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 양상으로 가고 있다. 좌우 유력 후보들 간 결선투표가 치러지더라도 지지율 0.5% 차이의 박빙 승부가 될 것으로 점쳐지는 등, 두 달이 채 안 남은 대선은 안개에 싸여 있다.
사회당의 대선 후보 세골렌 루아얄이 최근의 지지율 침체에서 벗어나 우파 라이벌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을 맹추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주르날 드 디망슈에 보도된 여론조사기관 이폽(IFOP) 조사에서는 4월22일 1차 투표 때 루아얄과 사르코지가 똑같이 28%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다크호스로 떠오른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가 17% 지지도로 3위를 기록했다. 2002년 대선에서 좌파를 제치고 결선에 진출했던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은 11.5% 지지도로 4위에 머물렀다. 사르코지와 루아얄이 5월6일 결선에 오를 경우엔 사르코지 50.5%, 루아얄 49.5%로 지지율 차이가 거의 차이가 없을 것으로 조사됐다. 루아얄은 잇단 실언과 당 내분 때문에 한때 사르코지에게 10% 포인트 차이까지 뒤졌으나, 지난 19일 TV연설이 호평을 받으면서 지지율이 올라갔다. 20일 르 파리지앵이 보도한 CSA 여론조사에서는 양자대결의 경우 사르코지가 51%, 루아얄이 49%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이달 중순 조사에선 55% 대 45%였는데 격차가 크게 줄어든 것. 23일에는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가 루아얄 지지를 선언해 힘을 실어줬다. 조스팽은 지난해 11월 사회당 후보경선에서는 루아얄의 경쟁자였던 정통 좌파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을 밀었으나, 루아얄이 사르코지와의 경쟁에서 고전하자 돕겠다고 나섰다. 당내 경선에서 루아얄에 도전했던 사회당의 또다른 거물정치인 로랑 파비우스 전총리도 루아얄 캠프에 합류키로 결정했다. `코끼리'라는 별명을 가진 파비우스는 프랑스 좌파의 적자(嫡子)를 자부하는 인물. 루아얄은 `우파 같은 좌파'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전통적인 좌파 지지층으로부터는 오히려 외면을 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스팽과 파비우스의 합류는 루아얄에게 `좌파의 대표'라는 신임장을 준 셈이다. 지난해말 당내 경선 때만 해도 파비우스는 루아얄을 "집에서 애 키우던 여자"라 폄하하고 루아얄은 그를 마초로 몰아붙이는 등 감정 싸움이 험악했었다. 루아얄은 톡톡튀는 언행만으론 까다로운 유권자들을 잡기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표한 대선공약은 평소 루아얄의 주장보다 좌파적 색채를 더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당내 유력 정치인들과 제휴키로 한 것도, 참신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좌파 지지층의 표심을 굳히는 것이 더 실속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루아얄의 동거인인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수가 최근 "나는 부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두달 전만해도 좌파의 혁신을 외치더니 이젠 전통을 찾느냐"는 좌파 지지층 내 비아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루아얄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다. 특히 루아얄에게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던 공산당 지지층 표를 흡수하는 데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루아얄은 또 프랑수아 미테랑 전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였음을 강조하면서, 사회당 출신 대통령으로서 고인이 되어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미테랑의 노선을 흉내내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루아얄은 미테랑 정부 때 장관직을 지내면서 정부 각료 경험을 쌓았고 미테랑도 루아얄을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사르코지 측은 "지금까지 24차례 여론조사에서 내가 앞섰다"면서 루아얄의 반격을 평가절하했다. 사르코지는 아직까지 핵심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채 `따뜻한 우파'를 내세운 이미지 선전에 주력하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루아얄의 `실수' 여부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편 극우파 르펜은 25일 이민자를 더이상 받지 말 것, 유럽통합 반대, 감옥 증설 등 예의 극단적인 대선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북부도시 릴에서 열린 국민전선(FN) 전당대회에서 "프랑스가 이민자들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면서 `프랑스인을 위한 프랑스'를 축으로 한 공약들을 제시했다. 그는 250억 유로 규모의 감세, 외국인 체류기한 축소, 교도소 감방 7만5000개 증설 등을 약속했다. 이날 전당대회에는 나폴레옹 군대 제복과 군주 시대 제복을 차려 입은 지지자들이 무대에 올랐고, 과거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손녀 알레산드라 무솔리니가 보낸 지지 메시지가 낭독됐다. 행사장 밖에서는 르펜의 인종차별적 주장을 비난하는 시위가 열려 대조를 이뤘다. 르펜은 프랑스 내에서 일정한 지지도를 확보하고 있지만 대선 출마에 필요한 `공직자 500명 이상의 서명'을 받는데 성공할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 | |
|