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킬링필드에서도, 다르푸르에서도... 학살자들은 처벌되지 않는다

딸기21 2007. 2.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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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프놈펜에 살고 있는 올해 일흔살의 옴솜이라는 여성은 몇년째 법정에서 들려올 소식만을 기다리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옴솜의 30여년 전 크메르 루주 병사들에게 남편을 빼앗겼다. 닭 한 마리를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병사 3명에게 끌려간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다섯 아이를 두고 있던 옴솜은 당시 여섯째 아이를 가져 임신 7개월째였다. 남편이 끌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폴포트 정권은 `범죄를 없앤다'는 미명 하에 프놈펜 빈민가 주민들을 모두 외곽으로 내쫓았다. 옴솜이 쫓겨간 곳은 감옥 옆에 있는 천막촌이었고, 밤마다 고문 당하는 이들의 절규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폴포트 정권은 무너졌지만 `정의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남편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옴솜의 이런 작은 바램은 끝내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크메르 루주의 대학살 범죄를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재판이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고 영국 가디언지가 27일 보도했다. 수만∼수백만명을 대량학살한 반인도 범죄에 대한 단죄의 길은 험하기만 하다.

`킬링필드 단죄' 물건너 가나

캄보디아 특별재판소의 마르셀 르몽드 재판관은 "캄보디아 정부측과의 이견 때문에 재판소 운영이 위기를 맞았다"면서 "다음달 초까지 차이를 좁히지 못할 경우 재판의 실효성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르몽드를 비롯해 유엔에 의해 임명된 재판관들은 다음달 5일 회합 때까지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전면 철수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는 오랜 논의 끝에 2003년 특별재판소를 만드는데 합의했다. 예산문제 등 때문에 계속 미뤄지다 지난해 7월에야 재판소 문을 열었지만, 세부 사항에 대해 양측이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와 유엔은 각각 4명과 5명의 재판관들을 지명, 재판 규칙을 만들기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캄보디아 현 정부를 이끄는 훈센 총리는 크메르 루주 장교 출신. 서방측은 캄보디아 정부가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학살 주범인 폴포트 정권의 실력자들은 이미 숨졌거나 고령이어서 이 상태로는 처벌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것. 캄보디아 내전 대학살 희생자는 170만명에 이르지만, 재판이 열린다 해도 기소 대상은 10여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학살'은 했지만 `책임'은 없다

전날인 26일 옛 유고연방 보스니아 `인종 청소' 범죄를 재판했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세르비아에 `국가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보스니아인들의 반발을 샀다. 발칸 학살 재판은 옛유고연방전범재판소(ICTY)와 ICJ 두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ICTY는 `발칸의 도살자'라 불렸던 세르비아 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등 161명을 기소했으나 밀로셰비치는 처벌 받지 않은 채 옥중에서 지병으로 숨졌고, 카라지치는 아직 잡히지도 않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치안유지군은 이달 초에도 카라지치를 체포하기 위해 사라예보에서 특별작전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100일 동안 100만명이 학살됐다는 르완다 내전 범죄를 심판하는 르완다전범재판소(ICTR)는 ICTY와 마찬가지로 유엔 산하에 설치된 법정. 발칸 쪽에 비하면 재판이 많이 진전된 편이지만 역시 르완다 정부와 재판소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인 재판관이 르완다의 폴 카가메 현대통령이 학살에 연루됐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가 르완다측의 거센 반발을 사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다.

다르푸르 재판, 제대로 될까

`국제사회의 단죄'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 속에서 또하나의 전범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7일 수단 다르푸르 주민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전직 내무장관인 무하마드 하룬과 아랍계 `잔자위드(민병대)' 지도자 알리 쿠샤이브를 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ICC의 루이 모레노-오캄포 검사는 이들이 총 51건의 범죄 사건에 개입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다르푸르에서는 잔자위드의 학살로 2003년 이래 20만명 이상의 흑인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250만명 넘는 이들이 집을 떠나 난민이 됐다. 유럽과 아프리카 각국에서 온 국제 인권감시단은 다르푸르 사태가 명백한 `인종청소'라고 규정한 반면 수단 정부는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조차 거부하고 있다. ICC가 하룬 등을 기소한다 하더라도 수단 측이 이들을 법정에 내줄지는 미지수다.

현재 진행중인 국제 전범재판  * (  ) 안은 관할기구

옛유고연방 `인종청소' 재판 (유엔 산하 옛유고연방전범재판소· ICTY)
1990년대 옛유고 지역 내전 집단학살 범죄 재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 등 161명 기소, 40명 유죄판결

르완다 종족말살 재판(유엔 산하 르완다전범재판소· ICTR)
1990년대 르완다 투치족 학살 재판
제안 캄반다 전 르완다 총리 등 113명 기소, 22명 유죄판결

동티모르 반인도범죄 재판(유엔 지원 동티모르 특별재판소)
1970∼90년대 인도네시아군의 동티모르인 학살 등 재판

시에라리온 집단학살 재판 (유엔 지원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
1990년대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대량학살 범죄 재판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 등 11명 기소

캄보디아 `킬링필드' 재판 (유엔 지원 캄보디아 특별재판소)
1970년대 크메르루주 대량학살 범죄 재판

이라크 사담 후세인정권 반인도범죄 재판(이라크 특별재판소)
1980∼90년대 후세인 정권의 쿠르드족·시아파 대량학살 등 재판
8명 기소, 3명 처형, 1명 사형선고

수단 다르푸르 반인도범죄 재판(국제형사재판소·ICC)
2000년대 수단 다르푸르 내전 집단학살 등 재판
무하마드 하룬 전 수단 내무장관 등 기소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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