분. 이런게 부당하지 않습니까'고
선동 한마디 할 기회가 있을줄 알았는데 웬걸,
하루 2만원도 안돼는 월급도 반밖에 못받고 아무 소리 못하고
공장을 나왔었는데. 뭘...
거기에서 내가 제일 바랬던 것은 우습지만 독서실이었어.
앉아서 책볼수 있는 작은 독서실. 딱히 노동법전이 아니더라도
연애소설이라도 꽂혀있는 독서실. 그런게 하나만 있었으면 했는데...
어차피 나야 다림질도 못하는데, 도움이 될리 없잖아?
그런거 라도 있으면 '이책이 진짜 짠한 러브스토리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딸기야...나중에 산책가자...
그러고보니 방글라데시 인민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모순에도
부르르 떨며 분노하던 저 친구를 만나본지도 꽤 됐네 :)
아, 시간 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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